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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62호 이슈] 방통심의위 출범 1년을 돌아본다 - 통신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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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62호 / 2009년 6월 29일

 

 

[방통심의위 출범 1년을 돌아본다 - 통신분야]
방송통신심의위 인터넷 심의는 사라져야 한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지난해 5월 28일, 방송통신심의원회(방통심의위)는 대통령을 ‘2MB'라고 지칭한 게시물에 대하여 ‘언어 순화와 과장된 표현의 자제 권고'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 대통령의 영문 이니셜 MB를 컴퓨터 메모리용량에 빗대 ‘머리용량 2MB', ‘간사한 사람' 등으로 표현하는 것은 인격을 폄하하는 것이라는 이유였다.


나는 방통심의위가 출범 후 첫 인터넷 심의에서 위와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방통심의위의 인터넷 심의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압축적으로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첫째, 방통심의위는 통신이라는 매체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둘째, 방통심의위는 자의적이고 위헌적인 행정 심의를 하고 있다.


먼저 방통심의위의 통신 매체에 대한 이해 문제부터 보자.




통신을 방송 보듯이


잘 알려져 있다시피 방통심의위는 매체 융합 시대에 방송과 통신상의 컨텐츠를 함께 심의하기 위하여 이명박 정부와 함께 출범하였다. 그러나 융합 매체에 대한 통합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하여 심의까지 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이 기구가 출범할 때까지 어느 누구도 확신을 갖고 있지 못했다. 오늘날 적어도 대한민국 현실에서 나는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확실히 알겠다.


인터넷의 등장 이후로 정부는 인터넷 규제론을 발달시키면서 대체로 불온, 저속, 자살 사이트 등 인터넷의 사회적 해악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굳이 불법이 아니어도 공공적으로 규제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규제모델은 전통적인 공중파 방송규제 모델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매우 당연하게도 인터넷은 공중파 방송과 매우 다른 매체이다. 이 점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2002년 6월 27일 ‘불온통신의 단속' 조항이 위헌이라고 결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인터넷은 공중파방송과 달리‘가장 참여적인 시장',‘ 표현촉진적인 매체'이다. 공중파방송은 전파자원의 희소성, 방송의 침투성, 정보 수용자측의 통제능력의 결여와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 공적 책임과 공익성이 강조되어, 인쇄매체에서는 볼 수 없는 강한 규제조치가 정당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인터넷은 위와 같은 방송의 특성이 없으며, 오히려 진입장벽이 낮고, 표현의 쌍방향성이 보장되며, 그 이용에 적극적이고 계획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특성을 지닌다. 오늘날 가장 거대하고, 주요한 표현매체의 하나로 자리를 굳힌 인터넷상의 표현에 대하여 질서 위주의 사고만으로 규제하려고 할 경우 표현의 자유의 발전에 큰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 표현매체에 관한 기술의 발달은 표현의 자유의 장을 넓히고 질적 변화를 야기하고 있으므로 계속 변화하는 이 분야에서 규제의 수단 또한 헌법의 틀 내에서 다채롭고 새롭게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공중파 방송의 경우 공익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그 내용 심의에 있어 ‘공정성'과 같은 기준이 인정되고 강력한 행정기구에 의한 심의 역시 인정되는 것이다. 여기서 행정심의기구의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은 심의절차와 그 결과의 공정성 및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모든 형태의 심의절차에 요구되는 당연한 전제이다.(헌재 2001.08.30, 영화진흥법 21조 4항 위헌제청) 그러한 점에서 박명진 위원장이 방통심의위의 독립성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더욱 강력한 행정처분권을 요구하는 것이 일견 당연하다.
(동아일보 2008.11.12. “[초대석]취임 6개월 맞은 박명진 방송통신심의위원장”,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811120072 )


문제는 이러한 모델이 통신에서는 전혀 당연하지 않다는 데 있다. 전통적으로 통신은 개인의 사적 영역으로서 그 비밀이 보장되어 왔다. 최근 인터넷의 발달로 이메일 등 사적 통신 영역 뿐 아니라 블로그 등 공적 통신 영역이 등장하였지만 기본적으로 통신 매체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통신 비밀과 표현의 자유이다. 특히 언론과 출판 같은 거대 미디어에 접근하기 어려운 일반 시민에게 있어 인터넷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표현물 배포 매체이기 때문에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인터넷 표현의 자유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표명하는 것이다. 다만 사적인 통신이라고 하여 불법 행위가 용납될 수는 없기 때문에 세계 여러 나라에서 ‘불법성'을 기준으로 인터넷 규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을 ‘2MB'라고 조롱하는 것이 불법인가? 이에 대해 ‘언어순화'하라는 것은 지상파 방송에서나 가능한 규제이지 인터넷에서는 합당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은 규제이다. 방통심의위의 인터넷 규제 행위가 헌법재판소가 거론한 규제 틀을 벗어나서는 안 되는 것은 물론이다.




불법성을 법원보다 먼저 판단하고 삭제


최근 방통심의위의 인터넷 심의가 위헌이라는 주장이 계속되는 까닭은 인터넷 게시물의 ‘명예훼손' 여부와 같은 불법성을 이 기구가 직접 판단하고 그 결과에 따라 삭제하기 때문이다.


상상력에 도움을 받기 위하여 다른 나라의 사례를 살펴보자. 지난 2008년 12월 19일 한국정보사회진흥원에서 펴낸 <해외 주요국 인터넷 규제현황과 시사점>이라는 자료에는 다음과 같은 자료가 실려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방송통신위원회와 방통심의위와 같은 행정기관이 인터넷을 심의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등 인터넷이 발달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민간 기관이 인터넷을 심의한다. 당연하겠지만 민간 규제기구의 판단은 법률적 강제력을 갖고 있지 않으며, 민간 규제기구의 일부를 차지하는 사업자단체들의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수용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들 국가에서 현행법을 위반한 불법 게시물은 누가 ‘규제'하고 있는가? 다른 나라에서도 명예훼손 뿐 아니라 ‘아동포르노', 더 나아가 ‘인종차별'은 불법으로 엄중히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이런 콘텐츠를 규제하는 방식은 다른 모든 매체에서 이루어지는 통상적인 방법대로 규제되고 있다. 바로 사법기관이 법률에 따라 그 불법성 여부를 판단하고 그에 따른 민형사상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다. 공정하게 재판을 받을 권리는 그 자체가 헌법상 중요한 기본권이기 때문에, 어떠한 기관도 사법기관을 대신해서는 안 되고 그럴 능력도 없다.


그런데 우리의 방통심의위는 이들 나라의 인터넷 규제 기관보다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아 압도적으로 많은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7에 따라 법원보다 빨리 불법성을 판단하는 방통심의위는 인터넷강국 대한민국에만 있는 참 요상한 제도이다. 과연 그럴 만한 전문성이 있기 때문일까? 혹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특별히 방통심의위의 권한이 정당하다고 사회적으로 인정해주었기 때문일까? 글쎄.


더구나 방통심의위는 자신의 설치 근거 법률인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규정되어 있는 심의위원회 직무 가운데 “건전한 통신윤리의 함양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으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정보의 심의 및 시정요구”(제21조 4호)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다. 이 조항에 따라 만들어진 시행령 제8조에서는 방통심의위의 심의대상을 “불법정보 및 청소년에게 유해한 정보 등 심의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정보”라고 규정하고 있다. 방통심의위는 불법과 유해를 넘어서서 제멋대로 자기 심의 대상을 규정하고 있으며, 결론적으로 과거 ‘불온통신의 단속'과 다를바 없는 위헌적 심의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부활한 불온통신의 단속


행정기관이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불법성을 일방적으로 판단하고 그에 따른 강제적 행정처분까지 하는 것은 위헌적이다. 방통심의위의 ‘행정처분'은 단지 ‘심의'를 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방통심의위는 ‘자체적인' 불법성 결정에 따라 각 포털 사업자와 운영자들에게 이에 대한 ‘시정 권고'도 하고 있다. ‘권고'는 말 그대로 ‘권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방송통신위원장의 취급거부·정지 또는 제한 명령을 받을 수 있으며,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형사처벌된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사업자나 운영자가 심의위의 소위 ‘권고'에 따르지 않겠는가? 특히 주요 인터넷 사이트에 대하여 강제적인 국가 실명제가 도입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용자의 글을 행정기관이 심의한다는 것은, 국민 개인이 행정기관을 마주하여 직접 상대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으며 이러한 심리강제는 결국 표현의 자유 위축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방식으로 방통심의위는 2008년 7월 소비자들이 광고지면 불매운동을 위해 작성한 광고주 목록에 대하여 ‘위법적인 2차 보이콧'이라는 자의적 판단 하에 삭제 결정을 하였고, 2009년 1월 김문수 경기지사가 “만약 우리 대한민국이 일제 식민지가 안 됐다면 …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과연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었을까?”라고 발언한 것을 비판하고 사퇴를 요구하는 서명 게시판에 대하여 ‘명예훼손'이라고 삭제 결정을 하였다. 지난 4월에는 ‘쓰레기 시멘트'를 비판한 환경운동가의 블로그 게시물들이 양회업체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며 삭제를 결정하기도 하였다.


인터넷에 관한 한, 방통심의위의 행정심의 권한은 폐지되어야 한다. 특히 위헌적인 불법성 심의는 지금 즉시 중단되어야 한다. 방통심의위가 명예훼손을 비롯하여 위헌적인 불법성 심의를 할 권한 자체가 헌법으로부터 부여되어 있지 않다. 인터넷 게시물의 불법성에 관한 방통심의위의 기능은 인터넷 게시물의 불법성을 모니터링 하여 수사기관에 이첩하는 핫라인의 기능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인터넷 내용규제 행정기구로서 방통심의위를 폐지하고 민간기구화 할 필요가 있다. 다른 나라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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