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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61호 현장] 세상을 향한 두드림은 계속되어야 한다!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를 통해 본 장애인 인권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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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61호 / 2009년 5월 20일

 

세상을 향한 두드림은 계속되어야 한다!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를 통해 본 장애인 인권운동

 

최재호 (장애인문화공간)

 

 

7년 동안 이끌어온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가 추구해온 방향은 다름 아닌 영상 속에서 올바른 장애인인권의 조명이었다. ‘올바른 장애인인권이 뭘까?'라는 명제 하에서 이에 공감하는 몇몇 영상 활동가들과 장애인운동 주체들이 만나 함께 고민하며 2003년 4월 첫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를 개최하였다. 그러한 고민들을 글로 녹아내기 위하여 이 글의 줄기는 영화제를 하게 된 배경과 과정에서의 어려움, 그리고 영화제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점 등을 서술하겠다.

 

 

 

영상이라는 장르에서 장애인은 단순한 관객이요 주변인에 머물며 자신의 목소리조차 스스로 내지 못하는 존재로 전락했다. 그래서 그들 장애인이란 존재는 비장애인의 시각과 잣대로 왜곡된 형태로 그려져 왔고 그런 과정들 속에서 항상 타인의 도움을 구걸하는 존재로서의 장애인의 모습과 비장애인의 모습을 닮아가려는 노력의 연속으로 영상은 자이든 타이든 그렇게 장애인의 인권을 유린해 왔다.

 

‘장애인은 항상 천사처럼 착하다.', ‘이들과 함께 살며 돌봐주는 복지시설 사람들 역시 천사처럼 착하다.', ‘지역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장애인은 슈퍼맨처럼 뭐든지 잘한다.', ‘백수처럼 놀기만 하는 비장애인들은 이런 장애인들을 보고 크게 반성하고 뉘우쳐야 한다.', ‘장애의 문제는 철저히 장애를 가진 개인과 그 가족의 문제다.', ‘사회를 바꾸기보다 장애를 가진 사람의 노력으로 사회 속에 들어와야 한다.' 기타 등등.

 

이것이 기존 언론들과 영상들이 사람들에게 보여준 장애에 관한 논리다. 장애인을 마치 우주에서 온 외계인처럼, 사람이 아닌 다른 별개의 존재로 장애인들을 취급해 왔다. 이 속에서 벌거벗겨지고 상처받고 철저하게 농락당해 왔다. 장애인들은 결국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로 세상으로부터 차단된 복지시설 같은 곳에서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사람들에게 암시를 준다. 기존의 언론과 영상은 그렇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기만하고 있다.

 

 

 

2000년대 초부터 불붙기 시작한 중증장애인들이 주체가 되는 장애인 이동권 쟁취투쟁, 그 출발점은 중증장애인들의 의식화의 시작이었다. 많은 장애인들이 집밖을 나가기 힘들었다. 버스와 지하철, 택시 그 어떤 교통수단도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해주지 못했다. 지하철을 타려던 한 휠체어 장애인의 죽음이 몰고 온 분노의 광풍이 집밖을 두려워하던 장애인들을 거리로 뛰쳐나오게 만들었다. 거리의 장애인들은 사회가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어떠한 언론과 방송들은 그들의 주장에 대해 귀 기울여 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출, 퇴근길 교통을 방해하는 불순세력으로 매도하기 십상이었다.

 

그들이 줄곧 지켜온 영상 속에 온순하고 불쌍한 장애인 관을 버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 방송에서 장애인들은 여전히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다. 지하철 철로와 버스 그리고 복지부 점거와 도로를 점거해 선량한 시민들의 교통을 방해하는 거칠고 억센 장애인의 모습은 기존 언론과 영상에서 줄곧 보여줬던 장애인의 모습과는 정면으로 대치되는 이미지일 뿐 아니라 그러한 장애인 영상에 길들여져 온 비장애인들에게도 상당히 불편한 진실로 다가갈 것이라고 기존 언론 종사자들은 판단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진실을 원했다. 운동의 시작은 비록 소수로 출발했지만 그래서 자신들이 주장하는 목소리가 이 사회에 주는 파장은 미미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장애인이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사회 전반에서 차별당하고 배제당하는 현실을 언론과 영상을 통해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랬다. 하지만 어떠한 언론과 영상도 이들의 주장 요구에 대해서만큼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우리 사회가 가진 장애인에 대한 불편한 진실에 대해서 장애인운동가들은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운동하며 그 치열한 운동의 생생한 현장을 영상이라는 매체를 통해 기록에 남기는 소수의 사람들 또한 존재했다. 그것을 기록하는 사람들 또한 이러한 영상 기록물들을 세상에 전해지기를 원했다.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의 출발점은 바로 그 지점이었다. 이 불편한 진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알리는 장을 만들어 보자. 장애인이동권운동에서부터 출발한 장애인운동의 역사는 이렇게 장애인운동을 함께하는 영상활동가들에 의해 기록되어졌다. 이런 기록물들을 2003년 4월 서울장애인권영화제가 처음 개최되어 사람들에게 보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뭔가 부족했다. 영화제 주체들인 영상활동가들은 단순히 사람들에게 자신이 제작한 영상물을 보여주는데서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영화제와 함께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영상미디어 교육을 실시했으며 이들 교육대상자들의 수료작들을 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해 상영했다.

 

이것은 영화제가 단순히 영화를 보여주는 문화의 장으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관객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장애인들을 영상문화의 주체로 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장애인운동가가 자신이 왜 이런 운동을 하는가에 대해 또는 자신이 지닌 장애로 인해 사회 속에서 어떤 차별을 당해 왔는가를 직접 영상물에 담아낼 기술을 그들은 가르치기 시작했다.

 

7회까지 오는 동안 영상교육은 영화제와 함께 맥을 같이 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은 영화제 기간 뿐 아니라 상시적으로 지역별 미디어교육센터와 장애인단체에서 각각의 장애유형을 대상으로 영상미디어교육을 실시해 지금까지 이른다. 이로 인해 영화제는 회를 거듭할수록 전국각지의 장애인 주체들이 제작한 영상작품들이 풍성하고 다양해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제는 이들의 영상들이 우리 영화제를 빛내는 주요 작품들이 된 것이다. 이것은 우리 영화제 주체들의 또 다른 성과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시작한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가 올해로 일곱 해가 흘러오는 동안 장애인운동의 역사도 이동권 운동으로부터 활동보조서비스제도화운동,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운동, 장애인교육권, 장애인연금법제정운동 그리고 현재 탈시설 권리보장운동까지 다양한 영역운동으로 확장되어 가고 있다. 사회전반에 대한 장애인식 또한 미흡하지만 개선되어 가는 상황이다. 우리의 영화제를 계기로 일관되게 보여 오던 기존 언론들의 장애인에 관한 이미지도 차츰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6회부터는 ‘서울장애인권영화제'를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로 명칭을 변경하기도 했다. 7회를 이끌어 오면서 결코 쉽지 않은 여건이었다. 생각해보면 한해도 수월하게 넘어가 본적이 없는 것 같다. 영리구조가 아닌 비영리구조에서 우리의 영화제는 서로 비슷한 처지의 장애인운동단체들과 비슷한 처지의 시민운동단체들의 십시일반(十匙一飯) 후원으로 지탱해 왔다. 어떤 해에는 복지후원재단들로부터 사업비를 지원받아 영화제를 개최한 적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때가 더 많았다. 올해는 특히 더 힘들었다.

 

그 어떤 복지후원재단으로부터도 영화제 사업비 지원을 받아내지 못했다. 경기불황으로 인해 풀뿌리 후원도 한계가 있었다. MB정부가 들어서고 정부에 비판적인 운동단체엔 지원비를 중단하겠다는 조치들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영화제는 해야 했고 장애인운동단체들과 시민운동단체들, 그리고 각 개인들의 개미후원까지 모여서 천만 원 가까이 드는 영화제를 무사히 치를 수 있었으며 올해도 영화제와 영상미디어제작교육을 병행했고 그 교육에서 배출된 교육생들의 작품을 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해 왔다. 올해도 여지없이 이들의 작품을 폐막작으로 상영했으며 이들의 작품들은 많은 관객들의 이목을 끌었고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4월 3일부터 5일까지 명동 인디스페이스에서 3일 동안 34개 작품(수료작 포함)을 상영했고 천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우리 영화제의 관객으로 참여해 우리의 영상을 보고 돌아갔다. 또 20여명 남짓의 자원 활동가들과 스텝 진들이 함께 해주었다. 장애인들의 접근이 별로 용의하지는 않았지만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들 그리고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열심히 참여해 우리 영화제를 빛나게 해 주었다.

 

비장애인들도 적지 않게 참여해 빛내 주었다. 1,000명이라는 숫자는 부산국제영화제와 같은 주류 영화제였다면 일찌감치 ‘흥행실패'란 꼬리표가 붙었을 것이다. 또 사람들의 오감을 자극하는 상업영화 1편과도 비교가 안 될 적다면 적은 관객 수다. 3일 동안 우리가 마련한 영화제 부스를 외면한 채 상업영화를 보러 눈길도 안 주고 지나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지만, 그래서 잠시 실망도 가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세상을 향한 두드림이 멈출 수 없음은 왜일까?

 

세상은 아직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너무나 야박하게 군다. 사람들은 말한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살기엔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그러나 여전히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차별하는 세상이다. 영화제에서 상영한 모든 영상들이 하나같이 그것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연인과 함께 바다를 보고 싶었던 청년, 그 청년의 핸드폰 속에 담긴 바다를 보며 좋아하는 시설에 갇힌 자신의 연인, 그 깊고 아픈 그리움을 우리 영화제가 함께 느끼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세상을 향한 두드림을 더 이상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올해의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는 폐막했다. 아니 진정한 시작을 알린 것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여전히 동정과 시혜로 가두려는 세상, 장애인은 항상 착하게 세상에 순응해야 한다는 고정관념들에 맞서기 위한 싸움의 북소리, 장애인 스스로가 자각하고 영상을 통해 세상을 바꾸며 세상과 싸워 장애인차별을 철폐하는 그날까지 세상을 향한 두드림의 북소리는 멈출 수가 없다. 그러한 싸움과 투쟁들이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를 계속 전진 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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