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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62호 길라잡이] 어떤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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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8. 9.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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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62호 / 2009년 6월 29일

 

 

어떤 죽음 




김윤진 (ACT! 편집위원회)
 
1.
얼마 전 이란의 집회현장에서 스물일곱 대학생인 네다의 죽음이 있었다. 네다의 약혼자가 죽기 전날 집회에 참가하지 말라고 말렸지만, 네다는 심장에 총알이 들어와도 참여하는 게 더 가치 있다 말했다고 한다. 어떤 가치는 죽음을 넘어서기도 한다. 개인의 의지와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 그건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는데 있어 필수적인 조건 중 하나다. 그 의지가 꺾이지 않기 위해 누군가들은 목숨까지 걸어야 했다.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하지만 표현의 자유가 상실된 그 시점에서부터 이미 어떤 죽음들은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2.
며칠 전 MBC 구성작가협의회 게시판에 PD수첩의 김은희 작가 글이 올라왔다. PD수첩 수사와 관련해 검찰이 김은희 작가의 개인 이메일을 공개한 것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쓴 글이었다. 글은 “내 손끝이 만들어낸 사소한 문장들이 악의와 음모를 가진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면 나를 찌르는 섬뜩한 흉기가 될 수도 있음을 알았다”며, “글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말, 이제 나는 믿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의 말대로 ‘지극히 사적인 언어로 쓴 단 한 사람이게만 읽도록 허락한 글들’이 공개되는 순간, ‘해명하고 설명해야 하는 글들’이 되어 돌아왔다. 게시판에 올라온 그 글의 제목은 <나의 죽음을 기억함>이었다.




3.
두 가지의 죽음은 결국 하나의 이야기로 수렴된다. 표현의 죽음, 그리하여, 정치-사회적 개인들의 죽음. 네다의 죽음 이전, 이미 집회를 힘으로 막겠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 이란의 개인들은 정치적 죽음을 맞은 것과 다름없었다. 또 한 사람에게만 읽도록 허락한 글들이 공개되어 해명되고 설명되어야 할 필요가 생기는 순간, 개인의 사회적 죽음은 시작된다.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 17조, 통신 비밀을 보호하는 헌법 18조가 존재하는 이유다. 침해 받지 않을 사적 공간에 대한 존중은, 개인에게 있어 최소한의 권리다. 때문에, 개인의 의지와 의사가 보호 받지 못하는 순간, 어떤 죽음들은 우리에게로 온다.
13회 인권영화제가 <표현의死>라는 이름으로 시작했고 얼마 전 끝이 났다. 하지만 인권영화제의 인권감수성으로만 표현의 죽음을 감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미 우리는 크고 작은 표현의 죽음을 목격하고 있다. 광장의 작은 촛불 하나에서부터, 불온서적과 시국선언에 대한 정치적 탄압, 그리고 용산의 위로 받지 못하고 있는 죽음들까지. 광장에서의 탄압은 이란의 경우가 낯설지 않도록 만들었다. 김은희 작가의 경우는 미네르바 사건의 반복이기도 하다. 이번 호에 소개될 방통심의위에 관한 원고나 독립영화 법제화, 방통위 미디어교육 지원사업 원고 등도 그런 ‘어떤 죽음’들을 얘기하고 있다. 결국, 경도 100도의 지리적 거리를 넘어 한국과 이란에서 겹쳐지는 자화상은 그렇게 닮아 있는 건지 모른다.




4.
지금 이란의 집회현장에서는 <I'm NEDA>라는 피켓들이 등장하고 있다. 네다의 죽음을 기억하기 위함일 것이다. 동시에 지금 그곳의 정치적, 사회적 개인들의 죽음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누구의 이름으로 표현의 자유를 다시 얘기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나? 혹은 당신? 아니면 어떤 죽음을 맞고 있는 것일지 모르는 우리 모두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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