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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67호 이슈와 현장] 2009 장애인미디어운동네트워크 상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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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67호 / 2009년 11월 30일





2009 장애인미디어운동네트워크 상영회
새로운 만남의 시작 ‘천천히 다시 보기
 
 
 
류미례 (푸른영상 다큐멘터리 감독)

 

 

 

 

해마다 가을이 되면 농부들이 가을걷이를 하듯 장애인미디어운동네트워크(장미네)에서는 상영회를 합니다. 한 해 동안 이루어졌던 장애인미디어교육의 성과들을 거둬들이고 함께 나눌 거리들을 갈무리해서 잔치를 엽니다. 첫 해에는 모든 장애유형의 거의 대부분의 결과물을 함께 나눴지만 장애인미디어교육이 해가 갈수록 양적, 질적으로 자라는 덕분에 잔치를 준비하는 일꾼들은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합니다. 그 많은 성과들을 어떤 기준으로 골라서 어떤 상을 차릴지 고민할 정도가 된 거지요. 한마디로 행복한 고민이겠습니다만 긴 고민 끝에 올해에는 '미디어교육 결과물을 통해 본 청각장애인과 지적장애인의 미디어표현 특성과 단계'를 주제로 잔치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다소 어려워 보이는 이 주제는 잔치가 가까워짐에 따라 이런 제목으로 산뜻하게 변신합니다. '천천히 다시 보기'

 

 

새로운 세계에 대한 예의

 


‘사람들은 모른다.'

 

 

이 문장을 최근에 생각해놓고서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했던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공유하는 가족조차도 서로에 대해서 안다고 말하는 것에 신중해야 합니다. 양면, 아니 다면적인 인간들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또 각자의 역할과 자리에 따라서 딱 그만큼을 보여줄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다큐멘터리 만들기를 뒷전으로 미뤄두고 미디어교육에 전념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누군가의 대변자가 되기보다는 누군가의 조력자가 되자. 그리고 스스로가 말하게 하자. 최근 몇 년 동안 저의 모토입니다.

 

 

생뚱맞게 이런 말들을 주저리는 이유는 '천천히 다시 보기'를 보면서 타인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춘천 계성학교 학생들이 만든 『 칭찬 릴 레이 』 와 애화학교 학생들이 만든 『 나의 10년 후 모습 그려보기 』 에는 청각장애인 미디어교육의 시작이 어떠한지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안녕 친구야』와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다』를 보다 보면 새로운 세계와 어떻게 만나야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평등하다'는 문장에 대해서 부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다가오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안에서 이 말은 실감나지 않습니다. 지금 저는 사무실에서 혼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은 “참 적막하다”라고 썼다가 지웁니다. 적막하다고 느끼고 가만히 마음을 내려놓는 순간 똑똑 물 떨어지는 소리, 씽씽 차소리,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옵니다. 비장애인들의 일상은 수많은 소리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접하는 영상들 속에서도 소리는 이중, 삼중의 층으로 겹겹이 쌓여진 상태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천천히 다시 보기'를 보면서 문득 낯선 세상을 느꼈습니다. 그 세상에는 소리가 없습니다. 그 조용한 세상은 등장인물들이 수화로 말을 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비장애인들이 만드는 영상물에는 흔히 사운드디자인이라는 공정이 있습니다. 대사뿐만 아니라 현장음, 음악, 내레이션 등을 섞어서 영상물을 사실적으로, 혹은 감독의 의도에 맞게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청각장애인이 만든 영상물 속 세상은 정말 고요합니다. 그 고요를 낯설어하다가 문득 고요 속에 자신을 내맡깁니다. 익숙한 소리들이 없지만 그곳은 새로운 세계입니다. 처음의 낯설음을 조금만 가라앉힌 채 조용히 시선을 두다 보면 그 세계에 조금씩 빠져들게 됩니다. 평소 소리로 인식했던 세상이 새롭고 생경하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세상은 그 영화를 만든 감독들의, 청각장애인들의 세상입니다. 그렇게 관객들은 세상을 새롭게 인식합니다.

 

 

‘보고 듣는' 방법을 통해 인식했던 세상을 ‘듣지 않는' 방법으로 인식했을 때 그동안 잠자고 있던 다른 감각들은 새롭게 깨어납니다. 그리하여 들을 수 없는 사람을 장애인이라고 분류했던 이 세계의 질서는 영화 속에서 완벽하게 역전됩니다. 귀가 들리는 사람들에게는 청각이 오히려 장애 요소로 작용하여 다른 감각들을 통해 세상을 느끼는 법을 잊어가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보고 듣는' 방법을 통해 인식했던 세상을 ‘듣지 않는' 방법으로 인식했을 때 그동안 등한시 되었던 다른 감각들이 깨어납니다. 귀의 역할을 젖혀놓자 등장인물들의 눈과 입술과 손짓을 좀 더 주의 깊게 바라보게 됩니다. 이 새로운 방식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발견하게 해줍니다. 거꾸로 이 세계를 다수 논리로 획일적이고 습관적으로 수용할 때 우리가 놓치는 것들에 대한 발견이기도 합니다.

 

 

물론 부산 배화학교 학생들이 만든 『대답』처럼 다른, 다시 말하면 비장애인들에게 익숙한 영상문법을 제시하는 영화도 있었습니다.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의 김경화 선생님은 청각장애학생들이 자신들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어서 비장애인을 배려해서 소리를 디자인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김경화 선생님이 얘기해준 다른 에피소드는 약간 충격이었는데 지역의 한 방송국에서는 청각장애인들이 만든 영상물 속 고요한 세상을 방송사고로 인식해서 해당 꼭지가 개편 당했다고 합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해나 예의는 여전히 부족한 것 같습니다.

 

 

타박타박 걸어온 길

 


 

지적 장애인들이 만든 영상물들 또한 새로운 세상을 선보입니다. 하지만 그 세상은 청각장애인들의 영상물처럼 영상물 안에 그 세상이 완벽하게 재현되어 있다기보다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이해를 구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미디어교육 과정을 세밀하게 기록한 『잘했어요?』가 먼저 상영되었습니다. 그 영화를 보다 보면 미디어교육이라는 것이 생각대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교육참여자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즐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잘했어요?』가 끝난 후에는 교육결과물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전주자림학교에서 만든 『누난 너무 예뻐』에는 뮤직 비디오의 주인공이 되어보는 교육참여자들의 즐거운 모습이 꾸밈없이 담겨져 있습니다. 『누난 너무 예뻐』를 보다 보면 참여자들이 어떻게 카메라와 친해지는지 텔레비전에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나온다'는 사실을 얼마나 즐기는지가 느껴집니다. 두 번째 상영작인 성베드로학교 학생의 『엄마, 아빠, 누나』에는 자기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잘했어요?』의 주요 등장인물이기도 한 백구현 학생이 예쁜 엄마, 착한 아빠, 사랑스러운 누나, 그리고 자신의 꿈에 대해서 더듬거리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을 때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는 세상에 꼭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영화로 다가옵니다.

둔촌고 학생들의 손바닥영화에는 사진영화에서 한 단계 발전한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배가 아픈 윤기』는 윤기의 위기상황을 해결할 수 있게 도와준 도우미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태권 소녀』는 별명을 부르며 놀리는 친구들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나타냈습니다. 이 두 편의 영화는 참으로(!) 짧습니다만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싸맸을 학생들, 그렇게 만들어진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컷, 한 컷 콘티를 그렸을 학생들, 그리고 그 콘티에 따라 안 되는 대사를 연습하며 열심히 NG를 내고 또 OK에 기뻐했을 학생들의 모습이 떠올라 저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선보였던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에서 만든 단편영화 『나의 친구』는 둔촌고 친구들의 노력들이 쌓이고 쌓이면 어떤 식으로 재밌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 어떻게 보면 둔촌고 학생들의 미래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한 가지 이야기를 손바닥영화로 만들다보면 이야기 쌓기의 재미를 알게 됩니다. ‘함께사는세상'은 생활공간이라 영화제작팀들이 매일 만날 수 있습니다. 낮이나 밤이나 시간이 날 때마다 함께 모여 영화의 주제를 정하고 주제가 정해지면 동료들을 인터뷰합니다. 그렇게 모아진 이야기들을 재료로 시나리오를 씁니다. 그렇게 만지고 만지고 만질수록 이야기들은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이 모든 과정을 모르고 본다면 어설프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발연기 때문에 실소가 터지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하지만 메이킹필름을 보고 참가자들이 사진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가 손바닥영화로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그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이야기를 쌓아왔다는 것을 아는 순간, 지적 장애인 미디어교육이 밟아온 길을 함께 걸으며 마지막 영화를 만나는 순간,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살짝 감동의 눈물이 내비쳐지기도 합니다. 처음 '가능할까'라는 갸웃거림 속에서 시작되었던 지적장애인 미디어교육이 이렇게 성장해왔다는 것이 영상물 안에 그대로 드러나 있으니까요.

 

내가 받은 선물

 

우리 사회에는 장애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장애인 중심으로 움직이는 이 세계에서 이들은 소외되고 배제되고 때론 비정상으로 치부되곤 합니다. 그러나 ‘천천히 다시 보기'는 장애와 비장애, 더 나아가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경계가 얼마나 편협한 것인가를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이 날 상영되었던 영화들은 타인에 대한 이해는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 겸손하게 제안합니다. 감독들은 자신들이 인식하는 세계를 정성을 다하여 선사했습니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 세계를 감독들과 같은 처지가 되어, 귀를 막고 시간을 거슬러가며 따라갔습니다.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감각을 통해, 또한 그 사람의 처지가 되어보려는 공감이라는 마음을 통해 감독들과 관객들은 같은 자리에 섰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부터 소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상영회장을 나서며 오래된 인디언 속담을 생각했습니다.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그의 신발을 신어보십시오.'

1년 동안 장애인미디어교육의 참여자들은 정성을 다한 신발을 내밀었고 그날 관객들은 고마워하며 그 신발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소통과 이해가 시작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진면목을 남김없이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일부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길, 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기 위해 노력하는 일,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예의를 갖고 천천히, 다시, 보기. 소통불가능의 현실을 개탄하는 것을 그만 두고 저는 그날의 그 선물을 소중하게 껴안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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