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71호 / 2010년 9월 30일
2011 영화발전기금안의 또 다른 이름, ‘독립영화, 한국영화 퇴보기금’ |
이지연(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
싸움의 시작
올 초부터 영화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지루하고 고단한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영상미디어센터와 독립영화전용관 불공정심사로 시작된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파행은 영화인들의 분노를 샀고 영진위 정상화를 위해 수많은 영화인들은 집회와 기자회견 등으로 현장이 아닌 거리에서 보내야했다. 하지만 영진위의 파행은 그에 그치지 않고 칸영화제 수상작인 영화 [시]의 지원심사에서 ‘0'점을 주는가 하면 영진위의 수장인 조희문 위원장은 독립영화제작지원심사 시 저 멀리 해외에서 전화를 걸어 특정작품을 언급하는 등 낯 뜨거운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조희문 위원장의 심사외압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는 공직자행동강령위반 통보를 내린 상태이며 늦은 감이 있으나 조희문 위원장을 제외한 영진위의 8인 위원들은 지난 9월 27일 임명권자인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광부)에서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이 일련의 과정과 함께 싸워오고 있는 독립영화인들은 유난히 뜨겁던 지난 여름 문광부 앞에서 32일간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영화퇴보기금안'이 된 2011년 영화발전기금 재편성을 위한 1인 시위였다.
영화발전이 아닌 퇴보를 위한 예산안
‘영화진흥위원회'라는 명칭이 무색할 정도로 영화인들과의 소통을 거부한 영진위의 정상화를 요구하는 가운데 문광부는 2011년 영화발전기금안을 내 놓는다. 언론을 통해 발표된 이 안은 전년대비 영화다양성사업분야 56%, 영화산업분야 37%의 예산이 감액되었다. 특히 독립영화제작지원(7억), 예술영화제작지원(32억)은 전액 삭감되었으며 대신 지원의 방식을 직접지원에서 간접지원으로 변경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영화인들의 바람에 전면적으로 대립되는 내용이다.
영화발전기금이란, 2007년부터 2014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정부의 출연금과 영화상영관 관람료에 부과되는 부과금으로 조성된 기금이다. 관람료의 3%를 모아서 기금을 만들고 그 기금을 한국영화발전에 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관람료 중 일부를 기금으로 만든 것은 관객들의 돈을 모아 영화 발전에 쓰자는 것임과 동시에 영화계가 가져가던 수입의 일부를 떼어내어 기금으로 만드는 취지이기도 하다. 더불어 이 기금은 한국영화 창작, 제작 진흥관련 지원, 소형단편영화의 제작지원, 영상문화의 다양성 및 공공성 증진관련 사업지원 등에 사용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이번 예산안은 영화인들의 의견이 수렴되지 않은 것으로 기금의 설립,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다. 그동안 한국영화의 다양한 발전에 기여해 왔던 영진위의 핵심 사업들이 큰 폭으로 삭감되거나 폐지되었고 그들 또한 한국영화의 근간이라 인정하는 독립, 예술영화의 지원이 폐지되었으며 마스터영화 제작지원과 기획개발비 지원 또한 폐지되었다. 뿐만 아니라 투자조합 사업 및 출자액의 규모가 절반으로 줄었으며 예술영화전용관, 시네마테크전용관 지원사업과 영화단체들의 사업지원 부분이 모두 크게 감소하였다.
영화계의 문제제기에 문광부는 영화 인프라 구축 사업이 70%이상 증액되었기에 전체적으로 보면 지원자체가 감소한 것이 아니라 설명하고 있다. 더불어 논란이 되고 있는 직접지원에서 간접지원으로 변경의 이유를 직접지원방식에 수반되는 ‘편파시비'로 규정하고 있어 문제의 본질도 해결방안도 제대로 짚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예산안은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을 뿐 인프라구축 사업 등의 구체적 방안은 공개된 적이 없다. 그나마 9월 초에 진행된 토론회 자리에서 가늠해 볼 수 있다.
간접지원방식과 인프라구축 사업은 대체 무엇인가?
지난 9월 1일 진행된 ‘1차 한국영화발전을 위한 영화인 대토론회'(주최 문광부, 주관 영진위)에서 영진위위원이 발제한 ‘한국영화산업의 과제와 개선방향'의 발제문 중 ‘창의역량 강화, 제작부문 활성화'의 추진정책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그 중 전액 삭감되어 논란이 되고 있는 ‘기획개발비 지원사업, 독립예술영화 제작지원사업'을 인프라 구축사업영역으로 포함시켜 진행할 경우 발생될 문제점 은 ‘한국영화산업의 가장 취약한 분야인 기획개발, 제작진행 등에 대한 문제 해경이 불가능', ‘독립영화의 경우 실제 제작비의 대부분이 촬영 진행비로, 인건비 지출은 거의 없으므로 인건비 지원은 독립영화의 제작 및 영화기획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현물지원도 마찬가지)' 이다. 그렇다면 제시된 보완책은? ‘별도 정책 필요', ‘유연한 정책적용'이다.
2011년 영화발전기금예산을 보며 드는 의구심에 대해 다시 한 번 묻는다.
직접지원에서 간접지원으로의 변동은 대체 어떤 효과를 가져 오는가? 직접지원방식으로 유발된 편파시비를 해결하기 위해 간접지원으로 변경한다면 간접지원의 지원주체는 어떠한 방법으로 선정되는가? 심사 없이 지원할 방법이 있는가? 적절한 선정과정이 없다면 적절한 지원주체가 선정될 수 있는가? 인프라구축사업으로 통합될 제작지원 사업들의 문제는 위와 같이 해결이 불가능하며 제작활성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욱 답답한 것은 그에 대한 보완정책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보완정책이 필요하다면서 그 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이는 독립예술영화 말살정책, 나아가 한국영화 말살정책과 무엇이 다른가? 이러하기에 ‘2011년 영화발전기금안'을 ‘영화퇴보기금안'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독립예술영화지원사업, 다양성지원사업들이 축소 혹은 폐지되는 가운데 3억 5천으로 배정된 ‘독립영화관람료지원' 항목에 대한 불온한 상상과 우려를 과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영진위정상화 및 조희문 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는 영화인들, 이들을 위축시키려 하는 예산안으로 읽힌다면 과대망상이라 할 수 있을까?) 정책은 변화할 수 있다. 아니, 정책은 변화해야 한다. 그 변화는 그간의 성과를 발전시키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또한 변화된 상황에 놓일 당사자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의견을 공유해야 한다. 문광부와 영진위가 제시한 2011년 영화발전기금안은 위와 같은 고민과 과정 없이 독단적으로 나온 불안정한 ‘안' 자체이다.
9월 14일 ‘2차 한국영화발전을 위한 영화인 대토론회'가 진행됐다. 1차가 산업분야였다면 2차는 다양성 분야로 기획되었으나 그마저도 풍부한 논의가 이루어지진 않았다. 문광부는 추가적인 토론회 자리를 마련하여 영화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예산안은 기획재정부를 거쳐 국회로 넘어간 상황으로 영화인들의 의견이 어느 정도 반영될지 우려가 앞선다. 문광부는 책임지고 정상적인 2011년 영화발전기금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예산편성과 정책으로 허물어지고 부서질 영화계를 복원하는 것은 몇 배의 수고와 비용이 지불될 것이며 영화인과 관객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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