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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68호 길라잡이] 우리를 술푸게 하는 세상은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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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1. 21.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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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68호 / 2009년 12월 30일

 



우리를 술푸게 하는 세상은 가라!
 
김지현 (ACT! 편집위원회)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는 영화가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이런 말까지는 감히 바라지도 않지만, 올 한 해를 돌아보면 정말 이보다 더 나쁠 수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 사람들이 뭐라 하든 그 어떤 사회적 비판과 저항에도 아랑곳없이 우리 사회를 거꾸로 되돌리려는 행보는 작년에 이어 올 한 해도 거침없이 이어졌다.

 


시작부터 버거웠다. 2008년의 시작을 남대문 방화 사건이 알렸던 것처럼, 2009년 초에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망루에 올랐던 철거민들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가 일어났다. 그리고 눈먼 개발과 폭력 진압이 부른 이 끔찍한 참사 앞에서 이 나라는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이 모두가 철거민들의 잘못이라며 유죄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응답했다.

 


이후의 나날들도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기막힌 일들의 연속이었다. 낙하산 인사가 판을 치고, 경찰의 폭력이 난무했으며, 미네르바는 구속되었다. 수많은 공공 기관들이 표적 감사와 강제 해임에 시달려야 했고, 시민사회단체들은 촛불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불법-폭력 단체로 규정되어 공익사업비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했다.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보도를 한 언론인이나 방송 프로그램들은 체포되거나 폐지, 해임되었고, 서울광장과 청계광장은 서울시의 전용 마당이 되었으며, 방송은 물론, 지하철, 버스, 극장, 광고판 등 눈길이 닿는 모든 곳에서 정부의 정책을 홍보하는 광고물이 넘쳐흘렀다.

 


그리고 61년만의 우주쇼라는 일식과 함께, 국내외 거대 자본과 보수 언론에게 방송의 문을 활짝 열어주자는 미디어 악법이 국회쇼와 함께 통과되었다. 법 제정과정에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여당과 방송통신위원회는 이 법안의 통과를 기정사실화하며 재논의를 거부하고 있고, 4대강을 죽이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은 2010년 예산 심의가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세상이 어두울수록 술을 찾는 사람들의 손길도 바빠진다. 하지만 그 술은 술 마시는 것밖에는 이 답답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마시는 도피와 무기력의 술이다. 이렇게 마시는 술은 잠깐 동안의 위안과 망각은 줄지언정 진정한 해결책은 주지 못한다. 오히려 술이 깨고 나면 더욱 쓰린 속과 띵한 머리로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현실을 마주해야할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ACT!는 이런 때일수록, 올 한 해 일어난 일들을 잊지 말고 더욱 뚜렷이 기억하고 냉철하게 돌아볼 것을 제안한다. 이를 위해 먼저 2년간의 실험을 끝으로 안타깝게 운영 주체가 바뀌게 된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의 활동을 돌아보고자 한다. 충분한 실험과 성과를 가늠하기엔 2년이라는 시간이 다소 짧은 기간일지도 모르지만, 그동안 인디스페이스라는 공간을 통해 만나고 관계를 맺고 교감을 나누며 의미를 만들어나갔던 다양한 주체들을 통해 인디스페이스의 성과와 과제를 돌아보는 작업은 2년으로 끝나지 않을 앞으로의 활동에 소중한 밑거름이 되어줄 것이다.

 


ACT!는 또한 올해를 갈무리하며 중요하게 돌아보아야할 주제들을 찾기 위해 미디어 가까이에서 일하고 즐기고 숨 쉬는 분들 중 70여분을 대상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2009년 미디어 관련 5대 뉴스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조사 결과, 예상대로 우울한 소식들이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분명 올해에도 새로운 희망의 싹들은 피어나고 있었다. 익산 미디어센터의 개관, [워낭소리], [똥파리] 등 독립영화의 약진, 새로운 전미네 사무국 활동가들의 충원, 인디플러그의 설립 등은 우리를 온통 우울하고 절망하게 만든 소식들 사이에서 잠시나마 미소를 짓게 만드는 소식들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이번 설문조사 결과에서 일일이 다뤄지진 않았지만 각자의 현장에서 묵묵히 활동하고 있는 여러분들의 활동 자체가 바로 희망이다.

 


연말 송년회로 여기저기 술자리가 많다. 내년 연말에는 부디 무기력하고 답답한 현실을 잊기 위해 마시는 씁쓸한 술이 아니라, 1년 동안 부지런히 벌여온 서로의 활동을 격려하고 지지, 응원하기 위해 마시는 축하와 격려의 술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를 술만 푸게 하는 세상은 가라. 그리고 다시 한 번 힘을 내고 꿈을 꾸며 흥겹게 활동하게 만들 세상이여, 어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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