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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61호 현장] 빈 점포영화제의 부활을 또 다시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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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61호 / 2009년 5월 20일

 

 

빈 점포영화제의 부활을 또 다시 기대하며
 
경남시청자영상제작단 독립영화상영위원장 주여진
 
1. 빈점포영화제의 배경


작년은 스크린에 날개를 다는 정말 큰 상영 프로젝트를 마산에서 완성했습니다. 결론적인 말을 하기 전에 먼저 마산 '창동'은 어떤 곳인가에 대해 설명을 할까 합니다.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 보면 창동상가는 사거리를 중심으로 뻗어진 거리 사이사이마다 양옆으로 뻗어져 연결된 골목이 이어져 있는 모습이 참 사람들의 향기로 넘쳐났습니다. 오밀조밀하게 이어지는 가게 사이로 골목길 벽면엔 빼곡하게 자리 잡은 포스터가 지나가던 사람들을 잡아 세워 놓기도 했던 곳이기도 하죠.
19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영화관 벨트'라 일컬을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던 창동과 부림시장 일대에서 구 마산 중앙극장, 시민극장, 강남극장, 연흥극장 등 재래식 영화관들이 멀티플렉스 강세로 하나 둘 문을 닫으면서 영화의 거리였던 창동은 2007년 12월 마지막 극장이 사라짐으로 인해 창동에서 영화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문화로부터 소외되고 있던 이곳에 공공미술을 하는 ‘프로젝트 쏠'과 마산YMCA청소년들이 문화의 소통을 위한 씨앗을 하나 둘씩 심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같은 문화 활동을 통해 시민들과 상인들의 자구노력으로 조금씩 바꾸어 가는 것을 보면서 기회가 되면 상영회를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영화진흥위원회의 넥스트플러스시네마네트워크 사업의 일환으로(사)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위탁받아 시행하는 ‘2008년 지역 정기상영회'에 창동이 첫 출발을 알리는데 적임이라고 생각이 들어 상영 기획회의를 거친 다음 창동을 찾았습니다. 처음엔 영화제가 아니라 상영회를 각각 창동에 있는 문화 단체랑 하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문화단체랑 일정이 맞지 않아서 고심하다가 창동 통합 상가 상인회 김경년 간사와는 다큐멘터리 촬영차 인연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독립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곳에서 영화 상영을 해 보면 어떨까라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상인회 회의가 며칠 뒤에 있는데 그때 한번 상의를 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김경년 간사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창동이라는 곳이 원래 영화의 거리였으니, 상영회를 하면 좋은 의미를 가질 수 있겠다고 한번 해 보자고 했습니다. 또한 영화제를 통해서 잠시 잊어버리고 있던 창동에서 다시 스크린에 빛을 볼 수 있다면 시민들의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큰 계기가 되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상인들과 일정을 한자리에 모여 의논 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 영화제 일정과 장소 섭외
등은 김경년 간사와 의논하면서 장소를 물색하러 다녔습니다. 영화제 공간을 구하기 위해서는 좌석이라든지 화장실문제 등 여러 가지 여건을 고려해야 했습니다.
영화제를 하기 위해 좋은 장소라고 생각 했던 곳은 창동의 마지막 영화관이였던 ‘메가라인'이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의 공간을 오래 비워두는 바람에 관객들의 접근성이 떨어지고 위험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또다시 공간을 찾다가 김경년 간사가 창동에 빈 점포가 많이 있는데, 그것을 활용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의를 했습니다. 빈 공간을 오래 비어두는 것보다는 문화 공간으로 활용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경년 간사와 함께 영화제 준비를 위해 기획회의를 수시로 만나 상인회 사무실에서 수정될 부분을 꼼꼼히 점검을 했습니다. 함께 모여 영화제 준비를 하기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일을 부담해서 나누기로 했습니다. 포스터 작업과 창동주변의 상인들에게 홍보는 상인회에서 담당을 했고, 저희는 언론과 문화활동가, 시민들, 그리고 영화에 관심이 많은 학교들에게 홍보를 하기로 했습니다.




드디어 '창동 빈 점포를 활용한 빈 점포 & 야외 거리 영화제'가 2008년 8월 29일 첫 시작을 알렸습니다. 29일과 31일 이틀간은 창동의 빈 점포 2층에서 이루어졌고, 30일은 야외 거리상영회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빈 점포를 활용한 상영회와 야외상영회를 한 이유가 있습니다. 야외상영회를 한 것은 영화의 거리였던 창동에서 그 추억의 길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마산시민이라면 누구에게나 공감을 이끌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상영 일정을 잡고 드디어 상영을 하려는데, 갑자기 변수가 나타났습니다. 다름 아닌 빈 점포영화제의 이름이 문제였습니다. 빈 점포 공간을 활용하려고 했던 곳에 상인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점포를 보고, "장사가 안 되는 가게라는 인식을 하는 것 같다고 ... 어떻게 하면 좋을까?" 라는 말을 해 왔습니다. 상인은 "난 그런 생각을 안 하는데 주위에 사람들이... 나중에 영화제가 끝나고,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해서 가게가 나가지 않으면 정말 곤란하다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빈 점포를 활용해서 상영회를 하려는 의도와 달리 빈 점포를 빌려 준 상인은 혹시 가게의 이미지가 이상하게 소문이 날까봐 전전긍긍했습니다. 창동 통합 상가 상인회 간사와 함께 며칠을 찾아가서 영화제 취지를 다시 한 번 상인에게 이야기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 상인에게 "빈 점포영화제란 창동에 비어 있는 점포가 많아 활용 할 수 있는 방안으로 영화제를 하는 것"이라고 말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공간들이 그냥 내버려 두지 말고, 상인들의 고민을 통해 시민들에게 더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영화제 날짜 다 잡아놓고 상인이 그렇게 노심초사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불안감이 몰려 왔습니다.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정말 아찔합니다.
그때 막연히 상인들에게“ 빈 점포 영화제를 상영하게 되면 사람들이 올 것이고, 또 그로 인해 장사에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라는 단순한 생각을 상인에게 먼저 심어주었다면 더 역효과를 가져 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번 상영회를 통해 공동화 되고 있는 도심을 살리고, 풀뿌리 지역인 창동과 같은 곳에서 상인들과 함께 활성화를 시키는 첫 발걸음이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2. 빈점포영화제의 사람들


거리 상영회 때 지역에 있는 문화 활동가인 난리굿패 어처구니의 도움으로 자연스럽게 창동을 돌면서 영화홍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홍보를 하면서 창동에 있는 부림시장과 골목길 주변에 있는 가게를 돌면서 상인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분식집을 하는 한 상인은 “예전의 창동엔 좋은 영화도 많이 하고 그랬는데, 이번에도 그런 추억을 되살아나게 할 수 있는 영화를 했으면 좋겠다.”라는 이야기며, 영화관이 없어진 뒤로는 장사도 잘 안 돼서 걱정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영화홍보를 하려는 차원이 아니라 상인들과 독립영화를 아니, 영화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또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처음에 빈 점포영화제를 보려는 창동상인들은 단순히 상업영화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보려 오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영화제를 관람 하고 난 뒤, 서로의 생각 차이를 함께 풀어보는 토론시간도 가지면서, 지금 창동에서 고민되어지고 있는 상인들의 위태로운 상권과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여러 상황들을, 상인들의 입장만이 아닌 시민들의 입장을 함께 이야기함으로써, 무엇이 창동을 쇠퇴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문제를 조금씩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서로가 가고자 하는 길은 같았기에 조금 더 노력하는 방향을 찾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더불어 빈 점포 영화제를 통해 많은 이득을 발견 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상인들과 시민들의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는 점이 의미 있는 소득이었던 것 같습니다.
독립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이든지, 아님 공짜표이기에 단순히 한번 보는 영화라고 할지라도 진정한 의미를 조금씩 찾아보고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다는 이 한가지만으로도 대단한 이득이고 성과가 아닐까요?
사실 저도 지역에서 공동체 상영을 위해 노력은 하고 있지만 진정성 있게 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번 빈 점포 영화제를 통해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 해답을 찾아가는 데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영화제를 보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문화를 가지고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지 계속해서 상인들끼리 모여 자구노력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스스로 판단해서 알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마산, 창원, 진해지역에서 독립영화가 무조건 좋다고 이야기하기보다는 얼마나 진정성 있는 영화를 통해 지역민에게 다가 갔는지가 무엇보다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에서의 영화 상영은 소통되기 힘든 사람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계가기 되어야 합니다. 무조건적으로 상영을 하기보다는 영화라는 도구를 가지고 서로의 생각을 쌍방향으로 연결 될 수 있도록 고리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위해서는 독립영화가 소외되는 지역을 찾는 게 제일 시급한 일이라고 생각되며, 상영회가 행사로 끝나는 것은 일시적인 충족밖에 제공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다양한 지역공동체와 함께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보고, 느끼며 이야기 할 수 있는 자리가 더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번 상영회 때도, 영화관에서만 접하던 영화가 최고이고 전부였던 지역민들이 애니메이션, 독립영화,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어떤 상인은 “창동 속에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처럼 그런 이야기가 있다면 꼭 보고 싶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야외 상영회 때에는 가족들과 함께 창동에 나왔다가 영화를 보게 되었다는 시민들이 많았습니다. 한 시민은 “우리지역에도 독립영화만 볼 수 있는 전용상영관이 있으면 좋겠다. 그곳에 가면 언제든지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고, 영화정보도 한 눈에 볼 수 있는 그런 곳이 곧 생겼으면 좋겠다.” 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농촌지역인 의령중학교에서 영화제작 동아리 학생들과 지도교사가 상영회를 보러오기도 했었습니다. 지도교사는 “평소에 아이들이 극영화에만 관심이 많았다. 이런 장르를 의령에서 보기란 힘들었기 때문인데, 여기에서 독립영화를 상영한다고 해서... 특히 독립애니메이션은 정말로 의령지역에서 접할 기회가 없는데 마산 창동에서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빈 점포 영화제 3일 동안에 많은 시민들이 참석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 기회로 창동이 한층 주목받게 되었으며 독립영화를 만난 시민들에게는 창동이 독립영화와 만나는 문화의 해방구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3. 빈 점포 영화제을 매개로 또 다른 공동체상영회를 위해 숨고를 준비


빈 점포 영화제 이후에도 창동에 있는 문화공간에서 상영회가 세 차례 더 이어졌습니다.
지역 언론과 마산시에서도 ‘창동 빈 점포 영화제'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 관심들이 모여 지금 현재 창동예술 소극장이 개관하였습니다.
마산시가 올해 처음으로 '창동 거리 빈 점포 활용 공연 지원비(1억 4400만 원)'를 편성하여 4월10일 창동예술 소극장이 개관하게 된 것입니다. 창동예술 소극장은 옛 메가라인 마산점 지하 1층에 마련이 되었는데 규모로는 좌석이 120석이구요, 무대는 99㎡ 남짓(30평)정도입니다. 현재 창동예술 소극장에서는 연극공연과 독립영화가 상영 되고 있습니다.




물론 시의 지원이나 창동의 번영이 곧 상영회가 갖는 목적은 아닙니다. 상영회가 갖는 의미는 독립영화의 본질적인 부분과 영화를 함께 보는 상영회 그 자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지역에서 문화를 통해 지역공동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구성원이 문화의 주축이 될 수 있다면 상영회가 갖는 의미가 더 클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앞으로 경남시청자영상제작단에서는 창동에서 상영회를 지속적으로 진행 할 수 있도록 하여, 4개의 영화관이 모두 문을 닫은 창동에서 의미 있는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들이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지역공동체와 만들어 나갈 계획입니다. 더불어 영화가 소외 될 수 있는 지역이나 공간인 상인회나 주민회, 노인회를 찾아가는 상영회도 계획 중입니다. 지금은 사람들의 자취를 잃어버린 추억 속 창동의 영화 골목길에 다시 활기를 불어 넣을 수 있는 다양성 영화를 기획해서 골목길에서 영화제나 상영회를 해보고 싶은 개인적인 욕심도 있습니다.


작년 빈 점포 영화제처럼, 창동에 스크린이 춤추는 날을 기대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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