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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64호 이슈] 내 안의 MB : 상상력에 자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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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64호 / 2009년 8월 29일

 

내 안의 MB
: 상상력에 자유를!

 
 
고승욱(미술인)

 

 

 

 

[편집자주] 2009년 7월 15일 서울 정동 프란체스코 교육회관에서는 영화, 미술, 대중음악, 예술대학 등 각 분야의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현 정부의 문화행정 파행실태를 규탄하고 문화행정 정상화와 예술 자율성 회복을 위한 문화예술인들의 생각과 힘을 모으는 공개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상상력에 자유를!”이란 제목으로 열린 이번 토론회에서는 문화예술인들의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상상력을 억압하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을 벌이는 현 정부의 문화행정 파행 실태에 대한 비판으로 열기가 매우 뜨거웠습니다. 당일 어느 토론자의 말처럼 각 분야의 예술인들이 이렇게 거국적으로 모이려는 시도는 오랜 만의 일이며 이러한 시도 자체가 바로 현실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첨부된 토론회 발제 전문을 통해, 문화예술 각 영역별 상황들을 확인하실 수 있으며, 토론회 발제자 고승욱씨(미술인)의 글을 통해 현 정부가 진행해온 문화행정 파행의 흐름을 짚어봅니다. 

 

 

 

 

 

MB정부의 성격을 요약해보면 안하무인, 후안무치, 적반하장... 이는 이미 예상한 바이지만, 정작 우리를 절망케 하는 것은 그 상스러움의 끝을 헤아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취임 이후 유인촌 장관이 보여준 행보는 가히 압권이다. 그가 보여준 것은 문화예술 정책책임자의 모습이 아니라 특수임무수행을 위해 투입된 해결사의 모습이었다. 유인촌 장관 취임 이후 날아간 기관장의 목은 열손가락으로 헤아리기 어려우며, 540개가 넘는 문화예술기관, 단체의 2009년도 업무를 마비시키고 있는 집중감사는 단군 이래 최대, 최장을 기록하고 있다. 좌파적출을 빌미로 휘두르고 있는 망나니 칼춤으로 지난 10년 간 어렵게 쌓아온 문화예술계의 독립성과 자율성 그리고 그 성과는 물거품이 되고 있으며, 꽉 움켜쥐었던 민주주의는 어느덧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고 있다.

 

 

유인촌 장관은 어느 인터뷰에서 MB와 닮고 싶다는 소회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유인촌 장관이 모르는 한 가지. 그는 이미 MB라는 사실이다. 전임기관장 숙청이라는 특수임무를 수행한 이후 유인촌 장관이 내놓은 정책들은 한 결 같이 대규모 정책들이다. 공연계 대학로종합센터, 음악계 그래미상, 미술계 터너상 등 등. 유인촌 장관의 문화정책은 장르 불문하고 ‘큰 거 한방'인 것이다. 이것은 MB의 대운하, 4대강 사업의 논리와 똑같다. 대형 스펙터클에 정신을 잃은 사이 짙은 그림자가 곳곳에 드리워진다. 4대강 사업으로 제일 먼저 타격을 받는 것은 복지예산, 교육예산 등 사회취약층에 대한 지원 정책이다. 한국판 그래미상?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나? 스펙터클, 블록버스터에 때깔을 입히려면 뉘 집 곡간이 축나겠는가? 인디밴드 지원 취소, 독립영화제 지원 취소, 대안공간 지원 취소, 문화소외지역 지원 취소, 외국인노동자 지원 취소. 이를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를 금융위기로 몰아넣었건 말건, 굴곡진 한국사회에 대한 세밀한 검토 없이 무조건 파이를 키우겠다는 스펙터클한 발상. 파이만 크게 만들면 시장은 알아서 조화를 이룰 것이라는 스펙터클한 낙관. 작은 정부 실현을 위해 휘두르고 있는 큰 정부의 스펙터클한 폭력. 문화계에서 무슨 폭력이라도? 스펙터클의 폭력을 따지기 전에 ‘빅파이'의 허구성을 짚고 넘어가자. 먼저 파이를 키우고 분배는 나중에 하자는 선성장론이다. 박정희 정권 때와 다르지 않다. 70년대 박봉의 노동자에게 무어라 했던가? 자식을 위해 허리끈을 졸라 메자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30년이 지난 오늘 그 자식들은 누구인가? 한국 노동인구의 2/3에 육박하고 있는 비정규직 아니던가? 앞으로 얼마나 더 속아야 하는가? 물론 파이를 키우면 각 자의 몫이 커진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분배다. 누가 공정한 분배를 보장할 것인가? 합의된 법조차도 망신당하는 판국에... ‘빅파이'의 허구성은 시간이 흘러야만 확인되는 것이다. 우리가 땅을 치며 후회할 때 쯤, 챙길 거 다 챙긴 빅파이 전도사는 짧은 유감표명과 함께 표표히 퇴장하면 그만이다.

 

 

스펙터클의 폭력은 시간성 파괴에 있다. 4대강 사업으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자연생태계의 파괴이다. 외부의 인위적 개입 없이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조성된 것이 생태계이지만, 스펙터클은 이러한 시간의 누적을 하루아침에 밀어버리고 만다. 문화예술계의 스펙터클 또한 동일한 방식으로 문화생태계를 파괴한다. 가치의 경쟁이 이루어지는 문화생태계에서 독점이란 있을 수 없다. 서로 다른 가치들 간의 끊임없는 교섭을 통해 긴 시간을 견디며 만들어진 것이 문화생태계이다. 하지만 가치의 경쟁을 돈의 경쟁으로 바꾸어 놓는 스펙터클은 시간의 누층을 밀어내고 그 위에 상업적 가치라는 쇠말뚝을 박는다. 돈이 독점적 지위를 누릴수록 문화다양성을 파괴된다. 지난 10년 동안 자유와 우정으로 만들어낸 문화적 네트워크는 이제 뿔뿔이 흩어지고, 돈의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목숨을 건 경쟁에 돌입한다. 승자는 모든 것을 독식한다. 화려한 무대. 쏟아지는 갈채. 스타는 문화예술을 지망하는 모든 이들의 유일한 모델이 된다. 스펙터클이 우리 내면의 욕망이 될 때 스펙터클은 완성된다. 지난 역사를 깨끗이 지우고 새로운 역사를 쓰고자 하는 욕망. 큰 거 한방으로 모든 것을 만회하고자 하는 욕망. MB는 대한민국 17대 대통령의 닉네임이 아니다. MB는 내 안의 욕망 바로 그것이다.

 

 

대운하, 4대강 살리기로 대표되는 MB정권의 대형 프로젝트는 그 의도가 무엇이건 간에 그것은 관계성과 시간성이 배제된 스펙터클의 정치라 할 수 있다. 문화계에서 들려오는 많은 소문들 또한 그 발상에 있어서 이와 다르지 않다. 아마 조만간 각 장르마다 돈 벼락 맞는 대형 스타가 탄생할 것이다. 지난 10년 간 한국문화예술계가 형성되어 온 다양한 목소리의 연계와 사슬은 스타가 내지르는 일성에 약한 고리부터 끊어져 나갈 것이다. 바야흐로 한국 문화예술계의 지각변동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나 홀로 MB의 길을 갈 것인가? 서로의 MB를 호질하면서 우정의 연대기를 써나갈 것인가?

 

 

□ 관련 자료
- 상상력에 자유를! 문화행정 정상화와 예술 자율성 회복을 위한 문화예술인 공개 토론회 자료집, 2009년 7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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