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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61호 미디어인터내셔널] UN AoC 발간 『세계의 미디어 교육 정책』의 내용과 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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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61호 / 2009년 5월 20일

 

 

UN AoC 발간 『세계의 미디어 교육 정책』의 내용과 함의
 
정현선(경인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문명 간 대화와 상호 이해를 중시하는 UN AoC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정책 방향


지난 3월 UN AoC(Alliance of Civilizations)와 UNESCO에서는 세계 여러 나라의 미디어 교육 정책 수립과 수행에 도움이 될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계의 미디어 교육 정책(Mapping Media Education Policies in the World: Visions, Programmes and Challenges)』을 발간했다. 이 책의 발간을 주도한 Un AoC는 '문명 간 동맹'이라는 영문 명칭이 말해 주는 바와 같이, 현대사회에서 갈수록 증폭되고 있는 문명 간 반목과 오해를 극복하고 상호 간의 대화와 상호 이해를 촉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UN AoC는 특히 서구 문명과 이슬람 문명 간의 갈등 해결을 중요하게 여긴 스페인 정부와 터키 정부의 발의와 유엔의 찬조로 2005년에 설립되었으며, '청소년, 교육, 미디어, 이민' 등의 네 분야에 주력하여 다양한 프로젝트와 정책적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미디어 리터러시는 UN AoC의 다양한 관심 가운데 하나이다.


UN AoC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문명 간 대립과 반목을 조장하는 폭력적 문화와 종교적 대립에 미디어가 부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만큼, 미디어 메시지에 대한 비판적 해석이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깨닫고 있는 바와 같이, 미디어는 특정 문화에 대한 편견의 원천이라는 부정적 기능을 수행할 수도 있지만, 
서로 다른 문명 간의 대화와 이해에 기여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사실 최근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이러한 미디어의 양면성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대중매체의 메시지를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것 뿐 아니라 미디어를 창의적으로 활용하여 다양한 메시지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활동을 강조해왔다. 따라서 AoC의 활동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기존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추구해 온 미디어의 비판과 창의적 생산이라는 내용에 국제이해교육이나 이문화(異文化)교육, 그리고 최근의 다문화교육에서 강조하고 있는 문화다양성이라는 방향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세계의 미디어 교육 정책』은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AoC가 UNESCO와 EC 등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관심을 보여 온 대표적인 국제기구 및 스페인의 학술출판사 Group Comunicar와 협력하여 2008년 여름부터 준비한 출판 사업의 결실이다. 이 책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목표에 동의하면서 이를 시행하고자 하는 여러 나라들이 정책과 실행에 있어 벤치마킹을 위해 참고할 수 있는 사례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의도로 기획되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미디어 교육에 관심을 갖고 학교 안팎에서 미디어 교육을 실행해 온 교육자들은, 영국, 캐나다, 호주, 미국 등 미디어 교육의 실행을 위한 학교 시스템과 미디어 정책이 우리에 비해 체계적으로 발달한 다른 나라들의 상황과 우수 사례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정보를 구하며 참고해왔다. 그런 만큼 세계의 미디어 교육 정책에 관한 UN 차원의 책자 발간이 새삼스럽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AoC의 책자 발간이 기존의 출판과 다른 점이 있다면, 시민성 교육(citizenship education)이라는 보편적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방편으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바라보는 그들의 관점을 제시했다는 점, 그리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었던 멕시코, 스위스, 모로코, 인디아, 홍콩, 한국, 가나, 이집트, 아르헨티나, 스페인, 터키, 잠비아, 핀란드 등 보다 다양한 나라들의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국제적인 벤치마킹의 사례로 조명 받음


한편,『세계의 미디어 교육 정책』이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한국의 미디어 교육 사례가 국제적인 벤치마킹의 사례로서 조명을 받게 되었다는 점에 있다. 이 책에는 필자를 비롯해 안정임, 김기태, 전경란, 조연하, 김양은 등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실천과 연구에 오랜 기간 몸담아온 학자들이 공동으로 집필한 "한국 미디어 교육의 역사, 정책, 실천"이라는 장이 실려 있다. 이 장에서는 한국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방송 시청자들의 주권을 행사하기 위한 지극히 자발적인 시청자 운동에서 시작되었다는 점, 그 이후 한국의 정치적 민주주의 발전과 대중문화의 영향력 확대, 그리고 디지털 미디어의 확산이라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다양하게 시도되고 발전되어 왔다는 점이 강조되어 있다.


한국의 필자들이 이 책의 출판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매우 우연한 것이었다. 필자는 지난 2008년 6월 미국 뉴욕시에서 열린 "Media: Overseas Conversation"이라는 컨퍼런스(http://www.mocnyb.org/)에 참석해 한국의 미디어 교육에 관해 소개하는 발표를 한 바 있다. 이 컨퍼런스는 세계의 미디어 교육 동향에 관해 전문가들이 지역별 패널을 조직해 대화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영국의 BFI(British Film Institute)에서 오랜 기간 교사 교육과 교재 개발, 정책 개발을 담당했던 Cary Bazalgette를 비롯해, 호주 퀸즐랜드주의 ATOM(Association of Teachers of Media)의 회장을 역임한 바 있는 퀸즐랜드대학교의 Michael Dezuanni 교수 등도 함께 참석해 토의했다. 마침 이 컨퍼런스를 주최한 분이 UN AoC의 미디어 리터러시 프로젝트 담당자인 Jordi Torrent씨였고, 필자는 이 자리에서 AoC의 출판 계획에 대한 설명을 듣고 집필을 의뢰 받았다.


필자로서는 이 책이 국제 사회에 공식적으로 한국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대해 소개하고 평가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단독 집필 방식보다는 여러 학자들 간의 협의에 의한 공동 집필 방식을 취하는 것이 보다 공정하고 대표성 있는 내용을 담기에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한국의 미디어 교육은 다양한 개인들과 단체들에 의해 역동적으로 시행되어왔지만, 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합의된 평가가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미디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가지 다양한 실행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교육 목표, 내용, 활동 분야 등의 측면에서 상당히 이질적인 실행들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과연 이 모든 것들이 미디어 교육이라면 '미디어 교육'이라는 용어는 너무나 광범위한 실천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범주로서 적합성을 갖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때가 있었다. 이 때문에 필자는 한국의 미디어 교육에 대해 국제 사회에 소개하는 글을 쓰는 집단적인 과정이 그간의 역사와 실천에 대해 정리하고 일정한 평가를 내리는 계기를 만들어 가는데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 것이다.


마침 당시 방송통신위원회의 중학생 대상 미디어 교육 교재 집필 프로젝트가 진행 중에 있었기 때문에, 교재 개발에 참여하고 있던 분들께 도움을 요청해 함께 글을 쓰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시피, 필자는 언어 교육과 커뮤니케이션 교육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시각에서 국어 교육과 미디어 교육의 접목을 모색하는 데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이런 관심에서 지난 2007년에 개정된 국어과 교육과정 내에 뉴스, 광고, 온라인 대화, 인터넷 게시판 등 다양한 미디어의 언어적 의미 작용과 텍스트의 특성을 살펴보도록 하는 내용이 일부나마 포함되도록 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필자와 함께 『세계의 미디어 교육 정책』의 집필에 참여한 다른 학자들은 언론학 분야에서 연구하면서 다양한 시민 단체와 관련을 맺으며 미디어 교육의 실천을 옹호해 온 분들이다. 서로 다른 학문적 배경과 활동의 경험을 가진 분들과 이런 저런 계기로 미디어 교육 활동을 통해 간헐적으로 만나다가, 2007년과 2008년에 걸쳐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발전기금으로 이루어진 초등학생과 중학생 대상의 미디어 교육 교재와 교사용 지침서 개발 사업을 통해 구체적인 일을 함께 해 보게 되면서 이런 공동 집필을 할 수 있는 공감대가 마련될 수 있었던 듯하다.


『세계의 미디어 교육 정책』에 실린 한국에 관한 글은 한국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KBS 시청료 거부 운동으로 상징되는 일반 시민들의 미디어 감시와 시청자 주권 확보 노력,
 1990년대 중반 이후 증대된 청소년들의 영상 미디어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청소년 영화제 개최 및 영상 제작 교육 프로그램의 증대, 2000년 방송법 개정 이후 방송통신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 및 그 산하 기관들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진 미디어 교육 프로그램과 교재 개발에 대한 지원, 교사들의 자발적인 미디어 교육 연구 모임을 통한 교재 개발과 교사 교육 확대, 2007년 개정 교육과정의 주요 과목 교육 내용에 미디어 교육 관련 내용의 부분적 반영, 소외 계층을 대상으로 한 퍼블릭 액세스 운동의 흐름 속에서 이루어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미디어 기업에 의한 영상미디어센터나 청소년 대상의 미디어 사전 제작 지원 프로그램 운영 등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 시도되어 온 미디어 교육의 역동적 실천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일반 시민이든, 학부모이든, 교사이든, 시민운동가이든 혹은 민간재단이든, 각자가 터한 곳에서 발현된 시민적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자발적 실천 조직들을 만들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대한 관심을 발전시키고 실행해왔다는 점은 한국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역동적으로 만들어온 원동력이라 평가할 수 있다. 이 책의 공동 편집인 가운데 한 사람인 프랑스 소르본느 대학교의 Divina Meigs 교수 역시 이러한 시각에 공감하며, 외부의 영향보다는 한국 사회 내부의 자발적인 문제의식에 바탕을 두고 자발적인 '실천 공동체(Community of Practice)'들을 다양하게 조직하고 역량을 확대해 온 것이야말로 한국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장점이자 특징으로 보인다며, 이 점이 바로 다른 나라들에서 벤치마킹할 수 있는 요소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서 아쉬운 점은 이러한 자발적 실천 조직들의 노력과 역량에 비해, 학교 교육 정책이나 사회 교육 정책, 문화 정책의 차원에서 보면 '기금'은 존재하지만 긴 안목의 정책이 상대적으로 부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점, 그리고 다양한 실천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역동성이 있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그 실천이 과연 진정한 다양성인가 아니면 비슷한 사례의 반복이었는가에 대해, 그리고 그 실천의 성과와 영향에 관해 보다 객관적인 분석과 연구가 미약하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세계의 미디어 교육 정책』 이후의 과제


앞서도 밝힌 바와 같이 이 책은 사회?문화?역사적 배경이 상이한 다양한 지역의 수준에서 존재하는 가장 적합한 미디어 교육의 사례들의 지도를 그려보고, 그러한 실천의 기저에 존재하는 교육의 문화와 미디어 문화를 조명하며, 이를 통해 스스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실천하고자 하는 다양한 나라의 정책 실천과 평가에 가이드가 될 수 있는 진단적 도구를 마련해 보자는 의도 하에 기획되었다. 이러한 의도에 따라 필자들은 각 나라의 대표적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프로그램의 대해 단순한 소개에 그치지 않고 문제 해결을 지향하는 관점에서 현재의 쟁점, 도전 과제, 지금까지의 결과들을 제시함으로써,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벤치마킹하고자 하는 나라들에게 대안을 제시하는 평가적 서술을 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따라서 이 책은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이름으로 수행될 수 있는 다양한 실천을 그 나라의 맥락과 더불어 접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 책에는 미디어 리터러시의 가장 근저에 자리한 비판적 시민으로서의 능력을 기르고자 하는 핵심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미디어를 통한 새로운 고용 가능성의 창출' 등에 초점을 두고 있는 나라의 사례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이 점에서 이 책에 대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의식에 기반을 둔 비판적 읽기가 주의깊게 요구되는 것도 사실이다.


여러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미디어 교육 정책』의 출판을 계기로 집필에 참여한 필자들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와 방향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할 수 있었고,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다양한 실천을 가로지르는 성과와 영향에 대해 돌아보고 반성할 계기를 가질 수 있었으며, 한국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성숙과 교육의 발전 속에서 자발적인 '실천 공동체'를 만든 이들의 노력으로 발전해왔다는 점에 대해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출판 과정에서 다른 나라의 연구자들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대화하는 기회를 통해, 한국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적어도 실천의 문제의식과 방향에 있어서는 국제적인 수준에 이르러 있다는 자부심 또한 느낄 수 있었으며, 더불어 연구자로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성과와 영향에 대한 보다 엄밀한 검토와 비판적 분석을 토대로 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관심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정보의 공정 이용에 동의하여, 필자들이 스스로 CCL을 선택해 온라인으로 무료 배포하고 있는 만큼 그 접근과 이용 또한 매우 간편하니 말이다!


맺는말을 대신하여 한 가지 덧붙이고자 한다. 2010년 6월에는 스웨덴의 칼스타드(Karlstad) 시에서 '청소년 커뮤니케이션 세계의 도전'이라는 주제로 청소년과 어린이를 위한 미디어 교육의 세계대회가 개최된다(http://wskarlstad2010.se/). 1995년 호주의 멜버른에서 첫 대회가 열린 이후 이번이 여섯 번째 대회가 될 것이다. 이 대회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다양한 실천, 정책, 연구, 청소년의 미디어 창작과 참여에 관해 다양한 이들과 교류하고 생각을 나누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상당한 국제적 수준에 이른 한국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과 청소년들의 미디어 참여에 관해 한국에서도 좋은 발표가 이루어진다면, 공동의 관심사를 가진 많은 이들과 네트워킹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것이 『세계의 미디어 교육 정책』을 검토한 이후의 과제가 아닐까 한다.□


*『세계의 미디어 교육 정책』을 내려 받을 수 있는 곳:
http://www.unaoc.org/images//mapping_media_education_book_final_version.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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