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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62호 현장] 지역에서 촛불을 든 이야기 : 촛불은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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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62호 / 2009년 6월 29일

 

 

지역에서 촛불을 든 이야기 : 촛불은 미래다 






박배일 (평상필름)
 
2008년 5월 2일, 평상필름 식구들은 사무실 근처 SKY라는 술집에서 진하게 술을 들이키고 있었다. SKY라는 술집은 간판도 없고 볼품도 없지만 운동하는 사람들이 매일 밤을 하얗게 지새우는 곳이다. 오고 가며 아는 얼굴과 인사를 나누고 술간을 기울이는 그곳에서 흥분한 어조로 한 형님이 말씀하셨다.
5월 3일 서면 태화백화점 옆 거리에 누군가가 쇠고기 수입반대 내용으로 집회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수소문한 결과 다음의 한 카페 회원들이 뜻을 모았다고 했다. 온라인 동호회가 오프라인인 거리로 나와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에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그렇게 5월 3일 서면 광장의 촛불은 네티즌에 의해 처음 밝혀졌다.


5월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만큼 강력하게 내리 쬐는 햇볕을 정면으로 맞으면서도 2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서면거리를 메웠다. 머리에 2MB의 용량 밖에 없어 우리가 그를 일깨워야 한다는 촛불소녀의 함성과 투표를 잘못해 공부해야할 중·고등학생을 거리로 나오게 했다며 사과하던 아저씨의 목소리가 그 거리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군대 갈 오빠와 함께 SS501 오빠를 걱정하며 울먹이던 소녀와 인터넷으로 정보를 접하고 분에 못 이겨 처음으로 집회에 나왔다는 40대 아주머니의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서면 거리에는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옆 사람 사연을 하나하나 경청하면서 공감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이후 서면 밤거리는 촛불로 채워졌다. 이 정권이 귀가 막힌 줄 까맣게 몰랐던 시민들은 행여나 내가 빠지면 그 목소리가 작아져 청와대에 들리지 않을까봐 퇴근길에, 하굣길에 발길을 서면으로 돌렸다. 소통 할 줄 모르고 모든 귀가 조중동과 보수 언론에 쏠려있던 정부는 그 자발적인 발걸음에 누군가가 조종하고 있다고 떠들어댔다. 그 현장을 처음부터 카메라에 담고 있던 우리는 배후세력 논란이 허위라는 것을 알려야했다.
진정한 촛불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기위해 미디어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우선 부선은 퍼블릭액세스 프로그램이 어떤 지역보다 활성화 돼있어 그 채널들을 활용하기로 했다. 일주일에 한번 금요일 프라임 시간대에 방송 되었던 라디오 시민세상에 연속 기획물로 촛불 시민의 목소리를 담아냈고, 한 달에 한번 방송되던 TV프로그램에도 그 역량을 쏟았다. 그리고 2008 촛불의 태동이 되었던 웹 2.0시대에 발 맞춰 부산 촛불 상황을 인터넷에 손 빠르게 올렸다. 언론이 서울 상황 중심으로 보도하는 경향이 많아 이런 작은 움직임에 지역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위대한 명의가 와도 고쳐지지 않을 귀머거리 정권은 결국 가장 무서운 시민의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형광 물대포와 곤봉으로 민조를 짓밟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시민들은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지만 이씨의 바람대로 촛불은 점점 꺼져갔다.
6월 10일, 촛불의 가장 큰 특징인 자발성과 창조성이 가득한 서면 거리를 카메라에 담았고, 21년 만에 서면 로타리를 촛불 광장으로 만들었던 감동적인 순간도 필름에 새겼다. 소통하는 법이 없는 정부 때문에 거리에 나와 광장에서 소통하는 방법을 배운 촛불들이 7월 5일 국민 승리를 선언했다. 그 광장에서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고 강강술래하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노래를 합창하는 찡한 장면도 가슴과 카메라에 찍어뒀다. 국민승리선언 이후 촛불은 꺼지지 않았고 추운 날씨 속 촛불 재판까지 카메라에 담으로 2008년 촛불 기록을 마쳤다.


국민의 눈과 귀를 막으려는 정권의 무자비식 방송장악을 알리기 위해 만들었던 ‘우리교수님 이야기' 로 울산에서 상영회를 가졌다. 그곳에서 우연히 울산미디어연대에서 만든 ‘재미있거나 혹은 열 받거나'를 보았다. 울산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10분 남짓한 영화를 보면서 가슴 깊은 곳에서 열이 치고 올라왔다. 그동안 몰랐던 지역의 촛불을 보니 전국에서 이렇게 많은 촛불이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목이 쉬도록 외쳤건만 국민의 대표라는 사람이 그 목소리를 지근지근 뭉갰다는 생각에 분이 찼다. 영화를 보면서 부산촛불의 목소리를 담은 영화를 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촛불이 점점 꺼져 갈 때 즈음 촛불의 의미를 되새기는 장이 이어졌다. 각계, 각층에서 토론이 이어졌고, 많은 책이 촛불의 의미를 정리해나갔다. 언론 역시 촛불의 과정을 보여주고 의미를 찾으려는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 속에서 철저히 외면당하는 주체가 있었다. 서울 공화국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에서 지역은 촛불의 주체가 아닌 그저 바라만보는 관람객 정도로만 생각하는 듯 했다. 부산 내에서도 부산촛불의 목소리를 담은 영상이 나오길 기다리는 곳이 많았다. 꼭 만들어야하는 책임감이 생겼다.


2009년 용산 참사 이후 부산에서 피워진 촛불도 계속해서 담고 있었지만 영화의 마무리는 2008년 12월 3일 진행되었던 ‘부산시민촛불재판'으로 정했다. 50개가 넘는 테잎을 리뷰하면서, 구체적으로 영화를 기획하면서 부담감은 커져만 갔다. 지역의 특색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지역에서 외치는 목소리 역시 서울에서 하는 이야기와 들은 이야기의 반복이었다.
몇 가지 다른 점은 서울처럼 경찰과 심한 대치는 없었고, 쇠고기 출하를 막기 위해 간만부두에서 집회를 가졌다는 것뿐이었다. 그 외 배후세력 논란이 있을 때 서면에서도 그 이야기를 반박하는 애기가 주를 이뤘고, 자발적 촛불집회를 돕기 위한 시국회의도 서울에 이어 만들어졌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서울의 연속이었다. 지역 담론이 촛불 광장을 뜨겁게 달구었던 적은 없었다. 지역의 광장은 뜨거웠지만 그 내용은 지역을 말하기엔 심심했다. 내 스스로 부족한 역량 역시 지역 촛불의 특색을 찾지 못하는 요인이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처음 영화를 기획 했을 때 ‘지역·부산촛불'을 보여주겠다던 큰 포부를 작게 만들었고 영화 자체에 대한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스스로 만든 부담감으로 차일피일 영화 마무리가 미뤄졌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컨셉이 확정돼 있었다. 부산의 광장에서 이루어진 이야기로만 구성 할 것과 그 이야기를 가장 열심히 촛불을 들었던 촛불 소녀가 이끌어간다는 것이었다. 편집을 미루고 미루는 사이 내레이션 구성을 위해 촛불소녀 (이하 탱자: 별명임)를 만났다. 촛불을 들었을 당시 교복을 입은 수줍은 소녀였는데 그 사이 어엿한 대학생이 돼있었다. 간단하게 정리된 가편집본을 보고 탱자가 느낀 점을 내레이션으로 구성하기로 했다. 탱자는 집중해서 가편집본을 봐주었고 한숨을 쉬며 첫마디를 뱉었다.
“미안해요. 제가 대학생이 돼서 내 것 챙긴다고 열심히 못했어요. 내가 초심을 잃은 것 같아 죄송해요.” 마음이 찡했다. 촛불의 순간순간 느낌을 듣는 중에 탱자의 코에서 피가 흘렀다. 등록금 마련을 위해 매일 밤 11시까지 알바를 하던 탱자를 쉬지도 못하게 하고 내레이션을 위해 불러냈던 것이 화근이었다. 마른 휴지를 두세 번 갈아 끼워도 탱자의 코피는 쉬이 멈추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초심을 잃어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 모습에 지금 내 자리에서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반문했다. 탱자의 피는 영화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내레이션 구성 이후 빠르게 편집이 진행되었다. 촛불이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 진행 중이며, 미래로 나아가는 원동력이라는 의미를 영화에 담으려했다. 부산의 광장에서 부산 시민과 촛불 소녀의 목소리로 촛불의 의미를 담았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결국 소통하기 위한 것이다. 영화가 마무리 되어갈 때 쯤 상영과 배급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부산은 상영 공간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은 편이다. 예술 영화 전용관인 시네마테크 부산과 국도&가람 예술관이 있고, 시청자들 편익을 위해 만들어진 시청자미디어센터도 있다. 하지만 그 공간은 촛불을 든 시민이 찾아가기엔 위치적으로도 불편하고 낮선 곳이다. 상영·배급에 대한 논의는 간단하게 끝났다.
평상필름이 주최하는 시사회를 두 번가지고 공동체 상영을 하기로 했다. 시사회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촛불을 든 당신을 찾습니다.'라는 컨셉으로 홍보하기로 하고, 영화를 관람한 느낌을 공유하는 것뿐만 아니라 앞으로 부산 광장에서 촛불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토론하는 자리로 만들기로 했다. 공동체 상영은 몇 명이든 상관없이 영화 보길 원하는 공동체에 무료로 DVD를 제공하기로 했다. 조건은 관람 후 나눴던 대화를 평상필름 홈페이지에 올려 소통하는 것으로 정했다.
두 번의 시사회가 2008년 촛불을 든 사람들과 진행되었다. 자신의 모습이 영화에 비칠 때면 수줍은 듯 웃기도 했고, 열심히 나갔는데 영화의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단 불만도 나왔다. ‘촛불은 미래다'라고 하면서 미래가 담겨있지 않다는 비판에서부터 2009년 촛불이 나아가야할 방향과 그 속에서 스스로의 역할을 고민했다는 평도 들었다. 울산과 밀양에서 공동체 상영이 진행되었고,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DVD도 제작중이다.


영화를 만들면서 지역의 담론이 지역에서 활발하게 공유되지 못하는 현실에 안타까웠다. 지역사회 역시 이런 현실을 깨닫고 극복 방안을 모색 중인 걸로 안다. 촛불은 누가 뭐래도 현재 진행 중이고, 큰 의미에서 미래를 만들어갈 중요한 원동력이다. 지역의 촛불광장이 지역의 이야기로 채워질 때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민주주의가 출발하게 될 것이란 걸 이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크게 깨달았다. 촛불은 미래다. □


(공동체상영 신청문의: http://www.psfil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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