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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64호 이슈] 괜찮아!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 ‘영시미' 퍼블릭액세스 활동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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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64호 / 2009년 8월 29일

 

 

괜찮아!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
‘영시미' 퍼블릭액세스 활동 다시보기
 
 
김효정(전주시민미디어센터 ‘영시미' 퍼블릭액세스 팀장)

 

 

 

 

원고청탁이 들어왔고 사실 무슨 주제로 이야기를 해야 할 지 잘 몰라서 단지 나의 머리 안에 있는 고민들을 솔직하게 끄집어내기로 했다.

 


나의 고민은 올해 들어 참으로 산만해졌다. 산만해진 이유는 센터가 기존의 퍼블릭액세스 활동조건에서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일단 올해부터 센터가 전주MBC 퍼블릭액세스 프로그램의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게 됐다. 또 하나는 이젠 미디어센터가 지역의 다양한 제작주체들의 발굴을 좀 더 확대하고 지원 시스템을 체계화 하는 단계에 왔다고 하는, 스스로의 책임감을 느끼는 시기에 도달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퍼블릭액세스 담당자로서 3년 동안 일하면서 위의 주제들은 꼬리표처럼 다시 돌아오는 고민이었다. 미디어센터로서 퍼블릭액세스라는 매개체를 가지고 지역 공동체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 지. 채널도 중요하고, 주체자를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고, 지속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데 무엇부터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아 계속 고민은 돌고 돌아 산만하다. 그러다보니 요즘에는 다른 지역들의 성과들에 부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대구지역 퍼블릭액세스 프로그램 시청률 4.2%란 소식을 들었었다. 4.2%가 머릿속에 계속 메아리처럼 울리고 있다. 그리고 부산 권용협씨의 ‘이젠 내가 없어도 제작지원단 문제없다'라는 자신감 엿보이던 말도 계속 메아리가 되어 울리고 있다. ‘이렇게 해보면 대구처럼 될까', ‘저렇게 해보면 부산처럼 될까' 공상을 펼치다가도 ‘그런데 전주에서 그게 가능할까'며 내 자신에게 반문하게 된다. 그것은 결국 주체자인 내 자신과 지역에서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답을 찾아야 할 일이였다.

 

 

 

 


먼저 이 글을 계기로 내게 질문을 하게 됐다. 내게 퍼블릭액세스 활동은 어떤 의미일까? 처음 전주시민미디어센터 ‘영시미'에서 퍼블릭액세스 담당자로 선택됐을 때 마음이 너무 아팠다. ‘선택됐다'라는 말은 내 의지와 무관하다는 의미이다. ‘왜 하필 나야? 무엇을 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정형화 되어 있지도 않은 이 골치 아픈 일을 왜 나한테 시키는거야'라고 투덜거리며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현재는 그런 피해의식을 털어버린지 오래다. 현재 이 자리에 있으면서 나름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를 정리한 것 같다. 그 이유는 거창하지도 않다. 솔직하게 고백한다면 난 지역의 퍼블릭액세스 코디네이터 역할을 맞고 있으면서도 이 일을 운동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퍼블릭액세스는 나와 인연을 맺은 의무이며 난 이 의무를 의무감이 아닌 내 스스로가 즐거울 수 있는 일이 되길 희망할 뿐이다. 그리고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은 지역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 되는 것이고, 관계가 좋을 수 있는 것은 서로에게 필요한 만남일 때 가능하다. 그리고 그 필요가 퍼블릭액세스의 지속성을 가능하게 만드는 가장 원초적인 해답이 아닐까 한다. 자기가 필요할 때 퍼블릭액세스 할 수 있게 지원해 주면 되는데 난 그것이 가능하도록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3년 전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라디오 퍼블릭액세스를 통해 만난 사람들, 그리고 장애인인권영상제작집단으로 성장한 ‘장애IN소리'를 보면서 ‘좋은 관계'를 알게 됐다고 한다면, 올해는 ‘더 많은 좋은 관계들'로 만들어봐야겠다는 과정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관계들이 지속적일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이다.

 


영시미 밖으로 나가다

 


미디어센터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영시미는 다양한 활동들 안에서도 퍼블릭액세스에 대한 책임감을 크게 뒀다. 생각해보니 난 그 이유에 대해 센터의 그 어떤 사람과 이야기도 나눠본 적이 없었다. 개인적으로나마 추측을 해본다면 전주 지역의 길지 않은 미디어운동 역사 속에 퍼블릭액세스가 일찍이 주목되어 왔었던 과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한다. 전주는 서울을 제외한다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전주MBC의 지역소식을 전하는 프로그램에서 퍼블릭액세스 형식의 작은 코너를 만들었었고, 이를 계기로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영상제작자 몇 명이 정기적으로 퍼블릭액세스 프로그램 제작활동을 했던 전례가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당시 네트워크의 주축이 됐었던 사람들이 동시에 미디어센터를 설립하기 위한 활동을 지속시켜나갔었고, 그 성과로 현재의 영시미가 탄생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고, 거기에 더해 좀 더 다양한 시민들의 참여 확대를 지향하며 공간과 장비, 교육 지원이라는 기능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센터까지 설립됐다면 기대를 가지고 전주지역 퍼블릭액세스의 안부를 물어볼 수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못했다. 지난 퍼블릭액세스의 경험들이 옛날 옛적 이야기처럼 여겨질 정도로 황무지와 같은 현실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과정들이 있었다. 전주MBC와의 갈등과 열악한 제작조건들로 인해 활동하던 퍼블릭액세스제작자들과 전주MBC가 결별하는 결과까지 이어졌고, 이는 더 이상 활동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으로 빚어졌다. 제작주체자들의 부재 속에 전주MBC는 시청자미디어센터를 만들고, 이후 퍼블릭액세스 프로그램을 시간을 확대했지만 VJ양성 프로그램으로 이용되다시피 했다. 그래도 당시에는 미디어센터가 만들어지면 다시 퍼블릭액세스가 부활할 수 있을 거라는 나름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기대가 사라지게 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단순한 하드웨어 개방 차원으로는 퍼블릭액세스 활동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이뤄진 퍼블릭액세스 교육 수료자들을 대상으로 후속모임을 만들어보려 시도도 해보고, 시민사회단체들에게 제작교육을 열어주며 제작활동을 독려해보기도 했다. 간혹 적극적인 참여자들도 있지만 교육과 제작경험들은 일회성에 끝났다. 그들에게 퍼블릭액세스는 미디어센터의 일이였지 자신들에게 필요한 일이 아닌 것이다. 사회적 의제들의 목소리를 내는 시민사회단체들은 단체의 역량이 못된다 라는 말로 퍼블릭액세스를 외면했다. 퍼블릭액세스라고 하는 제도가 있지만 실제적인 주인은 없어보였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세요. 도와드릴게요.

 


그런 가운데 시작한 라디오 퍼블릭액세스는 내게 가장 기초적인 깨달음을 제공해준 활동이 되었다. 일주일에 10분 분량이 그리 부담되는 시간은 아니지만 정기적으로 방송을 만들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활동 주체들을 찾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센터 밖을 보게 됐고 지역의 소모임들을 찾아가서 ‘당신들의 사는 이야기와 살면서 생기는 고민들이 그 삶을 살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소통될 가치가 있으니 한번 해 보자'라고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관계를 맺었다.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청소년들의 라디오퍼블릭액세스 ‘1318 날개달고'와 여성가장들의 라디오퍼블릭액세스 ‘미모사의 내일찾기', 소속과 상관없이 정치권력을 미워하는 동시에 다재다능한 끼를 주체하지 못하는 친구들로 구성된 PBS(민중의 방귀소리) 등이 탄생됐었다. 퍼블릭액세스 기회를 통해 그들의 직접적인 제작 혹은 참여는 다양한 만족감을 가져다 줬다. 여기에서 퍼블릭액세스의 주체자들은 운동가들이 아닌 단지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자기 인생의 주체자들이었다. 그리고 그에 따르는 전제조건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세요. 기술 지원해 드릴게요”였다. 참여자들에게 제작기술에 대한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한 것이었다. 내용을 만드는데 있어서 책임을 지는 것 외에 기술적인 부분은 그들이 할 수 있는 만큼만 감당하고 외에는 센터에서 기술을 지원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시민사회단체가 당사자들과 미디어센터가 안정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네트워크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 줬다. 그러면서 퍼블릭액세스는 다양한 지역 공동체들에게 필요한 소통의 수단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 경험의 연장선으로 작년부터 센터가 지원하고 있는 ‘장애IN소리'가 있다. 시설인권연대와 중증장애인 지역생활지원센터의 실무자 그리고 영시미의 기술지원 활동가 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여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며 TV매체를 토대로 퍼블릭액세스를 시도하고 있다. 초기에는 장애IN소리 자체가 제작을 위한 모임으로 목적을 뒀었다. 하지만 올 해에는 변화들이 눈에 보인다. ‘탈시설'과 ‘자립'을 중심으로 당사자들의 사는 이야기들의 비중이 점점 커진다. 함께 결합해있는 장애인인권활동가가 장애인 당사자들을 네트워크하게 되고, 이어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가 외부와 소통될 수 있도록 영상제작지원을 하는 역할로 자연스럽게 확장되고 있다. 또한 TV 뿐만 아니라 소통 매체를 인터넷, 영화제 등으로 기회가 되는대로 확장시키기도 한다.

 


 

장애IN소리 안에서 만들어진 컨텐츠가 TV 액세스에서만 끝나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인권영화제에 출품한 후 알려지면서 다른 지역에서 상영을 원하는 경우가 종종 생겨나기 시작했고, 장애IN소리 회의 안에서는 배급에 대한 논의도 하게 됐다.

 

 

 

 

 


긴 호흡으로 만나고 또 만나기

 


느린 속도지만 이렇게 조금씩 진전시키면 되겠지 싶었다. 다음은 또 어떤 공동체에 퍼블릭액세스 다리를 놔줄 수 있을지, 그리고 기술지원인력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지 등등 반복적이지만 조금씩 달라지는 고민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불시에 닥치는 상황은 느린 속도들을 배려하지 않는다. 영시미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전주MBC 퍼블릭액세스 프로그램 ‘열려라 TV' 운영위원회의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영시미에서 기술지원 역할로 활동하던 제작자의 제작물을 프로그램 담당자가 독자적인 결정과정으로 편파적이라며 방영 거절한 것에 대해 영시미가 항의를 하면서 우연성에 가까운 대화의 계기가 됐었다. PD 또한 좀 더 나은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변화시키고 싶은 의지가 있었고, 다양한 참여가 가능할 수 있다는 점(다시 말해 수급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는)에서 영시미의 운영위원회 구성 제안에 동의를 한 것이다. 반가운 일이지만 더욱 리얼한 현실에 가담하고 있다. 다른 방송국이 프로그램을 새롭게 편성하면서 전주의 퍼블릭액세스 프로그램만 지상파 2개, 지역 케이블에 1개가 됐다. 매달 운영위원회의를 하면서 수급문제가 우선인 현실을 보면 씁쓸함과 무기력감을 느끼고 있다. 다른 방송국의 프로그램은 기존 VJ프로그램을 폐지하는 대신 그 VJ인력들이 퍼블릭액세스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보니 그럴 만도 하다. 일단 올해는 전주MBC의 ‘열려라 TV' 운영위원 회의의 안정화를 다지는데 일차 목적을 두자라는 심심한 위안을 삼고 있다.

 


그러면서 할 일이 많아졌다. 퍼블릭액세스의 좀 더 확대된 네트워크 그리고 지원체계를 만들기 위해 15개 시민사회단체들을 대상으로 이번 7월 동안 퍼블릭액세스에 대한 인식수준이나 그 필요도에 대해서 설문조사를 벌였다. 단순하게 정리한다면 ‘12개 단체가 의제 전달에 갈증을 느끼고, 라디오 혹은 TV 등의 매체를 선택하면서 퍼블릭액세스를 활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결과였다. 다만 컨텐츠 제작과정을 떠앉기 어려운 현실인 것이다. 퍼블릭액세스 프로그램에 시민사회단체들의 다양한 의제화 활동과 시민사회단체들과 네트워크 되어 있는 현장의 사람들(노동자, 장애인당사자, 여성 등등)의 목소리가 담겨져야 한다. 이들의 소통하고 싶어 하는 혹은 소통되어야 할 메시지가 실제 소통되도록 지원해줄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는 것. 산수 공식처럼 나온 답들은 영시미처럼 지원할 수 있는 제작지원활동가들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고, 이야기 주체자와 좋은 관계 맺기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미디어센터에서 활동할 수 있는 제작지원활동가는 기껏 두 명에 불과하다.

 

 

 

 

좀 더 긴 호흡으로 생각하고 계획해보자. 영시미의 퍼블릭액세스 매개 능력은 어느 정도 가능할까? 영시미의 기술지원을 조금이나마 감소시키기 위해 지원대상자들을 대상으로 제작교육도 포함시켜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할 수 있는 만큼 해 봐라. 도와주겠다'의 조건은 변함이 없다. 교육을 통해 그들의 ‘할 수 있는 만큼'을 더 넓혀야 한다. 그러고 보니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고 있다. 영시미가 어떤 대상들에게 퍼블릭액세스의 매개 역할을 해 줘야 할지, 어떤 대상들이 쉽지만은 않은 제작과정과 함께하며 소통하는 일에 자기 책임과 필요성을 가질 수 있을지, 그리고 이 소통하는 일을 자신들의 공동체에 어떻게 기여할지. 앞날을 알 수 질문들로 긴장감 앞에 서 있는 나의 모습을 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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