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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65호 미디어꼼꼼보기] 시장으로부터의 자유 - 어느 디지털 악마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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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65호 / 2009년 9월 30일

 



시장으로부터의 자유 - 어느 디지털 악마의 꿈
 
 
태준식(독립다큐멘터리 감독)

 

 

 

태평성대입니다. 2mb의 대박상품, 중도실용 노선과 일시적인 경제성장의 힘입어 외줄타기와 같았던 그의 집권 초반은 이제 거칠 것 없어 보입니다. 용산참사로 돌아가신 철거민들의 주검과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사지에 몰아 놓고 해고와 죽음중 하나를 선택하라 했던 그 잔인함은 장막 속에 가려진채 말입니다.

 


항상 시끌시끌하며 때론 엽기적이며 때론 훈훈하고 때로는 전투적이었던 인터넷 공간에도 태평성대가 찾아왔습니다. 걸 그룹의 현란한 춤사위만이 대형포털 동영상 재생기 위로 넘실대고 있습니다. 잊혀질만하면 다시 나타나 우리들의 양식 위를 돌아다니던 바퀴벌레처럼, 바로 저작권이라는 장막이 만들어낸 태평성대입니다.

 


숨죽이고 있습니다. 혼란스러워진 독립의 가치에 시장의 논리가 작동되는 현실을 묵도 하는 독립영화(미디어)인들은 조건이 가져다 준 불편함 정도로 저작권의 문제를 사고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만들어낸 창작물이 시장 속에서 건재하기만을 기대하며 자유로운 인간의 표현과 소통이 옥죄어 오는 현실에 가만히 숨죽이고 있습니다.

 


헌데, 이 숨 막히는 태평성대에 디지털 악마스러움으로 해적질을 마다하지 않는 유령들이 우리 곁은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문화권력과 자본에 의해 만들어진 이 살얼음판 같은 평화가 사실은 누군가에 의해 조직(작)되어진 결과이고 사실은 당신들은 속고 있었다며 그 예증을 서울의 한복판에서 당당하게 틀어재끼고 말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유령이 서울바닥에 남겨놓은 흔적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거 같습니다.

 


지난 8월 18일. 인디스페이스에서는 ‘매삼화 with 진보네트워크센터' 상영회가 열렸습니다.

 

‘다운로드의 해적들'이라는 이름으로 두 편의 애니메이션과 한편의 다큐멘터리가 상영되었는데 공히 이 세편의 영화는 저작권이 인도하는 시장의 질서를 뛰어넘고자 하는 이 세계의 디지털 악마들에게 하나의 지침과도 같습니다.

 
 

먼저 두 편의 애니메이션. [코끼리의 꿈(Elephants Dream)] (10분 54초, 2006년)과 [거인 수컷 토끼(Big Buck Bunny)] (9분 56초, 2007년). 경제전문지에서는 공짜프로그램이라 격하되어 불리는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 다른 말로 오픈소스 프로그램이라고 합니다. 바로 3D 오프소스 프로그램인 ‘블렌더'를 사용하여 제작된 이 두 편의 애니메이션은 창작도구의 선택에서 부터 이후 온/오프상의 배급까지 공유와 소통이라는 창작자의 본능에 충실한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 완성된 작품입니다. 그 길이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독점 소프트웨어에서 벗어나야 했을 테고 새로운 환경이 주는 상상력의 제한은 창작자에겐 치명적일수도 있습니다.(그 반대일수도 있긴 하지만...) 유통의 과정을 장악하고 있는 자본의 영향력으로부터 창작자가 작품의 존재를 알리려면 배제와 소외를 경험하여야 하는 현실 또한 이들도 자유롭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크리에이티브 커먼 라이선스(Creative Commons Licence) 를 채택하고 강력한 P2P 프로그램인 비트토런트를 사용하였으며 다운로드와 스티리밍 서비스를 제공, 오히려 시장이 만들어낸 유통질서에서 자유로운 창작물로 많은 지지를 얻어냈습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뚱뚱한 (여성스러운)남자 토끼의 복수와 반전이 담긴 [거인 수컷 토끼]는 거대 자본이 투여된 [쿵푸팬더]에 비해 디테일과 조명, 카메라 움직임 등 완성도 면에서 전혀 떨어지지 않았고 (‘코끼리의 꿈'은 디테일과 질감 표현의 한계를 가지고 있던 초기 ‘블렌더'의 한계를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주요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의 수상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카피라이트를 명시하며 저작자의 권리를 내세우긴 했지만 오히려 비뚤어진 저작권의 그간의 역사를 온전히 창작자와 시민들에게 돌려주긴 위한 자기근거로 느껴져 든든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아무래도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제작자의 입장이라 설까요. 이날 상영된 작품 중 저에게 가장 자극적이었던 건 [이 영화를 훔쳐라!(Steal This Film) 2] (44분, 2007년) 편입니다. 전 세계 미디어운동가, 예술가, 역사학자, 심지어 미국영화협회 대표까지 전 세계 해적질에 대한 난상 토론을 벌입니다. 미국영화협회 대표는 자포자기하듯 ‘절대 해적질을 막을 수 없다'고 한탄합니다. 은근한 동정심을 유발시키긴 하지만 인류역사상 없었던 이 새로운 소통체계를 반기는 이들에겐 항복 선언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인쇄술이 인류역사에 미친 영향을 되짚으며 단지 창작물에 대한 제반 권한 사항에 머물러 있는 저작권의 본질이 정보를 통제하려는 권력과 이에 대한 해적질간의 역사였음을 이야기합니다. 주정부와 왕의 통제를 받았던 프랑스의 검열체계는 독점적인 서점제작 길드와 함께 지속가능한 역사를 꿈꾸어 왔지만 새로운 인쇄술과 인쇄기는 프랑스 곳곳에 계몽운동을 확산시켜 결국 프랑스 대혁명으로 이어졌다는 어느 역사학자의 증언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이곳의 현재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얼마 전에 개정되었던 저작권법의 삼진아웃제 신설과 친고제 폐지가 중세 프랑스 검열체계의 현대판이라는 비극적인 역사의 반복이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 영역을 행정 권력의 수장이 통제하며 그 공간으로부터 퇴출시킬 수 있다는 발상은 언제든지 마음에 안 드는 정보와 표현을 통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친고제(해당 저작권자의 고소 없이 행정부의 판단에 의해 고소 가능)의 폐지는 사실 저작자의 창작물, 즉 그들이 이야기하는 지적재산물을 저작자로부터 뺏어와 상품으로서 시장의 운영원리에 맞게 재배치하겠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쯤에서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저작권법이라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을 만천하에 폭로하는 것이죠. 영화에서 이야기 합니다. 문화나 미디어에서 중요한 것은 수익이 아니라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것이고 이 창조는 공감과 소통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고. 그리고 이것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지금까지의 역사가 그러했듯이... 해적질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표현되어진 창작물의 소통방법이 역사적인 변화를 맞이하는 지금, 해적질은 훔친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공유방법을 찾아내는 과정이며 누구에게 통제되어진 정보를 더 많이 나눌 수 있게 한다는 철학 속에 진행되고 있음을 설파합니다. 누군가에게 이윤이 부당하게 전가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법기관에 그 판단을 의뢰하는 독립영화가 존재하는 우리들의 현실에서 과연, 독립영화(미디어)라는 활동이 ‘표현의 자유 확장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본연의 임무에서 얼마나 멀어져 왔는지를 이 영화의 메시지를 통해 읽게 됩니다. ‘이 영화를 훔쳐라!' 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이 영화가 ‘내 영화는 빼고!' 라는 식으로 해석되고 보이지 않기를 기대합니다. 하나의 ‘작품'을 위한 독립 영화적 활동뿐만 아니라(이 또한 물론 중요합니다) 하나의 ‘사안'에 대한 독립 영화적 활동이 전무한 지금, 당장 필요하고 행동하여야 할 주요한 이슈를 제공하는 이 영화에서 저작권으로부터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는 가난한 예술가(창작자)들과 시민들의 박탈당한 표현의 자유가 반추되기를 희망합니다.

 


저 또한 한명의 소심한 창작자로서 자신의 작품의 결과와 그 제작과정이 온전히 시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릎팍처럼 세상을 꽤 뚫는 혜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에너자이저처럼 지치지 않는 파워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태평성대의 시대 장막 속 가려진 현실을 사려 깊게 들춰낼 수 있는 예술적 재능도 없습니다. 다만 창작자의 권리를 제약하고 무시하는 저작권법이 시장 속에서 건재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곳이 아닌, 이 방법이 아닌, 좀 다른 방법으로 창작하고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꿈을 계속 꾸다보면 미국의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처럼 ‘공정이용 지침 선언'을 할 수도 있겠고 전국에 있는 미디어센터에서 오픈소스 영상편집 프로그램으로 편집된 작품이 전 세계 수 억 개의 컴퓨터로 전송되어 웃고 떠들고 분노하며 권력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겠지요. 한 여름 시원한 극장의 불빛으로 스쳐간 세 편의 영화가 준 백일몽이었습니다. □

 


관련사이트

 

정보공유라이선스(저작물 이용허락 표시제도) www.freeuse.or.kr

 

크리에이티브 커먼 라이선스(Creative Commons Licence) www.creativecommons.or.kr

 

[코끼리의 꿈(Elephants Dream)] www.elephantsdream.org

 

[거인 수컷 토끼(Big Buck Bunny)] www.bigbuckbunny.org

 

[이 영화를 훔쳐라!(Steal This Film) 2] http://stealthisfil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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