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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62호 이슈] 2009년 한국 독립영화에 찾아온 새로운 기회와 도전 독립영화 법제화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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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62호 / 2009년 6월 29일

 

 

2009년 한국 독립영화에 찾아온 새로운 기회와 도전
독립영화 법제화를 넘어 




김지현 (ACT! 편집위원회)
 
2009년 현재, 한국은 작년의 촛불만큼이나 거센 회오리바람 속에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번 회오리바람은 작년의 경험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 작년 촛불에서 터져 나온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그동안 표현의 자유에 대한 원천 봉쇄와 온갖 탄압으로 다소 억눌려 있다가 최근 한예종 사태 및 노무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다시 가시화되고 있다. 그리고 각계각층의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몇 달간 한국을 방문한 한 해외 미디어활동가는 향후 두 달간이 앞으로 한국의 정치상황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 되지 않을까 점쳐보기도 한다. 정작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어떻게 보면 그동안 너무나 많은 일들이 터져서 이런 상황에 다소 무감각해져 있기도 하지만, 아무튼, 이렇게나 격동적인 순간을 우리는 통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처럼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어두워 보일 때에도 가끔 뜻하지 않은 기회가 찾아오기도 하나보다. 정권 교체와 함께 이루어진 공공영역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도 불구하고 2009년 독립영화계는 새로운 기회와 도전을 맞이하게 된다. <워낭소리>를 비롯해 여러 작품들이 세운 독립영화 사상 공전의 히트와, 이와 함께 뒤따른 법제화 논의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적은 투자로 많은 수익과 부가가치를 창출한 영화라는 성공 신화와 함께, 돈 되는 사업을 지원하겠다는 신자유주의적 정부의 수용 맥락이 작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맥락의 존재는 한국의 독립영화가 존재하고 활동해 나가기 위해 고려해야할 중요한 환경적 요소이지, 그것이 바로 독립영화 자체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본질적 요소는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게 언급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독립영화에 대한, 혹은 독립영화를 통한 무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활성화 할 수 있는 지금과 같은 매우 유리한 기회를 우리는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이 글에서는 그동안 한국의 독립영화가 쌓아온 역사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최근 독립영화 법제화가 진행되는 상황과 그것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 함의 및 가능성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한국 독립영화의 두 가지 흐름 : 자본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독립영화는 1980년대 중반, 억압적 정치상황과 상업적이며 퇴행적인 한국영화산업에 대항하는 대안적 미디어 및 문화운동으로서 등장, 성장하였다. 먼저 한국의 독립영화는 1980년대 후반 활발한 민주화 운동과 함께, 언론이 철저히 배제하던 진보적 목소리와 담론을 유통시키는 대안 매체로 성장한다. 비디오 제작기술의 발달이 이를 더욱 용이하게 하였는데, 진보적 영상운동 집단들은 정부의 검열제도를 피해 노동자나 대학가를 대상으로 다큐멘터리 및 극영화 작업을 한다. 특히 1990년 < 파업전야 >가 
대학가를 타고 약 30만 명의 관객을 모은 대성공을 계기로, 전국에서 수많은 독립영화 단체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이후 이들은 사회운동의 맥락에서 영화를 사고하며 지금까지도 한국 독립영화의 큰 줄기를 이루고 있다.


한편, 한국의 독립영화는 주류 상업영화시스템 외부에서 독자적인 영화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1984년 개최된 최초의 독립영화제 < 작은 영화를 지키고 싶습니다 >는 당시 저열한 수준으로 치닫던 상업영화에 반하는 작지만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한다. 여기서 이들은 기존의 한국영화계와 전면적인 결별을 선언하며, 비록 아마추어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좀 더 사회비판적이고 대항적인 영화미학을 실험한다. 이후 이 흐름은 거대 상업 자본을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하고 배급, 상영하는 관행으로부터 벗어나 대안적 방식의 영화 제작 및 향유 방식, 그리고 새로운 미학 문화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흐름으로 발전하였고, 다양한 영화제들의 부상과, 학생 및 전업/비전업 작가들을 중심으로 창작자의 개성을 강조하고 내용과 형식의 혁신, 다양한 실험, 비상업적인 제작 방식을 바탕으로 하는 대안문화 영역을 형성해나간다.


이렇게 기존의 폐쇄적인 미디어 및 문화 환경을 바꿔내고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한국 독립영화의 역사적 정체성을 형성해온 두 가지 주요 특징이다.(*주1)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앞서 말했듯 2008년, 2009년과 같은 험난한 시기에 두 가지 상반된 흐름을 동시에 맞이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정책 개입을 통해 일궈왔던 성과들이 정권 교체와 함께 대대적인 공격에 노출되는 반면, 다른 한편으론 새로운 정책 개입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온통 암흑 속에 찾아온 이 새로운 기회를 어떻게 이해할 것이며, 어떻게 전략적으로 위치시킬 것인가?




독립영화 법제화 논의


지난 5월 13일 국회의원회관에서는 최문순 의원실과 한국독립영화협회, 창조산업연구원의 공동주최로 독립영화 법제화에 관한 토론회가 열렸다. 한국영화에 관한 연속토론회 중 < 제1회 독립영화, 법적 지위를 묻다 >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 토론회에서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독립영화에 대한 규정을 명문화하고(지금은 단편영화와 소형영화라는 규정이 있을 뿐이다),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법 개정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였다. 이날 발제를 맡은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은, “10년 전만 해도 검열과 정부를 향해 치열하게 싸웠는데, 오늘은 법제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 감회가 새롭다”는 말로 발제를 시작하기도 했다.




아무튼 최문실 의원실에서는 이 토론회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후 몇 번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최근 최종안을 확정짓고, 곧 발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개정 법안의 주요내용은 독립영화에 대한 개념 규정과 진흥계획의 수립 및 시행, 영화발전기금의 지원, 등급분류 예외에 대한 인정 등에 관한 내용들이다. 이번 법안 개정의 주요 취지는 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독립영화 지원에 관한 법적 근거 마련이고, 여기에 그동안 독립영화계 및 시민사회단체에서 제기해왔던 등급분류 문제가 추가되었다. 국회 일정에 따라 이 법안이 언제 통과될지, 또 어떤 수정과정을 거쳐 통과될지는 앞으로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법안의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가. “독립영화”를 상업적인 자본에 의존하지 아니하고 창작자의 의도에 따라 주제, 내용, 형식, 제작방식 등에 관하여 제작한 영화로 정의하며, 상업적 자본의 범위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함(안 제2조제7호의2 신설). 
나. 영화발전기금의 100분의 20 이상을 독립영화의 보호?진흥을 위한 사업에 지원하도록 함(안 제25조제1항 각 호 외의 부분 후단 신설 및 같은 항 제3호의2 신설). 
다. 독립영화의 유통환경 개선을 위하여 대가를 받지 아니하고 상영하는 소형?단편?독립영화나 전용상영관에서 상영하는 영화 또는 이의 비디오물에 대해서는 등급분류 예외를 인정하도록 함(안 제29조제1항 및 제50조제1항). 
라.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독립영화의 진흥을 위한 중?장기 종합계획을 영화진흥위원회의 임기에 맞춰 3년마다 수립하여 시행하도록 하고, 매년 그 시행결과에 관한 보고서를 국회의 해당 상임위원회에 제출하도록 함(안 제47조의2 신설). 
마. 정부는 독립영화의 진흥을 위하여 독립영화의 제작/배급/상영 등에 기금을 지원하도록 하고, 필요한 경우 예산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함(안 제47조의3 신설).


큰 관점에서 볼 때 이 법안이 가지게 될 의미는 그동안 독립영화계에서 벌여온 정책 개입 활동의 의미와 별반 다르지 않다. 독립영화의 진흥을 통해 시민의 문화적 권리 또는 미디어 및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권리를 정부가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지원하도록 하는 공적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 독립영화가 제도권에 편입된다고 말하는 것은 제도의 변화 가능성을 아예 포기해버리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우려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이 법이 통과되었을 경우 법과 제도에서 인정하는 독립영화가 독립영화임을 판단하는 중요한 준거로 작용하게 될 수도 있다. 또 한편에선 그동안 독립영화가 여러 영역에서 지원을 받으면서 너무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선 그러한 지원이 특정 단체 혹은 집단에게 편중되어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법제화, 제도화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법제화와 제도화를 통해 애초에 이루고자 했던 사회적 변화가 일어났느냐이다. 법제화란 우리가 바라는 사회 또는 문화를 이루기 위한 제도적 장치일 뿐이다. 그러나, 사회적 의제와 규칙을 설정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앞으로의 활동을 위한 안정적인 조건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번 법제화에서 우리가 더욱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지금 시점에서 이러한 정책적 개입의 가능성을 어떻게 극대화시킬 것인가이다. 아시다시피 현 정부는 공공영역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축소하고 시장에 맡기는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기회는 현 정권의 정책 기조에 비추어볼 때 어쩌면 예외적인 기회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독립영화 법제화에 대한 논의는 독립영화의 가능성과 시민들의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권리를 최대한 확대해낼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의 미디어 환경 변화를 적극적으로 고려하며 독립영화 및 독립영화 진흥 정책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를 확장해낼 필요가 있다. 즉 단순히 기존 독립영화인들의 활동을 인정받고 유지하는 수준에서 이번 법제화의 의미를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꽉 막힌 미디어문화 질서를 깨뜨리고 새롭게 의제를 제기하는 방식으로 논의를 확장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독립 영화의 개념을 다시 정립할 필요가 있다. 독립 영화의 정체성에 관한 논의는 독립 영화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지속되어온 논의 주제이다. 그리고 초창기의 논의 역사를 보면 “작은 영화”, “열린 영화”라는 개념을 거쳐 지금의 “독립영화”라는 이름으로 안착하게 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독립영화라는 개념은 역사적 실체를 포함하면서도 계속해서 변화된 환경에 맞게 새롭게 규정되어야 하는 개념으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독립영화가 역사적으로 등장하게 된 배경이나 그동안 펼쳐왔던 활동들의 주요 문제의식이 기존의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미디어 구조를 적극적으로 변화시켜내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독립영화는 앞으로 변화되어야할 미디어 환경의 방향을 미리 제시하는 개념이어야 하기도 하다. 이렇게 볼 때, 자본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독립영화의 역사적 정체성을 지금의 미디어 환경 변화에 맞게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조금만 눈을 돌려보자. 지금의 미디어 환경 변화를 요약하는 핵심어로 미디어융합이라는 말이 있다. (사실 이 말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지 벌써 10-15년도 넘었다는 점에서, 더 나아가 ‘디지털'에 대한 담론의 역사는 이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다는 점에서 이 말이 지시하는 환경의 변화는 이제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다.) 즉, 영화, 방송, 인터넷 등 매체간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기술적인 차원에서 뿐 아니라 정책/제도, 산업적 측면에서도 모두 구현되고 있는 현상이다. 따라서, 이제 독립영화에 대한 사고는 영화라는 영역에 한정되어 사고될 것이 아니라 다양한 플랫폼에서의 독립 미디어 활동들을 포괄하는 것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즉, 독립영화라기보다는 독립 영상, 또는 더 나아가 다양한 플랫폼과 소통구조를 넘나드는 독립 콘텐츠-미디어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앞으로 독립영화에 대한 진흥정책은 단순히 극장 개봉 지원의 차원에서 논의할 것이 아니라 영화, 방송, 인터넷, IPTV 등 전체적인 미디어 시스템에 대한 종합적 판단 아래서 기존의 폐쇄적이고 독점적인 미디어 제작 시스템을 열어낼 독립적 제작 및 소통 시스템을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가에 대한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가령 영화 분야에서는 거대 상업제작사 및 배급사들에 의한 독점 구조를, 방송 분야에서는 소수 지상파 방송사들의 자체 제작 시스템에 의한 독점 구조를 깨기 위해 도입되었으나 콘텐츠의 다양성과는 전혀 무관한 방향으로 진행된 실패한 외주 정책과 다채널 도입 정책을, 그리고 온라인 분야에서는 참여적 성격이 매우 강한 본래의 매체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인프라 확대와 저작권 강화를 통한 단속에만 급급해왔지 공공적 콘텐츠의 활성화에는 거의 백지 상태에 있다시피 한 현재의 제한적 온라인 미디어 정책을 어떻게 바꿔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 속에서 지금의 독립영화 또는 독립 제작 콘텐츠의 진흥 정책이 논의되어야 하는 것이다.




독립영화 법제화를 넘어


사실 위에서 언급한 미디어 각 분야에서 그동안 각 분야의 독점적 미디어 구조를 깨기 위한 시도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영화 분야에 독립영화가 있었다면 방송 분야에서는 퍼블릭 액세스와 시민참여 채널, 공동체라디오 등이 있었고, 온라인 분야에서도 대안 인터넷 언론이나 작년 촛불에서 볼 수 있듯이 시민들의 폭발적인 참여 미디어 문화들이 존재해왔다. 문제는 이들을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인가, 즉 운동의 연대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이다. 독립영화 법제화를 맞이하여 우리에게 놓인 도전과 과제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




* 주
1) 한국 독립 영화의 정체성에 관한 논의는 한국 독립 영화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논의 주제이다. 한국 독립 영화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방식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자본과 제도로부터의 독립'이 있다. 이는 1998년 (사)한국독립영화협회가 출범하던 당시 출범선언문에 명문화된 입장으로서, 여기서 자본이란 상업적인 자본을 뜻하고, 제도란 정부의 검열을 의미한다. 한편 2002년, 인디포럼에서 열린 ‘독립영화, 그 경계의 모호함'이란 토론회는 이러한 논의를 좀 더 발전시킨다. 여기서 이진우는 ‘자본과 제도로부터의 독립'이라는 한독협의 개념 규정에 대해 이것이 “당시 독립영화 진영에 가해진 정치적 탄압과 인디포럼을 통해 붉어진 검열의 문제가 출범선언문에 명문화된 것으로 짐작”된다며, 이 개념이 “보편적이고 총론적인 입장으로서 그 의미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현실성 없는 공허한 구호로서 작용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불명확한 개념 규정”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현존하는 독립영화 진영의 입장을 세 가지로 분류하는데, “여전히 진보적 영상운동의 입장에서 영화를 혁명, 혹은 투쟁의 도구로 사고하는 입장과 주류 산업영화 밖의 모든 영상 제작물을 독립영화로 규정하는 입장”, 그리고 “일종의 실험영화들, 혹은 실험적 영상미학을 추구하는” 입장이 그것이다. 여기서 실험영화란 “영화를 해체하여 새롭고 독자적인 독립영화의 영상미학을 추구하는 총체적인 의미에서 포괄적인 영상의 실험성에 관한 입장”을 의미한다. 그는 첫 번째 경우가 독립다큐멘터리 진영의 모습이라면 후자의 두 가지 입장은 극실험영화 진영에 드러나는 대표적 입장이라고 말한다. 이진우, "독립영화, 그 본원적 혼돈", <독립영화> 2002년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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