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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60호 미디어꼼꼼보기] ccMixter – 음악을 만드는 오래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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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60호 / 2009년 4월 22일

 

 

ccMixter – 음악을 만드는 오래된 방법



오재환(ACT! 편집위원회)
 
상상력을 조금 발휘해 본다면...


MP3라든가 CD라든가 테이프라든가 레코드판이라든가 하는 게 없었을 때, 혹은 더 예전에 악보 표기법이라는 게 정해지지 않았을 때, 아니면 악보를 그릴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한정되어 있었을 때, 어떤 노래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기 위해서는 입에서 입을 통해서 전달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 당시를 살아보지 않아서 확실히 단언할 수 없지만, 평소에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노래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틀린다'. 원래 노래의 음을 다 기억하지 못하고, 원래 노래의 가사를 다 기억하지 못한다. 예전 사람들이라고 특별히 우리보다 나을 건 없었을 테니, 지금 우리가 알고 부르는 민요는 전해지는 과정에서 이미 상당한 변화를 거친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부르는 사람의 기억력 따라, 실력 따라, 취향 따라, 그때그때 기분 따라 노래는 점점 변했다.


상상력을 조금만 더 발휘해 본다면...


아까 말했듯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민요들이 처음 만들어진 그대로 보존되어 온 거라고 생각하긴 힘들다. 하지만, 애초에 그 ‘처음 그대로'의 노래라는 게 어떤 거였을까? 그 노래들을 애초에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만들어낸 작곡가가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노래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노래가 전해지는 과정은 애초에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노래라고 하기엔 아직 불완전한, 누군가가 우연히 시작한 짧은 흥얼거림을 다른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따라하기 시작하면서 점차로 살이 붙고 변해가다 보면 노래 하나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혹여나 어느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 낸 노래가 있었다고 해도, 그게 사람들의 입을 타고 멀리까지 전해지면서 변해버린 후엔 누가 이 노래를 맨 처음 만들었는지, 원래는 어떤 노래였는지는 점점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어떤 노래가 ‘원래 이렇다'라는 것도, ‘틀렸다'라는 것도, ‘누가 만든 노래'라는 것도 지금과 같이 확실한 개념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남이 만든 노래를 부르는 것과 내가 노래를 만드는 것은 애초에 분리된 과정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후에 사람의 입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노래를 저장할 수 있는 매체가 발달하고 동시에 그 매체가 사람들에게 확산되면서, 이미 만들어진 노래가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었다. 노래의 원래 형태가 정확하게 보존될수록, 누군가가 부르는 노래가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도 점점 명확해진다. 하지만 애초에 ‘틀리게 부르는 것'은 노래가 새롭게 만들어지는 과정의 일부였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부르는 노래가 ‘틀렸다'고 얘기한다는 것은, 그것을 창작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즉, 틀림의 기준이 명확해질수록 창작의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노래를 지어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뭔가를 만들어 내기에는 틀리는 게 너무 부끄러운 것이다. 반면에 남에게 틀렸다고 말할 능력이 있었던 몇몇 사람들은 더 이상 변하지 않는 노래의 변하지 않는 주인이 되었고, 창작이라는 건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신비롭고 독창적인 무언가가 되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좋은 노래를 따라 부르지만, 그 의미는 옛날과 많이 달라졌다. 노래방은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는 내내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음정 박자를 틀리지 않으려고 애쓰고, 기계는 점수를 매긴다.


지금까지 늘어놓은 장황하고 허점도 많은 이야기는, ‘왜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한정되어 있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필자 개인의 전혀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다. 하지만 기왕 이렇게 얘기를 꺼낸 김에, 이번에는 이 가설을 바탕으로 좀 더 무책임하게 미래의 가능성을 점쳐보기로 하자. 매체에 음악을 저장하는 기술이 발전하는 동안, 그렇게 저장된 음악을 편집하고 변형시키는 기술 또한 많은 발전을 거듭해 왔다. 게다가 (물리적 저장 매체보다 훨씬 변형이 용이한) 컴퓨터 파일이 음악 저장 매체로 점점 더 많이 사용되면서, 매체의 변화 불가능성에 기반을 둔 창작의 권위는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런 흐름이 계속 이어진다면, 음악을 만드는 이와 듣는 이의 경계가 또 다시 모호해지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담은 노래를 부를 날이 올 거라고 기대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글의 애초 목적은 ccMixter( http://www.ccmixter.org )라는 인터넷 음악 사이트를 소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이트의 외연만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서 이 사이트가 가지고 있는 작지만 중요한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려다 보니, 그만 본론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렇게 장황한 얘기를 늘어놓게 되어 버렸다. 읽는 이들에게 약간의 미안함을 느끼며, 이제부터는 ccMixter가 도대체 뭘 하는 사이트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ccMixter


ccMixter는 리믹스(*주1) 사이트이다. CcMixter의 사용자들은 단순히 혼자서 완성한 음악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보컬이나 악기 연주 등을 따로 녹음하여 업로드한다. 그러면 또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모인 음원을 활용하여 리믹스를 만들어내고, 그렇게 완성된 리믹스는 다시 ccMixter를 통해서 공유된다.


ccMixter의 운영자 빅터 스톤(Victor Stone)은 “ccMixter: A Memoir”라는 글을 통해 음악을 창작하는 과정으로서의 리믹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어떤 음악을 만드는 과정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음악에서 사용되었던 요소들을 끌어와서 창조적으로 재조합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리믹스에서도 다를 바가 없다. 음악을 만드는 기존의 방법과 리믹스의 차이점이라면, 자기가 어떤 음악을 빌려왔는지를 감추느냐 드러내느냐의 차이 뿐이다. 리믹스가 정당한 창작이 아닌 도둑질과 같은 취급을 받는 것은, 기존의 음악 창작 기술(즉, 다른 음악의 좋은 요소를 끌어와서 창조적으로 재조합하는 기술)에 비해 리믹스가 너무 간편하기 때문일 것이다.(*주2) 그래서 ccMixter는 리믹스를 도둑질로 몰며 음악 창작 과정의 본질을 흐리는 대신에, 합법적이고 편리하게 리믹스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음악 창작을 활성화시킨다.


리믹스의 재료 - 아카펠라와 샘플


위에서 말했듯이, ccMixter에서는 완성된 곡이 아니라 보컬이나 악기 연주 등을 따로 녹음한 음원을 공유한다. 그 중에서 사람의 목소리로 된 것은 아카펠라라고 하고, 그 밖의 다른 것들은 샘플이라고 부른다.(*주3) 만약 누군가가 어떤 노래의 일부분, 보컬이나 혹은 기타 파트가 마음에 들어서 그것을 자기 음악에 활용하고 싶다고 하자. 그런데 그 노래의 모든 트랙이 합쳐져서 하나의 컴퓨터 파일로만 존재한다면, 여기에서 원하는 부분만을 분리해 낸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ccMixter에서는 완성된 곡이 아니라, 분리된 음원이 모여 있는 아카이브를 제공함으로써 리믹스 아티스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음악의 재료를 확장시켜 주는 것이다.


ccMixter에는 아카펠라와 샘플을 찾을 수 있는 메뉴가 따로 만들어져 있고, 그 안에서 속도, 사용된 악기, 형태 등에 따라서 원하는 아카펠라와 샘플을 검색하여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일반 사용자가 올린 아카펠라나 샘플 뿐 아니라, 이름이 많이 알려진 음악가나 단체로부터 협찬 받은 샘플도 사용할 수 있다. 게다가 완성된 리믹스 또한 다른 리믹스의 재료가 될 수 있다. 아예 리믹스를 올릴 때 트랙별로 분리된 샘플을 처음부터 같이 올리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분리된 트랙을 요청한다면 기꺼이 제공해주는 경우가 많다.


아카펠라의 예 - http://ccmixter.org/files/Leza2unes/20053
샘플의 예 - http://ccmixter.org/files/jlbrock44/20361
오픈 뮤직 아티스트 브래드 석스(Brad Sucks)가 협찬한 샘플. 원곡을 트랙별로 모두 분리해서 올려놓았다.
http://ccmixter.org/files/bradsucks/16638


리믹스 듣기


사람들은 이렇게 모인 아카펠라와 샘플을 이용하여 리믹스를 만들고, 이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을 다시 ccMixter를 통해서 공유하게 된다. ccMixter에 올라온 리믹스들은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보거나 다운받을 수 있다. 하지만 ccMixter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음악을 들으러 온 사람들이 좋은 리믹스를 편하게 찾아서 들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치를 제공한다. 우선 ccMixter의 스텝들이 추천할 만한 리믹스를 선정하여 소개해 준다(Editors' Picks). 또한 ccMixter의 회원들은 업로드 된 리믹스를 추천하거나 리뷰를 작성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리믹스를 아직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다른 이들의 추천과 리뷰를 통해 음악의 질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이런 기능은 샘플이나 아카펠라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 밖에도 회원들은 자기가 듣는 음악을 모아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 수 있으며, 다른 회원들이 그 플레이리스트를 들어보는 것도 가능하다. 마음에 드는 아티스트가 있다면, rss피드를 이용해서 그 아티스트의 새 리믹스를 받아서 들을 수도 있다.


CCL과 저작자 표시


사이트의 이름이 ‘cc'Mixter인 것에서 예측할 수 있는 것처럼, 샘플, 아카펠라, 그리고 이들을 샘플링하여 만든 리믹스는 모두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Creative Commons License, 이하 CCL)(*주4)를 이용하여 공유된다. 따라서 ccMixter에 업로드되는 모든 음원들에 대해서, ccMixter는 아무런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즉 저작자의 요구 조건만 잘 지킨다면, ccMixter에 있는 음원들은 ccMixter 밖에서도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다. ccMixter에서 사용하는 CCL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다음의 두 가지 형태 중 하나이다: 저작자 표시, 저작자 표시 – 영리 금지. 두 가지 라이센스의 공통점은, 저작물의 이용 및 자유로운 변형이 허락되며, 이용 및 변형 시에는 원 저작자를 꼭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ccMixter에서는 사용된 샘플이나 아카펠라의 원 저작자를 밝히기 위한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구축되어 있다. 완성된 리믹스를 업로드할 때는 그 리믹스에서 어떤 샘플을 이용했는지 입력해야 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 경우 리믹스를 업로드 할 수 없다.(*주5) 이렇게 해서 ccMixter에 
올라온 모든 아카펠라, 샘플, 리믹스 사이의 관계가 기록되고, 업로드되는 모든 음원의 페이지에는 ‘uses samples from(여기에서 사용한 샘플)'과 ‘samples are used in(이 샘플이 사용된 곳)'이 표시된다. ccMixter 외의 다른 사이트의 샘플을 사용해서 리믹스를 한 경우나 다른 사이트에서 ccMixter 내의 음원을 사용한 경우에도(예를 들어 유튜브 동영상) 출처나 사용처를 입력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런 방법을 이용하면, 샘플을 가져와서 리믹스를 만든 사람은 샘플의 원 저작자를 편리하게 표시할 수 있고, 샘플을 올린 사람은 자기 샘플을 누가 어디에서 이용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남이 만든 음악을 들으러 온 사람도, 자기가 듣는 음악에 어떤 샘플이 사용되고 있는지 들어보고, 같은 샘플이 사용된 다른 노래와 비교하기도 하면서, 그저 완성된 곡을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곡의 창작 과정을 살짝 엿볼 수 있게 된다.(*주6)


창작자의 권리


저작권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창작자는 자신의 시간과 노동을 들여서 창작물을 만들어 내므로 그 창작물을 이용하는 이용자가 창작자의 권리를 인정하고 보호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한다면 누가 공들여서 창작을 하고 싶어 하겠는가. 이와 같은 주장은 단순하면서도 힘이 있어서,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공유에 의한 창작의 활성화' 따위는 그저 뜬구름잡는 소리였던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위와 같은 논리를 가지고는, ccMixter와 같은 사이트가 이토록 잘 운영되고 있는 이유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여기에 대해서는 각종 통계치를 굳이 인용하지 않아도, 사이트를 조금만 둘러보면 정말 잘 운영되고 있다는 게 느껴질 것이다). 이곳에 음악을 올리는 사람들은, 얼핏 봐서는 자기 창작물이 아무런 대가 없이 마음대로 이용되도록 가만히 놔두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그리고 창작물의 이용에 대한 대가를 경제적 보상과 동일시하지만 않는다면, 이 사람들이 아무런 대가 없이 자기 음악을 내어주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여기에 대한 설명을 위해, ccMixter 운영자인 빅터 스톤의 글에서 몇 부분을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로, 뮤지션들은 샘플의 공유를 통해 전통적인 창작 방식이 가지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혼자 일하는 음악가는 자신의 음악적 기술과 자기 돈을 주고 구입한 샘플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연주자를 고용해서 음악을 녹음하는 경우는, 사용 가능한 예산과 고용된 연주자의 연주 실력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밴드를 만들어서 음악을 하는 경우는, 밴드 전체의 실력 – 보통 셋에서 다섯 명 정도인 – 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러한 한계들과 비교해볼 때, 수백만 개의 샘플을 공유하고 이용하는 것이 가능한 풀(pool)이 어떤 것일지 생각해보라. 장르, 스타일, 연주 실력의 제한이 사라진다.'(*주7)


또한 ccMixter의 음원을 사용할 때는 음원의 출처를 명확히 밝히도록 되어 있다. 이런 시스템을 통해 뮤지션들은 직접적인 경제적 이익은 얻지 못하더라도 자기 이름을 홍보하고 경력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득을 주는 것 이외에도, ccMixter의 저작자 표시 체계는 ccMixter 내의 음악가들이 음악을 통해 서로를 알아보고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해준다.


‘전형적인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의 경우, 되도록 많은 친구들을 모으고, 서로의 프로필 페이지에 링크를 걸고, 상태 메시지(status message)를 주고 받는 것이 목표이다. ccMixter에는...웹 2.0스러운 사교 기능은 없지만, 대신에 음악 자체를 이용해서 서로에게 링크를 건다. 저작자 표시 체계는, 서로의 창작물을 통해서 관계를 맺는 음악가들의 오래된 사교 방식을 명확하게 보여준다.'(*주8)


게다가, ccMixter에서 만든 음악이 기업의 눈에 들었을 경우, 진짜로 돈을 버는 것마저 가능하다.


‘때때로 이 사이트에서 활동하던 어떤 뮤지션이 상업적 회사를 통해 자기 리믹스를 발표하거나 어떤 다른 종류의 계약을 맺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주9)


이처럼 저작권의 보호를 통한 경제적 이익(솔직히 말해서 몇몇 성공한 창작자들의 경우가 아니면,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쥐꼬리만한 가능성)을 양보함으로 인해서 뮤지션들이 얻을 수 있는 대가는 상당하다. 오히려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경제적 대가에 대한 욕심 혹은 생계에 대한 압박이 너무 강해서 창작자가 가질 수 있는 다른 종류의 권리들이 무시당하고 잊혀졌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제 마지막으로, ccMixter를 통해서 재발견할 수 있는 창작자의 권리를 하나만 더 이야기하려고 한다. 지금부터 하게 될 이야기는 아직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고, 이 사이트에서 직접 활동하는 사람들이 내 견해에 동의할 거라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필자는 이것이 창작자의 다른 어떤 권리보다 오랫동안 잊혀져왔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이라고 믿는다.


누구나 창작에 자유롭게 참여할 권리


보통 음악가는 (더 나아가 모든 창작자는) 사람들에게 완성된 창작물을 제공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창작물을 완성시킨다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 보여도 전혀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만들었다는 것'과 같은 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제대로 완성해내지 못한 상태에서 사람들에게 공개된 창작물은 때론 날카롭고 때론 막무가내인 비판에 직면한다. 자신이 창작을 하는 과정을 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심지어 제대로 된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불법 다운로드로 자신의 창작물을 접한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한다. 이건 창작자 입장에서는 꽤나 억울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의 맨 처음에 했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 보면, 창작물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때로 그토록 무례해질 수 있는 이유는 자기 자신이 비슷한 일을 겪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든 소비자들이 원래는 창작자가 될 가능성을 품고 있었지만, ‘틀렸다'는 비판에 직면하면서 창작에 참여할 권리를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음악을 저장하는 매체가 발달하고 이미 창작된 음악의 권위가 커질수록, 창작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창작을 할 용기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창작물의 소비자가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소비자는 창작자를 질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여전히 창작자의 창작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것을 소비하면서도, 끊임없이 창작자의 자격을 의심하며 완벽해질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ccMixter에서도 다른 이들의 음악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ccMixter의 특징 중 하나는, 아무리 완성도 높은 음악이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 의해서 변형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ccMixter에 있는 각각의 리믹스는 하나의 완성된 음악인 동시에, 다른 리믹스에서 사용되기 위한 샘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ccMixter의 사용자들은 음악을 들으면서도, 동시에 거기에서 자신의 음악에 사용할 샘플을 찾게 된다. 여기에서 다른 음악 매체에서는 찾기 힘든 ccMixter만의 특징이 드러난다. 음악을 듣는 사람에게 그 음악을 자기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이런 가능성이 열리게 되면,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창작의 과정에서 멀찍이 떨어진 채 완성도 없는 음악을 비판하는 데에 모든 신경을 쏟는 것이 아니라, 창작의 과정에 같이 참여하여 그 음악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려고 하게 되지 않을까? 물론 이것은 가능성에 불과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실제로 창작에 참여하기 위해서 배워야 할 것들이나 넘어야할 장애물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ccMixter가 걷어낸 장애물은 그 중에서도 꽤나 상징적이다.


혹시 이 글을 읽고 나서 직접 ccMixter를 방문해서 노래를 들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별로라는 생각이 든다면...이제 당신이 나설 차례다. 우리 같이 뭔가 해보자. 능력이 아직 안 된다면 그저 마음속으로라도.□


덧1. ccMixter의 한국어 사이트도 운영되고 있다. http://www.ccMixter.or.kr


덧2. 이 기사에 쓰인 모든 이미지의 출처는 http://www.ccMixter.org 입니다.


*주1: ccMixter에서 말하는 리믹스는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리믹스보다 범위가 넓은 개념이다. 위키피디아에서는 리믹스를 ‘어떤 노래의 원래 버전과 다른 새로운 버전( http://en.wikipedia.org/wiki/Remix)'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이런 맥락에서의 리믹스라는 말은 보통 댄스음악이나 힙합음악에 한정되어 사용된다. 반면에 ccMixter에서 리믹스란, 원곡의 존재 여부나 장르와 상관 없이 ‘샘플을 사용해서 만든 모든 음악(Victer Stone, ccMixter: A Memoir , 2009, p.9, http://fourstones.net/ccMixter_A_Memoir.pdf )'을 말한다.


*주2: Victor, 위의 책, p.2-7의 내용 요약


*주3: 아카펠라와 샘플은 사실 본질적인 차이가 없지만, 실용적인 이유 때문에 이 둘을 굳이 구분해 놓은 듯하다. ‘좋은 보컬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는 좋은 음악가를 끌어들이기에 가장 좋은 요소이다...그들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음악의 질을 상당 수준 높여야 했고, 양질의 아카펠라는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였다.(Victor, 위의 책, p.15)'


*주4: CCL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http://www.creativecommons.or.kr/info/about 참조


*주5: 샘플을 사용하지 않은 음악을 올리지 못하게 함으로써, ccMixter는 리믹스와 상관 없는 음악인들의 작품이 홍보 목적으로 업로드되는 것을 막고, 리믹스 사이트로서의 정체성을 지킨다. 하지만 조금 안타까운 건, ccMixter 내의 샘플이나 CCL을 이용하는 몇 개의 다른 사이트(Magnatune, Freesound 등)의 샘플을 하나라도 이용하지 않은 리믹스는 업로드할 수 없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주6: (샘플이 사용된 경로를 공개함으로써) 어떤 음악의 뿌리를 드러내는 것은 무에서 유가 창조된다는 신화 – 하찮은 인간들의 도움 없이 혼자만의 머릿속에서 마스터피스를 만들어내는 뮤지션의 이미지 – 를 벗겨낸다...ccMixter의 저작자 표시 체계는, 예술이 실제로는 서로가 만든 창작물 위에 뭔가를 더 쌓아 나감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선언이다.(Victor, 위의 책, p.14)


*주7: Victor, 위의 책, p.12


*주8: Victor, 위의 책, p.14


*주9: Victor, 위의 책,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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