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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63호 이슈] 2009년 대한민국, 그들만의 ‘멋진 신세계’에서 고군분투하는 우리들에게, "Good Night and Good L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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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63호 / 2009년 7월 28일




2009년 대한민국, 그들만의 ‘멋진 신세계’에서 고군분투하는 우리들에게,
"Good Night and Good Luck!" 






나영/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팀장 curiousnyny@gmail.com
 
아침, 회의 시간에 임박해 택시를 탄 나는 뒷좌석에 앉자마자 서울시 행정 홍보가 화면 가득 흘러나오는 ‘택시TV'를 마주한다. 좁은 택시 안, 달리 눈 돌릴 곳도 마땅치 않은 뒷좌석에서 나는 ‘택시TV'를 꺼도 되는지 괜히 기사님 눈치를 살핀다. 집에 가는 길에 지하철을 타면 스크린 도어를 온통 도배한 서울시 행정 홍보를 마주해야 한다. 하지만 달리 눈 돌릴 곳이 없는 상황은 지하철 대합실 역시 마찬가지이다. 상황은 지하철 안에서도 반복된다. 지하철 내부에는 서울시 뿐 아니라 행정안전부, 법무부, 보건복지가족부, 국가정보원 등 정부 부처별 홍보물이 가득하다. 종종 새로 조성되는 ‘광화문 광장'에서는 ‘떠들지 말라'는 무대리 만화 광고판이 속을 뒤집어 놓는다. 심지어 얼마 전까지는 도로에서마저 ‘미디어 관련법 개정'에 관한 광고물을 부착한 버스들을 보아야 했다. 그리고 7월, 급기야 정부가 대박을 터뜨렸다. 배만 안 다니는, 이름만 바꾼 대운하 사업인 ‘4대강 살리기' 사업을 홍보하기 위해 그 이름도 정겨운(?) ‘대한늬우스'를 극장에서 상영하기로 한 것이다. 국민들은 이제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지경이다.
한편, TV 뉴스에서는 ‘이명박 대통령 각하께서 오늘 하신 훌륭한 일'을 보도하기 바쁘다. 용산의 철거민들은 ‘테러리스트'가 되고 쌍용 자동차의 노조원들은 ‘살인미수'의 범죄자들이 되었다. ‘PD수첩'의 김은희 작가는 사적인 이메일 내용이 검찰에 의해 만천하에 공개되었고, 단체 사무실 압수수색과 이메일 서버 압수도 수시로 자행되고 있다. 서울광장과 청계광장은 서울시 전용 광장이 되었다. 용산에서, 대한문에서, 집회가 있는 곳곳에서 이제는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 것이나 들고 사람을 가격하는 용역 깡패들과 가스총 들고 군복을 입은 아저씨들이 경찰의 역할을 대신한다.
군대에서는 이제 절대로 이명박 대통령 각하의 욕을 하면 안 된다. 영화제에서 ‘12세 관람가'로 상영되었던 영화 ‘반두비'는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로 개봉되어야 했다. 어떤 인디밴드는 공연 중에 정부를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가 공연이 돌연 중단되어야 했고 음란한 머릿속으로 무엇이든 음란하게 해석하는 꼰대 어른들은 수많은 대중가요에 ‘청소년유해매체' 딱지를 붙이기 바쁘다. 그러면서 ‘나라사랑 랩송'을 만들겠단다. 출판계 상황도 만만찮다. 국방부가 선정한 ‘불온서적'들은 이제 필독서가 되었다. 이명박 정부 1년 반, 2009년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이다.


표현할 수 없었던 ‘표현의 자유를 위한 문화행동'


2008년 5월과 6월의 광장은 차라리 행복했다. 많은 이들이 다치고 연행을 당했지만 그곳은 살아있었다. 신선한 물이 콸콸 넘쳐흐르는 계곡에서 끊임없이 뛰어오르는 물고기들처럼 사람들은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표출했다. 농담과 해학으로 공권력과 정권을 비웃고, 노래하고 춤도 췄으며 분노를 담아 소리를 내지르기도 했다. 서로를 격려하며 나누었던 수많은 물품들과 먹거리, 웃음과 눈물, 분노와 함성, 노래와 토론과 이야기가 살아있었다. 그러나 그 후 1년, 광장은 주인이 파티를 열어야 간신히 구경이나 갈 수 있는 남의 집 앞마당이 되어버렸고 사람들은 이메일조차 마음 편히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한편, 6월에 시작될 예정이었던 임시국회에서는 형식적인 100일 간의 ‘사회적 합의기간'을 보낸 ‘언론악법'을 비롯하여 통신비밀보호법, 집시법 개정(개악)안 등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게 될 각종 법안들이 무더기로 상정, 통과될 위기에 놓여 있었다.
5월 말, 그간 각자의 영역에서 대응해 왔던 문화, 인권, 정보통신 단체들은 파시즘에 가까운 이명박 정부의 표현의 자유 억압에 대응하기 위해 공동의 행동을 진행해 보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런데 누구도 예기치 못했던 상황이 발생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것이다. 지난 해 촛불집회 이후 분노를 억누르며 참고 또 참을 수밖에 없었던 수천만의 대중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자신의 상황을, 대한민국의 현 상황을 적극적으로 투영했다. 그러나 추모조차 쉽지 않았다. 2008년 6월의 폭발적이고 자유로운 표현이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완전히 봉쇄되어버린 2009년 6월,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현장에서 ‘표현의 자유'를 잃은 대한민국을 추모하며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위한 문화행동 - 굳 나잇 앤 굳 럭(*주1)'을 시작했다.


‘표현의 자유를 위한 문화행동'을 선포하는 6월 22일 기자회견 자리에는 문화연대, 미디어행동, 우리만화연대, 인권단체연석회의, 인권운동사랑방, 진보네트워크센터,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작가회의 그리고 IT연맹까지 10개 단체가 참석해서 각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표현의 자유 침해 실태를 발표했다. 대부분 이미 그간 개별적으로 보도된 바 있는 내용들이었지만 한 자리에 모여서 발표를 해보니 백서를 만들어도 될 것 같았다. 불과 1년 사이에 집회?시위에서의 탄압을 비롯하여 언론인, 네티즌,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검열과 탄압이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새삼 깨닫게 해주는 자리였다.
이후 23일부터 26일까지는 매일 저녁 본격적으로 문화행동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예정했던 문화행동을 단 하루도 평온하게 진행할 수가 없었다.
23일, ‘표현의 자유 옹호의 날'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영화제는 영화 상영을 준비하고 있는 사이에 벌어진 급작스런 경찰의 도발로 긴장 속에 시작되었다. 이 날 벌어졌던 경찰의 도발은 주최 측에 긴장을 주기 위한 의도에서 이루어진 것이 분명했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한 시민을 수십 명의 경찰이 달려들어 쫓아가더니 순식간에 병력이 대한문 앞과 정동길을 장악했던 것이다. 30여 분 간의 싸움 끝에 병력은 정리가 되었지만 이 날의 사건은 그 후 진행될 정부와 경찰의 탄압을 예고하는 신호탄과 같은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24일 새벽, ‘국민행동본부'라는 이름의 ‘우익폭력단체'가 대한문 분향소를 급습했다. 이들이 가스총을 발사하고 단 5분 만에 ‘작전'을 완수하는 동안 경찰은 이들을 얌전히 지켜보고 있었다. 오후가 되자 이번에는 구청에서 고용한 용역업체 직원들이 나타나 분향소의 물품과 잔해를 모두 철거해 갔으며 경찰은 이에 항의하는 시민들을 연행하며 공동의 작전을 수행했다. 그리고 분향소가 모두 철거된 자리에는 이내 경찰들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그날 저녁, 이명박 정부의 표현의 자유 침해 실태를 성토하는 광장토론을 진행할 예정이었던 우리는 여덟 명의 패널들이 시민들과 함께 발언자가 되는 형태의 ‘즉석 토론'을 진행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경찰들을 마주보고 앉아 마이크를 들었다. 예정되었던 토론 순서대로 패널들과 시민들이 번갈아가며 발언을 하고 고재열 기자가 마이크를 잡은 지 2분 정도가 지났을 즈음, 경찰들이 마치 썰물처럼 대한문 앞으로 몰려 들어왔다. 그 날, 늦은 밤까지 20여 명의 시민들이 연행되었다.
25일 오전 11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화를 위장한 대한문 앞에서는 수문장 교대식이 진행되었고 그 가식을 고발하기 위해 우리는 한껏 목청을 높여 전 날 자행되었던 정부와 공권력의 폭력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그 날 저녁, ‘언론 악법 저지의 날' 영화제는 평소보다 많은 수의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경찰들은 여전히 경고방송을 하면서 영화 상영 후 진행되었던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과 양승동 KBS PD의 발언을 막으려 했지만 대한문 앞에 모인 사람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26일, 마지막 행사인 문화제를 앞두고 낮부터 경찰 병력이 대한문 앞을 장악했다. 행사가 예정되어 있던 저녁 6시 무렵에는 경찰 병력이 완전히 대한문 앞을 봉쇄했고 문화제 진행은 불가능했다. 이 날 경찰 측 책임자가 우리에게 한 답변이 그야말로 가관이다.
“두 명 이상 모이면 집회다”
“하고 싶으면 당신네 집 앞마당에서 해라. 왜 굳이 남의 땅에서 하려고 하느냐”
도저히 상식 수준에서는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경찰과 더 이상의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기에 우리는 또다시 기자회견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문화제에서 노래하기 위해 준비하고 나왔던 음악인들과 페인팅 퍼포먼스를 할 예정이었던 그래피티 아티스트들, 자신의 그래픽 작품을 전시할 예정이었던 작가, 퍼포먼스를 준비한 청소년들이 모두 함께 ‘표현할 수 없는 현실'을 규탄했다.
5일 간의 ‘표현의 자유를 위한 문화행동'은 결국 그것을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억눌린 광장'과 ‘비판의 봉쇄'를 반증하게 되는 2009년 대한민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이 되었던 셈이다.


이명박 정부의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는 ‘행복을 의심하지만 않으면 전혀 불행할 일이 없는' ‘멋진' 신세계가 묘사된다. 그 세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계급이 결정되지만 신생아로 인큐베이팅 될 때부터 끊임없이 반복되는 ‘조건반사 훈련'과 ‘수면훈련'을 통해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게 된다. 주어진 계급에 따라 평생 고된 일을 반복해야 하더라도 아무도 자신의 행복을 의심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기분이 이상해지면 ‘행복해지는 약'을 먹으면 된다. 이 완벽한 세상에서 고독을 아는 사람, 예술의 아름다움을 깨달은 사람, 혼자 생각할 줄 아는 사람, 의심할 줄 아는 사람은 살아갈 수가 없다.
이명박 정부가 원하는 세상은 바로 이런 ‘멋진 신세계'가 아닐까? 1%의 권력자들과 지배계급을 제외한 99%의 사람들이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고',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세상. 그 세상을 만들기 위한 가장 첫 번째 조건이 바로 ‘생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최대한의 프로파간다를 동원해 그들의 생각을 주입하는 것이다. 검열과 통제는 그 작동을 원활하게 해주는 효과적인 장치가 된다. 그러나, 다행히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억센 검열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심'을 하고 ‘표현'을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서로의 어깨를 다독이며 다짐한다. 지난 1년 반 동안 무수히 두들겨 맞고, 잡혀가고, 감시당하며 거리에서, 인터넷 공간에서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용감히 외쳐온 우리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 우리의 그 수많은 밤들을 위해, “Good Night and Good Luck!”□


*주1: ‘굳 나잇 앤 굳 럭'은 2005년에 제작된 영화의 제목이다. 이 영화는 미 상원의원 존 메카시가 일으킨 반공 열풍으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마저 ‘빨갱이'로 몰려 체포되어 갔던 1950년대 미국에서, 이에 맞서 끝까지 자신들의 소신을 지키며 방송을 진행했던 애드워드 머로우 뉴스팀의 실화를 다루고 있다. 영화 속의 마지막 방송에서 그는 정부의 선전도구로 전락하고 있는 방송 현실을 지적하며 시청자들에게 ‘Good night and good luck'이라는 마지막 멘트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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