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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66호 이슈와 현장] 강을 걷다 - 낙동강 3.14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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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66호 / 2009년 10월 29일


       
 강을 걷다
- 낙동강 3.14 프로젝트
 
박배일 (평상필름)

 

 

 

 

[편집자 주] “자연스런 물의 흐름은 3.14배의 곡선을 그리며 흐른다. 이것은 지구의 자전과 인력이 만드는 원리 때문이다.” ‘낙동강 3.14 프로젝트'는 자연의 순환을 따라 억만년을 흘러온 낙동강을 걸으며 아름다운 자연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프로젝트다. 이 과정을 통해 낙동강 3.14 프로젝트는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의 허구성을 알리고 개발이익만 앞세운 대규모 토목공사에 대한 경고음을 울리고자 한다. 부산독립영상패 평상필름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배일님은 함께 낙동강을 걸으며 이 프로젝트와 낙동강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강에게 부치는 편지로 시작하는 이 글을 통해 강을 지키려는 낙동강 3.14 프로젝트의 발걸음과 기록의 의미를 되짚어 볼 수 있길 바란다. 
 
  


 
강에게 부치는 편지

 


“잘 지내고 있냐.”는 인사말로 편지의 첫줄을 채우기엔 너무나 불안한 마음으로 흐르고 있다는 걸 잘 알기에 미안한 마음으로 이렇게 펜을 듭니다. 어떤 말로 사과를 해야 하고 용서를 빌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수 천 만년을 3.14의 곡선을 이루며 흘렀던 당신을 사람만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삽질을 하고, 시멘트를 바르려는 현실에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1차적으로 세상 만물을 경제적 논리로 바라보는 지도자를 뽑은 저희들 잘못이요, 최종적으로 불도저 같은 그의 행보를 막지 못한 저희의 잘못입니다.
사실 그는 대통령 후보시절부터 당신을 잘 파내어 운하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첫 번째 공략으로 내세웠습니다. 건설경기를 활성화시켜 10년 동안 가라앉았던 경기를 살리겠다는 공략에 저희들은 ‘혹'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경제만은 살려라'라는 국민들의 몇 안 되는 지지에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그는 당신을 삽으로 파기 전 스스로 무덤을 팠습니다. 그렇게 먹기 싫다던 미국산 쇠고기를 적극 수입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작년 5월과 6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위해 들었던 촛불 행렬 속에서 운하의 허와 실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그 결과 당신을 한줄기로 잇겠다는 계획은 사라지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그는 머리가 좋았습니다. 그리고 행동도 빨랐습니다. 임기 내 당신을 운하로 만들진 않겠다면서, 당혹스럽게도 22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당신을 살리기 위해 쓰겠다고 했습니다.
기쁜 소식이지요. 당신을 더럽히는 주요 오염원을 없애고, 고질적으로 물이 부족했던 곳을 위해 정비 사업을 진행하고, 매년 홍수로 피해 보는 지천의 여러 마을에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 사업을 진행한다면 당신을 더욱 깨끗이 할 뿐만 아니라 저희들도 당신 덕에 풍요롭게 물을 마시며 당신과 함께 안전한 삶을 누릴 수 있을 테니까요.
많은 사람이 꿈꿔왔던 삶은 이루어지는 듯 했으나 그는 쥐처럼 우리의 예상을 속속 빠져나갔습니다. 죽지도 않은 당신을 살리겠다고 애먼 모래를 파내고, 축구장, 야구장을 만들고, 자전거 도로를 만들고, 10개가 넘는 보를 세워(그들은 ‘보'라고 하지만 ‘댐'이지요.) 부족치 않은 물을 확보 한다더군요. 아무리 줄여도 3년은 신중히 연구해야 할 환경영향평가도 3개월 만에 마쳐버리고 10월이면 공사가 들어간답니다. ‘간답니다.'라는 서술어가 무책임해 보이지만 당황할 사이도 없이, 잘못 됐다 외칠 사이도 없이, 분노할 사이도 없이 모든 게 그의 계산 아래 막 가고 있습니다.
부랴부랴 저희들은 그동안 저희를 지켜주었던 당신을 지켜야한다는 사명감에 이것저것 일을 벌였습니다. 변명이지만 그는 너무 예상과는 달리 머리가 좋았습니다. 그는 당신을 지켜야한다는 사람들이 모일 수 없게 여기저기서 삽질을 해대고 있었습니다. 당신에게 관심이 쏠릴까 제대로 된 목소리를 막으려고 날치기로 법을 통과시키고 노동자, 빈민, 촛불은 탄압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이리저리 쏠려 다니며 당신을 잊어갔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공사 준비는 마무리 단계였습니다. 막으려 해도 힘이 없고 싸우려 해도 전략이 떠오르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죄송하다는 말로 어떻게 이 죄송스러움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

 

 

요 며칠 후손들에게 할 변명을 만들어 놓기 위해 저의 무기인 카메라를 들고 당신을 찍었습니다. 당신은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처럼 땅을 포근히 감싸며 아름답게 흘러가더이다. 마지막일지 모를 그 모습을 담으며 긴 한숨만 뱉었습니다. 늘 그렇게 있어줄 것 같던 당신의 모습이 변한다고 생각하니 한숨 외엔 건넬 말이 없었습니다. 당신이 품고 있는 수많은 생명이 사라진다 생각하니 미약한 저의 힘이 부끄러웠습니다. 지켜주지 못해 죄송합니다. - 2009년 당신을 담고 온 날. 박배일 올림. 


낙동강 3.14 프로젝트


‘낙동강 3.14 프로젝트'를 소개하기 전, 이렇게 강에게 편지를 쓰고 사죄해야한다고 생각했다. 4대강 사업이 발표되고 처음으로 강을 걷고, 보고, 느끼면서 수많은 생명을 품고 살아온 강에게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아 죄송하단 말을 하고 싶었다.
이명박 정권이 대운하 사업을 말하지 않고, 4대강 사업을 말하지 않았다면 강을 걷는 일도, 보고, 느끼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강을 직접 보고, 걷고, 뛰어들고, 모래 위를 뒹굴면서 낙동강 3.14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4대강 사업의 허와 실을 알리는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고, 강을 걷기 위한 정보를 제공하는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
부족하긴 하지만 4대강 사업의 허와 실은 언론에서 가끔 다룬다. 정확하겐 모르지만 4대강 사업이 정부가 홍보하는 것과 다른 사실들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다양한 사안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집중하기 어렵다는 변명을 대기도 하지만 용산의 참사처럼, 쌍용차 파업처럼 생계와 직접 관련이 없는 것도 직접행동을 머뭇거리게 하는 원인일 것이다.

 


 

 4대강 사업 발표 이후 총 8번 낙동강을 찾았다. 지율 스님과 비를 맞으며 경북 안동 일대를 돌아다녔고, 안동 병산에서 ‘모래밭 영화제'를 했고, 낙동강 하구인 부산 삼락 둔치에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를 외치면서 카메라를 들고 강을 담았다.
강을 걷다보니, 담다보니 강 죽이는 4대강 사업이고 뭐고 잘 모르겠고, 강이 아름답다는 사실이 몸으로 느껴졌다. 누군가가 이 강을 훼손하려한다면 반드시 막아야겠다는 다짐도 함께 들었다.

 

 

낙동강 3.14 프로젝트의 목적은 강을 걸으며 강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 깨달음을 함께 공유하고, 공유의 힘을 모아 강을 지키는데 힘을 보태자는 것이었다. “낙동강을 제주 올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처럼 걸음을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보자.”는 목표 아래 사람들이 하나하나 결합했다.
도보코스를 여는 팀, 영상 팀, 대중 집회를 만드는 팀으로 역할을 분담해 낙동강 3.14 프로젝트를 지원할 수 있는 조직이 아닌 개인의 느슨한 네트워크 모임의 형태로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7월 31일 경북 안동에 위치한 병산서원 모래밭 영화제가 그 첫 걸음이었다. 달빛 쏟아지는 강변 모래밭에 앉아 강에 관한 영화를 보고 낙동강 3.14 프로젝트의 의지를 강에게 전달했다. 다음날 병산서원에서 구담습지까지 도보로 이동하며 강의 원형을 온몸으로 느꼈다. 이후 도보코스를 여는 팀은 3박 4일간 안동의 병산서원에서 구미의 해평습지까지 걸으며 안내띠를 나무에 매달아 낙동강의 새로운 길을 열었고, 수시로 강을 걸으며 그 감흥을 홈페이지에 올려 공유하고 있다.
대중 집회를 만드는 팀은 환경단체들과 연대해 ‘920 시민행동의 날,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를 공동 기획, 주최했다. 4대강 사업 이후 잘려나갈 부산 삼락 둔치에서 열린 문화제는 4대강 사업 중단과 생명과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기획했다. 3천 명의 시민들이 모여 강의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고 그 기운이 강을 따라 흘러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걸 목표로 함께 준비했다. 예상과는 달리 시민들의 참여가 미미했지만 흩어져있던 힘들이 한자리에 모여 같은 목소리를 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었다.
영상팀은 낙동강 3.14 프로젝트의 활동을 기록에 담는 한편, 10월 이후 사라질 낙동강의 모습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기록하고 있다. 보가 들어설 8곳과 원형 그대로 보존해야할 절경들을 담았다. 공사가 들어가고 변화할 모습을 비교하기 위해 최소 3개월에 한 번씩 같은 장소에서 촬영할 계획이다. 그 내용은 낙동강 3.14 프로젝트 홈페이지나 구글 어스에 낙동강 3.14를 검색해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낙동강 3.14 프로젝트는 각자가 맡은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가 4대강 사업을 막는데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누구 하나 이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낙동강의 현장을 국민 누구나 안방에서 모니터할 수 있게 하면서 동시에 현장에서 직접 걸으면서 느끼게 하는 운동방식의 호소력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라는 낙관적 전망을 가지고 진행했던 사업은 방향을 조금 잃은 듯하다. 삽질은 시작되었고, 곧이어 순례길은 막힐 것이다. 강의 아름다움은 담았지만 이 영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현실에 맞는 방향과 방법을 모색하고 목표를 설정해야 할 때이다.
 
 
강을 담기

 


강을 담기 위해 3일을 강에서 살았다. 강은 유유히 흘렀지만 그 평온함이 지속되지 못할 거라는 불안에 맘이 불편했다. 최근 들어 몇몇 사람들이 평상에 4대강 문제를 영화나 방송 콘텐츠로 제작하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솔직히 지금 와서 무엇을 어떻게 담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무엇을 어떻게 담아야 할지 판단에 앞서 할 의지와 역량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지난 7월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차원에서 비공식적으로 4대강 사업을 미디어 활동가들이 어떻게 다뤄야할지 고민했던 적이 있다. 그때 결론이 당장 어떤 행동이 없고, 뭘 찍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상시적으로 연대하면서 10월 공사가 시작되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고 그때 가서 적극적으로 고민해보자는 결론이었다.
10월이 되었고, 공사는 곧 들어간다. 사람들의 움직임은 미미하고, 무엇을 어떻게 담아야 할지 아직도 판단이 서지 않는다. 영상을 제작한다고 해서 어떤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 든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이러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도 생각해본다. 미디어 활동가들이 적극적으로 연대해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 4대강 사업 반대 투쟁을 해야 한다면 누군가가 주도적으로 뭔가를 하기보다 뜻있는 여럿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흔해 빠진 말로, 역사에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선 ‘무엇을...어떻게...어떤 효과를...' 등을 생각하기 이전에 적극적 의지와 행동이 필요할 때이다. 
 
  


 
관련 사이트

 

낙동강 3.14 프로젝트 홈페이지 http://nakdongkang314.org/

 

[영상] 강에게 부치는 편지 - 모래밭 영화제와 낙동강 도보 순례 (촬영편집 박배일)
http://nakdongkang314.org/?mid=combat&document_srl=1814

 

[영상]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 920 시민행동의 날 (촬영편집 박배일)
http://nakdongkang314.org/?mid=combat&document_srl=1861

 

부산독립영상패 평상필름 홈페이지 http://www.psfil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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