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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62호 인터뷰] 삶과 공간을 가꾸는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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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8. 9.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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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62호 / 2009년 6월 29일

 

 

삶과 공간을 가꾸는 사람들의 이야기
- 퍼포먼스 반지하 인터뷰 - 






인터뷰 : 장문정(액트 편집위원회) 인터뷰 정리 : 장문정, 박혜미(액트 편집위원회)
 
퍼포먼스 반지하는 2001년 <디지털 인천하우스(지역기록 및 전시)>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대안적 재개발과 마을 공간 구축작업, 대안문화교육 등을 진행해왔다. 그리고 지난 2년간의 마을 만들기 작업을 통해 인천 창영동의 마을카페 <기억과 새로움의 풍경>을 구축하고, 얼마 전 2008년의 활동들을 모아 기록한 다큐멘터리 <삶의 정주>를 완성했다.
나른한 토요일 오후, 점심식사와 앵두 한 접시까지 대접 받은 액트 편집위원은, 한껏 푸근해진 마음으로 퍼포먼스 반지하가 생각하는 공간과 기록의 의미들, 공동체적 삶의 태도를 지지하고 발견해온 이야기들을 ACT! 독자들에게 전한다.




ACT : 우선 각자 간단한 소개 부탁드려요. 지금 반지하에서 어떤 역할과 활동들을 하고 계신지, 어떻게 함께 하게 되셨는지 등.


 : 2004년도에 청소년문화공동체 품이라는 곳에서 방학 때마다 아카데미를 하는 것이 있었는데, 학교 다닐 때 거기 참여했다가 반지하를 알게 되고, 송림동 그림수필이라는 활동에 자원 활동가로 함께 하게 됐어요. 빈집에서 아이들이랑 공간 꾸미고 프로그램도 하고 동네도 돌아다니고... 그 때 연이 되어서 그 이후로 쭉 만나오고 있구요. 지금은 뭘 하고 있냐? 뭘 하고 있지?(웃음) 퇴비 만드는 것 열심히, 음식물 쓰레기도 모으고, 동네 기록도 하고 있고... 이것저것 하는데 특별히 뭔가 담당이 있는 건 아니에요. (웃음) 지금은 주로 올해 8월에 진행할 마을 전시 준비하고 있어요. 2년 터울로 활동의 주제나 과정이 조금씩 변화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래서 2001년도부터 지금까지 활동하면서 기록했던 동네 모습이나 활동사진을 모아서 국내에서 전시를 하려고 준비 중에 있어요.


잔잔 : 저는 잔잔이라고 하구요. 자원 활동을 하고 있어요. 3월 달에 홈페이지를 우연히 알게 돼서 들어갔다가 고민하는 거랑 생각하는 게 너무 비슷해서 여기 한번 와봐야겠다 하고 무작정 온 거에요. 그 때부터 지금까지 다니고 있고, 뚜렷이 하는 일은 없는데.. 그냥 다니면서 그러고 있어요. 어울리고 있어요(웃음). 그게 다에요. 누룽지 담당인가? (웃음)


정석 : 이름은 정석이라고 하구요. 저도 잔잔님과 비슷한 거 같아요. 아마 학교 다닐 때 알았으면 자원 활동을 했을 텐데, 저는 구직활동 중에 알게 되어서... 몇 군데 떨어지고 약간 상심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반지하의 책을 봤어요. 내용을 자세히 본 것은 아닌데, 뭔가 굉장히 많이 한다는 생각도 들고,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고....그러다가 알고 지내던 공부방 선생님이 반지하를 잘 알고 계신다며 함께 가보자고 해서 왔었죠. 좀 알아본다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구직활동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을 같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그렇게 지금 불타고 없어진 언덕길에 가게 됐죠. 한 밤중이었는데, 마고랑 지경은 바빠서 없고, 청소년 아이들만 있었어요. 근데 그 아이들이 저한테 막 질문을 하는 거예요. FTA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 하냐고. 그리고 어떤 일을 하고 싶냐고... 긴장해가지고, 여기 다니는 애들은 장난이 아니구나 생각했죠. (웃음) 버벅거리며 이야기 하다가 한 시간 정도 지나 마고와 지경을 만나고...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정말 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일을 시작하게 됐구요. 저는 2007년 5월부터 일을 했고, 2007년에는 마을 생활환경작업, 공공미술작업을 주로 같이 했고, 저는 그림을 잘 그리지 않아서 주로 힘쓰는 일을 많이 했어요. (웃음) 2007년은 좀 힘들었는데.... '어, 내가 지금 뭐하는 건가?' 이런 생각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 때 다른 사람들한테 어떠냐는 질문을 받으면, 한 3일은 즐겁고, 3일은 힘들어죽겠다고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그게 실제로 그 일을 열심히 하고 하는 건 좋은데, 뒤돌아서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내가 해야 하는 일을 계속 못 찾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 것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2007년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2008년에는 마을 공사를 좀 줄이고 마을 사람들을 많이 만났던 것 같아요. 할머니들과 친해지고, 그러면서 지금은 좀 안정되는 느낌이에요. 또 올해 들어서면서 재작년, 작년 경험했던 것 중 집수리에 관심이 생겼어요. 집수리를 통해서 자잘한 것들도 고칠 수 있고, 고치는 과정에서 그 앞에 텃밭을 하나 만들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앞에 의자를 놓을 수도 있고 그러면 옆 사람과 함께 할 수 있고.. 그런 의미를 포함해서 집수리에 관심이 있어요. 또 주민모임을 만들어 보려고 했다가, 그게 단번에 가기가 쉽지 않은 게 있어서 일단 재활용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것부터 출발해 보자하고 있구요. 작년 지나면서는 지역의 엄마들과 사는 이야기도 좀 하고, 거기서 같이 할 수 있는 활동도 해보자고 해서 '엄마학교'라는 걸 시작했고, 지경 선생님과 함께 같이 하고 있어요.


지경 : 호기심이 많아서 여기 저기 돌아다니기도 하고, 궁극적으로 찾았던 것은 사회하고 개인이 만나는 부분에서 내가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사회와 어떻게 관련이 되어 있을까 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거리에서 퍼포먼스를 하다가 마고를 만났죠. 정확히는 장애여성워크숍에서 만났죠. 
그런데 시작할 때도 개인의 표현과 사회는 어떻게 연관되어 있을까. 장애여성이 자신의 삶을 표현했을 때 그것이 사회적으로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보통의 사회에서 표현하는 것은 개인과 동떨어진 부분을 주제로 삼고 있어서 개인과 연결되지 않고,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작업을 하거나 표현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작업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지 않은 채 자신 안에 갇혀 있고... 마고와 저 모두 각자 그룹이 있었는데, 개인과 사회 두 가지 축으로 바라보는 부분에 대해서 그룹의 친구들도 동의가 되지 않았죠. 그 사이에서 반지하가 만들어진 게 있어요. 우리도, 여기에 있는 사람들도,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거나 아니면 자기가 생각하는 걸 표현하는 것이 1차적으로는 굉장히 중요하고 그러면 대화가 일어나잖아요. 그것 속에서 우리가 같이 할 수 있는 것, 아니면 각자가 할 수 있는 것을 같이 이야기해서 사회 안에서 그 의미를 찾아가는 것. 계속 그렇게 해오려고 했고, 지금도 그렇게 해보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 그렇게 다 만나있는 거죠. 그렇게 하는 단체가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보통은 단체의 주제를 위해서 개인의 생각을 희생시켜야 하거나, 아니면 정말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개인들이 모여서 계약, 서로의 합의에 의해서 그것이 굴러가는 경우들인 것 같아요. 두 가지를 다 챙겨가려고 하는데도 있기는 한데 많이 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만나있지 않을까....


ACT : 반지하 활동에서 공간작업이 중요하게 등장하는 것 같아요. "공간"을 재구성하거나, 발견하고 기록하고, 또 활용하고... 그리고 2007년부터는 마을 환경 작업도 시작하셨잖아요. 반지하 활동에 “공간”을 만드는 작업들이 계속 이어져 온 이유가 궁금합니다.


지경 : 하나는 우리가 계속 떠돌아다니는 것이고, 떠돌아다니고자 해서 떠돌아다닌 것이 아니지만 말이에요. 그냥 삶으로 보면 반지하라는 공간에 사무실이 있고 활동을 나가서 교육을 하고 지역 활동을 하는 것이 더 좋았던 시기가 2005년까지였죠. 그래서 그 때 반지하 사무실은 거의 공동체에 가까웠어요. 같이 살고, 먹고, 자고. 활동을 나가서 구축한 공간들은 마을 공간 전체라기보다는 빈 집, 누가 빌려준 오래된 건물, 그런 데를 고쳐 쓰다가 빈 집을 아이들이 쓸 수 있도록 하거나... 필요에 의해서 공간을 만드는 경우가 있었어요. 근데 그게 재개발로 다 밀리면서 마을 환경이라는 부분은 많이 사라지고 교육 영역이 비대해졌어요. 2005년, 교육영역이 비대해진 상태에서 2년 동안 교육을 했는데, 애들이 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삶이 바뀌는 게 아니잖아요. 마을 환경이 아이들이 다니는 일상에 관여가 되어 있는데 우리가 2층에 섬 같은 언덕길에서 교육을 한다고 해서 다 되는 부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마을 환경 작업을 시작을 했죠. 2007년, 2008년에는 정석샘이 힘들어했던 마을 환경 작업에 많은 힘을 쏟았죠.


ACT : 반지하에게 “공간 혹은 마을 환경”의 의미는 무엇인지, 또 그런 작업들을 통해 지향했던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정석 : 가까운데 있는 것을 찾아보거나 바꿔보는 작업이라서, 지금 저희 공간 같은 경우 3년째 공사를 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맨 날 바꾸기만 하나. 그런 생각도 했고. 그런데 그게 꼭 바꾸려고 한다기보다는 공간이라는 것이 생각했던 거나 같이 사용하는 것들을 그것에 맞게 계속 가꿔가거나 바꾸는 작업이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공간을 계속 보게 되는 게 있어요. 마을 작업할 때는 처음에는 마을의 환경이 좋아진다는 게 뭘까 라는 것이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욕먹을 수밖에 없잖아요. 기억나는 거 하나가 마을에서 주차장 작업을 제일 먼저 시작했어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가까우니까 가까운 데부터 하려던 게 있고. 그런데 이제 여기에 뭘 하면 좋겠나, 이 공간은 어떻게 사용되고 있나. 여러 명이 막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의견은 굉장히 다양하죠. 주민들에게 물어보면 훨씬 더 다양할 수 있고, 주차장에 차를 이용하시는 분들은 별 관심이 없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가 자연적인 것들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해서, 나무도 심고했던 것인데.... 저는 가운데에 큰 나무를 심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좋을 수 있어도 주차하는 사람들은 싫어했을 거 에요. 그래서 중요해지는 것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그 공간에 적합하면서도 우리만이 원하는 아니라, 주민들도 원하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그리고 이야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을에서 같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지향, 그런 내용들이 벽화가 되기도 하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주민들 생활이 벽화로 가기도 하고, 버려진 공간 같은 경우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고... 가게를 바꾸는 작업들도 했는데, 가게는 상업 공간이기도해서, 이해를 못 하시는 주민 분들이 많았어요. 왜 저 집은 해주고, 이 집은 안 해주냐,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었죠. 하지만, 지역의 오래된 가게는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계속 왔다 갔다 하고 이야기가 이뤄지는 공간이잖아요. 그런 것을 담아내고, 그런 것을 이야기해보려고 했던 거죠.


지경 : 공공 공간들이 있었고, 주차장이라든가, 화평공원이라든가. 공적 공간 중에서 그 공간이 버려져 있으면 사실 그것만큼 동네를 황폐하게 만드는 게 없거든요. 아무도 가꾸지 않는 공간, 사람들이 다 사적 공간에 빠져 있으면 그런 공간은 가꾸지 않거든요. 구청 소관이나 시청 소관이라고 생각을 하지... 그래서 그런 공간을 사람들이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하나 있는 것 같고, 나머지는 개인의 집이나 상점인데 그걸 개인의 공간이 아니라 길의 일부로 봤던 게 있죠. 헌데, 우리는 작업을 제안하고 진행했는데, 그 공간을 지키는 사람이 가꿀 마음이 없거나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없는 경우에는 의미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2008년 작업할 때는 그런 시선이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작업을 했어요. 지금 이 공간도 어떻게 보면 버려진 공간, 밥만 먹는 공간, 창고 공간이었는데 여기를 빌려서 마을 사랑방, 생활정보지원센터를 만들자고 생각했던 거구요. 마을 사람들이 정보에 접근이 안 되니까.. 그런데 만들다가 너무 노동을 많이 해서 마을 까페가 됐어요. (웃음) 마고가 공간에 대한 의식이 굉장히 높아요. 무조건 활동을 들어갈 때는 공간부터 구축하자는 게 대개 그런 걸 원칙을 삼고 있어서 그렇구요. 사람들이 왔으면 그 자리부터 생각하고, 환경이 구축되어야 사람들이 자리 잡을 수 있고. 9년 내내 하는 것이 컴퓨터 수리나,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 마련하는 것을 고민하는 거였어요. 마을 환경 작업은 각자에게 조금씩 의미가 다를 거예요. 초기에 계획할 때는 마을 공간이 먼저가 아니라 우리 공간이 먼저였는데, 마을 공간 프로젝트가 먼저 가면서 그게 더 커졌죠.


ACT : 활동의 공간과 생활의 공간이 함께 하는 것의 의미도 있을 것 같아요.


 : 저는 서울에서 지내다가 2007년에 이쪽으로 이사를 왔어요. 여기서는 활동하면서 같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활동의 과정에서 더 깊이 있는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지역민들 만나고, 이야기하고 동네 작업들 돕기도 하고...지금은 내가 활동하는 지역이 내가 생활하는 지역과 같다는 게 같이 가는 느낌인데, 그 이전까지는 활동하는 동네고 생활하는 지역에 대해 크게 생각해봤던 적은 없었죠. 하지만 어쨌든, 내가 여기 있든 저기 있든, 생활공간과 활동 공간이 다르든 간에 현재 머무르는 곳에서 주변에 누가 있는지 보고 얼마나 관계 맺으려 하는 시도가 있나, 뭘 심고 뭘 가꿀까, 그런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 들기도 해요.


정석 : 저는 출퇴근을 해요. 근데, 오히려 여기에서의 경험들 때문에 제가 사는 동네의 사람들 만나려고 하고 그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더 관심을 갖고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지경 : 개인의 생각의 변화가 중요한 것 같아요. 예전에 언덕길이 도원역 근처에 있었는데 그 때는 거의 살다시피 했어요. 자고, 아침에 깨어나서 일하고, 애들 오면 교육하고, 술 먹고, 또 자고.. 그러니까 사실 집이 없는 거죠. 숙소가 있지만 일주일에 한 번 샤워하러 들어가는 것 빼곤 안 들어갔으니까. 그러다 집이라는 것이 생기고, 마을에서 결혼식도 올리고, 동네 안으로 들어온 거죠. 활동을 가지고 마을 안으로 들어왔는데.. 집이 생긴 거죠. 처음에는 그런 게 있어요. 사고가 분리될 필요가 없는 거죠. 내가 생활하는 것이 활동하고자 하는 동네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잘 살고자 고민하는 것들이 결국 우리 동네를 어떻게 하면 좋아지게 하겠다는 것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서 통합적으로 갈 수가 있거든요. 하지만 어쨌거나 그 동네에서 계속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이 일하는 걸 봐주고, 같이 이야기를 한다는 게 중요한 거잖아요. 어떻게 지냈냐, 오늘 별일 없냐, 밥 드셨어요? 뭐 이런 것들이요. 별 뜻 없지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과정을 겪은 다음에는 어디에 내가 물리적으로 살고 있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음에서 관계 맺고 있는 공간이 어디냐가 더 중심인 거죠. 그런데 서울이란 공간은 그게 보통 잘 안 되잖아요. 그러고 보니, 잔잔님은 옛날에 여기서 살았어요. 그래서 궁금해요. 돌아와서 살던 공간이 없어졌고...


잔잔 : 2007년에 정석이 여기서 일을 시작했다고 하니까... 저는 그 때 필리핀 갔다가 돌아왔거든요. 여기가 95년에 철거가 됐는데, 전 그 때쯤 살았었는데... 그래서 여기 홈페이지 보고 왔을 때 동네부터 봤죠. 내가 살던 동네인데, 막 신기해하면서... 근데 그때보다 너무 다르게 바뀐 거예요. 너무 예쁘게. 살고 싶은 마음이 들게. 그 때는 안 그랬거든요. 그 때는 사람들이 다 돈 모아서 떠날 생각만 했었거든요. 너무 예쁘게, 보기 좋게 변해서 좋다고 생각했어요. 여기는 집들이 다 낮아서 하늘이 다 보이잖아요. 너무 좋다고 했지요.


ACT : 배다리, 혹은 인천 동구지역에 정착하게 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지경 : 인천 동구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죠. 처음엔 서구에 사무실이 있었어요. 근데 그 때 동구 쪽에 교육을 하러 동네에 들어갔다가 내가 옛날에 살았던 동네랑 너무 닮아서 반한 것 같아요. 청소년기는 거의 술집 골목에서 살았거든요. 술 먹은 사람들이 밤새 깽판 치는.. 그 옛날에 사람들이 그렇게 서로 알고 지내는... 그런 동네에 대한 기억이 이곳에 오니까 살아나서 여기서 한창 일을 했어요. 근데 일단은 인천 동구가 제일 못 살죠. 인천에서는 못 산다는 것이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데, 경제적으로는 가난한 거고, 사회적 부분에서 가장 억압이나 피해가 심한 지역이라는 거기도 해요. 하지만 그 안에는 많은 것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개인과 사회가 만나는 지점에서 굉장히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죠. 그러다, 송인동 재개발하면서 여기 아벨 전시장이라는 곳을 무료로 임대 받았어요. 지금은 모 단체에서 사용하고 있는 양조장 건물. 일주일에 세 번씩 애들 교육 하고, 만화 축제도 하고, 전시도 하고... 1년이 지나고 나서 사장님이 그 공간 빼신다고 해서, 교육은 계속 해야 되니까 이쪽을 알아봤는데 너무 비쌌고.. 그 때는 배다리가 맞아요. 마고가 인하대를 다닐 때 헌 책을 주로 샀던 기억과도 연관이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마고가 이쪽 공간으로 오고 싶어 했던 것도 있었죠. 개인의 삶과 연관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쪽에 못 알아봐서 도원역 앞까지 밀려났죠. 거기서 2년 동안 하고, 그런데 그곳이 지하철 역 앞이다 보니까 동네라는 생각이 거의 안 들어요. 동네 문화가 거의 없는 곳이었죠. 우리는 지역 환경이나 지역 활동, 주민들과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공간의 지리적 위치로는 조금 그런 부분이 안 되었죠. 그래서 이 쪽 동네를 교육 환경으로 답사도 하고... 딱 들어올 계기는 없었는데, 산업도로 문제로 주민대책위 만들기로 하면서 공간을 좀 본격적으로 알아본 게 있고, 이 공간이 2006년부터 계속 비어있는 것을 보다가... 결국 이곳을 얻고 공간을 만들어서 시작을 한 거예요. 근데 우리가 동네 작업을 이거 저거 해놓고 보면 배다리라는 이름으로 묶여서 자꾸 이야기되는 것이 스트레스 받는 게 있어요. 왜냐면 2006년 겨울에 애들하고 할머니 인터뷰를 했었는데, 할머니들한테 우리가 배다리 인터뷰라고 제목을 얘기하면 여긴 배다리가 아니라 창영동이야 라고 하시더라구요. 왜 그런가, 했더니 배다리는 그냥 상업거리에요. 책방들이 있는.. 창영동은 주택가인거에요.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있는 곳을 배다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보는 곳은 배다리의 역사 문화가 아니라 창영동의 마을 주민과 마을인거죠. 창영동, 금창동... 옛날에는 배다리까지 보려고 했는데, 한 쪽이 너무 이슈가 커져버리니까 살고 있는 사람들은 보지 않고 이슈를 띄우는 부분이 불편하기도 해요. 크게 띄워지는 이슈들이 실제 사람들의 생활을 배려하는 것이 아니어서 그것들이 분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거죠. 처음에 우리도 내려올 때는 배다리를 중요하게 봤고, 그래서 배다리가 역사 문화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닌데 내려와서 보니까 그것보다 더 중요하거나 의미가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모습이 보이니까 역사, 문화, 지나버린 것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가는 것이 그건 좀 아니다 싶었어요. 이건 제 생각일 수 있어요. 토론해 본적이 없어서...


ACT : 어쨌든 배다리 지역에 산업도로가 놓이게 되면서 "배다리를 지키자"라는 이야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재개발이라는 이슈가 요즘 따라 더욱 지역마다 사람들을 들썩이게 하는 문제인 것 같아요. 재개발을 둘러싼 이해관계부터 지켜야하는 "마을"에 대한 시선들도 다른 것 같구요. 반지하가 생각하는 "재개발"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정석 : 재개발. 이름도 바꿔야겠다. 그 생각도 들고요. 개발이 좋은 의미였으면 재개발도 좋은 의미 였을 거고. 이름 자체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기는 한데 계속 그런 식으로 쓰고 재개발에 대한 대안, 대안 재개발, 대안 개발 이렇게 하는데... 작년에 정리하면서 같이 내부에서 토론도 하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고, 우리라는 건 가난한 사람들...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식은 집수리일 거다. 라고 생각했죠. 집수리하고 필요하면 재건축. 재건축도 재개발과 비슷해서 집수리와 다시 짓기라고 하면 어떻겠냐. 방향이랄까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근데 뭐 구체적인 건 방법이야 여러 가지일 거고 현실에서 가능한 건 별로 없죠. 제도가 지원하지도 않고... 이상적인 것은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서 경제적인 상황, 사회적인 상황, 장애, 연령, 성 등등을 다 펼쳐놓고 그럼 내가 사는 공간이, 같이 살아가는 공간이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냐, 이걸 이야기해야 하는 것 같아요. 이상적이지만 그게 재개발에 대한 가장 좋은 대안이겠죠. 그래서 결론이 나면 그걸 하나씩 찾아가구요. 실제로 그렇게 모이자 해도 아마 아무도 안 오겠지만요. (웃음)


지경 : 일단 재개발이 뜨면 이야기가 될 수 없어요. 재개발이 뜨기 전에 활동가들이 재개발 이슈에 몰려있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거기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것도 난 좀 아닌 것 같아요. 지금 있는 것이 있으면 있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재개발이 뜨면 재개발이 문제라는 이야기만 계속 하는 상황은 싸움이 될 수가 없는 거예요. 우리도 재개발에 한 번 밀려서 도심 간의 이해, 재개발 워크숍을 했는데... 일단 사람들이 재개발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자기 목적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그 목적을 다 합의를 할 수 있는 결론은 없어요. 왜냐면 그건 이기적인 문제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만일 그게 성공을 한다고 해도 그 마을은 공동체가 유지되지 않아요. 그냥 각자 목적이 있고, 누군가 희생시키고 끝나는 것뿐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마을 환경 작업이나 사람들과 계속 이야기를 하고 가치가 있는지를 이야기 하는 거죠. 그 사람이 계속 거기에 살고 싶고, 가꾸는 이유가 존중이 되어야 이 사람이 계속 거기에 살지, 이런 것들이 계속 무시당하면 떠날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있을 때 제발 잘하자. 이슈가 떴을 때 거기 몰리지 말고, 자기가 살았던 공간이든, 자기가 새롭게 현재 있는 지역이든... 현재 자기 있는 곳에 정주해라는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그 이야기를 계속 해야 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사건 중심, 안 좋은 이야기만 하는 것이 미디어적으로 보편적이잖아요. 사건 중심. 좋은 것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고. 다들 문제가 터져야 뭐가 되지, 문제가 터지기 전까지는 확인이 안 돼요.


ACT : 활동가의 결혼식부터 활동에 참여했던 모든 이들의 이야기들, 그리고 지역의 모습들까지 오래 전부터 지속적으로 기록해 오셨던 것 같은데요... 지속적으로 기록해나가는 것에 대한 의미들이 궁금해요.


 : 기록이라는 것이 종류가 많은데, 반지하 활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 주로 사진 찍는 작업들을 많이 했어요. 송림동 작업을 시작할 때, 재개발이 한참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라 빈집도 많았고...그래서 그때는 버려진 집이나, 버려진 물건, 사람들이 남기고 간 흔적들을 찍었어요. 이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라는 궁금증에서 출발해 사진을 찍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근데 이런 걸 계속 찍고 있으면... 이렇게 버려지고, 무너지고, 사람들은 떠나고 쓰레기는 쌓여있고, 이런 것들을 쫓으면서 찍어가는 작업이 그 다음 장면들은 상상이 되지 않는, 공허하고 허무하겠다는... 그래서 이런 작업이 어떤 의미일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일단 지금을 기록한다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 같고, 잊혀지는 것들이나 이건 원래 있었던 건데, 내가 잊고 있었던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 때, 그런 것들이 기록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죠. 그리고 그런 기록이 내 주변이나 지형 안에서 소통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작년 2007년도에 지경과 함께 계속 주민들 만나고 인터뷰 하고, 나는 사진 찍고 지경은 캠코더 들고 돌아다녔어요. 그리고 찍은 사진들을 전시도 하고 일하시는 장면 찍은 사진들도 직접 갖다 드리기도 했죠. 헌데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어야 될까? 그런 일상적인 기록을 계속 하겠지만, 그 이후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하는 의미 찾기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 그렇게 기록해서 자꾸 남기는 것이 뭐가 필요 있냐. 이런 얘기를 하시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근데 그게 어떻게 보면, 자기만족에 끝나지 않으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래요...


지경 : 일단은 글기록, 사진기록, 영상기록... 홈페이지...그러니까 아웃풋 되는 것은 홈페이지랑 책..전시, 상영...그런 것들이 있는데, 일단은 우리 기록방식이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기록을 하잖아요. 예를 들어 교육을 정리를 한다고 했을 때도.. 구구절절해도 상관이 없어요. 아침에는 비가 왔고, 그래서 우울했는데 누가 와서 먼저 말을 시켰고...이렇게 쓰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게 교육이든, 할머니를 만났던지 간에 어쨌거나 그 사람의 30세에 서른 번째 날을 살고 있었던 오후 두시의 만남에 대한 기록이잖아요. 그 할머니는 어떤 상황에서 그 전후의 일이 있고 그 상황에서 나를 만나서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눴거나... 교육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아이를 내가 만났을 때, 기분이 안 좋아서 만났을 때는 뭘 하라고 얘기를 많이 한다거나, 아니면 좀 더 관대할 때 만나면 훨씬 포용적이 되는... 그런 차이가 있는 것처럼 내가 성장하고 있고, 다른 사람도 성장하고 있는데, 거기서 서로가 어떠한 환경에서, 어떤 전후의 상황에서 어떻게 만났는가. 그걸 기록하는 거죠. 일단 반지하 입장에서 이야기 하자면, 그게 사회적인 기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어요. 아까 처음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것이 나만의 이야기이거나, 아니면 나를 위한 기록이 아니라, 그것이 사회적으로 소통되고 이런 기록의 방식이 굉장히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기록을 하는 것이 하나가 있는 거죠. 2002년도에는 좀 억지로 기록에 너무 치중을 하기도 했죠. 하지만 또 너무 기록을 안 하면 생각만 하다 끝나잖아요. 아니면 이것이 연속성이 안 생기잖아요. 자기 안에서의 의미가 정리되지 않거나...그리고 사회적인 것으로 이야기하는 형태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이게 그냥 그 안에서 고여 버리니까, 그래서 만드는 게 있죠. 그리고 찍거나 쓰는 행위는 어쨌거나 무언가를 물질화시켜놓는다는 거잖아요. 자기가 보는 것과 생각하는 것을 무언가 생산물로 내놓는 행위이기 때문에, 그 생산물이 출발점이 돼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요. 우린 다른 지역에 가도 그 지역을 다 기록을 해요. 근데 그게 어떻게 보면 시대의 공통적인 단편을 보는 부분이기도 하고, 그래서 주로 많이는 교육 자료로 활용이 되고, 거기에서 개인이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부분이 있고, 기록을 하면서 그런 만남이 이루어지거나, 내가 그것에 대해 사고를 계속하게 되는데 사고가 다시 남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다시 보게 되는 부분도 있고... 그 정도인 것 같아요. 근데 영상기록이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가져서라기보다도, 그냥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그것밖에 없어서 영상기록을 맡아서 했었고, 사실은 영상은 너무 상상력을 빈곤하게 만들기 때문에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방식인데... 또 어떤 부분들은 영상이 필요할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상상력을 필요로 하거나, 어떤 느낌이나 그런 것을 위해서는 이미지가 더 맞는 것 같고, 누군가의 이야기라던가 아니면 어떤 기술이라던가, 아니면 어떤 실제적인 것들은 영상으로 기록을 해두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ACT : 지역 공동체 작업이나 마을 환경작업을 해오면서, 실제적으로 그러한 기록 작업들이 하나의 미디어인 거잖아요, 그런 미디어가 지역공동체 작업에서 어떤 역할들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2007년도 사진을 제일 많이 찍었던 것 같구요. 그때는 주로 우리가 동네에서, 노인 분들이 많이 보게 됐어요. 가난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계속 일하시고, 부지런하시고, 그런 분만 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웃음) 특히 할머님들은 같이 하는 일들이 많으시고, 직접 작은 텃밭 가꾸면서 나온 야채들을 이웃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하시고, 텃밭을 가꾸는 모습이나, 소일거리를 같이 한다거나, 하는 소소한 장면들을 계속 찍었어요. 그 사진들을 실제로 할아버지들이 일하고 계시는 작업장에 액자 만들어서 걸어드리기도 하고, 집에다 갖다드리기도 하고, 가게 하시는 분들은 가게에 갖다드리기도 하구요. 그때는 언덕길이 저 위에 있을 때라서, 청소년 교육도 같이 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아이들 교육을 하면서 지역을 많이 돌아다녔거든요. 그렇게 사진 작업을 하면서 실제 그분들이 아이들한테 무언가를 일러주거나, 같이 이야기하는 장면들도 있었죠. 그런 작업이나 과정들이 지역이나 
그분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일하는 모습의 사진을 보시면, ‘아, 저거 나네.' 하시며 좋아하세요. 마늘 까는 할머님은 ‘저런 거 왜 찍었어.'라며 핀잔을 주시기도 하는데, 그게 자신에게는 굉장히 일상적인 장면이잖아요. 그런 것들을 찍어서 액자까지 해놓고, 뭐 이러는 게 내 생각에는 어색하셔서 그런 것 같아요. (웃음) 그리고 아 얘네는 이런 걸 보는구나...그런 생각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한편으로는 들구요. 자기 모습. 자기의 노동의 장면이나 이웃 간의 나눔이나 이런 것들이... 저는 할머님들이 그런 것들을 중요하게 여기고 계신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걸 우리가 보고 있다는 것을 아시는 것 같아요. 그게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지경 : 예전에는 사진을 찍거나 카메라를 들이댔을 때,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셔서인지..‘왜 찍냐.' 아니면...뭐 ‘이런 게 뭐가 중요하다고... 늬들도 나가서 돈벌지...'(웃음)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지금은 이런 얘기들이 많이 없어졌어요. 만화벽화 같은 건 보통 동네 기록 사진을 기본으로 해요. 다른 곳을 이야기하는 벽화가 아니라, 주민 분들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죠. 그래서인지 와서 사람들도 많이 묻고... 설명해주시는 분도 신나고, 자랑도 되고.. 그러니까 확인이 안 되던 것이 확인이 되는 것들이 있어서 더 열심히 하시죠...그런데 그게 여기만 그런 게 아니라, 옆 동네도 그렇더라구요. 며칠 전에 돌아다녀봤는데, 옆 동네도 훨씬 예뻐졌더라구요. 사람들이 더 많이 가꾸는 것 같아요. 집도 막 고치시고, 훨씬 풍성해진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그게 번지는 거라서...



ACT : 보통 미디어 교육을 통해서 미디어로 자기표현, 자기 목소리 내기 부분이 많이 부각되잖아요. 반지하도 예전에는 미디어 교육을 했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이번 마을환경 만들기 작업에서는 그런 부분들이 많이 줄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경 : 마지막에 미디어교육을 접었다가, 지금은 다시 시작했어요. 2006년에 아이들이랑 이 동네 할머니들을 인터뷰하고 했던 적이 있었어요. 근데 그게 결국엔 제 욕심이더라구요. 그냥 제가 궁금한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고, 내가 궁금한 것을 아이들과 같이 하고자 하고 있어서 애들도 버겁고...그리고 그게 결과적으로는 아이들이 공동체가 구성이 안 되는 것을 보면서, 교육이 너무 중심으로 가거나 매체가 디지털 미디어로 집중되었을 때, 안 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겨울에 다 접고 아날로그...필름 카메라로 했는데, 그때는 좀 다르더라구요. 돈은 많이 들긴 하는데, 애들이 집중도 잘 하고 쉽게 대하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아무튼 굉장히 진지하더라구요. 그래서 그 때 그렇게 하고 나서, 생활교육으로 아주 전환을 했죠. 철학하고, 생활하고, 지역사회, 그리고 노동...이렇게 교육을 하는데, 미디어로 기록을 하는 건, 어느 과목에나 다 들어가죠. 그런데 그것이 이야기를 나누는 수단으로 활용이 될 뿐이었죠. 사실은 나 자신도 성장을 해야 하니까, 막 배우러 동네를 돌아다니고, 얘기도 같이 하고... 미디어가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좀 전환되는 것 같아요. 일단은 미디어물이 중심이 아니라, 미디어 작업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 계속 지켜보기를 하고... 물어보고 대답하고...그 과정이 사실은 더 중심이었죠. 아무튼 지난 일 년 동안 영상이랑 사진은 그렇게 했는데, 올해는...좀 다르게 해야 할 것 같아요. 우리끼리만 하는 것은 역시나 재미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시 교육을 할 생각이에요.


정석 : 도시 농업, 텃밭 이야기 마당을 진행하면서, 주민 분들께 보여드린 영상이 있었어요. 저 쪽 길 따라서 계속 일하시는 모습을 짧게 편집해서...여기서도 텃밭이고...저기도 텃밭이고 그래서...다들 재미있게 보시고, 다음에 이제 텃밭 어떻게 하면 더 잘 가꿀까 얘기를 해보려고 지렁이도 갖다놓고 했는데, 한분이 ‘아, 이제는 가야되겠다. 허리가 아파서...' 그리고는 다 가시는 거예요. 그래서 약간 허탈해 하다가, 나중에 다른 지역 공부방 선생님들이랑 저 쪽 동네 사셨던 분들이 오셔서 영상을 다시 보고, 사진 찍으려고 올라가는 길이었는데...마늘 할머니가...“또 찍어, 이번에는 내가 찍을 거야”하시면서 받아서 우리를 찍어주셨거든요. 그게 전 기억에 많이 남네요.


ACT : 얼마 전 “삶의 정주”라는 다큐멘터리가 완성되고 상영회도 진행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경 : 2007년도 활동으로 완성한 다큐멘터리가 따로 있고, 2008년을 기록한 작품이 “삶의 정주”에요. 그리고 얼마 전에 다큐에 나오셨던 주민 분들과는 상영회를 진행했어요. 그때 나왔던 반응이, 아 저 때 우리 저거 했었지. 였죠. 한 시간 오십 삼분인데, 끝까지 봐주셨다는 것이 경이롭구요...(웃음)


 : 그래도 다 보시더라구요. 다리 아프시다고 중간에 나가셨다가...(웃음)


지경 : 의자에 계속 앉아계시면 피가 몰려서 다리가 저리시니까...나갔다가 다시 오시고...어쨌든 신뢰는 어느 정도 형성이 되어 있어서...신뢰를 형성하지 못한 분들은 안 오시는 것 같아요. .자신이 나오면 씩 웃으시고. 언제 나오나 기다리시기도 하고..(웃음) 근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 더 열심히 보시는 것 같더라구요. 동네에 슈퍼 할머니가 하는 얘기가 TV에 자기가 나오는 것 보다, 자기가 아는 사람이 나 오는 게 너무 좋다고...(웃음) 그게 더 재미있다고...


정석 : 가게는 닫고 있었어요?


지경 : 할아버지에게 맡기셨더라고...(웃음)


결 : 원래 한 시간인가 보시다가 가게 보러가야 한다고 가셨었는데, 할아버지가 끝까지 보고 오라고...그랬다고 다시 오셨어요. (웃음)


지경 : 그 할머니가 거의 365일 그 가게에 묶여계시는 분이세요. 그 앞에서 사람들이 계속 술 먹지...인생의 낙이 없으신 분이었어요.


ACT : 마지막 질문입니다. 활동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과 힘들었던 것이나, 지역 공동체에 대해 관심을 갖고 활동하려고 하는 다른 분들에게 해줄 말씀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릴게요.


정석 : ‘가장‘자가 들어가면 어떻게 얘기해야할지 모르겠어요.(웃음)


잔잔 : 가장 좋은 것은 밥을 같이 먹는 것.(웃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나보고 스토리텔링을 쓰라고 하는 것이요.(웃음)


정석 : 아, 내가 하려고 했던 건데...(웃음)


지경 : 밥만 먹고...(웃음)


정석 : 좋은 것은 출근길? 저는 출퇴근하니까....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할머님들 보면 인사하고, 제가 아이가 생긴 다음부터는 할머님들이 애기 걱정을 계속 해주세요. 그래서 애기 이야기하고...그런 것들...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하고 생활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어떻게 사시는지 까지는 아니더라도, 뭐하시는지 물어보는 거...그런 게 좋은 것 같구요. 그 다음에 힘든 건...저도 스토리텔링 힘들어요...(웃음)


지경 : 이게 조직의 현실인가봐요...(웃음)


정석 : 그러니까, 아무래도 제일 힘들었던 거는...아까도 얘기했지만, 내가 할 수 있거나 해야 되는 것이 뭔지...에 대한 고민들...? 좋은 활동이나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더라도, 내가 어떻게 가고 있는지가 확인이 안 되면, 끌려가고 있는 같은 기분이랄까....그냥 흐름에 따라 흘러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는 되게 힘들었던 것 같구요. 근데 한편에서는 그렇게 힘들어야지 안 그러면 뭔지 모르고 그냥 흘러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사람과의 관계가 가장 힘들어지는 것도 그런 것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 워낙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뭐랄까 관계를 중심으로 얘기를 하다보면 좀 어려운 게 있잖아요. 해결이 안 되는 것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자세한 그런 것 보다는 지금에서 잘 만나는 게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계속 서로가 또 변화하고 있고..


 : 정석 샘이랑 비슷했던 것 같기도 한데... 좋았던 것도 관계고, 힘들었던 것도 관계인 것 같아요. 여기서 딱 끝내면 뭐라 하겠다..(웃음) 좋았던 건 뭐...잔잔님이 얘기했던 것처럼 같이 밥 먹는 것도 있고, 그게 그냥 밥 먹는다는 행위 자체보다 같이 모인 사람들이랑 생활적인 얘기든, 어떤 다른 얘기든,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계속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아요. 어쨌든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함께 한다는 것이 활동하면서 되게 좋았던 것 같구요. 또 어려웠던 것은 어쨌든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소통하고 얘기하고 그래야 하잖아요. 그렇지 않으면 같이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런 게 또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외면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여러 가지를 생각해야 하는 것 같아요. 여기 활동하시는 분들이 나이도 다양하고, 삶의 경험도 다르고, 그런 것들을 같이 생각해야지, 내가 그냥 한 단면만 보고 이렇게 얘기를 나눈다거나, 그런 게 다는 아니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활동 과정 안에서 얘기가 많아지면서 몰랐던 것들을 알아가는 것도 있는 것 같고...그런 부분이 되게 어렵구나...


지경 : 지금은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론내리는 것이 익숙한 세대인 것 같아요. 나도 그렇고 모두가 그렇고 굳이 얘기를 해야 하거나, 나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나눠야 한다고 생각을 하기 전에 자기가 먼저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고민에 빠지는...나는 그게 제일 힘든 것 같아요....그러니까 눈앞에 같이 있는 것들이 무시되는 것이 가장 힘들고...그게 우리 안에서 문제가 된다기 보다는 지역 안에서 더 그렇죠. 그리고 사람들도 눈앞에 있을 땐 우습게 여기는 것이 있어요. 사실 지역이 지역 공동체라고 얘기할 수 없는 것은 지역 안에서든, 지역 밖에서든, 지향이 비슷하거나 생각이 맞는 사람들끼리 만나지는 것이지, 그게 지역 안에서 사람들이 지향이 같아지거나, 아니면 그런 걸 맞춰가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은 사실상 가능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나는 아랫집 사람하고는 얘기를 잘 안하는데 저 쪽에 사는 할머니들하고는 가끔 만나서 얘기를 한다거나, 아니면 연수동에 사는 잔잔과는 참 많은 얘기를 나눈다거나... 물론 만나는 시간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생각이 교류되고 소통될 수는 있겠지만, 만나지는 것 자체가 우리는 일차적으로 걸러지는 거잖아요. (웃음) 지역 공동체다 아니다...공동체에 대한 논의가 다른 곳에서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별로 복잡하지 않는 것은 눈앞에서 인사하고, 그냥 눈앞에 있을 때, 눈앞에 있는 것 가지고 대화하고 눈앞에 있는 것을 가지고 질문하고, 아니면 대답하고....그런 관계가 쌓여서 아, 이 사람에게는 뭐가 필요하겠구나, 아니면, 아 이거는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미디어 활동은 이렇게 하면 되고, 아니면 무엇이 여기는 필요하겠구나...이 생각들이 생겨서 그게 생산이 되고, 그게 이제 지역 활동이 되고,,, 그런 것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나쁜 건 그런 거죠. 밖에서 되게 잘 되었던 것. 아니면 밖에서 들어온 유명한 사람에게 기대는 그런 문화 같은 것 있잖아요. 그리고 그 밑에서 일을 하는 그 구조에 섞여있는 것이 되게 괴로운 것 같아요. 그러니까 지금은 그런 구조에 섞여있지 않은데요. 예전엔 그런 것들을 같이 하면서...결국 이건 지향이 다른 거구나... 결국엔 하는 얘기가 다른 건데, 그걸 자꾸 섞으려고 하는 것도 힘들고, 섞여서 결국엔 이득을 보자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냥 각자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사람들은 하지는 않고 말은 많으면서 온갖 이론들은 만들어내고, 자기들은 몸으로 안하거든요. 그리고 어딘가에 유명한 게 뜨면 그리로 다들 달려가죠. 그건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지향이 다른 거예요. 즐거운 거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만났을 때 즐거운 거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서로가 확인이 되거든요. 그러면 좀 살맛이 나죠.




인터뷰를 끝내고 기찻길을 따라 역으로 가는 길, 헌책방 
사장님과 친구 분이 낮술에 기분 좋게 취하셔서는 사진을 한 장 찍어 달라며 부르셨다. 토요일의 한가로운 햇살 때문인지, 그날의 기분 좋은 낮술 덕을 본 건지, 사장님 한 장 찍어드리고 엉거주춤 같이 어깨동무하며 또 한 장 찍고, 아드님, 따님 얘기에, 사진 이야기까지 줄줄 풀어놓다 돌아서는데, 아, 반지하가 창영동에 머물며 만들어 온 마을의 문화가 이런 거구나 싶었다. 처음 보는 누군가와 스스럼없이 일상의 이야기를 건네며, 서로를 알아가는 삶의 소소한 문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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