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ACT! 65호 길라잡이] 영웅의 시대는 끝났다. 하지만...

이전호(78호 이전) 아카이브/길라잡이

by acteditor 2016. 1. 21. 16:29

본문

 

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65호 / 2009년 9월 30일

 

영웅의 시대는 끝났다. 하지만...
 
 
김주영(ACT! 편집위원회)

 

 

슈퍼 히어로가 등장하는 영화는 재미있다. 푹 빠져들 만한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극적인 반전이 우리를 기다리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끌어당기는 것일까? 우리 중 누구도 갖고 있지 않은 다양한 특수능력도 분명 매력적이다. 영웅들의 눈을 홀릴만한 미녀들도 하나의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 중 우리를 슈퍼히어로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절대 악당'이다. 취미로 세계정복을 꿈꾸고 특기로 사회 혼란을 내세우는 악당들. 그들을 물리치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슈퍼 히어로의 이야기는 우리의 눈과 귀를 강하게 끌어당길 수 있다. 만약 악당들이 없었다면 거미줄을 내뿜는 스파이더맨이나 날아다니며 레이저를 쏘아대는 슈퍼맨은 TV프로그램 ‘스타킹'에나 등장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는 영웅과 악당의 구도에 너무나 익숙했다. 북한, 공산당, 빨갱이, 좌파처럼 누군가를 절대악으로 만드는 교육이 오랜 시간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그런 교육을 시켰던 독재 정권 역시 하나의 악이었다. 그런 거대한 악당들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당연히 슈퍼 히어로 급의 힘이 필요한 법. 사람들은 거대한 대비책들을 마련하고자 했다. 사회주의, 혁명, 민주화, 영웅. 우리는 견고한 이분법 속에서 자신을 선의 위치에 놓고 어떻게 하면 악을 물리칠 수 있을지 고민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영웅의 시대는 그리 길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며 견고한 이분법에 균열을 만드는 결정적인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무조건 미워할 수 있을만한 절대 초악당들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대신 절대 악당이라기에는 약하고 무엇인가 인간적이며 자주 고민에 빠지는 악당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영화 속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현실 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독재 정권은 무너졌고 공산주의는 먼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누구 하나 때려잡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시대는 끝나버렸다는 의미였다. 동시에 영웅의 시대도 끝나버렸다. 종교계의 거두와 두 전 대통령의 죽음은 그것을 알리는 신호였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제 세상을 바꾸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MB 한 명이 사라진다고 세상이 좋아질까? 혹은 수구 꼴통들이 죽는다고 우리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굳이 대답을 하자면 아니다. 세상을 바꾸고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작다고만 믿었던 힘들이 모여야 한다. 그 힘들이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내고 전체 사회에 변화를 불러일으켜야 한다. 내가 내뿜는 탄소를 줄이기 위해 자전거를 이용하고 나의 작은 권리를 찾기 위해 홀로 불매 운동에 참여해본다. 사람들의 이런 작은 변화가 바로 절대 악당이 사라진 세상에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길이다.

 

 

이번 65호 ACT!의 키워드를 꼽아보라면 작지만 강한 힘을 들고 싶다. 지금도 전국 각 지역에서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힘든 상황을 이겨내며 변화를 만들어내는 이들이 있다. 공동체 라디오를 만들어 운영하고 (「진안 마이라디오 이야기」, 「공동체 라디오 정규사업 전환 의의와 과제」) DJ로써 프로그램을 만들어본다. (「좀더 모나게 좀 더 발칙하게」) 좁은 퍼블릭 액세스의 길을 찾아 목소리를 내려는 모습들도 보인다. (「노동운동과 미디어운동의 접점을 찾아헤매다」) 거창하기만한 혁명을 표절해 내 삶에 적용시켜보자는 발칙한 상상을 하기도 한다. (「표절해서 잘 먹고 잘 살기」)

 

 

이전 시대의 세상은 영웅으로 인해 바뀌어갔지만 이제는 영웅을 바라보고 박수치던 이들에 의해 바뀌어간다.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이 “Yes, I can.”이 아니라 “Yes, we can."을 외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소통을 말하며 언제나 시끌벅적한 인터넷과 작지만 뜨거웠던 촛불의 기억은 그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작은 증거다. 영웅이 사라졌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이미 새로운 스핀 오프 블록버스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작은 힘을 모아 영웅보다 큰 힘을 만드는 이야기, ‘Power of citizen'을 기대해보자. To be continued.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