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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70호 이슈와 현장]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수신료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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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70호 / 2010년 7월 29일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수신료 인상
 
 
유영주 (언론개혁시민연대 상임정책위원)

 

 

 

 

사회화 이론에 있어 운동과제는 ‘통제' 요구에서 시작하여 ‘조절' 및 ‘소유' 요구로 발전한다. 사회구성원의 민주적 통제, 국가의 조절 역할 강화, 사회적 소유 등이다. 이처럼 사회화를 국가 소유의 문제로 제한해서 생각하는 것은 불완전하며, 사회화된 기업과 조절 기구에 구성원들이 자주적으로 참여하여 민주적인 통제기제를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게 제기된다. 사회화된 부문과 공공부문은 사회구성원의 사회적, 경제적 이익을 우선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이윤 추구로 경직되거나 끊임없는 관료주의와 부패 문제에 시달리는 등 제 기능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통제, 조절, 소유는 이 같은 고리를 차단하기 위해 자본주의나 사회주의와 같은 체제와 관계없이 제기된다. 구성원들이 얼마나 자주적으로 참여하고 또 민주적으로 운영하느냐에 따라 사회화의 발전 정도가 규정된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하에서 공공영역 및 공공재의 존재 양식과 범위는 국가가 결정하고 관리한다. 그런데 이를 규정하는 힘은 사회구성원의 다양한 사회정치적 대립과 투쟁, 적대의 수준에서 나온다. 문민정부, 참여정부 등 민주개혁정부는 공공재를 강화하기보다 공공부문의 민영화에 올인하는 등 공공재 범위와 양질의 급격한 후퇴를 초래했다. 이명박 정부는 여기에다 4대강 개발로 토지의 공공성마저 해체하는 등 사회 전 부문의 사유화에 속도를 더했다. 이 같은 사유화 정책의 집행은 사회화된 부문이나 공공부문에 대한 사회적 소유 기반의 와해, 국가의 조절 범위의 축소, 사회구성원의 참여와 통제의 조건 악화 등을 초래한다.

 


아렌트는 ‘the public'의 결여를 야기했던 두 체제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으며, 20세기 현대사회가 사람들의 정치적 행위능력을 어떻게 파괴하고, 폭력이 어떻게 특권적인 지위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지적했다. 모더니티에 대한 아렌트의 비판은 공공영역의 축소와 정치적 행위의 상실에 모아진다. 사적 영역은 비대해지는데 집단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공공영역은 축소되고 있다는 점, 현대사회가 노동을 찬양하고 이를 인간의 핵심적인 활동으로 여기면서 인간의 정치적 행위능력은 축소하고 있다는 점에 대한 비판이었다. 아렌트는 사람들의 행위능력을 복원함으로써 정치적 행위의 새로운 가능성들을 발견하고자 했으며, 이때 공공영역의 재구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공공영역의 축소는 공공재(public goods)와 공유재(commons)의 사적 재편을 의미한다. 데이빗 하비는 공유재의 종획(enclosure of commons)으로 인해 토지가격이 급등하고 각종 공공재의 사유화로 사적 비용 부담이 증가하는 등 사회구성원의 생존과 삶의 위기가 심화된다고 설파하고, 공유재의 종획을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행되는 ‘강탈(탈취)에 의한 축적'(accumulation by dispossession)으로 정의한 바 있다. 이는 생산성의 증대를 통한 자본 축적이 아니라 부의 불균등한 재배분을 의미한다. 근대 자본주의로의 이행 과정에서 토지로부터 농민을 폭력적으로 몰아내고 공동이용권을 박탈한 것과 마찬가지로 4대강 개발은 과잉축적된 자본의 새로운 이윤 창출 대상을 마련하기 위한 ‘공유재의 종획'이며,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수신료를 인상해 광고시장을 늘리고, 늘어난 광고액수를 새로 진출하는 종편사업자가 점유할 수 있도록 시도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 닿아 있다.

 


김지현은 공영미디어, 민영미디어, 공공미디어에 대한 개념을 다음과 같이 구분했다. 공영미디어는 지상파 방송 및 공적 지원을 받는 플랫폼과 네트워크, 콘텐츠로서 영리에 연연하지 않고 공공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대의제 미디어 시스템), 민영미디어는 기업 소유를 근간으로 영리를 우선으로 하는 상업 미디어 영역이며, 공공미디어는 아래로부터의 참여적 자율적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포괄하는 개념(직접민주주의 미디어 시스템)으로 정의한 바 있다.(미디어행동 워크샵. 융합 기구 개편의 원칙에 대한 제안. 2008.4.18)

 


공영방송의 개념 정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위상과 범위가 달라질 수는 있지만 국가적 수준에서 제도화된 공공재라는 기본 성격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공공재원으로서의 수신료의 성격도 그러하다. 헌법재판소는 1999년 수신료의 법적 성격을 특별부담금으로 규정했다. 방송 수신의 대가적인 성격보다 국가기간방송의 유지를 위해 수상기를 소지한 사람이 수신료를 부담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현실적으로는 일반 국민의 대부분이 부과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준)조세로서의 성격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영국은 수신허가료, 독일은 공공시설 이용료, 프랑스는 조세, 일본은 특수부담금으로 규정, 수신료 의무를 적용하는 환경과 목적에 따라 개념도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준)조세로 정의하든 특별부담금으로 정의하든 방송의 공적 목적을 위해 국민으로부터 의무적으로 징수한다는 점에서 공히 공공적 성격을 갖는다. 이처럼 재원 성격의 공공적 성격에 따라 대의제 미디어로서의 공영방송은 궁극적으로 시청자와 지역사회, 국가에 대해 민주주의 기대치에 부응하는 공적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를 갖는다.

 


정부의 미디어 사유화 정책에 따라 대의제 미디어의 지위는 약화되고 다매체 다채널에 따른 유료방송의 영향력은 확대되었으며, 공공미디어의 기반은 사실상 와해되었다. 대의제 미디어에 있어 수신료 문제를 중심으로 한 공영방송의 재원 안정성 문제는 이미 일정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해 있다. 하지만 수신료 인상의 전제를 충족하지 못하면 사회적 논란이 불가피해진다. 예컨대 공영방송 규모의 팽창과 비효율적 경영구조를 통한 사적 이윤 추구의 수단으로 사용될 소지가 있다면 인상 논의의 기본 전제를 충족하지 못하게 된다. 현재 KBS가 추진하는 수신료 인상안은 인상금액의 산출내역이 제시되지 않고 있으며, 인상의 전제라 할 공적 서비스 강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담지 않고 있다. KBS는 공공서비스 강화를 위한 수신료 인상인가 종편 안착을 위한 수신료 인상인가라는 시민사회의 질문에 시종일관 함구하고 있다. 더군다나 인상안을 심의. 의결하는 이사회에서는 여당에서 추천한 이사 7명이 야당에서 추천한 이사 4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상정함으로서 절차적 논란까지 유발했다.

 


수신료 인상은 증세를 의미하므로 일반적으로 시민의 환영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방송의 공적 서비스에 대한 사회구성원의 기대치를 충족할 경우 얼마든지 수신료 인상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정당성 확보와 함께 수신료 인상 문제를 사회화의 맥락에서 접근하면 다음과 같은 과제를 도출할 수 있다. 첫째, 공영방송에 대한 사회구성원의 민주적 통제의 범위와 방식을 재설정하는 일이다. 대의제 미디어의 재원 운용의 감시감독 등 재원 안정성을 확보하는 문제이다. 이미 수신료위원회 등 대안으로서의 방안 연구가 이루어져 있다. 둘째, 국가의 조절 역할 강화의 측면에서 기금과 정치적 독립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셋째 사회적 소유의 측면에서 공영방송 재원의 수신료 비중을 높여나가되 공영방송 일부의 직접적 사유화 및 미디어 제도 전반의 사유화를 막아내는 일이다.

 


수신료 인상 문제를 간단히 다루지 말아야 할 이유들이며, 궁극적으로 미디어 사유화에 따른 상처와 고통을 치유할 대안으로서의 사회화 실현 과제들이다. 그러니까 얼마든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수신료 인상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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