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72호 / 2010년 12월 22일
돌미 토론회: 미디액트 새 꿈 찾기 프로젝트 |
박민욱(미디액트 독립극영화제작 17기 수료생) |
토론회를 하자는 얘기가 나온 건 7월경, 그러니까 ‘돌아와 미디액트(이하 돌미)'의 활동이 점점 힘에 부쳐가고 있을 때였다. ‘돌미' 활동을 한지도 어느 덧 6개월이 지나가고 있었고, 여름은 점점 더워져 가고 있었고, 광화문엔 여전히 ‘그들'이 버티고 있었고, 상암동 미디액트는 새 단장을 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던, 바로 그 때였다. 그리고 3개월 후, 어느새 제법 쌀쌀해진 10월 15일 가을날 아침. 나는 텅 빈 토론회장에 앉아 있었다. 그동안 토론회 준비를 위해서 나름 바쁘게 움직이고 수많은 말들을 내뱉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부탁을 하고 수많은 고민들을 해왔지만, 토론회를 앞두고 드는 건 사실 어처구니없는 후회였다. 내가 어쩌자고 덜컥 발제문을 작성하겠다고 했을까. 왜 그 많은 날들을 놔두고 발제문은 왜 하필 토론회 전 날 밤에만 써지는 걸까. 왜 나는 한 숨도 못잔 초췌한 얼굴로 여기 앉아 있는 걸까. 아, 여기는 어딜까. 옆에는 공동 발제자인 최은정씨가 앉아 있다. 초췌한 그의 눈가의 큼지막한 다크 서클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곧 사람들이 토론회장을 차츰 메우기 시작했고, 토론회는 예정 시간보다 약간 늦은 2시 10분. 시작되었다.
‘돌미'는 위기에 빠진 미디액트를 위해 분연히 일어선 자발적 단체이다. 미디액트는 올해 초, 영화진흥위원회의 공모파행의 희생양이 되어 1주일 만에 서둘러 정들었던 광화문 센터를 떠나야만 했고, 미디액트를 사랑해왔던 사람들은 이에 분노, 즉각적으로 부당한 공모파행에 항의하기 위해 속속 모여 들었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 그리고 봄. ‘돌미'는 기자회견을 하고, 거리 음악회를 열고, 항의 전화와 메일을 쏟아내고, 1위 시위를 하고, 사진을 찍고, 우동을 끓여 먹으며 활발한 항의 운동을 진행하였다. (자세한 ‘돌미'의 활동 내용은 "Act!" 69호, ‘미디액트 핑계대고 잘 놀고 있는 우리들' 기사 참고) 그러나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싸움은 장기화되었고, 우리는 서서히 지쳐갔다. 그러던 중, 미디액트는 상암동에 새 둥지를 마련하였고, 공모 탈락 불과 4개월 만에, 미디액트는 우리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멋진 모습으로 재개관을 하였다.
재개관 이후, ‘돌미'는 상당한 내부 진통을 겪어야만 했다. 이제 미디액트가 (새로운 센터이긴 하지만) 돌아왔고, 애초에 ‘돌미'의 성격이 비상대책모임이었던 만큼 그만 해체해야 한다는 의견. 미디액트가 재개관을 하긴 했지만 여전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고, 사태의 부당성은 전혀 해결된 것이 없으므로 활동을 계속해야 한다는 의견. 거기에 미디액트가 상암동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돌미'와 충분히 의사소통을 하지 못했고 ‘돌미'의 의견을 반영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서운함도 터져 나왔다. 그런 지지부진한 논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돌미' 회원들의 참여도는 현격히 떨어져갔고, 이를 타개하고자 미디액트와 함께하는 토론회를 열어 소통부재를 해결하고 회원들의 관심을 다시 모아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오게 되었다. 곧 토론회 준비팀이 꾸려졌지만, 토론회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어디까지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처럼 의견이 모아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토론회 날짜는 8월에서 9월로, 다시 10월로 미뤄졌고, 내가 지방에 내려가서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던 9월 어느 날, 나는 문자 한통을 받았다. ‘발제자로 민욱씨가 만장일치로 정해졌음. 준비 잘 하기 바람.' 이래서 회의에 빠지면 안 된다.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이 반드시 힘든 일을 떠맡게 된다. 는 진리를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끼며 나는 결국 후회 속에 토론회장에 발제자로 앉아 있게 되었던 것이다.
“돌미와 함께하는 미디액트 새 꿈 찾기 토론회”는 사회자 김형중씨의 재치 있는 시낭송으로 시작되었다. 잔잔한 음악이 깔리는 가운데, 그는 ‘돌미'와 미디액트에 대한 애정이 담뿍 담긴 시를 그윽한 음성으로 낭독했고, 참석자들은 감동과 닭살 돋음을 함께 느끼며 큰 웃음으로 화답했다.
처음 발제를 맡은 이는 미디액트 정책연구실 최은정씨. 그는 미디액트를 안에서 혹은 밖에서 관심 있게 지켜봤던 12인과 인터뷰를 진행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발제문을 작성했다고 밝혔다. 저 치밀한 준비라니. 밤새 몽롱한 기분으로 소설 쓰듯 휘갈긴 내 발제문이 문득 부끄러워졌다. 최은정씨는 지난 8년 간 미디액트가 이룬 성과와 공모파행과정, 그리고 ‘돌미'의 활약상에 대해 살펴본 후, 새로운 미디액트의 비전과 계획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는 미디액트가 “이용자층의 자발적 참여와 지지를 기반으로 미디어 융합 상황에 부합하는 최적화된 공공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이용자 중심, 미디어융합, 미디어센터 정책 제안, 실별 사업 재편, 운영 구조의 다각화 등의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미디액트의 다양한 자발적 이용자를 가리키는 ‘미디액트 앤&'의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고(Access), 그들을 주체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Activist)” 공공영상미디어센터 모델을 제시하면서 ‘미디액트 앤&'의 적극적인 조직과 확산을 당부하였다.
애초에 발제자 두 사람에게 배정된 시간은 40분. 최은정씨의 알찬, 그러나 다소 긴(?) 40여 분간의 발제가 끝나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쾌재를 부르며, 시간 오버를 핑계로 발제를 빠르게 진행하면서 준비 부족을 가려보겠다는 얄팍한 계산을 하고 발제를 시작하였다. 최은정씨도 지적한 것처럼, 미디액트는 재개관 시점에서 이용자 중심센터에 대한 비전을 누차 강조한 바 있었다. 하지만, 여러 대내외적인 이유로 미디액트는 그 구체적인 방법을 아직 제시하지 못하였고, 상암동 센터 건립과정에서 미디액트는 이용자 ‘돌미'와의 충분한 의사소통에 실패하였다. 다만, 확실한 것은 자발적 연대체인 ‘돌미'의 다양하고 활발한 활동이 이용자 중심센터에 대한 공론을 이끌어냈다는 것이며, ‘돌미'가 활동하는 동안의 미디액트는, 비록 당시 물리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았으나, 가장 이용자 중심센터의 모습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이에 착안하여, 나는 이용자 커뮤니티가 이용자 중심센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으며, 그 활성화 방안을 ‘돌미'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제안해 보았다. 급박한 외부요인이 이유가 되긴 했지만, ‘돌미'는 미디액트 내 다양한 그룹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자발적인 활동을 벌인 이용자 커뮤니티였고, 미디액트와도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비록 그 태생적 한계 때문에 ‘돌미'의 활동성은 금방 사그라졌지만, 이용자 중심센터의 큰 그림을 그리는 데 ‘돌미'가 주는 시사점은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나의 날림 발제가 끝이 난 후, 4인의 토론자의 지정토론과 참석자들의 자유토론이 이어졌다. 발제문의 부실함에 충격을 받은 듯 드문드문 이어지던 발언들은 곧 활기를 띄며 치열하고도 날카로운 내용으로 가득 찼다. 전체적으로는 이용자 중심센터의 필요성과 상암동 센터의 생존전략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루었다. 미디액트가 광화문에서 상암동으로 옮겨오면서 지리적 조건의 유리함을 상실하였고, 그 밖에도 여러 불리한 조건을 안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미디액트가 ‘돌미', 즉 이용자를 위한 센터로 나아가는 것은 보은의 차원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는 지적. 공적 지원을 기대하기 힘든 미디액트가 제법 큰 규모인 현재의 상암동 센터를 유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하는 의문. 미디액트가 공적인 서비스를 받는 개인이 아니라 이용자들끼리 서로 관계 맺으며 형성하는 커뮤니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 미디액트를 사람들이 계속 올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 이를 위해 미디액트 내 각 커뮤니티의 연합과 연대가 중요하다는 의견 등이 이어졌다.
토론회를 통해 미디액트에 대한 이용자들의 변함없는 애정과 때로는 우
려 섞인 조언을 한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수확이었다. 준비 과정이 다소 거칠었고 벼락치기 발제문은 부끄러웠지만, 미디액트와 이용자 간 허심탄회한 대화의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는 뿌듯한 생각도 들었다. 또한 토론회 이후, 미디액트와 이용자들 사이에서, 이용자 커뮤니티의 필요성과 활성화 방안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도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 ‘돌미' 활동을 통해, 독제, 독다큐, 초비프 등 미디액트 내 각 그룹들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만나는 즐거움과 그 위력을 경험했던 이들이 토론회를 계기로 함께 모일 수 있는 장(場)을 계획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첫 번째 결과물로 12월 19일 일요일. 미디액트에서 ‘미디액트 벼룩시장 + 상영회' 가 있을 예정이다. 많은 이들의 참여가 있길 바라며, 이러한 여러 노력들을 통해서 미디액트가 꾸는 이용자 센터의 꿈이 한 발작 더 가까워지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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