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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66호 인터내셔널] 안녕, 하이, 오하요- 아시아미디어활동가 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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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66호 / 2009년 10월 29일



안녕, 하이(Hi), 오하요우(おはよう)
 
송이(미디어 활동가)

 

 

 

[편집자 주] 아시아미디어활동네트워크 “짬뽕”은 일본과 한국의 미디어 활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국제연대 네트워크이다(http://mediachampon.net/). 작년에 한국 부안에서 열린 첫 번째 캠프에 이어서, 올해에는 일본 도쿄에서 두 번째 캠프가 진행 되었다. 도쿄를 방문한 8박 9일의 기간 동안, 한국의 활동가들은 “짬뽕” 캠프 이외에도 미디페스, 노동 영화제 등 다양한 관련 행사에 참여하였다. 이 기사는 한국 참가자들 중 한 명이었던 필자가 일본에 머무르는 동안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정리한 것이다. 

 

 

용산 촛불방송국에서 미디어활동가랍시고 죽치고 앉아 커피마시고 수다 떨고 (가끔!) 촬영하면서 변화하지 않는 용산상황에 무뎌지고 있을 때 쯤, 도쿄에서 아시아미디어활동가네트워크 “짬뽕”(이하 짬뽕) 캠프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오, 말로만 듣던 국제캠프!'

 

 

가보고 싶긴 했지만 학교를 다니고 있는 처지에 일주일의 시간을 비우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또 한편으로는 용산참사 해결을 위한 전국순회촛불문화제가 준비되고 있었기 때문에 기왕 학교수업을 빠진다면 도쿄보다는 여기를 따라가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캠프참여를 고민했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그곳에 가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란 의구심이었다.

 

 

나는 평생 한국 땅에서 살면서 한국말만 쓸 것이라고 생각했다. 글로벌이니 국제연대니 하는 것들은 교재의 제일 마지막 단원에 실린, 진도가 늦으면 다루지 않아도 상관없는 그런 분야였다. 이 좁은 땅에 만해도 문제가 산개했는데 무슨 여유가 있어서 바다 건너까지 신경쓰나라는 생각을 기본으로 가지고 있었고, WTO나 G8 등 초국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국제연대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살짝은 ‘오지라퍼'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 활동들의 필요성을 알고는 있어도 왠지 추상적으로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짬뽕”도 마찬가지였다. 아시아에 있는 미디어활동가들의 네트워크라니. 네트워크 중요하고 국제연대 중요하다는 얘기는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지만, 서로 다른 상황과 문화를 가지고 활동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함께 할 수 있을지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일단 한 번 가보지 뭐.'

 

 

 

시작은 좋지 않았다. 1kg짜리 넷북도 무겁다고 느끼는 저질체력의 소유자가 38L의 대형배낭을 짊어지고 이동하는 것은 몸에 큰 무리를 줬고, 일본에 도착한 첫 날은 하루 종일 음식을 입에 넣지 못했다. 그렇게 불안한 컨디션을 가지고 처음 시작한 일정은 [미디페스].

 

 

[미디페스]는 1년에 한 번, 일본의 독립미디어나 시민 미디어 관계자, 미디어 연구자나 저널리스트 등이 모여 구체적인 활동에 대한 사례발표나 정보 교환을 하고, 앞으로의 방향 등을 함께 생각해보는 자리이다. 올 해에는 처음으로 국제심포지엄을 마련하였고, 이 심포지엄에서 한국 활동가들은 지역미디어센터에 대한 발제와 용산 촛불미디어센터에 대한 발제를 요청받았다.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많은 토론이 열렸고 흥미로운 주제도 있었지만, 내가 일본어를 전혀 할 줄 몰랐고, 국제심포지엄을 빼고는 아쉬운 대로 영어통역도 없었다. 일본의 활동가들이 생각보다 한국의 상황에 대해 많이 알고 관심을 보였다는 것은 반가웠지만, [미디페스]에서 느낀 것은 딱 그만큼이었다.

 

 

 

 그렇게 조금은 아쉬웠던 일정을 마치고 이동한 곳은 산리즈카였다. 산리즈카는 나리타공항이 있는 지역이고,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비행기가 이착륙할 때 활주로 바로 옆에 보이는 건물이었다. 범상치 않은 위치를 통해 예상할 수 있듯이, 산리즈카는 일본의 대표적인 투쟁지역 중 하나이다.

 

 

산리즈카의 농민들은 황무지나 다름없는 척박한 땅을 개간해 농사를 짓고 살고 있었는데, 1966년 일본정부가 아무런 합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이 지역에 나리타공항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연히 농민들은 반발했고 경찰과 농민이 사망하고 십 수 명이 투옥되는 등 격렬한 저항이 이어졌다. 이후 1991년이 돼서야 정부와 농민들이 합의테이블에 앉았고 농민들은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받아냈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합의를 진행하는 와중에도 활주로 건설을 강행했고 농민들은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가 산리즈카에서 묵었던 숙소는 공항 측 직원들과 경찰이 24시간 감시를 하고 있었다. 그 숙소는 실제 산리즈카의 농민이 거주하고 있는 곳으로, 사유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감시탑을 설치하고 24시간 감시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감시자들을 볼 때마다 이곳이 투쟁지역이구나 라는 것을 실감했다.

 

 

40여 년 간 산리즈카를 지키고 계신 분들의 투쟁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장 이해가 어려웠던 부분은 어떻게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투쟁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24시간 경찰의 감시와 고작 머리 위 40M 높이에서 하루 수 십 번씩 이착륙하는 비행기의 엄청난 소음과 매연을 견디며 농사를 짓는 것도 사람이 할 짓이 못되지만, 남아있는 농민들에 대한 협박과 회유, 언론플레이와 농민들 내부의 갈등도 쉬운 문제가 아닐테고, 무엇보다 다섯 가구도 안 되는 남은 농민들을 강제적인 방식으로 끌어내지 않고 방치(?)하는 정부의 태도도 낯설었다. (실제로 나리타 공항은 토지수용을 거부하는 농민들이 있어서 활주로가 완성되지 않은 미완성의 공항이다.)

 

 

이런 내 의문에 대해 일본의 활동가들은 “정부는 이 사람들이 늙어서 죽기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대답했다. 순간 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잊혀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구나. 무서운 사고방식이다.

 

 

용산참사는 일어난 지 270여일이나 지났지만 산리즈카의 투쟁 기간과 비교하면 1/40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벌써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있다. 요새 국민법정준비와 국정감사로 다시 관심이 모아지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이런 질문을 한다. “어머, 용산 아직도 안 끝났어요?”

 

 

제대로 된 해결 없이 그냥 잊히는 것은 결국 비슷한 비극을 또다시 만들기 마련이다. 산리즈카 투쟁이 계속되고 있는 사이, 시즈오카 공항 건설에서도 비슷한 대립이 일어났고, 한국의 재개발을 둘러싼 갈등 역시 무분별한 개발주의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우는 아기 젖 물리는 식으로 어영부영 넘기다가 결국은 용산참사와 같은 비극이 벌어진 것이다. 산리즈카에서 투쟁하는 사람들이, 그리고 용산에서 싸우는 사람들이 이길 수 있을까? 그 ‘승리'란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렇게 존재 자체로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산리즈카에서 본격적인 짬뽕 캠프가 시작되었다. 각자의 활동을 공유하면서 국제연대방법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미디어교육과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보안에 대한 워크샵을 진행했다. 처음 일정표를 봤을 때는 참 여유있는 일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준비해온 것들을 공유하기도 빡빡했다.

 

 

일본의 활동가들은 한국의 “미디어센터”와 미디어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에서 국가의 지원으로 각 지역마다 미디어센터가 생기고, 미디어교육과 미디어활동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것에 대해 일본 활동가들은 놀라움 반 부러움 반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알기로 일본에는 활동가들이 스스로 만든 도쿄의 “medi-R” 이외에는 미디어센터가 없었고, ‘미디어운동'(*주1)이 활발하다는 느낌도 별로 받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는 미디어교육이 미디어운동의 주요 영역중 하나이며 많은 활동가들이 결합해 있지만, 일본에서의 미디어교육은 시작단계로 보였다. 문화, 예술활동의 일환으로 ‘미디어'가 사용되는 것이지, 커뮤니케이션 권리라던가 하는 일반적인 미디어교육의 목적이나 방법 등이 아직 많이 공유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의 미디어활동가들은 지역미디어센터라던가, 활발한 미디어교육에 흥미와 관심을 보였다. 좀 과장하면 한국을 미디어운동의 롤 모델로 생각한다고 느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물론 한국의 지역미디어센터는 그간 활동가들이 열심히 싸워서 얻어낸 성과이며, 미디어교육도 8~90년대부터 운동의 일종으로 시작된 역사가 쌓인 결과이다. 그러나 지역미디어센터를 만들면서 본래 의도했던 역할을 하지 못하는 ‘먹혀버린' 미디어센터도 많고(물론 ‘먹으려는' 움직임도 거세고) 미디어교육의 프레임을 둘러싼 싸움도 치열하다.

 

 

워크샵이 끝나고 일본의 활동가들과 미디어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베네수엘라의 공동체TV 사례를 들었을 때가 생각났다. 처음에 베네수엘라의 사례를 들었을 때는 이것이 미디어운동의 정답이라고 느껴졌다. 그런 공동체TV가 성공할 수 있었던 그 나라의 특수한 문화와 상황과 과정이 존재하는데도, 그런 전후 상황보다 결과물로써의 ‘공동체TV'만이 정답인 것처럼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일본에서도 한국의 미디어센터나 미디어교육이 그런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사람들이 나처럼 순진하고 단편적으로만 생각하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한편, 이번 캠프는 일본의 ‘프리터 노조'의 활동가들과도 함께 했다. 프리터 노조는 나에겐 참 생소한 존재인데 (한국에도 [전국백수연대]라는 비슷한 조직이 있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프리터 노조라는 명칭과는 달리 프리터(*주2)들만의 조직이 아니라 우리나라로 치면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생, 빈민, 홈리스 등 ‘일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문제를 모두 포괄하는 집단이다. 가장 조직되기 힘들 것 같은 사람들의 조직이라는 신기함을 채 느끼기도 전에, 그들이 당장의 행동이 필요한 어떤 문제에 대해 알려주었다. 이른바 ‘나이키 공원' 문제였다.

 

 

시부야에는 ‘미야시타 공원'이라는 구립 공원이 있는데, 그 공원을 나이키가 사들여 ‘나이키 공원'이라는 유료 스포츠 공원을 만들 계획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교섭과정도 불투명 한데다가(*주3), 미야시타 공원 안에 형성되어 있는 홈리스들의 공동체에 대한 대응방식도 문제가 많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공공의 공간을 일개 기업이 영리목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에 반대해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었고, 우리도 ‘나이키 공원' 반대 집회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동안 나는 주로 집회를 촬영하는 쪽이었지, 직접 참여해본 경험은 별로 없어서 설레임 반 걱정 반이었다. 특히 정권이 바뀐 이후로 사람들이 모이기만 하면 막 잡아들이는 한국의 분위기에 익숙해져 있어서 ‘설마 첫 연행경험을 일본에서 하는 건가'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도 잠깐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행진을 시작했고, 그동안 말로만 들었던 일본의 ‘사운드 데모'를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전형적인 사운드 데모처럼 DJ가 음악을 틀고 춤추는 것은 아니었지만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 악기연주를 하는 사람, 각종 소리를 내는 사람, 빨간 띠 두르고 팔뚝질 하는 사람 등 여러 사람들이 섞여 각자 취향대로 함께 행진하는 모습은 정말 신선했다. 염치와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본과 권력에 대항하는 우리의 방식은 기본전제부터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일본의 집회문화에서 그런 실마리중 하나를 발견한 것 같았다.

 

 

일본에 있던 일주일동안 정말 많은 활동가들을 만나고, 많은 일들을 경험했다. 어떤 것은 채 소화되지 못한 채 그냥 빠져나오기도 했고, 낯선 외국어로 다른 나라의 활동가들로부터 용기가 되는 말을 듣기도 했다. 뭔가 번쩍 하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했고,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도 있었다. 새로운 것들이 한꺼번에 너무 많이 들어오면서 아직도 안에서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 그냥 여기저기 쑤셔 박아져 있다. 처음에 감이 잘 오지 않았던 ‘국제연대'도 실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다른 나라의 활동가들을 만나면서 즐거웠고, 고립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는 것이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이 느낌은 좀 오래 갈 것 같다. 앞으로 다시 한국 땅에서 한국말만 쓰면서 활동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주1: 소위 ‘미디어운동'이라고 한 이유는 ‘미디어'는 원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도구라는 매우 넓은 의미의 단어이지만, 보통 ‘미디어운동'이라고 할 때는 사진, 비디오, 라디오 등 좁은 의미의 ‘미디어'를 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주2: free(자유)와 arbeiter(아르바이트)의 합성어로,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면서 남는 시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일본의 신조어.

 

 

*주3: 이런 경우 지자체는 통상 공모를 통해 매각처를 결정하지만 미야시타 공원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나이키로 결정되었고, 왜 나이키며, 왜 스포츠 공원인지에 대해 구민들에게 정확한 설명을 하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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