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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61호 이슈] 장기적 전망을 가지고 활동할 수는 없단 말인가? - 위탁사업자 공모제의 한계와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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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61호 / 2009년 5월 20일

 




장기적 전망을 가지고 활동할 수는 없단 말인가?
- 위탁사업자 공모제의 한계와 불안
 
이진행 (익산공공영상미디어센터 ‘재미’ 미디어연구소)
 


얼마 전 주안영상미디어센터CAMF(이하 CAMF)의 위탁운영단체가 바뀌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천 남구청의 민간위탁위탁단체 재공모 결과에 따른 것이었다. 위탁단체가 바뀌었다는 것은 개관 준비 당시부터 현재까지 CAMF를 세우고 운영했던 주체에 변화가 생긴다는 이야기다. 내가 알기로 이번에 새로 운영주체로 선정된 학산문화원은 처음 CAMF를 만들 때 인천민예총을 대표단체로 했던 시민사회단체들의 컨소시엄에 함께했던 단체였다. 그래서 민예총이 아닌 학산문화원이 새로운 위탁단체로 선정되었을 때 미디어센터의 운영에는 큰 변화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예측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변화는 선명했다. 새로운 운영주체가 시행한 스탭 재고용 과정에서 미디어센터 운영의 현실적 축이라고 할 만한 사무국장이 제외되면서 미디어센터가 이전과 같은 내용과 방식으로 운영되지 못할 것임이 확연해졌다. 외부인으로서 자세한 상황은 알 수 없지만, 듣기로 기존 CAMF 스탭 중 위탁단체 변경 이후 남아있는 활동가는 반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새로운 위탁단체가 재고용하지 않은 스탭은 사무국장과 홍보 담당 두 명 뿐이지만, 여하튼 변화는 찾아왔고, CAMF는 지난 2년간의 성과를 만들어냈던 주체들의 힘을 상당부분 상실하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CAMF가 개관한 것이 2007년. 이제 겨우 2년 남짓 활동을 벌여왔을 뿐이지만 그간의 성과는 만만치 않다. 지금 이 자리에서 CAMF의 기간 활동의 성과를 면밀히 따져보기는 어렵지만 지역 공동체의 커뮤니케이션과 대안적 미디어활동을 위해 많은 노력을 왔다는 점은 명백한 것 같다. 작년에 익산공공영상미디어센터에서 발간한 지역영상미디어센터의 공동체 미디어 운동에 대한 조사연구 보고서에서도 CAMF의 활동이 주요하게 다루어졌으며, 연구자는 이제 막 조사와 토론을 통해 가닥을 잡아낸 3개 공동체와의 장기적인 활동을 크게 기대하고 있었다. 또한 이 보고서를 위해 열린 지역 미디어센터들의 집담회에서도 CAMF의 고민이 공유되어 지역 공동체와 함께하는 활동을 모색하고 있는 다른 미디어센터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경험이 있다. 뿐만 아니다. CAMF는 전국미디어센터네트워크에서 주도적 활동을 벌여왔으며 여기서 공동으로 추진한 미디어교육 교재 개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고, 신생 미디어센터로서는 드물게 국제세미나 등을 공동으로 주최한 경험도 있다. 이런 활발한 활동은 오랫동안 지역에서 지역공동체와 함께 미디어-문화 활동을 고민하고 실행해온 주체들이 모여 미디어센터를 일구어낸 결과이며, 2003년부터 거의 4년에 걸친 준비기간 동안 논의해온 미디어센터의 역할과 비전이 차차 실현되고 있는 과정이었다고 생각된다.
위탁기관이 바뀌고 구성원의 대부분이 자리를 떠난 현재의 CAMF에게 이런 활동 중 얼마를 기대할 수 있을지는 솔직히 미지수이다. 새로운 위탁단체를 공모하여 선정한 것이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선정 주체인 지자체는 과연 알고 있는 것일까?


이런 안타까운 상황이 지난 2003년에 벌어진 ‘활력연구소' 사태와 오버랩되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활력연구소'는 서울시 지하철 충무로 역사에 들어선 새로운 개념의 미디어센터로, 2001년 5월에 서울시의 지하철문화공간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되어 2002년 11월 30일 개소, 이어 지자체(서울시)의 일방적인 운영예산 지원 불가 통보와 위탁주체 재공모 선언에 의해 13개월만인 2003년 12월 31일에 폐관하게 된 비극의 주인공이다. 당시 ‘활력연구소'의 위탁주체였던 (사)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과 실무활동가들, 그리고 전국의 미디어-문화 활동가들은 서울시의 일방적이고 비상식적인 결정에 대해 무수한 항의와 저항을 해봤지만 당시 서울시장(현 대통령!)과 서울시 문화과의 결정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만 3천명의 회원을 가진 ‘활력연구소'가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 그리고 눈물 속에 사라진 지 6년 만에, 우리는 당시 서울시장이 대통령이 된 이 나라에서 CAMF의 실질적 도태를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국내의 대표적인 시네마테크인 서울아트시네마, 국내 최초의 미디어센터로 7년 이상 수많은 성과를 냈던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 역시 현재의 위탁주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지원기관의 취향-기간 활동에 대한 정량적, 정성적 평가 혹은 그 시설을 활용하고 있는 수많은 시민들의 평가와 입장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없는, 그야말로 취향 수준의 판단-에 따른 위탁주체 재공모 시행이라는 불안에 시달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지자체 혹은 중앙정부가 민간에 사업을 위탁하는 것은 민간 전문 영역에서 그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전문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뛰어나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미디어센터만 해도 그렇다. 국내에 어느 누구도 미디어센터의 개념과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때 미디어센터의 의미와 실제적인 역할에 대해 연구하고 소개하고 설득하던 주체들이 있었고, 힘들게 만들어낸 정책의 흐름 속에 미디어센터가 설립되어 현재 전국에 십 수 개의 미디어센터가 건립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미디어센터는 역할에 맞는 전문성을 가지고 있고, 미디어센터의 공공적이고 공동체적인 활동 방향에 대한 이해와 전망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운영하는 것이 마땅하다. 미디어센터 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기반시설들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여러 미디어센터와 여타 문화기반시설들의 운영주체들은 이런 판단 속에서 선정되어 활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문제는 이 활동이 애초에 제기되었던 목표와 필요에 부합할 수 있을 만큼의 장기적 전망과 계획을 가지고 이루어지기 힘든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물론 공공 사업을 민간에서 위탁하고 그에 대한 장기성을 보장하는 것이 능사는 아닐 수 있다. 민-관의 부적절한 관계, 부패, 운영자의 매너리즘 등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어디에서나 배제하기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의 위탁사업은 위탁협약 시에 일정한 기간을 정하고 위탁기간 만료 시 평가를 통해 재위탁을 결정하거나 다른 위탁주체를 찾는 방법을 취한다. 하지만 이렇게 정해진 위탁만료와 재선정 과정이 정치적 역관계 혹은 관리의 편의성을 위한 판단들 속에서만 진행된다면 큰 문제이다. 일회적?전시성 사업이 아닌 안정적이고 꾸준한 사업 시행에 대한 고려를 전제한 위탁기간 설정, 합리적 평가 지표에 다른 정확한 평가가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활력연구소 사태 당시 서울시의 논리와 대응은 상식선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공공성에 대한 이해 부족(활력연구소에 대한 시민들의 호응이나 지지와는 관계없이 수입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한 사업'이라는 단정), 뜬금없는 색깔론(당시 서울시 문화과장은 공식적 공간과 기자와의 대화 등에서 당시 운영진이 ‘빨갱이'여서 문제라는 발언을 여러 번 했었다. 이에 대해서는 운성호의 [활력연구소 살해사건 : 우리의 주소, 우리의 영토, 미디어스, 2009년 3월 2일 칼럼]을 참고하시길.), 대화와 협의의 부재 등 문제는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이 당시에 비해 현재의 행정 절차와 판단은 얼마나 발전했을까?
올해 초 불거진 서울아트시네마의 위탁주체 공모설에 대해서 “사업에 대한 제대로 된 검토와 평가도 없었고, 우리 쪽과의 의견 조율이나 사회적 합의를 모을 공청회 등 최소한의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갑자기 공모제로 전환하라고 통고” (김숙현 기자, “위기에 처한 서울아트시네마 ”, 프레시안, 2009년 2월 13일 기사)했다는 서울아트시네마의 설명에서 수년 전의 악몽이 슬며시 떠오른다면 지나친 것일까. CAMF의 운영주체 재공모 과정에서 이루어진 적격심사 (“민간위탁기관 적격자심사 위원회에서 신청자가 제출한 사업계획서 등에 따라 위탁운영능력ㆍ견실성ㆍ시설관리 및 사후관리 능력 등에 대한 적격심사 후 결정함”, 인천광역시 남구, 주안영상미디어센터 수탁대상자 선정 공고, 인천광역시남구 공고 제 2008 - 213 호) 는 과연 어떤 기준으로 이루어졌을지, CAMF의 사업을 기반으로 새로운 소통을 모색하던 지역민들의 의견은 어떠했는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시행한 지역영상미디어센터 운영평가에서 전국 평균을 훌쩍 상회하는, 사실상 최고점을 받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행한 2007 지역영상미디어센터 운영 평가사업 보고서에 따르면 주안영상미디어센터의 평가 총점은 86.0, 전국 평균은 82.5였다.) 운영주체를 탈락시키는 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있다. 더구나 공모를 통해 새롭게 선정된 위탁단체의 위탁기간이 1년 (인천광역시남구 공고 제 2008 - 213 호) 에 불과하다는 것은 더 큰 우려를 낳게 한다.
 
이 글에서 언급한 여러 사례들을 하나의 틀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 중앙정부의 결정과 판단들이 지역에 바로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며 지역에는 지역 고유의 여러 요인들이 작용할 것이므로 외부에서 왈가왈부하기 어려운 지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운영주체의 변화 혹은 불안정성을 어떻게 봐야 할지는, 해당 주체들을 넘어선 우리 모두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회 전반이 급격히 보수화되고 있다. 공존 보다는 경쟁을, 자율 보다는 효율을, 여럿이 살기 좋은 세상 보다는 몇몇 사람만이라도 잘 사는 세상을 추구하는 이 사회에는 힘없는 사람들의 자율적 소통과 공동체적 삶의 양식을 추구하고자 하는 대안적 미디어 문화 활동을 마땅찮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가보다. 이럴 때일수록 답답하고 암담하다 한탄만 하고 있을 일이 아니라, 이런 활동을 지속적으로 힘있게 해나갈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힘을 길러내는 데에 더욱 매진할 수밖에.
 
 
[참고]
 
활력연구소 살해사건 : 우리의 주소, 우리의 영토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949
 
위기에 처한 서울아트시네마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213181125&Section=07
 
서울아트시네마, 관객이 나섰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223115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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