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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61호 현장] <지역정기상영회>와 <찾아가는 영화관>을 둘러싼 단상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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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61호 / 2009년 5월 20일

 

 

<지역정기상영회>와 <찾아가는 영화관>을 둘러싼 단상들(*1)
 
이미경(지역정기상영회 연구팀)
 
왜 영화를 상영하는가?


왜 영화를 상영하는가? 밑도 끝도 없는 질문에 황당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파리의 그랑카페 지하 인디언살롱에서 유료관객들에게 시네마토크라프를 이용하여 처음 상영을 시작하면서부터 상영의 역사는 시작하였다. 영화 역사의 본격적인 시작은 상영이라는 상업적인 거래를 통해 시작되었고, 이는 영화를 유통시킬 수 있는 근대자본주의체제라는 환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산업적 측면에서의 상영은 영화라는 상품이 특정 공간(영화관)을 통해 관객에게 보여지는 과정이다. 이 속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영화를 소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고 싶은 영화를 본다는 것은 영화를 소비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진 사람들이며, 이러한 소비과정은 경제력이 미비한 저소득층의 문화접근권을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상영을 통해 영화가 남녀노소, 계급을 불문하고 대중오락으로 부상하게 된 것은 사실이나, 상업적 제도화 과정을 통해 소득계층에 타깃이 맞춰진 문화생산물로서 상품화되면서 심각한 문화소외를 가져왔다.
이러한 현실은 국가의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의 필요성을 부각시켜 하드웨어 중심의 공적지원 정책을 시행하도록 하였으며, 최근에는 점차 소프트웨어 중심의 지원으로 전환되고 있다. 초보적인 수준이기는 하지만 소외계층에 대한 문화예술의 향유를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문화권)로 인식하면서 문화를 즐길 권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대시키고 있으며, 문화 복지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문화생활에 대한 공적지원이 다양하게 모색되고 있다.
<지역정기상영회>나 <찾아가는 영화관>은 상영을 둘러싸고 있는 질문과 현실 인식 속에서 왜 영화를 상영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그 해답이기도 하다.




<지역정기상영회>와 <찾아가는 영화관>의 의미


<지역정기상영회>와 <찾아가는 영화관>은 3기 영화진흥위원회가 진행한 ‘다양성영화(*2) 활성화를 위한 넥스트플러스 시네마네트워크사업'이라는 틀 속에서 크게 ① 지역 간 영상문화 격차 해소 ② 소외계층의 영화관람 권리의 증진 ③ 다양한 영화의 상영기회 확대라는 목적을 가지고 진행되었다.


<지역정기상영회>는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영화운동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정기상영회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영화진흥위원회가 지원한 공공상영관 네트워크 운영지원 사업(*3)의 일부로 진행되었다. 지역의 열악한 영화 문화 현실 속에서 주류 극장이 아닌 대안적인 상영공간을 구축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관객층을 발굴함으로써 지역의 영화문화를 보다 풍부하게 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에 대해 영화진흥위원회가 처음으로 지원한 사례이다. 2007년에는 12개 지역 14개 단체를 지원한데 이어 2008년에는 15개 지역 16단체로 그 지원의 폭이 확대되었다.
각 상영회는 지역의 현황과 특성에 맞는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었으나, 이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화두는 상영을 통한 지역 커뮤니티의 복원이었다. 지역정기상영회가 지향하는 커뮤니티의 복원은 영화를 통해 지역민들이 소통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함으로써 지역 공동체를 재구성하고, 다양한 문화 활동 및 문화 향유의 토대를 구축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는 매우 다양한 층위에서 이루어졌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주거공간인 아파트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상영회가 이루어지기도 하였고, 경제 불황으로 슬럼화 되고 있는 구도심의 빈 점포를 토대로 지역공동체들이 협력하여 상영회를 이끌어내기도 하였으며, 도시와 농촌 지역의 문화적 연계를 이끌어내기 위해 농촌체험 프로그램과 연계한 상영회도 진행되었다. 장애인, 폭력피해여성, 이주여성, 성소수자 등 소외계층을 위한 맞춤형 상영회도 진행되어 기존의 지역정기상영회를 통해서 충족되지 못한 부분을 채워주기도 하였다. 지역정기상영회를 통해 타인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으며,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었으며, 영화문화 향유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다양한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소외계층(*4)의 영화 관람권 보장, 지역 영상문화의 격차 해소를 위해 진행된 <찾아가는 영화관>은 전주, 인천, 제주, 대전, 진주 등 5개 지역에서 이루어졌다. 주로 지역아동센터, 마을어린이도서관, 노인회관 등을 직접 찾아가 영화를 상영하고, 관련 부대프로그램을 진행함으로써 지역민들에게 영화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함과 동시에 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였다. 전주와 인천의 경우 ‘지역아동센터'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도시 저소득계층 어린이들의 복지에 최우선적 목적이 있는 지역아동센터에서 상영회 및 교육을 진행함으로써 계층 간, 지역 간 문화향유의 불균형을 해소하고자 하였다. 마을어린이도서관을 중심으로 진행한 대전은 도서관을 중심으로 형성된 주민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지역 풀뿌리자치운동과 상영회를 결합함으로써 긍정적인 상생의 힘을 획득할 수 있었다. 농촌의 소규모 학교를 대상으로 상영회를 진행한 인천과 진주는 지역적 특성을 잘 활용한 영상교육을 통해 영화의 문화적 가치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 속에서 ‘영화해설사'라는 새로운 방식도 도출해낼 수 있었고, 상영주체들 간 네트워크의 가능성도 엿볼 수 있었다.


<지역정기상영회>와 <찾아가는 영화관>은 ‘넥스트플러스 시네마네트워크'라는 큰 프레임 하에서 지역 공동체에 문화와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진행된 사업이다. ‘넥스트플러스 시네마네트워크'는 다양성 영화의 상영기회 확대와 관람권 보장, 다양한 상영인력의 발굴, 지역 영상문화격차 해소, 영화 관객 개발이라는 목표 하에 진행되었다. 상영 공간뿐만 아니라 상영주체를 포함하는 인적, 물적 자원의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체계화시키기 위한 정책적 허브로서의 역할을 자처했던 것이다. <지역정기상영회>와 <찾아가는 영화관>이 진행된 지역들은 대부분 문화소외지역이다. 사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역이 상대적으로 문화소외지역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지역의 구성원들은 영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체험을 향유하지 못하고 있다. 이 두 사업은 그들에게 최소한의 문화향유권을 제공하려는 움직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업을 통해서 우리는 지역 간 영상문화 격차 해소를 통한 영상문화의 공공성 강화, 소외계층의 영화 관람 권리 증진을 통한 문화복지의 획득, 다양한 영화의 상영기회 확대 및 영화문화의 다양성 증진이라는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더불어 지역 공동체에 영화보기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했다.






무엇이 더 필요할까


<지역정기상영회>와 <찾아가는 영화관>을 통해 우리는 문화권, 문화향수, 영화관람권, 지역, 공동체, 네트워크 등 다양한 키워드들을 떠올렸다. 이러한 키워드들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앞으로 더욱 확대해 나가기 위해서 무엇이 더 필요할까.
우선 정책 프레임의 재설정과 지원이 필요하다. 최근 한국영화 침체 상황을 빗대어 ‘뛰는 관객, 걷는 제작, 기는 지원'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관객의 역동적인 흐름을 제작환경이 못 따라가고, 지원은 아예 저 멀리 뒤에서 헛발질을 하고 있는 상황을 빗대어 한 이야기지만 의미심장하다. 지역정기상영회와 찾아가는 영화관은 문화복지적인 측면에서 시장이 포괄하지 못하는 관객층에 대한 관심과 조명이라 할 수 있다. 자생적인 영화 상영활동으로서 두 사업은 영화가 줄 수 있는 다양한 정서와 유대, 공동체의 활력을 제공함과 동시에 관객층 저변을 확대할 수 있는 기본적인 활동이라 할 수 있다. 관객의 재발견을 위한 정책수립이 필요한 것이다.
관객 재발견을 위해서는 다양한 지역상영 사업모델의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2002년 미디액트를 시작으로 전국 각 지역에 세워진 지역영상미디어센터는 지역정기상영회 및 찾아가는 영화관과 함께 공동체상영의 중요한 거점이라 할 수 있다. 자체 공간을 활용하여 상영회를 진행하거나, 특정 공동체를 대상으로 한 찾아가는 영화관을 진행하는 주체가 될 수 있으며, 지역에서 상영운동을 전개하는 다양한 주체들을 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도 있다. 또한 미디어센터 내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활동들을 상영운동과 연계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상영 뿐만 아니라 영상제작교육, 미디어교육 등을 연계함으로써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영상/미디어를 생산해 내는 생산자의 입장을 경험하고, 영상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영화를 보다 폭넓게 사고하고,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지역에 있는 다양한 자원들을 동원하고 네트워킹하는 작업이 미디어센터를 중심으로 이루어짐으로써 지역정기상영회, 찾아가는 영화관을 비롯하여 그 외 다양한 상영모델들을 개발하는데 그 바탕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단상들


지역정기상영회와 찾아가는 영화관은 지역에서 상영활동을 하는 단체들과 센터들 사이의 네트워크 구축을 기본 전제로 한다. 지속적인 활동 속에서도 여전히 그 구심점이 취약하다는 것은 현재의 상영활동 및 상영운동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공동체상영운동네트워크의 재활성화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함께 고민하고, 실천하고, 그 성과를 공유함으로써 상영운동의 전문성을 기할 수 있는 중심이 필요한 것이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방법의 하나는 영화상영자컨퍼런스를 상영자들을 위한, 그리고 관객을 위한 축제의 장으로 기획하는 것이다. 상영 기획부터 실행까지 다양한 의견그룹들을 포괄한 기획실무팀을 구성하고, 토론주제를 모으고 조율함으로써 다양한 형태로 구성하는 것이다. 영화상영자컨퍼런스를 통해 공동체상영운동네트워크를 상영활동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고, 논의하는 일상적인 배움터로 만들어나갈 수 있으며, 나아가 지역 상영활동을 추진해나가는 중요한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정기상영회와 찾아가는 영화관은 열악한 지역상영활동에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어떤 지반으로,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떻게 흘러들어가, 어떤 결과를 낳게 될 것인가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수많은 질문과 과제를 가지고 있는 아주 무거운 즐거움이었다. 상영운동이 공적지원에 휘둘리지 않고 자생력을 확보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상영과 관련된 성과들이 한 작품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른 작품들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관객이 납득할 수 있는 독립영화의 가치는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 것인가. 지역과 지역 그리고 영화와 관객, 제작자를 잇는 네트워크는 어떻게 가능할까. 상영회의 결과들을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이어나갈 수 있는 선순환 구조는 어떻게 만들것인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토대는 무엇일까. 이 끊임없는 질문과 대답의 순환과정이 <지역정기상영회>와 <찾아가는 영화관>의 진행과정이었고, 앞으로 이어질 다양한 상영운동 및 상영활동이 해결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연결고리가 된 이번 두 사업이 4기 영화진흥위원회 출범으로 연속성을 가지지 못하고 사라지게 되었다. 지역정기상영회는 지원 2년 만에, 그리고 찾아가는 영화관은 2008년 처음 시작되자마자 끝을 맺은 것이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려는 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정확한 정책적 판단 없이 사라지게 된 점은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






(*1) 본 글은 연구보고서 『넥스트플러스 시네마네트워크 “2008 지역 정기상영회 지원 사업 및 찾아가는 영화관-지역운영 지원 사업”』의 내용을 발췌, 정리한 글임.


(*2) 2007 공공상영관네트워크 운영지원 사업 결과보고서(한국독립영화협회, 2008)에 포함되어 있는 넥스트플러스시네마네트워크 사업안에서 다양성영화의 개념 규정을 살펴보면, 다양성영화는 예술영화, 독립영화, 다큐멘터리 영화 등을 통칭한다. 이와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는 ‘작은 영화'는 제작-배급-상영 규모에 따른 개념으로 규모의 경제만 강조돼 읽혀질 수 있는 소지가 있다. 따라서 정책 생산과 진흥사업을 주관하고 있는 영화진흥위원회는 작은 영화라는 용어가 경제적 규모를 전제로 스스로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다양성 영화'라는 용어를 제안한다고 밝히고 있다.


(*3) 공공상영관네트워크 운영지원 사업은 예술영화전용관이 존재하지 않는 지역을 중심으로 다양성 영화를 상영하고자 하는 주체들 간의 네트워킹을 통하여 대안적이고 독자적인 배급망을 구축하고, 향후 상설 ? 비상설 공공상영관 및 예술영화관 건립 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한 사업이다. 이 사업은 크게 콘텐츠 지원(독립영화 공공라이브러리 지원), 인프라 지원(지역정기상영회 지원), 주체지원(교육), 네트워크(워크숍 및 기획회의), 정책(사업보고 및 토론회) 사업으로 진행되었다.


(*4) 소외 계층은 크게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로 구성된다. 사회적 약자는 저소득층, 노인, 여성, 장애인 등이고 사회적 소수자는 외국인 노동자, 성적 소수자(동성연애자, 트랜스젠더) 등으로 구분 하고 있다. 「소외계층을 위한 문화예술 지원정책」, 나도삼, 『새 정부 문화전략과 문화예술정책』(2008.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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