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ACT! 67호 이슈와 현장] 상상력에 자유를! - 문화예술인 릴레이 퍼포먼스를 돌아보며

본문

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67호 / 2009년 11월 30일




상상력에 자유를! - 문화예술인 릴레이 퍼포먼스를 돌아보며
 
 
나영 /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팀장

 

 

 

 

2009년 3월, 문화연대를 비롯한 10여 개의 문화단체들은 공동으로 ‘이명박 정부의 문화정책 10대 실정'을 발표했다. 원칙 없는 코드인사, 공공기관의 자율성 침해, 공보기능의 과대화, 표현의 자유 침해, 독립/인디문화에 대한 일방적인 지원 중단 또는 변경, 국립오페라단합창단 해체, 연예인 응원단 지원 등 장관의 재량 남용과 예산 낭비, 문화보다 개발논리가 앞선 관광 정책, 정책전망 부재 등이 주요한 내용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장관들 중에서도 유독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행보는 거침없고 뻔뻔하다. 그는 국회에서 기자들을 향해 막말을 서슴지 않았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표적감사와 강제 해임을 하면서도 ‘정상적인 업무 수행일 뿐'이라며 밀어붙였다. 한예종 감사 문제로 1인 시위를 하던 학부모에게는 ‘세뇌를 당했다'며 막말과 반말도 거침없이 내뱉었다. 노무현, 김대중 두 전 대통령의 서거 정국을 거치며 내각 개편의 바람이 한바탕 몰아치자 잠시 주춤하는 듯했으나 그조차도 잠시일 뿐, 그는 살아남았다. 그 스스로도 늘 자랑하듯 강조하는 ‘자신은 이명박을 닮아가는 것 같다'는 말이 결코 아부나 허풍이 아닌 것이다. 그는 진심으로 이명박을 존경하는 것 같다. 조직폭력배 집단의 보스와 2인자처럼, 히틀러와 그의 곁에서 선전?선동을 도맡았던 괴벨스의 관계처럼, 이명박과 유인촌의 관계는 쉽게 떨어뜨릴 수 없는 단단하고 전략적인 관계이다.

 

 

문화예술인들이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이명박-유인촌 커플의 조폭 정치가 절정에 달하던 지난 5월 경부터였다. 용산 참사의 책임은 희생자들에게 덮어씌우고, 낙하산 인사가 판을 치고, 경찰의 폭력이 난무하며, 미네르바는 구속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미디어법 개정(개악)의 필요성을 설파하는 광고와 성명을 내고, 4대강 사업을 홍보하기 위해 ‘대한늬우스'를 만드는 과감함을 보여주었다. 그간 촛불집회와 용산 참사 현장 등에서 작은 예술 행위 하나라도 힘이 될 수 있도록 보태고 싶어 꾸준히 참여해왔던 문화예술인들은 조직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한국작가회의 뿐 아니라 시국선언을 계기로 모인 작가들의 모임인 ‘작가선언 6.9'도 작가들이 각자 작성한 한 줄 시의 형태로 시국선언을 발표하였고 만화인들은 만화로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영화인, 연극인, 미술인, 음악인들의 시국선언도 줄줄이 이어졌다. 특히 미술인들은 시국선언을 발표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문화 행정 정상화와 예술 자율성 회복을 위한 미술인 모임-상상력에 자유를!'이란 제목을 걸고 대대적인 토론회를 열었다. 이 날 토론회의 제목은 그대로 이후 지속된 미술인 모임의 이름이자, 동시에 문화예술인 공동행동의 타이틀이 되었다.

 

 

‘문화 행정 정상화와 예술 자율성 회복을 위한 문화예술인 모임-상상력에 자유를!'

 


문화예술인들의 릴레이 선언 발표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대한 표적감사와 억지에 가까운 ‘감사 결과 처분 통지'의 내용이었다. 엄연한 고등교육기관인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대하여 교육과정을 실기 중심으로 바꾸라느니, 통섭 사업은 중단하고, 서사창작과는 폐지하라느니 하는 내용의 ‘지시'를 내리는 것은 정부의 월권행위이자, 교육권과 학습권을 침해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한예종에 대한 이와 같은 일련의 조처들은 그간 뉴라이트 그룹인 ‘문화미래포럼'에서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내용과 동일한 것이어서 더욱 빈축을 살 수밖에 없었다.

 

 

문화예술인들의 공분을 샀던 또 한 가지의 조폭 행정은 참여정부 시절 임명되었던 특정 기관장에 대한 문화부의 표적감사와 강제해임이었다.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과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에 이어 황지우 한예종 총장만 남았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퍼져있을 때쯤 예상대로 한예종에 대한 감사가 이루어졌고 황지우 총장이 사퇴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게다가 김정헌 위원장의 경우 해임의 사유로 기금 투자로 인한 평가손실을 명분으로 들어놓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해임 후 문화부가 직접 예치금 환매를 강행해 투자 손해를 자처하기까지 했다. (당시 기금자산운용위원회에서는 ‘금융시장 추이에 따라 회복될 수 있으니 지속 보유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이렇게 억지를 부리면서까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뒤흔들면서 문화부는 자신들의 입맛대로 대대적인 개편 작업을 시작했다.

 

 

영화 쪽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압력을 행사하는 한편, 영화단체들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를 시행하였고 ‘독립영화마케팅지원사업'은 삭제되었다. 등급심의에서는 영화 < 반두비 > 사례와 같이 정치적인 내용들에 대한 보수성향이 강화되었다.

 

 

대중음악은 아예 노리개감으로 전락했다. ‘나라사랑 랩송'을 만든다느니 하면서 대중음악인들을 필요에 따라 동원하려 하는가 하면,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 지원은 돌연 중단하고 ‘음악산업진흥중기계획'은 SM엔터테인먼트 소유의 노래방에서 발표하면서 그 방향을 명확히 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미술인들이 처음으로 시국선언을 겸한 대대적인 토론회 자리를 마련했다. 2009년 6월 13일, 토론회 자리에는 시국선언에 동참했던 백여 명의 미술인들 뿐 아니라 작가와 영화인, 기자들과 한예종 학생들까지 함께했으며 근래에 보기 드문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사실 주로 개인적인 작업들에 열중하기에 바쁜 예술인들이 공동으로 대응해야 할 문제에 대해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토론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토론은 뒤풀이 자리까지 이어졌고, 이 날 모인 각 장르의 문화예술인들은 일단 공동의 대응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그 후 몇 차례에 걸쳐, 미술, 영화, 음악, 문학, 만화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이 문화연대 사무실에 모였다. 각자의 상황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함께 행동할 방안에 대해 토론해 보았지만 생각보다 방향을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모인 이들이 특정한 단일 조직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도 아니었기에 진행하고자 하는 사안마다 일일이 개별 예술인들의 동의를 구해야 할 판이었다. 시국 전반에 관한 내용을 가지고 할 것인지 아니면 문화부와 문화행정에 중점을 둘 것인지, 유인촌 퇴진을 전면화 할 것인지 그보다 근본적이지만 추상적인 문화행정 정상화를 내걸 것인지 등 다양한 부분에서 의견이 엇갈렸다. 결국 그 과정에서 처음부터 논의를 함께했던 ‘작가선언 6.9'는 빠지게 되었다. 이 논의에서 오가는 다양한 의견의 차이를, 다시 수많은 의견이 갈리는 작가 모임에서 의결하고 추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차례의 모임과 워크숍이 진행된 후, 모임 이름을 미술인들이 처음 내걸었던 토론회 제목과 동일한 ‘예술 자율성 회복과 문화 행정 정상화를 위한 문화예술인 모임-상상력에 자유를!'로 정하고 공개토론회와 ‘문화부 앞 릴레이 퍼포먼스'를 시작하기로 했다. 
 

 


7월 15일 공개토론회 이후 시작된 7월 29일의 첫 번째 퍼포먼스는 ‘대안공간 풀'의 디렉터인 고승욱 작가가 맡았다. 그는 파란색 판쵸 우의를 입고 썬캡 모자를 내려 써서 눈을 가린 뒤 캡 위에 ‘좌파 적출이 아니라 민주주의 적출이다'라는 문구를 써 붙였다. 손에는 ‘삽질 행정에 멍든 무지개'를 표현한 그림판을 들고. 가만히 있어도 짜증이 나는 7월의 습도를 이기며 문화부 꽃밭 앞에 엉거주춤 앉아있는 그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인간이 아닌 외계인, 비장함보다는 비웃음의 포스가 풍기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모습은 지나가는 많은 시민들과 문화부 직원들의 눈길을 끌었고 언론을 통해 퍼포먼스의 의도도 알릴 수 있었다.

 

 

그 후 매주 수요일마다 진행된 ‘릴레이 퍼포먼스'의 두 번째 순서는 대중음악‘의견가' 서정민갑 씨. 워낙 발이 넓은 그는 지인인 인디 뮤지션 중 한 명이 사용하던 기타를 들고 나와 ‘차라리 기타 줄을 끊어라'며 문화부의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 지원 철회와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권력 남용을 침묵으로 규탄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싼' 황금빛 기타줄 여섯 개를 하나씩 조여 모두 끊어버렸다. 그가 의도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가위로 한 번에 끊지 않고 줄 하나하나를 조금씩 조여 끊어버리는 그의 행위는 마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각종 지원을 중단하면서 조금씩 문화예술인들의 숨통을 조여 나가는 문화부의 행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세 번째 퍼포먼스는 우천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두 주나 연기되어 진행되었다. 세 번째 퍼포먼스에 나선 만화가 신성식 씨

는 ‘다르니까 산다'라는 주제로 문화부 앞을 지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캐리커처로 그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다양성을 무시하고 문화예술을 정권의 입맛대로 통제하려 드는 문화부를 비판하고자 한 것이었다. 예정된 한 시간이 다 지나고도 캐리커처를 그리려고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어 이 날 퍼포먼스는 삼십 분 가까이 더 진행되었다. 어물쩡한 자세로 뒤에서 구경하던 문화부 직원 몇 명도 이 날 캐리커처를 그려갔다. 그들이 받아간 캐리커처 아래에는 ‘문화행정 정상화!'라는 메시지가 선명히 적혀 있었다.

 

 

네 번째로는 강장원, 이기언 작가의 ‘제발, 상상력에 자유를 주자'라는 재밌는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두 작가는 직접 작사, 작곡한 요상한 노래가 흘러나오는 스피커를 헬멧에 달고 그 헬멧을 머리에 쓴 채 문화부 앞에서 출발하여 각자 광화문 광장과 청계광장을 돌며 시민들을 직접 만나고 다녔다. 한편, 문화부 앞에서는 정두리 작가가 보라색 꽃에 ‘상상력에 자유를' 이라고 쓰인 쪽지를 매달아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이들은 ‘민주주의와 상상력은 누군가에 의해 구획되고 재단될 수 없는 것'이라며 ‘함께 소통하고 공유할 때 그 진정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라는 퍼포먼스의 진행 취지를 밝혔다.

 

 

 

 

다섯 번째 퍼포먼스에는 한예종 학생이 나섰다. 조형예술과에 다니는 조은실 씨는 직접 자전거 바퀴 하나를 헬멧에 달아 만든 조형물을 머리에 ‘쓰고' 나타났다. 한예종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단번에 짐작할 수 있을 만한 것이었다. 바로, 유인촌 장관이 가끔씩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가 한예종 문제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학부모와 학생에게 막말을 했던 사건들을 소재로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퍼포먼스의 제목은 ‘문화부, 작동이 안 됨' 이었다. 돌아가지 않는 머리, 겉으로만 ‘친 생태적인 척', ‘문화적인 척' 하는 자전거 바퀴.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문제인 만큼, 당일 퍼포먼스를 진행한 정은실 씨가 직접 작성한 유인물은 많은 사람들이 받아 보고 격려를 해 주었다. 한편 경찰은 정은실 씨에게 ‘그런 걸 머리에 쓰고 있으면 불법'이라는 말로 우리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여섯 번째 퍼포먼스는 문화연대에서 맡았다. ‘가카의 충실한 종이 되겠습니다'라는 제목을 걸고 머리에 붙인 종을 땡~땡~울리며 자전거를 타고 문화부 앞을 돌았다. 바닥에는 그간 유인촌 장관이 보여주었던 각종 망언과 실정의 사례들을 붙여놓았다. 1인 시위에 나선 학부모를 도대체 누가 세뇌시킨 건지 궁금해 하던 그. 그런데 그는 누가 그렇게 세뇌를 시켰을까? 이명박 가카께서 추진하시는 일이라면 하나라도 놓칠세라 열심히 쫓아다니며 앞장서 찬양하고 설파하는 그의 마음을 우리가 대변해 주었다. “가카의 충실한 종이 되겠습니다~!”

 

 

일곱 번째는 릴레이 퍼포먼스가 시작된 이래 가장 소란스럽게 진행되었다. 스피커와 음향기기가 동원되었고 조용히(?)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한 ‘캐비넷 싱어롱즈' 목인 씨의 퍼포먼스에 이어 ‘펑카프릭 앤 부슷다'의 임지훈 씨가 등장해 시끌벅적한 전원일기를 연주했기 때문이다. 임지훈 씨는 파란색 반짝이 의상을 입고 나와 키보드로 드라마 ‘전원일기'의 타이틀곡을 일부러 왜곡되게 연주한 후 한 곡이 끝날 때마다 키보드를 ‘쾅!' 내리치고선 “용식아~!”를 외치는 행위를 반복했다. 가끔씩 “용식아~!”가 지겹게 느껴지면 “용식아~배고프다!”, “용식아~집에 가자!”를 외치기도 했다. 임지훈 씨는 이 날 ‘용식아, 이제 그만 헤어져'라는 글로도 유인촌 장관이 다시 성실하고 순박한(?) 농촌 청년 ‘용식이'로 돌아와 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표현했다. 
 

 


여덟 번째 퍼포먼스는 만화가 이동수 씨의 캐리커처로 진행되었다. 세 번째 퍼포먼스를 진행했던 만화가 신성식 씨의 제목이 ‘다르니까 산다'였던 만큼, 이번엔 ‘달라서 행복해요'였다. 이동수 작가는 퍼포먼스 전에 유인촌, 이명박 캐리커처를 미리 그려 준비해 오기도 했다. 캐리커처를 받은 시민들은 이명박, 유인촌 캐리커처 위에 자신의 생각을 남길 수 있었다. 멋진 시민 한 분이 이명박 캐리커처 위에는 ‘도덕과 상식이 없는 정부! 각성하라!'는 글을, 유인촌 캐리커처 위에는 ‘이제 그만 쇼!!를 멈추고 마을로 돌아가라! 당신은 ‘이장'이 제격!'이라는 글을 남겨 주셨다.

 

 

 

아홉 번째 퍼포먼스는 다시 한예종의 순서였다. 한예종 학생비상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밤낮으로 고생하고 있는 이현빈 씨가 지난 퍼포먼스 때 작동이 되지 않는 자전거 헬멧을 만들었던 조은실 씨의 두 번째 작품 ‘고무악어 헬멧'을 쓰고 나왔다. ‘고무악어 헬멧'도 역시 자전거 바퀴로 만든 것이었는데 헬멧이 너무 커서 몸집이 작은 현빈 씨 눈 앞으로 자꾸만 흘러내렸다. 이 날 한예종은 권력을 향해 끊임없이 추악한 행위들을 반복하며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정치권을 거짓눈물을 흘리는 악어와 그 이빨에 낀 살점이 누구의 것인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쪼아 먹는 악어새의 공생관계에 비유하여 강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10월 14일, 문화부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과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것으로 열 번에 걸친 문화예술인 릴레이 퍼포먼스는 마무리되었다. 

 

 

퍼포먼스, 그 이후

 


열 번에 걸친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동안 3개월 남짓의 시간이 흘렀고, 유인촌 장관은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문화연대와 한예종을 제외하고는 모두 특정한 조직 형태가 없이 개별 문화예술인들의 참여를 일일이 조직해야 하는 것이어서 그 역할을 맡은 각 장르 담당자들의 부담도 컸던 것이 사실이다.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사이, 후속 활동으로 ‘좌파 10년'으로서가 아닌, ‘문화 민주주의 10년', ‘독립예술의 새로운 실험이 지속되었던 10년'으로서 각 장르에서의 성과들을 정리하는 백서를 발간할 계획도 세웠으나 개별 장르에 따른 활동 역량의 편차로 인해 이를 추진하는 일 역시 쉬운 것은 아니었다.

 

 

한편, 지난 국정감사 과정에서는 문화부가 예술의 전당에 대한 종합감사를 통해 무수한 비리를 적발하고도 이를 감사결과에서 의도적으로 누락시켰다는 사실이 적발되었다. 그 동안 문화부가 감사를 얼마나 자의적이고 정치적으로 이용해 왔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현재 ‘문화예술인 릴레이 퍼포먼스'를 함께 진행했던 문화예술인들은 개별적으로 또 다른 활동들을 기획하고, 진행해 나가고 있다. 음악인들은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을 통해 현재의 정치, 사회상을 반영하는 곡들을 릴레이로 발표하고 있고(*주1), 미술인들은 백서를 준비 중이다. 영화인들은 ‘영화인 연대회의'를 출범시켰다.

 

 

문화예술을 재단하고 통제하는 것은 결국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무한한 상상력과 사고의 힘을 가두는 것이다. 그러나 가둔다고 해서 쉽게 갇히지 않는 것이 또한 문화예술의 힘이기도 하다. 감시와 비판을 넘어서,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이번 문화행동에 함께 했던 문화예술인들은 따로, 또 같이 꾸준한 상상과 행동을 지속해나갈 것이다. 우리의 행동이, 곧 우리의 미래이므로!□

 

 

*주

 

1. 프레시안 사회면 기획기사 ‘RevolSong', 레볼루송,

 

http://www.pressian.com/article/ttag_article_list.asp?Tag_String=RevoluSong,%20레볼루송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