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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63호 미디어꼼꼼보기] 닫힌 나라로부터의 보고 - 「버마 V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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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63호 / 2009년 7월 28일

 

 

닫힌 나라로부터의 보고 - 「버마 VJ」 






인터뷰 : 소모뚜 (버마행동한국 총무, MWTV 대표) 
정리 : 주영 (ACT! 편집위원)
 
처음 버마라는 이름을 본 것은 한 신문에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스님들이 군부에 저항하고 거리로 나와 집회를 하기 시작했다며 한 장의 사진이 조그맣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미얀마가 아니라 버마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민주화와 관련된 이유도 적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당시 버마의 소식은 국제면을 채우고 있는 하나의 기사에 불과했다.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하고 심각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대한민국을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무관심을 감출 일종의 핑계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부끄럽지만 아웅산 수지라는 이름은 알면서도 그녀가 버마 사람이고 버마의 민주화와 깊게 관련된 인물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이런 무지, 무관심이 나만의 것일까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다시 버마를 만난 것은 인권영화제에 상영된 영화「버마VJ」를 통해서였다. 군부에 대항하여 민주화를 하려는 버마인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은 그 영상이 버마에서 만들어지지 못하고 안데르스 외스터가르트라는 서양인 감독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부분이었다. 영상들은 버마 안에서 버마인들에 의해 찍혔다. 하지만 자국에서는 그것들을 모아 영상으로 만들 수조차 없을 정도로 안전하지 못했던 것이다. 궁금해졌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한 버마인 활동가를 만나보았다. 함께 「버마 VJ」를 보며 버마의 상황에 대 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30명의 버마 리포터들로 이루어진 DVB(Democratic Voice of Burma)는 비밀리에 자국의 인권침해 현장을 찍어서 위성으로 오슬로에 보낸다. 2007년 지난여름, 40년간 이어져 온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집회가 군부 정권에 의해 짓밟히자 목숨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세상에 알릴 영상을 촬영한다.
- 제 13회 서울 인권영화제 홈페이지 「버마vj」소개 중에서 -




영화의 이야기는 1988년에서부터 시작한다. 군부의 폭압적인 통치에 저항하며 사람들은 거리로 나왔다. 한 사람이 두 사람이 되고 그 수는 점차 불어났다. 하지만 군부는 생각보다 강력하고 잔인했다.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진압을 실시했던 것이다. 시민들에게 총을 쏘기까지 하며 진행된 강경한 진압을 통해 3000여명의 사람들이 죽었다고 한다. 군부의 실체는 어쩌면 바로 이 때 가장 잘 드러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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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 (ACT 편집위원) : 한국에서 버마 이야기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어떤 상황인지 말해줄 수 있는가?


소모뚜 (MWTV 대표) : 버마가 48년도에 독립하고 10년 정도는 민주 국가였다. 그런데 그 이후 내전이 일어나고 군부 독재가 시작되었다. 처음 지도자는 독립 운동을 하던 사람이었는데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그랬다고 말해왔다. 사실 나름 자유도 있었고 상대적으로 괜찮다고 느끼던 시기였다. 그는 버마식 사회주의를 내세우며 국정을 운영했는데 어차피 민주주의가 아니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협동조합과 같은 것도 처음에는 국민이 운영을 하다가 국가의 운영으로 바뀌면서 점차 부패하기 시작했고 결국 전체적으로 나라가 가난해졌다. 실제로 1987 년도에는 버마가 세계 최빈국이 되었다. 과거 시절을 돌이켜보면 그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 집 같은 경우에도 평범하게 살았는데 삼남매가 교육을 마음껏 교육을 받았고 가끔 마을에서 잔치를 열기도 했다. 절에 공양도 드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 역시 시간이 지나며 불가능해졌다.


사실 1988년에 학생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국민들이 함께한 커다란 정권 반대 투쟁이 있었다. 나 같은 경우에 1988년에 13살이었는데 사람들과 함께 시위에 나가곤 했다. 선배들이 주도해서 거리로 나가곤 했던 것이다. 그 때 사람들이 바다처럼 몰려오고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좀 재미있기도 했다. 그 안에는 교사들, 학생들, 군인들도 있었고 다양한 국민들이 참여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힘내라고 박수치면서 하루 종일 시위를 하고 그랬다. 직접 나의 눈으로 목격했던 그 시절의 기억이 똑똑히 남아 있다. 물론 진압하던 군인들이 사람들에게 총을 쏘고 그 흔적이 우리 옆집에 남았던 것도 기억한다. 그런 잔인한 기억들의 두려움에서 빠져나오기는 정말 힘들다. 하지만 함께 할 때 용기가 생기는 법이고 정말 참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면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게 되는 것이라고 본다.


어쨌든 그 해 당시 군부 지도자는 국민들에게 대선거를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누구나 당을 만들고 그 중 투표를 통해 수위에 오르는 사람에게 정권을 넘기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국민들의 강렬한 요구도 있었지만 사실 그들은 자기들이 이길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국민의 90% 이상이 아웅산 수지 여사와 그녀가 속한 NLD를 찍어버렸다. 물론 사람들은 아웅산 수지 여사도 모르고 당도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당시 정권이 너무 싫었기 때문에 반대쪽에 많은 지지를 보낸 것이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군부는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정권을 넘기지 않았다. 그 이후에 국회의원도 필요 없다며 구속해버리고 아웅산 수지 여사는 가택연금을 실시해버렸다. 그렇게 지금까지 통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주영 : 영상을 보니까 지금은 촬영도 할 수 없고 사람들이 모이기만 해도 잡아가고 이런 부분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이 1988년 때부터 그런 것인가?


소모뚜 : 그렇다. 1988년 싸움 이후에 여러 방면에서 너무 많은 탄압이 있었다. 미디어 쪽에서도 그렇고 사람들의 삶도 그렇고 문제가 많았다. 예를 들어 잡지 같은 경우 군부 마음에 안 드는 얘기가 나오면 출판되기 전에 잉크로 칠해버린다. 어떤 책을 보면 한 페이지가 다 잉크인 경우도 있다. 사실 보면 별 내용도 아닌데 말이다. 출판도 허가를 받아야 가능하고 신문들도 많이 없어졌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조중동과 같은 신문들만 남게 되었다. 그런 언론들은 항상 정권의 치적만 부각시켰다. 어디에 다리를 짓고 어디에 건물을 짓고 하는 식의 것들을 말이다.


지방 같은 경우에는 탄압뿐만 아니라 나라에 봉사하라며 강제적으로 노역을 시키기도 한다. 만약 나오기 싫다고 한다거나 나올 사람이 없으면 5천 짯 의 벌금을 부과한다. 한국 돈으로는 3,4천 원 정도 되는데 버마 보통 사람의 월급이 한국 돈으로 2만 원 정도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정말 큰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 일해 하루를 먹고 사는 인생이기 때문에 벌금을 내지 않기 위해 아이들까지 데리고 일을 하러 가야한다. 이를 보며 군부는 사람들이 나라를 위해 봉사한다고 미화시킨다. 이런 상황에서 공사를 위해 외국 기업이 들어오면 군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는 얼마든지 인력이 있으니 말만 하라고. 그리고는 그 동네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다.




탄압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버마 군대의 잔인함을 드러내는 이런 예도 있다. 군대가 지역 무장 투쟁 조직과 싸우기 위해서는 길에 설치된 지뢰를 없애야 한다. 그를 위해 군대는 마을 주민들을 앞세운다. 그들은 걸어가며 자신도 모르게 지뢰를 없애게 되는 것이다. 예전 일제 통치시기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 때는 소 같은 동물을 사용해 지뢰를 없앴다고 들었다. 이처럼 지역의 주민들 또한 항상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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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는 큰 집회가 일어나기 전에도 존재했던 용기 있는 시민들의 모습 또한 담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은 거리에서 버마의 민주화를 외치며 군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거리에서 목소리를 높인지 얼마 되지 않아 시민들 속에 숨어 있던 비밀경찰들은 연행을 시도했다. 거리의 시민들은 경찰들로부터 용감한 이들을 지키고자 했고 더 많은 경찰들이 몰려와 시민들을 모두 데려가곤 했다. 저항하고 연행되고 아무도 모르게 감옥에 갇히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어찌 보면 무의미할 수도 있었다. 때문인지 영화 속의 내레이터도 1988년을 통해 우리가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비관적으로 말하곤 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군부 정권은 여전히 그들을 통치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민주화를 향한 욕망을 확인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자신과 함께 싸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소득들은 2007년 집회로 이어졌다. 영상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시작은 스님들에 의해서였다. 수많은 스님들은 절에서 나와 길을 걷고 사람들과 노래했다. "모든 존재들이 두려움과 가난으로부터 자유롭기를." 버마 국민들의 분노는 표면적으로 기름값 인상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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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뚜 : 원래 버마가 불교 국가이기 때문에 스님이 부모나 다름없다. 어렸을 때부터 법회에 참여하고 말씀을 듣고는 한다. 여러분이 직접 그 생활을 느껴보면 알겠지만 스님들은 정말 평화롭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존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스님들이 어려움을 무릅쓰고, 그리고 자신의 평화로운 생활을 넘어 직접 집회를 한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본인들이 나서야만 한다는 생각이 섰기 때문에 참여하신 것이다.


물론 1988년에도 스님들이 참여하기는 했지만 주로 주도한 것은 학생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스님들이 주도했다. 그걸 보면서 저희 같은 일반인들은 우리가 잘 못해서,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부족해서 존경하는 스님들까지 시위를 하셔야 하구나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부모님의 고생을 보며 아파하는 자식의 심정과 비슷한 것이다. 비를 맞으면서도 평화롭게 행진하고 기도하는 모습들 보며 저 같은 경우도 눈물이 났었다. 더군다나 군부가 그런 분들을 죽일 수까지 있다는 사실을 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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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는 무척 크고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 힘의 바탕에는 미디어가 존재했다. 실제 「버마VJ」를 위한 영상들도 DVB(Democratic Voice of Burma)라고 불리는 기자들의 조직에 의해 촬영된 것이었다. 길에서 민주화를 외치는 이들을 찍는 순간에도, 스님들이 자유를 외치는 순간에도 DVB의 기자들은 몰래 카메라를 들고 길로 나섰다. 이들 역시 연행의 대상이었기에 항상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가방 속에 카메라를 넣고 때로는 옷 사이에 감추기도 했다. 영상의 초반 제작자가 고백하는 것처럼 마구 흔들리는 영상이 포함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들 DVB의 기자들이 없었다면, 블로그에 사진과 소식을 올리는 블로거들이 없었다면 세계인들이 버마의 상황을 알 수 있었을까? 내가 생각하는 대답은 ‘아니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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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 : 버마 집회에 있어 미디어가 어떤 역할을 했나?


소모뚜 : 먼저 인터넷 이야기부터 하는 것이 좋겠다. 버마의 경우 인터넷이 느리지만 전국으로 소식을 전하는 역할을 많이 했다. 1988년도 같은 경우에는 사람들이 컴퓨터 같은 매체를 잘 몰랐기 때문에 어떤 소식이 외국으로 나가는데 4주나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2007년에는 버마의 소식이 바로바로 전국, 전 세계로 전해졌다. 구글과 같은 사이트의 블로그를 통해서다. 그 안에는 유명한 버마인 블로거들이 있었다. 그들이 영상은 아닐지라도 버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인터넷을 통해 알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같이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도 오늘 버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고 그들이 필요한 도움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블로거, 활동가들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자신의 핸드폰 카메라를 통해 사진, 영상을 찍고 인터넷에 올렸다. 이들과 블로거들의 활동, 그리고 앞에서 본 영상 속 활동가들의 활동들이 2007년 민주화에 큰 역할을 했다. 누구나 현실을 똑똑히 볼 수 있도록 말이다.


특히 DVB같은 경우에 인터넷 신문, 라디오, 위성 방송, TV 등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버마 전국에 소식을 전하고 있다. 지금도 유투브에 검색을 해보면 그들이 올린 소식들을 접할 수 있다.


주영 : 영상 속에서 DVB의 조직이 붕괴되었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지금은 괜찮은가?


소모뚜 : 지금도 계속 뉴스가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붕괴되거나 끊기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에는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었으니 피해야 했을 것이다.


사실 버마에서 미디어를 통해 소식을 전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미디어를 통제하는 법 때문이다. 예전에 한 블로거가 정부를 비웃는 만화를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그는 앞에서 말한 법의 적용을 받아 12년 형을 받았다. 또한 버마 같은 경우에 여러 가지 죄목을 붙여서 활동가들에게 엄한 벌을 내린다. 미디어 관련 법, 전자기기 관련 법, 나라를 혼란스럽게 한 법, 군부에 대한 명예훼손법. 이런 것들을 합치면 100년형을 받기도 한다. 지금 학생 운동 지도자들이 68년 형, 104년형 뭐 이렇게 형을 받고 감옥에 있는 경우도 많다. 아까 영상의 기자들이 무기 징역을 받은 것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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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당황했을지도 모르겠다. 버마의 군부는 무조건 강하게 탄압하면 되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들고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으면 때리고 쏴서 그러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존경의 대상이었던 스님들도 자신들의 정권을 위해서라면 몰래 죽이기도 했다. 그렇지 않더라도 모두 잡아들였다. 그렇게 어딘가로 잡혀간 스님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을 비밀리에 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행동이 방송을 통해, 인터넷을 통해 널리 퍼지자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왜곡이었다. 버마의 경찰청장은 기자들을 모아놓고 DVB를 비롯한 활동가들을 비난하기 시작한다. 오히려 그들이 현재 상황을 왜곡하고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고 말이다. 마치 테러리스트들이나 조직폭력배들을 보여주듯 활동가들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멋들어진 도표도 만들어 설명했다. 그들이 바로 이 모든 집회와 혼란의 배후세력이라는 의미였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너무나 씁쓸한 장면임에도 어디선가 본 것처럼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배후, 혼란, 왜곡. 사건의 본질을 가리기 위해 권력을 가진 이들이 흔히 던지는 말들. 그 모습을 멀다고만 느꼈던 버마의 영상 속에서 다시 발견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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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 : 경찰들이 활동가들에 대해 왜곡된 말을 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하던데 어떤 느낌이 들었나?


소모뚜 : 어이가 없는 일이다. 그들이 그렇게 말해도 판단은 어차피 국민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그렇게 무식하지 않다. 뭐가 옳은 것인지 판단할 수 있다. 아무리 자기들이 그렇게 말해도 국민들이 믿지 않는다. 실제 버마에서는 저녁 때 정부를 홍보하는 TV 프로그램을 내보낸다. 그러면 사람들은 전원은 끄지 않고 소리만 꺼놓는다. 그 뒤에 우리가 좋아하는 연예인들 얘기나 노래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8시쯤 되면 다시 뉴스가 나오는데 그럼 또 소리를 꺼놓는다. 한국에서 땡전 뉴스가 있었던 것처럼 버마의 뉴스도 군부의 소식만 전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그런 뉴스를 보면서 재수 없어 한다. 그럼에도 소리만 줄여놓는 것은 밤에 하는 영화를 보기 위해서다. 이제 영화가 시작하면 다들 모여서 영화를 본다. 돈 있는 사람들의 경우 위성 안테나를 사서 DVB처럼 위성을 하는 방송을 틀고 동네 사람들과 모여서 함께 보기도 한다.


국민들은 안다. 알아서 잘 판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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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와 대한민국. 다르다면 참 많이 다르지만 비슷하다고 말하면 또 무척 비슷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는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는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버마VJ」는 여러 가지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특히 그 고민들은 권력을 가진 이들이 아니라 문제가 있다면 저항해야하는 우리들을 향하고 있다. 우리는 얼마나 뜨겁게 자신의 목소리를 냈는가? 목숨까지는 걸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더 자유로운 세상을 위해 무엇을 걸었는가? 아주 작은 것이나마 그런 사회를 위해 포기할 수 있었던가?


사실 영상은 그리 재미있지 않다. 1시간 20여분의 상영 시간은 조금은 길다고도 생각되었다. 하지만 영상이 던져주고 있는 고민들을 되새겨보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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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뚜 : 마지막으로 버마 내에서 집회가 일어날 때에만 전 세계가 집중할 것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버마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물론 남의 나라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버마의 상황은 더 안 좋아질 것이다. 어떤 조사에서는 버마가 곧 망할 국가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었다. 유엔이나 미국에서 립서비스만 하지 말고 정말 도우려는 마음이 있다면 제대로 도와줬으면 좋겠다. 사실 그 쪽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희망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소모뚜씨는 현재 이주노동자의 방송 MWTV 공동 대표를 맡고 있으며 주로는 이주 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운동을 하고 있다. 또한 버마 민주화 단체 버마행동한국에서 총무로도 일하고 있으며 다국적 밴드에서 기타와 작곡을 하고 있는 음악인이기도 한다. 그와 그의 활동이 궁금한 분들은 소모뚜의 블로그(http://blog.jinbo.net/lovehuman/)를 통해 새로운 정보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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