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67호 / 2009년 11월 30일
영화감독이 된 어르신들, 노인미디어교육에서 노인영화제까지!! |
정소희(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NGA 미디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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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09년 10월 14일~16일에 걸쳐 제2회 서울노인영화제가 열렸다. 작년 1회 노인영화제에 이어 2회 영화제에서도 많은 노인 미디어 실천가와 노인 감독들이 주목을 받았다. 미디어 수용자 입장에 머물러 있던 어르신들이 미디어를 통해 소통할 수 있도록 이끈 자리였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미디액트에서 2006년부터 서울노인복지센터와 함께 진행한 노인미디어교육이 있었다. 노인미디어교육 과정에서 노인 미디어 실천가와 노인 감독들이 발굴되어 영화제에 상영까지 하게 됐다. 교육과정과 노인영화제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노인미디어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정소희 강사님으로부터 그 내용을 듣고자 한다.
2009년 3월 끝자락에 시작된 탑골문화예술학교 노인미디어교육이 이제 32차시를(11월 현재) 앞두고 있습니다. 무려 10개월에 달하는 35차시의 대장정이 끝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2006년부터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와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실시한 미디어 교육이 벌써 4년째를 접어들고 있고 저는 그 4년째 교육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교육은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노인 영상 미디어 제작자를 양성해보자는 의도를 가지고 이전 교육에 참여했던 어르신들을 주 대상으로 다큐멘터리 제작과 극영화 제작까지의 교육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한 반당 15명, 총 두 반으로 30여명의 남녀 어르신이 참여한 이번 교육에서 저는 주로 처음 교육을 듣거나 컴퓨터에 많이 익숙하지 못한 분들이 많은 1반을 맡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각 어르신들이 수업에 참가 가능한 일정에 맞춰 잡은 것도 있기 때문에 이글을 혹시 보실 우리 1반 어르신들.. 너무 서운해 하시진 말기를~^^)
2개 반이 운영되는 대규모(?) 미디어 교육인 만큼 기획에 참여하는 인원도 많았습니다. 미디액트 활동가, 서울노인복지센터 복지사님들, 1,2반 주강사와 보조강사분들..
처음 저희가 기획했던 교육은 원대(?)했습니다. 어느 정도 미디어 교육 경험이 있으신 어르신들이기에 면접을 통해서 교육 참여 의지도 확인하였고, 그 분들의 영상 제작에 대한 꿈도 들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분들의 그전 교육 경험을 기본으로 해서 초보 어르신들보다는 좀 더 전문적인(?) 영상 작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커리큘럼을 짜게 되었습니다. 어르신들의 연대기 그리기 작업을 통해 개인의 연대기적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그 다음 좀 더 재미있는 작업을 하는 동시에 영상감각을 키우도록 팀별 극영화 제작을 하도록 하자는 계획이었지요. 게다가 작업 중간에 상영회도 하고 끝나고 난 뒤에 앞으로 활동을 위한 기획과 배급 교육까지 하는 것을 넣었습니다.
<교육 계획과 진행 과정>
- 주변 미디어 체험 - 알씨로 사진 동영상 만들기 & 인터넷 까페에 올리기
- 개별 다큐멘터리 제작 - 개인 연대기 그리기 & 캠코더 촬영과 편집 교육, 개별 다큐멘터리 제작, 중간 상영회, 완성 작품 CD굽기
- 팀별 극영화 제작 - 영화보기 (노인 영화제 참가 등), 노인이 주제인 극영화 만들기 (한 반당 2팀)
- 배급 - 상영회, 배급 활동 알기, 제작단 활동 기획하기
(배급 활동은 교육 일정 등 교육 수료 후 특강 등을 통해서 진행할 예정이다.)
이제 마지막 남은 3차시를 두고 보면, 너무 무모한 기대를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어르신들이 못 따라오신다는 것보다는 어르신들에 대한 저희의 이해가 더 필요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르신들은 영상 세대가 아닙니다. 젊은 세대도 하려면 잘 되지 않은 영상 언어을 쉽게 이해하기는 더욱 어려웠을 겁니다. 또한 이번에 참여하신 어르신들이 60대 후반~80대가 대부분이라 젊은 세대와 비교하기 힘든 이해와 기억력도 문제입니다. 사실 저도 한 달 전에, 아니 1주일 전에 배운 것도 잊어버리기 십상인데 연세가 있는 어르신들에게 너무 무리한 기대를 하고 부담을 주지 않았나 하는 자책도 듭니다. 이렇게 얘기하니 힘들어하는 것만 보이는 것 같군요.
지난 9개월을 돌아보면, 어르신들만 있는 복지관을 들어섰을 때의 긴장감과 어르신들을 첫 대면했을 때의 어색함, 하지만 이내 손녀뻘인 저에게 ‘선생님'하며 저를 따라주시고 제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여 주시고 받아 적어시던 그 성실함과 정겨움이 떠오릅니다.
어르신들이 살아온 세월만큼 서로 다른 환경과 조건을 가지고 계셔서 교육을 시작할 때 난감해 할 때도 있었지만, 한 분 한 분 특성을 파악해 나갈 때마다 어느 정도 교육 방향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다른 미디어 교육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노인미디어교육에 참가하시는 어르신들의 각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선행되어야 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것은 그 분의 환경과 조건만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내력, 대화 방식,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 등이 파악되어야 같이 교육을 진행해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강사가 원하는 대로만 하는 일괄적인 교육 방식으로는 참가하는 분들과 전혀 소통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편집교육을 할 때 프로그램을 실행하도록 하는데 ‘더블클릭'이 잘 안 되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처음에 저는 계속 ‘더블클릭'하는 법을 가르치려고만 했죠. 약 5분간을 그렇게 씨름하다 갑자기 ‘이게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우스 오른쪽을 눌러 ‘열기'를 클릭하는 방법을 가르쳐 드렸죠. 물론 이것도 쉽지 않아 거의 30분을 넘게 그것만 연습하도록 했지만 전혀 되지 않는 ‘더블클릭'보다는 훨씬 효과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편집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것조차도 겁내시던 분들이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편집실에 들어서면 프로그램을 실행해놓고 있는 모습을 봤을 때, 정말 작은 발전이지만 기획진과 강사들이 무척 좋아했었습니다. 출발선에서 발걸음을 떼는 것조차 두려워하셨던 분들이 저희가 떠밀지 않아도 스스로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으니까요.
물론 아직 가야 할 길은 멉니다. 촬영 수업을 할 때마다 배터리를 끼고 전원을 켜는 방법을 수없이 반복해서 교육해야 했고, 편집 교육을 할 때마다 ‘새 폴더 만들기'를 가르쳐 드려야 했지만, 최소한 이제는 편집 시 새 폴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이해는 하게 된 모습을 보며 어르신들이 미디어에 대해 드리워져있던 안개를 조금씩 걷어 내는 것 같다는 생각에 희망이 보입니다.
그렇다고 이런 기술적인 면만 달라진 것은 아니지요. 자신의 연대기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무척 즐거워 하셨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고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게 좋으셨나 봅니다. 하지만 정작 이것을 바탕으로 다큐멘터리 기획을 하자고 했을 때는 너무 막막해하셨고 영상을 통해 자신을 내보이는 것을 힘들어 하셨습니다. 하고 싶은 얘기는 있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멋있는 풍경만 찍어 오시기만 하셨죠. 저는 저 나름대로 헤매고 있었고요. 저 또한 저의 경험과 상상력 안에서만 머물렀던 겁니다. 어르신들의 대화방식이나 상상의 방식을 잘 몰라 도대체 어르신들이 뭘 만들고 싶어 한다는 건지 기획안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편집시간에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것을 보았을 때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특히 두 분의 어르신은 기획 당시 옛날에 있었던 일을 자신이 대사를 만들어서 넣는다고 했을 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나중에 만든 영상을 보니 옛날 영화 같은 변사 방식의 영상이었습니다. 이때 저는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었습니다. 기획당시 그런 점을 잘 이해했다면 더 많이 어르신들의 생각을 영상으로 끌어내도록 도움을 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이번에 다큐멘터리 만들었던 분들 모두 2회 서울노인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하셨고.(출품 신청을 하는 것이 교육과정에 있었음) 그 중 몇몇 분들이 작품을 상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교육 참가자 어르신 대부분이 영화제에 영화를 보시는 것은 물론 자원활동가로 행사장을 지키시며 또 다른 미디어 활동을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미디어 교육을 하는 것이 단순한 기술을 배우고 작품을 만드는 것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특히 이번 노인미디어교육을 통해서 본 모습은 어르신들이 미디어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도 하고, 나이가 들면서 위축되었던 세상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기도 하며, 자신의 상처를 치료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남은 인생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품기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교육 초반 자신은 바보라며 놀라울 정도로 소극적이었던 한 어르신은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영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영화제에서 상영도 하시고 관객과의 대화도 하셨습니다. 이분은 작년에 다른 분들이 작품에 ‘감독'이라고 적어 놓은 것을 보고 부러웠다며 자신의 작품에도 마지막에 ‘감독' 아무개라고 적어달라고 하시면서 즐거워하신 모습에 미디어가 가진 또 다른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영상을 더 공부하겠다며 책도 사보시고, 장비도 구입하시는 적극성을 보이는 어르신들, 처음에는 뭔지 잘 모르고 두려웠지만 이제는 뭐라도 만들어볼 욕심이 생기신다는 어르신들, 작년에 이어 연속으로 노인영화제에 상영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내년, 그 다음 내년, 그 다음 한참을 기대해봅니다.
사실 어르신들이 만드신 영상에서 하는 얘기를 저는 잘 이해 못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대가 다르고 경험이 다르고 생각도 다르니까요. 하지만 어르신들도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 사회 구성원으로써 하고 싶은 얘기들이 있고, 그것을 미디어로, 영상으로 표현하시고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도 있습니다. 이제 노인영화제뿐만 아니라 다른 영화제, 방송, 인터넷에서 많은 어르신들의 미디어 작품이 나올 날이 멀지 않았겠죠?
요즘 추위에도 촬영하고, 난생 처음해보는 극영화 작업에, 팀 작업에 많이 지쳐 있을 어르신들이 걱정됩니다. 신종인플루엔자 때문에 건강도 걱정되고, 익숙하지 않은 팀 작업에 스트레스 받으실까봐 정신건강도 걱정되고요. 어르신들~ 마지막까지 우리 힘내고 멋진 작품으로 내년 노인영화제에서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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