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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61호 이슈] “시민사회운동과 재정문제, 소액 절대다수의 후원으로 돌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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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61호 / 2009년 5월 20일

 

 

 

“시민사회운동과 재정문제, 소액 절대다수의 후원으로 돌파하자”
 
안진걸(현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전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조직팀장)*1)
 


최근 이명박-한나라당 정권이 광우병대책회의에 참여했던 1840여 단체를 모두 불법-폭력단체로 규정하고 그 단체들에 공익사업비*2)를 지원하는 것을 금지해 큰 물의를 빚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문제가 걱정돼서 촛불을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광우병 위험 국민 대책회의의 취지에 공감해 이름을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불법-폭력' 단체로 낙인을 찍는 것도 너무나 황당한 조치이지만, 그동안 몇몇 단체들이 훌륭하게 수행해오던 공익사업비 지원을 금지하겠다는 것은 더더욱 납득할 수 없는 치졸한 조치임이 분명하다.




 
이명박-한나라당 정권이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경찰을 앞세워 이 같은 ‘짓거리'를 저지른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광우병 위험 국민대책회의 참여 단체들, 즉 그 아름답던 촛불운동에 참여했던 단체들을 불법-폭력 단체로 낙인찍어 국민대중과 분리시키기 위함일 것이다. 둘째, 대부분의 단체들이 공익사업비 지원 신청 자체를 하지 않고 있음에도 이를 크게 부각시킨 것은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들의 ‘정부의 보조에 의해서 운영된다'는 느낌을 주어, ‘정부로부터 보조를 받아 운영되면서도, 반정부적 활동을 하는 배은망덕한 단체'라는 공격을 가하기 위함인데, 정부 보조를 받아 운영된다는 느낌과 배은망덕한 단체라는 느낌을 동시에 불러일으켜 시민사회단체들에 대한 공신력을 떨어뜨리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셋째, 소수라 하더라도 공익사업비를 신청하는 단체들의 신청을 거부함으로서 촛불운동에 참여했던 단체들에게 철저하게 보복을 행사하기 위함이다. 이명박-한나라당 정권은 불행하게도 자신들의 커다란 잘못을 참회하기는커녕 촛불운동이 시민사회단체들과 좌파들의 선동에 의한 것이라는 잘못된 판단을 바탕으로 시민사회단체들에 대한 보복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촛불 운동 참가자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체포와 무려 1천여 명이 넘는 시민들에 대한 철저한 사법처리 진행과도 일맥상통한다.*3)


 
최근의 이 사태에서 우리는 시민사회단체와 정부의 관계, 그리고 시민사회운동과 돈의 관계 등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게 된다. 먼저, 시민사회단체들의 공익사업비 지원이 금지되는 것이 가져오는 결과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다. 이 정권 들어서서 대다수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가 공익사업비 지원금을 
가지고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통제하려 한다며 아예 지원 신청을 거부하고 있고*4), 김대중-노무현 전 정권 시절에도 많은 단체들이 수구언론의 ‘보조금을 받아 정부를 위해 활동하는 친정부 단체'라는 악의적 비난을 피하기 위해 공익사업비 지원을 지양해왔다.




 그렇지만 필요해 의해서 일군의 단체들은 공익사업비 지원 신청을 계속 해왔는데, 이는 하등의 문제가 없다. 원칙적으로 공익사업 지원비는 국민들이 낸 세금의 일부를 국민들이 꼭
 필요로 하는 공익사업에 지원하는 성격을 띄고 있고, 정부는 그 중간에 매개체 역할만 해주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즉 기존의 시민사회단체들의 공공선에 기반한 공익사업비 지원이 줄어들게 되면, 그 만큼 국민들이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지금 공익사업비 지원이 거부된 단체들은 이 점을 가장 크게 아쉬워하고 있다. 올해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글문화연대,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강살리기네트워크,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등 많은 단체들의 공익사업비 지원을, 광우병대책회의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정부가 탈락시켰는데 이에 따라 한국여성노동자회는 2007년에 '3년 다년사업'으로 지정됐던 <새로 쓰는 여성노동자 인권 이야기> 사업을 올해 마무리하지 못하게 됐고, 한글문화연대도 올해로 3년차에 접어든 <한글 무늬옷 개발 및 보급 사업>에 차질을 빚게 됐다, 또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의 <건강한 먹을거리 우리밀 체험사업>도 위기에 처하게 됐다. 즉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위한 활동, 사회전체의 공익이나 우리나라의 건강한 발전과 관련된 사업 등이 타격을 입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 시민사회운동과 돈의 관계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시민사회운동을 전개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민중과 시민들을 위한 열정,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구체적 의제, 보다 더 공정하고 평화롭고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치열한 활동 등등이겠지만, 그 못지않게 지속가능한 시민사회운동을 위한 사람과 돈의 문제 역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알고 인정하는 사실이 됐다.
 
수십 년의 분단군사독재통치 시절에는 돈이 없어도 끈질기게 활동해온 기적 같은 활동가들이 많아서, "지금도 ‘직업혁명가' ‘직업활동가'들은 그렇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일부 있겠지만, 그것은 이제는 균형감 있는 이야기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실 그 당시에도 활동가들을 생산하고, 활동이 가능하도록 끊임없이 어디선가 돈(투쟁자금)이 수혈이 됐었다.
 
돈 없으면 사회운동을 못한다는 이야기는 올바르지 않지만, 지속가능한 시민사회운동을 위해 재정문제를 반드시 해결하면서 가야 한다는 말은 올바른 이야기이다. 그런 와중에 정부의 프로젝트(공익사업비) 지원이라는 제도가 생겼다. 김영삼 정부 때부터 시작된 것이니 그 역사가 15년쯤은 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정부의 공익사업비 지원과 시민사회단체의 사업비 수령은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는 정부의 공익사업비를 지원받으면 사실상 관변단체가 되버렸다고 비판하고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 이는 그러나 사실이 아니다. 위에서도 밝혔듯이 일단 정부 재정이라는 것이 누구의 돈인가. 바로 우리 국민들의 돈이 아닌가. 정부가 국민들의 세금을 받아 국민들과 사회공공선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더 작은 돈으로,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 민간단체에 맡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예를 들면, ‘물 아껴쓰기 범국민 캠페인'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를 똑같은 예산을 들여(또는 더 적은 예산으로도 가능하다) 행정조직에 맡기는 것보다 민간단체(환경운동)에 맡기는 것이 실제로 훨씬 더 좋은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정부나 지자체가 해야 할 일을 민간에 위임해서 진행하게 된 것이다. 이는 또 민간(시민사회)의 역량을 튼튼하게 하는 계기가 돼, 결국 한 국가와 사회의 가버넌스(공동 운영=협치:協治)를 풍부하게 해주는 일로 이어진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지난 15년간의 시민사회운동의 성장 배경에 공익사업비 지원제도가 한 몫 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인데, 이 제도로 인해 시민사회운동에 끼친 부정적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즉 공익사업비를 지원하는 정부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줄어들고, 공익사업비 지원이 수단이 아니라 목표로 전도돼 진정한 사회변혁을 위한 운동이 아닌, 공익사업비 지원 선정이 가능한 부분에 단체 활동의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실증적 사례에 기반한 비판으로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사회가 좋아진 측면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공익사업비 지원 단체들이 상대적으로 정부에 대한 비판, 감시 기능이 약해졌고, 시급한 사회변혁 주제보다는 프로젝트*5)(공익사업 선정이 가능할 것 같은 주제) 수행에 집중하게 된 측면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직접 나서서 공익사업 지원 대상을 결정하다보니 위와 같은 부정적 효과도 발생하고, 또 어찌됐든 뒷말이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처럼, 정부로부터 독립된 민간기구에서 사회복지사업과 관련된 민간단체에 대한 재정지원을 수행하는 것처럼 공익사업비 지원 업무도 정부로부터 독립된 민간공익기구에서 그 일을 수행한다면 이른바 ‘관변단체론', ‘정부입김론' 등이 모두 해결 될 것이다. 특히 이명박 정권 들어, 공익사업지원비 마저 정부정책의 ‘앞잡이' 활동으로 변질시키고 있는 현실을 보면 그러한 논의는 더욱 타당하다 할 것이다.
 
투명하고 독립적인 공익사업 지원 절차를 만드는 것과 함께, 시민사회단체들이 제일 주력했으면 하는 일은, 소액 절대다수의 회비와 시민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단체를 만드는 꿈을 현실화해보자는 것이다. 이는 그 자체로서 위의 논란들을 모두 잠재우고, 지속가능한 시민사회운동을 가능하게 할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런 구조를 만들기 위해, 즉 “시민들이 회비나 후원금을 내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시민들이 진정 바라는 좋은 활동을 치열하게 해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근래 많은 단체들이 이를 선언하고, 당당하게 수행해내고 있다.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완전한 재정자립도 속속 이루어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단체 상근자들이 겪어야 할 고생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시민들의 회비와 후원금만으로도 재정독립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이는 관변단체론, 정부입김론 등의 지적을 피하기 위한 방어적 필요에 의해서 제기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승부수인 것이다. 우리 사회의 공공선과 공익, 그리고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대변하는 시민사회단체의 고유 활동에 치열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승부수를 던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시민들의 회비와 후원금도 늘어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활동만 열심히 하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시민들과의 소통과 홍보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꼼꼼하고 치밀한 모금전략도 세워야 한다. 그것이 병행됐을 때만이 시간이 걸리더라도 재정독립이 가능하다. 단체의 역사와 단체의 활동 성격상, 또 단체의 상근자 현황 상 도저히 재정독립이 불가능한 경우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이 경우는 당연히 정부나 지자체의 공익사업비 지원이나 시민사회에 근거한 많은 공익기금들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위에서 지적한대로 정부나 지자체의 공익사업비 지원을 투명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기구와 시스템이 꼭 마련되어야 한다. 거기에다가 시민사회에 근거한 각종 공익기금*6)들이 활성화돼, 수없이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도 무척이나 중요하다. 그렇게 되면 온갖 시민사회단체들이 다양한 재정 조건 하에서 다양한 공익 활동을 수행하는 것이 모두 가능하게 될 것이다.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시민사회단체들의 활동은 지금도 더 치열하게 전개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의 모순은 여전하고, 국민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너무도 많다. 국민들의 기부문화도 예전에 비해서 많이 발전하고 있다. 치열하고도 좋은 운동으로 시민(소액 절대다수)에 의한 재정독립이라는 승부수를 준비하되, 투명하고 독립적인 공익사업 선정 시스템, 각종 민간 공익기금의 활성화, 시민사회 기부문화의 성숙도 동시에 꾀해야 한다. 그것이 좋은 뜻을 가지고 모인 모든 시민사회단체들의 지속가능한 활동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라 감히 믿으며 글을 마친다.□
 


[참고]
450여 시민사회단체들의 상설연대체인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성명서
 
#1. [성명서] 비판적 시민단체 재갈물리기, 친정부 단체 지원사업으로 전락한 공익활동 지원사업에 불참을 선언한다.(2009.2.5) http://civilnet.net/board/bbs/tb.php/news/268
 
#2. [성명서] 국정원은 불법사찰을 즉시 중단하고, 관련자를 문책하라!(2008.10.9)
http://civilnet.net/board/bbs/tb.php/news/235


 
 
[주]
1) 500여 시민사회단체들의 공동활동기구인 민생민주국민회의(준) 정책네트워크 실무도 겸하고 있다. 성공회대 ‘엔지오와 사회운동' 강사. ngo8518@hanmail.net.
2) 보통 언론들은 이를 ‘보조금'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보조금 하면 단체 운영비를 보조하는 것 같고, 그를 받는 단체들은 ‘관변단체'같은 느낌을 주는데, 실제 시민사회단체들이 지원을 받는 것은 ‘보조금'이 아니라 정부나 지자체에서 공시하는 엄격한 기준에 따라 신청을 하고, 치열한 경쟁을 거쳐 선정된 ‘공익사업(프로젝트)'에 대한 지원금을 받는 것이므로 정확하게 ‘공익사업비'라고 불러야 한다.(정확한 법-행정적 용어는 ‘비영리민간단체 공익활동 지원비') 공익사업비는 단체 운영비로 전용할 수 없고, 오로지 선정된 그 공익사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비용으로만 사용하게 되고, 이는 엄격한 감사 대상이기도 한다. 이런 공익사업비 수령을 관변단체인냥 몰아가는 수구언론들의 공격과 세간의 오해가 겹쳐져서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은 아예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일체 거부하고 어렵게 자립의 길을 걷고 있다.
3) 이명박-한나라당 정권은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들을 좌파나 친북, 또는 친 노무현 그룹이라고 생각하는 절대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수없이 많은 단체들의 다양한 활동과 다원적 성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들은 ‘시민사회'의 실체와 의의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고, 오로지 시민사회를 귀찮고, 하찮고, 걸리적거리는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다. 그런 인식하에 이들은 시민사회단체들이 활동을 가급적이면 제대로 못하게 하는 데 정책을 초점을 두고, 다방면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을 공격하고, 폄훼하고, 또 전방위적으로 탄압하고 있다.
4) 행안부는 민간단체 공익활동 지원을 위해 159개 단체의 162개 사업에 49억원을 지원하기로 했으며, 이들 단체 가운데 75%를 차지하는 120곳을 올해 새로 선정했다고 2009년 5월 7일 발표했다. 이는 민간단체 지원 금액도 대폭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지난해(54%)보다 훨씬 큰 폭으로 지원 단체를 물갈이 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글문화연대, 강살리기네트워크 등은 올해 공익사업 지원을 신청했으나, 지난해 촛불집회를 주도한 '광우병국민대책회의'(대책회의)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제외됐다. 그 전에 상당수의 시민·사회단체들은 행안부가 올해 제시한 지원사업의 유형이 지난해와 크게 달라지자 아예 신청을 거부했다. 이명박-한나라당 정권이 제시한 공익사업 지원 기준은, △100대 국정과제 △저탄소 녹색성장 △사회통합과 선진화를 지향하는 신국민운동 △일자리 창출 및 4대강 살리기 등으로 그 내용이 공익사업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국정홍보에 치우쳐 있음을 금세 알 수 있다. 전통적인 지원 유형은 △사회봉사와 시민참여 △사회통합과 평화 △자원봉사·엔지오 활동기반 구축 △소외계층 인권신장 △국제 교류협력 등이었다.
5) 공익사업비, 공익활동 지원비의 경우, 사업이 시행되기 이전에 정부나 지자체가 먼저 지원 대상 사업을 선정을 하게 돼 있는데, 그 때 총체적 사업계획을 ‘프로젝트(종합계획서)' 형식으로 담아 선정절차에 응하게 되므로 시민사회에서는 공익활동 지원 사업을 ‘프로젝트 사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6) 현재도 민간에서 아름다운재단, 환경재단, 여성재단, 인권재단, 평화재단, 아름다운가게 등 다양한 공익재단이 훌륭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많은 단체들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시민사회는, 또 앞으로 더 발전하게 될 시민사회는 더 많은 공익재단과 더 많은 공익기금을 필요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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