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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72호 이슈와 현장] 이러려고 이런 건 아닌데, 해 놓고 보니 이렇게 되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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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72호 / 2010년 12월 22일


 
 
 
 
이러려고 이런 건 아닌데, 해 놓고 보니 이렇게 되어 있었어
- 전미네 지역방문 프로젝트 ‘오겡끼데스까’에 대하여
 
오재환(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사무국 활동가)

 

 

 

 

 

0. 배경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이하 전미네)는 말 그대로 전국에 있는 대안 미디어운동 단체의 네트워크이다. 약 5년 전 전미네가 출범한 이후, 각 지역의 미디어 단체 및 활동가들은 이 틀을 통해서 미디어센터, 공동체라디오, 퍼블릭액세스, 미디어 교육 등 대안미디어운동의 여러 분야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를 통해 도출된 과제들은 각 지역과 분야 안에서 활발히 실천되었고, 그 결과 이전에 이야기로만 존재하던 미디어운동의 전망들은 이제 어느 정도 현실화되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전미네의 결속력이 예전에 비해 많이 약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미네를 통해 처음 세워졌던 목표들에 대한 실천이 어느 정도 안정되었기 때문에 전미네가 필요 없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해오던 것이 마무리될수록, 다음에 무엇을 하면 좋을지 몰라서 답답해졌을 수도 있다. 문제는, 예전에는 전미네에서 다른 지역의 경험을 공유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과정에서 이런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새로 생긴 답답함을 해소해 줄 새로운 이야기가 전미네 안에서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미네 사무국에서는 작년 중순, 앞으로 전미네가 집중하게 될 새로운 의제를 찾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배경으로 일련의 기획들(두 개 정도)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 중 하나가 지금부터 이야기할 전미네 지역방문 프로젝트 ‘오겡끼데스까'이다.

 

 

1. 기획

 

 

재작년 하반기에, 전미네 사무국에서는 필자를 포함하여 두 명의 활동가를 새로 뽑았다(두 명 중에서). ‘오겡끼데스까'는 이 두 명의 신입 활동가가 처음으로 기획한 프로젝트였다. 기획의 계기가 된 최초의 아이디어는 ‘지역 활동가들을 모아서 다른 지역을 돌아다니자'는 것이었다. 사무국 활동을 시작한 후 지역을 돌아다니고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 과정에서 얻은 것이 많았고, 이런 경험이 사무국 활동가에게만 한정될 필요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 아이디어는 사무국 안에서의 논의와 지역과의 의견 교환을 거치며 조금씩 구체화되었다. 이때 특히 중요했던 건, 참가 대상이 (전미네 내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젊은 활동가로 한정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기존에 있던 워크샵이나 기획회의 등에서는 더 이상 새로운 활동가를 보기가 힘들었다. 가끔 새로운 사람들이 지역 선배 활동가들의 손을 잡고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경험 많은 다른 활동가들 틈에서 수줍어하느라 생각나는 게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하고 본의 아니게 조신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개인적 노력으로만 해결하도록 놓아두는 것이 아니라, 좀 더 편하게 자기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친밀한 자리를 (하지만 사적인 친밀함을 넘어서 미디어운동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있는 자리를) 전미네 차원에서 만들게 된 것이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지역을 방문해서 하는 프로그램이 혹여나 그냥 지역의 선배 활동가들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 오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방문한 지역의 경험과 활동을 공유하고 시야를 넓히는 것은 새로운 활동가들에게 중요한 일이었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미디어운동에 대한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고 정리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사람들이 발언권을 확보하게 하는 것은 ‘새로운 공동의 의제 발견'이라는 전미네의 향후 과제와도 어느 정도 연결되어 있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던질 수 있는 장이 만들어진다면,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해내는 것도 더 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을 바탕으로 이번 기획은 ‘각 지역의 젊은 활동가들이 모여서 다른 지역을 방문하고, 그 지역의 활동을 바탕으로 미디어운동에 대한 자기 생각을 나누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예전만큼 친밀하게 교류하지 못했던 다른 지역을 직접 찾아가서 안부를 묻는다는 의미에서, 프로젝트의 제목은 ‘오겡끼데스까'로 정해지게 되었다.

 

 

2. 기획의 실행

 

 

기획이 완성된 후에는, 함께 지역을 돌아다닐 참가자들을 본격적으로 모집하였고, 서울, 울산, 전주, 청주 등의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6명 정도의 활동가가 함께하는 것으로 확정이 되었다. 참가 신청을 한 사람은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약 6개월 간의 모든 지역 방문에 함께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물론 다들 지역에서 바쁘게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약 한 달에 한 번 씩 정기적으로 시간을 낸다는 게 쉽지 않을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가 단순한 일회성 견학으로 끝나지 않고 의미를 남기려면, 같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참여하면서 논의를 발전시켜 가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했다. 사실 이 부분은 사무국 안에서만 논의할 때는 충분히 이야기되지 않았는데, 지역과 의견 교환을 하는 과정에서 확실해진 것이다. 그리고 뒤에 얘기하겠지만, 이것은 이후 오겡끼데스까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참가자 모집을 하면서, 방문지에서 할 프로그램을 계획하는 일이 함께 이루어졌다. 오겡끼데스까에서 방문하는 각 지역에서의 프로그램을 짤 때에는, 위에서 설명한 사무국의 기획의도와 더불어서, 지역에서 오겡끼데스까 참가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고려해야 했다. 그래서 각각의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사무국과 지역에서 각각 하나씩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것으로 틀을 잡았다. 그리고 그 틀을 채울 구체적인 프로그램의 내용은 사무국이 그때그때 지역과 함께 논의하고 참가자들의 의견을 받아서 만들어 나가는 것으로 이야기되었다.

 

 

 

첫 번째 방문지는 청주의 생활교육교육공동체 ‘공룡'이었다.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공룡의 활동을 기반으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인 ‘공동체 미디어'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참가자들이 처음 만나서 어색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자기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친밀한 분위기'를 잘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청주에서 진행한 프로그램은, 위에서 이야기한대로 공룡과 사무국에서 각각 하나씩 준비하였다. 공룡에서 준비한 것은, 우선 참가자들에게 공룡의 활동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한 후, 공룡이 위치한 청주 사직동을 돌아보고, 사직동이란 공간을 기반으로 할 수 있는 (카메라 등에 한정된 것이 아닌 소통의 매개라는 넓은 의미에서의) 미디어 활동을 기획하고 발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사무국에서는 처음 만난 참가자들이 활동가로서의 자기 자신을 드러낼 수 있도록, 짧은 발표를 통해 자신이 미디어운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소개하는 시간을 준비했다. 이 두 개의 프로그램을 통해서 공동체 미디어나 미디어운동의 목적에 대한 정리된 결론을 낼 수 있었던 건 아니지만, 평소에 자기 생각을 충분히 드러낼 기회가 많지 않았던 활동가들이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의의가 있었다. 지금까지 자기가 가진 미디어운동에 대한 고민을 마음편히 터놓을 통로가 부족했던 이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날 진행된 프로그램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링크 참조: http://www.media-net.kr/blog/?p=145)

 

 

3. 예상 밖의 일들

 

 

그 다음에 방문한 곳은 부산이었다. 다음 방문지를 부산으로 정한 가장 큰 이유는, 부산에서 하고 있는 4대강 사업 반대 활동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부산에서 준비한 프로그램은, 부산의 ‘퍼블릭액세스제작지원팀'과 함께 4대강 사업에 대한 라디오 액세스물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물론 사무국에서 준비한 프로그램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부산에 갔을 때는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벌어지고 일정이 늦어져서, 사무국에서 준비한 프로그램은 하지 못하고 라디오 제작을 위한 취재 정도만 겨우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날 낙동강의 현장에서 마주한 농민들의 허탈한 모습과 4대강 사업이 일으키는 문제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들은 참가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여기에 대해서 뭔가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의지를 심어 주었다. 또한 부산 방문을 계기로, 부산의 활동가 한 명이 오겡끼데스까 멤버로 편입되는 성과도 있었다.

 

(부산에서의 모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링크 참조: http://www.media-net.kr/blog/?p=164)

 

 

부산 다음의 방문 예정 지역은 대구였다. 하지만 그 전에 부산에서 미처 하지 못했던 전미네 사무국의 프로그램을 마저 진행하기 위해서, 청주 공룡의 공간을 빌려 또 한 번의 모임을 가졌다. 사무국에서 준비했던 프로그램은, 4대강 사업 등과 같은 큰 이슈에 활동가들이 부담을 너무 느끼지 않고 잘 결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위해서 다른 지역 활동가들의 상황과 관심사 등을 고려하여 함께 할 수 있는 행동을 기획해보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사무국에서 예상했던 것만큼 잘 진행되지 못했다. 그렇게 된 이유는 기획 자체가 완전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사무국이 진행을 잘 못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했던 문제는, 사무국이 준비한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를 참가자들이 잘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애초에 이 프로그램은 실제로 이슈에 대한 행동을 기획하고 조직하는 것보다는, 행동 조직의 시뮬레이션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러한 시뮬레이션을 하려고 했던 이유는, 공동행동을 기획하고 결의하는 것이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실행에 옮겨져서 결과를 낼 수 있게 ㅏ려면 어떤 것을 고려해야 할지 함께 고민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몇몇 참가자들은 이렇게 공동행동 자체에 대한 추상적 논의를 하는 것보다는 부산에서 보고 온 4대강 사업의 문제에 대해서 다른 지역 사람들과 함께 할 일을 실제로 만들어서 추진하기를 원했다. 이러한 상반된 생각이 충돌하면서 프로그램의 진행에 혼선이 생겼고, 사무국에서 의도했던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거나 이야기가 잘 정리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혼란은 오히려 생각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까지 오겡끼데스까의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은, 이메일 등을 통해 참가자들의 의견을 받긴 했어도, 사무국의 몫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오겡끼데스까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서 참가자들이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하고 싶은 것들이 좀 더 명확해지게 되었고, 그러한 징후가 부산 후속모임에서 나타난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가 애써 기획한 것을 왜 이해하지 못하냐고 안타까워할 것이 아니라, 사무국에서 기획에 대한 통제권을 좀 더 놓아 버리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겡끼데스까의 참가자들이 그저 ‘참가자'로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서, 적극적인 ‘기획자'가 되어 앞으로의 오겡끼데스까를 함께 만들어 나가도록 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린 것이다. 그래서 다음 방문 지역인 대구에서 할 프로그램은 처음부터 오겡끼데스까의 멤버들과 함께 논의를 진행했다. 그 결과, 대구의 활동가들이 지금까지 해왔던 공동체 미디어 활동과, 젊은 활동가들이 가지고 있는 공동체 미디어에 대한 상을 비교하며 함께 논의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으로 이야기가 모아졌다. 그 후에는 대구에 가기 전에 우리가 가진 공동체 미디어에 대한 상을 잘 정리하기 위해서, 대전 민언련에서 장소를 빌려서 사전 세미나를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세미나를 통해서 목표한 대로 이야기가 잘 정리되진 않았다. 물론 세미나에서 정리하려고 한 주제 자체가 너무 거대하기도 했지만, 그 날은 세미나 자체보다는 각자의 연애 이야기를 하다가 시간 가는 줄 몰랐기 때문에 (아하하하 민망해) 그렇게 된 측면이 좀 있다. 그런데 이것 역시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볼 건 아니다. 오겡끼데스까를 하기 전이었다면, 이렇게 연애 얘기를 터놓으며 시시덕대기엔 우리의 사이가 너무 어색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따로 떨어져서 각자 고민을 진행하던 젊은 활동가들 사이에, 토론회나 세미나처럼 형식이 갖추어진 모임을 만들어서 만나는 것보다 훨씬 견고한 네트워크가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얘기했듯이, 이것은 동일한 참가자들이 계속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했고, 이것은 사무국이 아니라 지역에서 제시한 의견이었다.)

 

 

이처럼, 전미네 사무국이 기획한 오겡끼데스까는 사무국의 기획의도를 넘어서는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애초의 기획은 ‘이야기를 마음껏 풀어놓을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었지만, 참가자들의 적극성은 이 모임을 통해 이야기를 넘어선 직접 행동이 이루어지도록 했다. 실제로 부산 사후 모임에서 있었던 4대강 사업 반대 공동 행동에 대한 논의는 그 이후로 계속 진행되었고, 현재는 오겡끼데스까 멤버들을 중심으로 4대강 사업에 대한 옴니버스 제작 프로젝트가 조직되고 있다.

 

 

또한 사무국의 기획자들이 처음 상상한 것은 ‘현재 존재하는 네트워크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좀 더 부각시키는 것' 정도였으며, 그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새로 발굴된 개인들에게서 새로운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겡끼데스까를 통해 발굴된 활동가들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기존의 네트워크와는 다른 층위의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그리고 이것은 결과적으로 전미네의 새로운 의제를 찾아내는 데에 있어서 실질적으로 더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어느 정도 논의의 틀이 정해져 있는 기존의 네트워크 안에서는 개인이 새로운 목소리를 낸다 해도 묻혀버리기가 쉬울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젊은 활동가들이 이 네트워크를 통해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흘러 이들의 논의가 어느 정도 정리된다면, 이 네트워크가 지금까지 전미네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의제를 제시할 힘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새로 형성되는 네트워크를 잘 활용한다면, 미디어운동에 관한 논의가 틀에 갇히지 않고 잘 순환하도록 서로를 자극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사무국이 애초에 오겡끼데스까를 기획하게 했던 문제의식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리고 사무국의 애초 의도를 뛰어넘는 위와 같은 성과들이 있다고 해서, 원래의 기획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그 기획의 빈 곳이 메워지고 좀 더 확장되었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다른 지역의 요구와 참가자들의 의견을 (그것이 사무국의 원래 의도와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적극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오겡끼데스까가 애초에 예상하지 못한 일들을 새로운 성과로 남길 수 있는 유연함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이 프로젝트가 중앙의 통제를 적당히 양보한 수평적 네트워크를 통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4. 앞으로

 

 

대전에서 세미나를 한 후에는 예정대로 대구를 방문했다. 하지만 사전 세미나에서 우리 생각을 충분히 정리하지 못하는 바람에, 원래 계획대로 공동체 미디어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대구의 활동에 대한 공유가 아예 프로그램에서 빠진 것은 아니었고, 대구 동구에 있는 지역 운동 현장을 한 번 씩 방문해보는 약간 아쉬운 수준에서나마 이뤄지게 되었다.) 그 대신에 대구에서의 오겡끼데스까는 한 해의 마지막 달을 맞아서, 그리고 오겡끼데스까의 진행 기간으로 예정되었던 6개월의 마지막 달을 맞아서, 우리가 내년에 할 일들을 계획하는 자리가 되었다. 우선 개인적인 차원에서 오겡끼데스까 멤버들 각자의 내년 계획을 발표하고, 그것에 대해 대구의 선배 활동가들과 함께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1차적으로 마무리되어 가는 오겡끼데스까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나누었다.

 

 

오겡끼데스까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구에서의 모임을 통해 이 이야기들이 다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우선 지금 형성된 네트워크를 계속 유지하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와 마차가지로 지역 방문이라는 형식을 통해 현장의 이야기를 듣고 미디어운동에 대한 논의를 해나가자는 것은 어느 정도 공통된 의견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년에도 오겡끼데스까는 계속될 것이고, 형식도 당분간은 비슷하게 유지될 듯하다. 하지만 지금까지와 다른 점이라면, 이제 사무국이 프로그램 기획의 중심에 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 네트워크가 더욱 탄탄해질수록, 최초 기획자였던 전미네 사무국이 해야 할 역할은 점점 축소될 것 같다. (물론 사무국의 활동가들도 개인자격으로는 여전히 활발히 참여하겠지만.) 그러한 가운데서도 전미네 사무국에서 한동안 놓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면, 오겡끼데스까의 형식이나 그 안에서의 논의가 너무 굳어지지 않도록 그때그때의 상황과 참여자들의 요구에 민감하게 귀를 열어놓는 일일 것이다. 처음에 오겡끼데스까를 기획할 때 생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발언권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수평을 유지하려는 긴장을 놓지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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