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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65호 현장] 진안마이라디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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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65호 / 2009년 9월 30일

 

진안마이라디오 이야기



최성은(전주시민미디어센터 영시미)

 

 

 

 

“90.7Mhz, 여기는 진안마이라디오 미니FM 방송입니다.”


지난 7월 31일 진안에서는 마을축제 시작과 함께 작은 라디오 방송이 첫 전파를 쏘아 올렸다. 1W의 적은 출력이었지만 색다른 경험과 적지 않은 관심과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시적인 미니FM이라 8월 9일 마지막 방송을 끝으로 전파를 접어야 했다.


이번 진안미니 FM은 우연한 기회에 시작을 했다. 올해 초 전주시민미디어센터 영시미 (이하 영시미)에서 진행한 시민라디오제작자교육을 받은 진안의 한 마을 간사분이 진안마을축제 아이템 공모에 미니FM을 제안했는데 덜컥 선정되었던 것이다. 이후 축제조직위에서 영시미에 교육과 미니FM 진행을 요청해왔다. 미니FM은 발효식품엑스포를 통해 두 차례 경험이 있었던 터라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시작을 했었는데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진안까지 출장교육도 그렇지만 전주와 다른 진안의 지역적 특성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이 가장 컸다. 전주에서는 주로 대학생들이나 젊은 층이 중심이 되어 움직였는데, 진안의 경우는 30대 초반이 가장 젊었으며 다들 바쁘셨다. 또 도시의 밀집된 지역에서 삶이 아니라 행정구역상 같은 진안군이었지만 차로 보통 20~30분은 떨어진 곳에 흩어져 살고 있어서 모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는 진안은 지역적 특성상 라디오가 잘 잡히지 않는 난청지역이어서 거의 라디오를 듣지 않으신 분들이라 ‘라디오가 과연 필요할까?' 에서부터 미니FM을 한번 하면 당장 공동체라디오방송국을 설립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어 중간 중간 공동체라디오의 답답한 현실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다.


두 달여 가까이 공동체라디오와 미니FM에 대한 이해 그리고 일반적인 라디오 제작 교육을 진행했다. 또 이번 진안 미니FM이 비록 축제기간에 운영되는 것이었지만 이를 통해 진안지역에 공동체라디오를 설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했기 때문에 직접 마포 FM을 포함한 마포지역 공동체 탐방과 성서 FM의 정수경 대표의 특강을 진행했다. 그러나 여전히 ‘공동체라디오가 진안에 필요하다'는 분부터 ‘라디오도 잘 들리지 않는 곳에 과연 공동체라디오가 꼭 필요한가?', ‘인터넷으로 하면 당장 할 수 있는데 왜 굳이 어렵게 주파수를 받아서 해야 하는가' 라는 의문을 가진 분들도 있었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걱정도 많이 되었다. ‘진안은 라디오도 잘 안 들리는 곳인데 과연 미니FM을 많이 들을까?', ‘마을축제 기간이지만 대부분 각 마을에서 축제가 열리고 읍내에서는 큰 행사가 열리지 않고, 스튜디오를 설치하는 장소도 사람들이 많이 오고가는 곳이 아니라서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도 들었다. 당초 진안 분들이 제작과 기술까지도 모두 진행하는 방향으로 생각했지만 짧은 시간 때문에 기술적인 진행을 직접 하기 어려워 센터의 인력 지원도 커지게 되었다.


또 이번 진안 미니FM은 그동안 진행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도 요구되었다. 축제 개막식 현장과 메인스튜디오가 설치된 장소가 달라 개막식 방송은 이원 생방송을 준비했다. 현장에서 인터넷으로 보내 메인스튜디오에서 전파를 통해 방송하는 형식이다. 또 진안이 워낙 산이 많고 각 마을이 떨어져 있어 인터넷으로 받아서 마을 스피커를 통해 이장님 방송하듯이 방송하는 것도 준비했었다. 시간이 갈수록 준비할 사항도 요구사항도 많아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방송이 시작되기 일주일 전에 아예 센터에서 한 명을 진안으로 파견해 숙식을 해결하면서 진안 분들과 함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막상 방송이 시작되니 기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몇 가지 기술적 한계로 인해 실수도 있었고, 계획대로 되지 않았던 점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진안 분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의지는 공동체라디오를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했다. 또 이번 열흘간의 특별한 경험에서 몇 가지 중요한 지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지역매체의 필요성과 역할이다. 많은 학자, 시민단체들은 서울중심의 매체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의 이해와 욕구, 관심사를 반영하고 실현할 수 있는 지역 사회 내 공론장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지역매체가 필요하다고 말해왔다. 그래서 지역 언론이 황폐화 되는 정부의 언론정책을 비판해왔던 것이다. 일부는 글로벌한 시대에 굳이 지역에 한정된 매체가 필요한가라는 반박을 할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지역에서는 우리 지역의 소식,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에 목말라 했던 것이다. 이번 축제 동안 지역민들은 자신들과 주변인들의 이야기가 라디오를 통해 나오는 것에 즐거워했고, 축제가 끝나더라도 방송이 계속 됐으면 하는 희망을 전하기도 했다. 또 어느 출향인은 휴가차 진안에 왔다가 라디오를 듣고 고향 이야기가 나오는 것에 반가워 직접스튜디오에 찾아와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도 했다. 6시면 방송이 끝나는데도 불구하고 저녁에도 혹시나 라디오를 켜 보았다는데 마침 송신기를 끄는 걸 잊어버리고 연습 중인 소리가 들려 재밌고 반가웠다는 분등 많은 지역 분들이 이런 방송이 꼭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비추셨다. 그 만큼 지역 소식과 지역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매체에 대한 욕구가 잠재되어 있던 것이다.


둘째, 공동체라디오의 지향점이다. 그건 바로 참여와 소통이다. 이번 미니FM에서는 지역민들이 직접 참여를 했고 라디오를 매개로 서로 소통을 시도했다. 스튜디오도 외부에 설치하고 오며 가며 안을 들여다 볼 수 있고, 누구나 쉽게 들어올 수 있게 했다. 현장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즉각적인 상호작용을 했고, 예정에 없던 인터뷰가 진행되기도 했다.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지역민과 외지인을 불분하고 예고도 없이 불쑥불쑥 스튜디오에 찾아와 참여하고 소통했다. 스튜디오 밖에 의자를 놓고 진행한 퀴즈프로그램은 공개방송을 연상케 했다. 누구나 청취자가 되기도 하고 송신자가 되기도 해 말 그대로 쌍방향적인 소통이었고, 라디오는 소통의 수단이 되었다. 매일 보고 가깝게 지냈지만 쉽게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라디오를 통해 나누고 서로를 이해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마치 영화 라디오스타처럼 말이다.

공동체라디오 스튜디오를 고민하고 있는 지역이나, 현재 공동체라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지역에서 스튜디오 이전계획이 있다면 1층에 지나가다 볼 수 있고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스튜디오를 고민해 보기를 권장하고 싶다.


돌이켜 보니 힘들었지만 즐겁고 의미 있었던 열흘이었다. 미니FM은 작고 한시적이었지만 공동체라디오를 준비한다면 꼭 한번 해보라고 권해보고 싶다. 물론 인터넷으로도 가능하겠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미니FM은 공동체라디오 준비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물론 공동체라디오의 가장 큰 핵심은 기존 주류미디어와 다른 콘텐츠이지만 미니FM을 통해 나름대로 기술적, 운영적 노하우를 습득할 수 있다. 미니FM 역시 주파수 면허를 받아야 하므로 신청과정과 기술적 측면에서 공동체라디오 유사한 측면이 있다. 지역의 주파수 환경, 전파를 쏘기 위한 송신장비와 안테나, 편성과 인력운영 등 많은 측면에서 생각과 노하우를 쌓을 수 있을 것이다. 나름대로 3번의 미니FM을 진행했지만 매번 여러 가지를 배우게 되었다. 안테나 높이와 전파 도달 거리, 지역에 따라 다른 전파 환경, 허가과정 등 기술적 부분과 인력운영, 지역에 맞는 콘텐츠에 대한 고민 등 많은 부분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 특히 전파적 환경에서는 도심지역과 달리 산악지역이 많고 행정구역이 넓은 진안과 같은 곳은 FM 보다는 AM 주파수가 더 어울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기도 했다. 
 

 


 
또한 공동체라디오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끌어낼 수 있다. 말로 듣는 것보다는 직접 보고 경험하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다. 공동체라디오가 필요하고 실제 운영지역에 가서 보고 왔더라도 잠시 나마 경험해보는 것이 준비를 하고 사람들도 그렇고 지역민들에게 홍보하기도 쉽다. 라디오를 통해 나의 이야기, 나의 목소리를 듣는 경험은 인터넷을 통하거나 스피커를 통한 경험보다도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라디오도 들리지 않는 지역이라 집에 라디오를 듣지도 않고 라디오도 없는데 공동체라디오가 꼭 필요할까'라는 의문을 품었던 분들도 실제 미니FM을 진행해보시곤 ‘정말 필요하고 꼭 있었으면 한다.'는 말을 하셨다. 이는 시민뿐만 아니라 지역 언론과 지자체의 관심을 끌어내는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진안의 경우 군수가 직접 참여해보고 필요성을 느끼고 지원을 해주겠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진안뿐만 아니라 전북의 다른 지역이나 멀리 울산에서도 전화를 주시기도 했다. 물론 지자체의 지나친 관심과 지원은 공동체라디오가 정치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오해의 소지를 일으킬 수 있다. 이를 공동체라디오를 준비하는 주체들의 공동체라디오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제대로 된 전략이 수립되면 충분히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지원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공동체라디오가 활성화된 다른 나라들과 달리 우리의 경우는 해적방송, 자유라디오 같은 경험이 부족해 공동체라디오에 대한 대중적인 인식의 확산이 없이 공동체라디오가 실시되다 보니 많은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 공동체라디오가 정규사업화가 되었지만 전국적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는 시점에서 미니FM은 공동체라디오의 사회적 관심을 이끌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실제 공동체라디오가 사회적, 제도적으로 잘 발단된 영국의 경우 우리나라의 미니FM과 비슷한 제한적 면허 서비스를 통해 라디오의 지역성과 공동체방송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발시키는 효과를 보았다. 특히 공동체 그룹들은 이를 통해 방송기술과 전문적 지식을 쌓는 것에 유용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이러한 단기 제한적 면허를 13년 동안 4,000개 이상 허가하였고 매년 400정도의 면허를 받고 있다고 한다. 공동체라디오 방송의 필요성과 역할, 이론적 논의들이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지역민들이 스스로 방송을 즐기고 스스로 필요함을 느끼는 것이야 말로 가장 큰 운동 전략이 아닐까 싶다.


 

짧지만 흥겨웠던 열흘간의 잔치가 끝이 난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다. 그러나 이번 진안미니FM 마이라디오의 실험은 아직 끝나지 않고 진행형이다. 이번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는 프로젝트나 후속 작업들이 고민이 되고 있다. 쉽진 않았지만 이번 경험은 왜 공동체라디오가 필요하고, 지역적 환경에 따라 다른 고민의 지점과 실천전략이 필요하다는 걸 느끼게 해주었다. 특히 도심지역에서도 공동체라디오가 필요한 매체이지만 진안과 같은 농촌지역에서 공동체라디오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해준 좋은 경험이었다.


끝으로 뜨거운 여름 동안 진안에서 숙박을 하면서도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던 스텝들과 진안 주민 분들 그리고 늘 시간이 촉박하게 신청함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준 전북 전파관리소 관계자 분들께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희망한다. 90.7Mhz, 진안마이라디오가 멋지게 다시 전파를 쏘아 올릴 그날을...


[편집자 주] 진안마이라디오는 진안마을축제 홈페이지(www.maeulnet.org)에서 다시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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