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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64호 이슈] 지난 1년간의 미디어법 투쟁을 돌아보며... : 공영방송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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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64호 / 2009년 8월 29일

 

지난 1년간의 미디어법 투쟁을 돌아보며...
: 공영방송을 중심으로
 
 
 
유영주 (언론개혁시민연대 상임정책위원)

 

 

 

 

KBS의 전 1년과 MBC의 후 1년

 

 

 

 1년 전 6월, 촛불이 마포대교를 건넜다. 밤을 세워 공영방송 KBS를 지켰다. 한나라당은 KBS부터 잡겠다고 호언했다. 대통령과 방송통신위원장은 부여된 법률적 권한을 바탕으로 밀어붙였다. 8월에 신태섭 이사를 갈아치우고, 반쪽 이사회를 개최했다. 정연주 전 사장을 내쫓고 이병순 사장을 내려앉혔다. 저항했던 KBS 구성원들은 사규에 따라 징벌했다. 요직에 사람을 바꿔 이병순 체제를 구축하고 프로그램도 개편했다. 1년이 지난 시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를 취재하러 봉하마을로 내려간 KBS 기자들은 부스조차 차리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KBS 1년을 평가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비판과 질책이 쏟아졌다. 하지만 정부로서는 개의할 게 없다. KBS는 이미 손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공영방송 KBS를 어떻게든 지키려했던 사람들은 심정과 체면이 말이 아니다. 지금의 KBS 안에서 후일을 도모한다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안이 아니면 바깥인데, 바깥과의 연대란 더욱이 어렵다. 그러니까 현재로서는 마포대교를 건너 촛불을 들었던 시민의 기대에 온전하게 부응하는 공영방송의 뭔가는 손에 잡히지 않는다.

 

 

KBS의 앞 1년은 MBC의 후 1년이다. 방문진 이사 선임에 뉴라이트 인사가 대거 진입했다. 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 결과이다. 여야 합의의 결과라는 말이다. 공영방송 이사 선임의 기준과 원칙, 아직 그런 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최시중 위원장은 일찍이 ‘정명'을, 최홍재 이사는 ‘민영화'를 공공연하게 거론했다. 그때마다 물의를 빚었다. KBS 사장 갈아치우듯 MBC 사장을 갈아치우지는 않을 듯 하다. 하지만 MBC 내부 분위기는 만만치 않다. 보수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PD수첩' 제작팀은 방통심의위의 심의에다 계속된 검찰 수사로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고비마다 싸웠고 잘 싸웠지만 아닌 건 아니다. 편성, 제작 과정에 위축된 정서와 문화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상호 호혜적이었던 제작 환경이 경쟁과 눈치 속에 배타적인 환경으로 변하고 있었다. 위기를 느낀 MBC노조는 방문진 이사 선임과 출근에 반발했다. 그런데 그 누구도 공영방송으로서의 MBC의 미래를 장담하지는 못하고 있다.

 

 

대의제 미디어로서의 공영방송

 


미디어운동은 10년, 멀리 잡으면 20년의 방송(언론)개혁운동으로 한 단락이 정리된다. 미디어운동에 있어 개혁운동은 언론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하는 과정이었다. 이 가치는 대의제 미디어의 발전을 통해 확장됐다. 공영방송은 대의제 미디어의 핵심 지위를 차지했다. 공영방송은 정부의 정책과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한편 사회 지배적 오피니언에게 공론의 공간을 제공했다. 또한 계몽과 비판으로 대의제 민주주의를 견제하고 보완했다. 공영방송은 또한 사회적 갈등의 현장에서 당사자와 당사자 간 화해를 주선하고, 기계적 중립을 통한 대의제적 균형감각의 유지를 지향했다. 이 틀을 벗어나는 순간 공영방송은 스스로 엄격하게 적용해온 균형을 잃어버리게 된다.

 


노무현 정부 시기 공영방송의 일부 주체들이 그 틀을 넘었다. 산술적 균형과 기계적 중립으로 담아내기 힘든 사회적 대립과 갈등이 빚어졌다. 전략적 유연성 추진과 맞물린 평택 주한미군 이전, 노동유연화를 위한 비정규직법 개악, 한미FTA 협상 등과 같은 이슈가 그랬다. 공영방송의 일부 주체들은 이런 이슈와 관련한 콘텐츠 제작, 편성에 있어 단지 3인칭의 위치에 머무르는 것을 거부하고 가치 판단과 함께 현실 개입을 시도했다. 기존의 대의제 미디어의 형식적 가치를 구현하는 것만으로는 공익적, 공공적 이해를 반영하기 힘들다는 인식에 도달했던 것이다.

 

 

 

 한미FTA 협상 국면에서 광우병이나 GMO 등의 소재를 정면으로 다룬 ‘PD수첩'이나 ‘KBS스페셜'과 같은 프로그램을 꼽을 수 있다. KBS ‘시사투나잇'은 소재와 형식에 있어 당시까지 공영방송이 취해왔던 전통적인 룰에서 벗어났다. 소재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퍼블릭액세스 채널과 독립미디어운동 진영과도 교감하기 시작했고, 일부 콘텐츠는 그들과의 적극적인 관계 속에서 생산했다. 생산된 콘텐츠는 유통에 있어서도 단지 공중파에 제한되지 않았다. 시민사회와의 교감 속에 인터넷 공간에서 논쟁이 이루어지거나 오프라인에서 크고 작은 교육, 교양의 자리가 마련되기도 했다. 한미FTA 협상 과정에서 ‘PD수첩'과 ‘한미FTA 미디어실천단'이 공조한 사례나 황우석 사태 당시 공영방송과 인터넷언론 및 민주노동당 등이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했던 것도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공영방송이 대의제 미디어로서의 지위를 넘어 보다 공공적인 가치의 실현을 지향하고 질적인 도약을 시도하려는 순간, 미디어운동의 지형 변화도 불가피해졌다. 역으로 지향과 시도가 약화되는 순간에는 어김없이 기존 대의제 미디어의 틀 안으로 급속하게 수렴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처럼 노무현 정부 시기 공영방송의 제작, 편성 주체들은 대의제 미디어의 발전의 측면과 대의제 미디어의 틀을 넘어서는 질적 변화의 측면 사이에서 고뇌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맞이했다.

 

 

상업화, 시장화로 치닫는 미디어

 


이런 와중에 이명박 정부가 출범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직속으로 방통위를 구축했다. 대통령과 방통위원장은 법률적 권한을 이용해 공영방송의 재편을 시도했다. KBS가 완료형이라면 MBC는 진행형이다. 한나라당이 공영방송법을 제정하고 민영미디어랩을 도입하면 KBS를 제외한 공영방송은 민영방송으로의 재편을 피할 길이 없다. 1국(관)영-다민영 체제로의 재편이다.

 

 

한나라당 미디어법 국회통과에 대한 원천무효 논란에도 불구하고 방통위는 시행령을 내놨고, 종편 추진을 기정사실로 하고 있다. 지상파의 재편과 조중동과의 컨소시엄을 통해 종편채널의 황금채널 진입이 이뤄지면 방송 환경은 한마디로 상업화, 시장화 된다. 이 같은 결과, 즉 정권의 방송 장악과 방송의 상업화, 시장화는 궁극적으로 지금까지 구축해온 언론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마저 훼손한다. 기계적 중립을 통해 유지해온 대의제적 균형감각도 잃게 된다. 계몽과 비판을 통해 대의제 민주주의를 견제하고 보완해온 공영방송으로서의 기능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전후에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신문사에 넘긴 일본, 52개국 800여 종의 미디어 사업을 펼치는 Fox 방송의 실질적 소유주인 루퍼트 머독과 미국, 방송사.신문사.출판사.잡지.영화배급사.광고대행사.보험사.은행.AC밀란 등을 소유한 베를루스코니와 이탈리아, 거기에 필적하는 한국식 모델의 등장이 예고되는 시점이다.

 

 

언론노조와 현업단체, 시민사회단체는 조중동 방송, 재벌방송 반대를 내걸고 투쟁해왔다. 특히 언론노조는 작년 12월, 올 2월, 6월 세 차례 총파업투쟁을 벌이며 저항했다. 최상재 위원장은 이 투쟁 과정에 지치지 않는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미디어행동 등은 ‘100일행동 시즌 1, 2'을 통해 민주당이 한나라당에 휘둘리지 않도록 강제하는 한편 시민사회와의 결합을 높여내는 실천을 주도했다. 결국 한나라당은 날치기조차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하는 해프닝을 낳고 말았다. 미디어 당사자들이 총파업 투쟁을 통해 반MB 전선을 효과적으로 운영했다는 평가에 인색할 이유는 없다. 다만 이 투쟁은 미디어의 상업화, 시장화의 속도를 제어하고 지체시키는 데 기여했을 뿐 대안적 미디어운동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투쟁은 아니었다.

 


주체와 콘텐츠, 대안의 미디어

 


1-20년간 대의제 미디어, 대의제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투쟁해온 미디어운동이 봉착한 지점도 여기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결성된 미디어행동은 지금까지 반MB 전선을 발전시켜온 유의미한 연대체였고, 제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왔다. 그러나 운동의 질적 측면 즉 운동 주체간 연대 전략과 콘텐츠 생산. 유통의 측면으로 보자면 특정한 평가를 내리기 힘들다. 말하자면 보이긴 하는데 잡히지는 않는 추상의 과제인 셈이다.

 

 

미디어운동의 궁극적인 지향은 미디어의 사회화와 시민의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실현하는 데 있다. 언론악법 반대, 국회 날치기 원천무효 투쟁은 조중동 반대, 신문의 방송 겸영 반대, 재벌의 미디어 소유 반대를 골자로 한다. 이 투쟁 동력은 과거 자본에 대한 국가의 우위 속에 국가 주도의 성장전략에 따라 구축된 공공성 영역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구성원들의 의지를 기반으로 한다. 기존 방송과 신문, 인터넷에 대한 국가의 지원정책과 관련 법제도를 유지하는 차원에서 미디어공공성 해체를 방어하는 투쟁으로 평가된다. 엄밀히 말하자면 방송의 공공적, 산업적 측면을 놓고 국가와 사회구성원이 어떻게 소유, 조절, 통제하며 발전시킬 것인가, 시민의 커뮤니케이션권리 실현은 어떻게 가능한가 라는 전략적 차원에서 살펴지지는 않았다. 이는 물론 미디어운동 차원에서만 검토할 문제는 아니다. 한국사회 진보의 전체 구상 속에 ‘대체와 자치'의 대안을 마련하는 것과 분리되지 않는다.

 


미디어운동의 질적 변화를 위한 과제 설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법제도적 대안 작업, 공영방송 안팎의 주체 간 연대, 콘텐츠 생산, 유통 경로 확보 등의 과제를 꼽을 수 있겠다. 가령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통신발전에 관한 기본법(이하 방통기본법)'을 준비할 때 미디어운동은 ‘전자커뮤니케이션 기본법(가칭)'을 준비했다. 방통기본법은 논란이 된 미디어법들 중에서도 기본법으로서의 지위와 권위를 부여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조중동에게 방송을 주는 게 목적이었던 지라 제정 시도가 이뤄지지는 않았다. 이처럼 기본법 뿐 아니라 한나라당의 미디어법을 대체하면서 동시에 대의제 미디어의 한계를 극복하는 미디어 법제를 준비하는 일이 있다. 공영방송과 독립미디어의 편성, 제작 주체들이 연대하는 가운데 콘텐츠 생산 조건을 재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부문과 부문 간 연대의 폭과 넓이를 확장하는 가운데 진보적 콘텐츠 생산 논의와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대안 플랫폼과 대안 콘텐츠 프레임을 구성하는 일도 차일피일 미룰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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