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73호 / 2011년 3월 31일
빈집은 채워질 수 있을까? - 독립영화전용관, 영상미디어센터 직영 결정을 우려하며 |
최은정 (미디액트 정책연구실) |
지난해 5월 [ACT!] 특별호를 기억하고 있을까? ‘영진위 파행 봄 컬렉션'으로 채워진 [ACT!] 69호는 그 해 겨울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파행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공간들의 의미와 가능성을 다뤘다. 그 공간은 독립영화전용관, 영상미디어센터, 시네마테크, 한국영화아카데미였다.
다시 돌아온 봄. 영화인들의 노력에 힘입어 전액 삭감됐던 독립영화 직접 지원은 부활했고 언제나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조희문 영진위 위원장은 해임됐다. 그리고 독립영화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는 지난 11월 영진위 ‘직접 운영'이 결정됐다.
2009년 [워낭소리]와 [똥파리]를 계기로 뜨거워진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과 열기를 지난 한 해 순식간에 식혀버린 장본인이 바로 영진위다. 그런 영진위가 독립영화 활성화의 가장 중요한 기반인 독립영화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를 직접 운영한다?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잠시 시계를 돌려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봄. 독립영화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 운영 사업자 공모 심사가 비상식적이고 불공정하게 진행된 사실이 밝혀진다. 이를 계기로 시네마테크와 한국영화아카데미 문제까지 수면 위로 올라왔고, 3월 16일 독립영화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 운영자 재공모 및 이용 거부 등의 내용이 포함된 ‘영진위 정상화를 위한 영화인 선언'에 1,700여 명의 영화인이 참여한다. 뒤이어 5월 조희문 영진위 위원장이 칸국제영화제 참여 도중 국제전화를 통해 독립영화제작지원 심사위원들에게 특정 작품 선정을 강요한 사실이 밝혀진다. 영진위 정상화를 위한 대책모임은 국민권익위원회에 조희문 위원장에 대한 부패행위신고를 접수했고, 3개월 뒤 국민권익위는 조 위원장이 공직자 행동 강령을 위반했다고 통보한다. (영진위 윤리헌장 행동강령 22조 알선 및 청탁의 금지)
여름. 구호는 ‘영진위 정상화 촉구'에서 ‘영진위 사수! 조희문 퇴진!'으로 바뀌었고, 남아공 월드컵이 한창이던 6월 17일 70여 명의 영화인들은 부부젤라를 불며 집회를 열었다. 한편, 독립영화 직접 지원이 전액 삭감된 2011 영화발전기금 예산안이 문화체육관광부의 승인을 받는다. 이에 한국독립영화협회는 8월 2일부터 32일 동안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영화발전기금 재편성을 위한 영화인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였고, 총 37명의 영화인이 참여한다.
가을. 영진위 국정감사에서 지난 6월 임시국회 때와 같은 인사말을 배포, 국정감사 준비 부족과 불성실한 태도 등을 이유로 조 위원장을 비롯한 영진위 관계자 모두 국정감사장에서 퇴장당하는 유례없는 일이 일어난다. 비슷한 시기, 영진위 비상임위원 8인이 위원장 해임 건의안을 문화체육관광부에 제출한다.
겨울. 조 위원장은 해임됐고, 독립영화 직접 지원은 부활했고, 독립영화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는 직영이 결정된다.
그리고 올해 초 한국독립영화협회와 미디액트, 인디포럼작가회의는 직영 결정 이후 아무런 계획도 발표하지 않고 있던 영진위에게 공청회 요청서를 보냈고, 영진위는 독립영화전용관 개관 이틀 전인 3월 8일 공청회를 개최한다. 공청회는 소문만 무성했던 독립영화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 직영에 대한 계획이 공식적으로 세상에 나온 첫 자리였다.
지난 해 영진위 파행의 중심에 조희문 전 영진위 위원장이 있었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 때문에 그의 해임은 영진위 정상화를 희망한 많은 이들에겐 일정한 성과라 할 수 있다. 또한 독립영화 제작의 가장 실질적 지원이었던 직접 지원의 부활은 더할 나위 없이 다행인 일이다. 한편, 독립영화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 직영 결정 역시 좌우대립의 격전지 마냥 호도되던 상황에서 직영이란 선택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많다. 듣도 보도 못한 이들이 운영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1년을 돌아봤을 때 영진위 직영이 과연 더 나은 것인지는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조 위원장의 해임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고 영진위 정상화를 위해 이제 겨우 땅을 조금 일궈낸 수준에 불과하다. 또한 독립영화 직접 지원이 되살아나기는 했지만 7억이라는 예산은 늘어나는 독립영화 제작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2011 영화발전기금전체 예산은 853억 5백만 원이다.) 또한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기관의 경직성을 고려할 때 독립성과 자율성이 생명인 독립영화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가 영진위 직영 구조 속에서 그 본연의 역할을 얼마나 잘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더구나 작년 한 해 대표적 파행 운영 기관으로 잊을만하면 한 번씩 언론에 대서특필된 곳이 바로 영진위가 아니던가. 의심은 더 짙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 3월 8일 열린 공청회 자리에 참여한 이상욱 <당신과 나의 전쟁> 피디는 ‘영진위와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영진위의 자기 평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영진위가 만든 자료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지금 영진위는 자신의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남 얘기만 있고 자기 얘기가 없다. 영진위는 영진위가 생각하는 한국영화 발전이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 물론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다르다면 토론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없다. 행정적으로 처신할 뿐이다. 남들이 이랬다저랬다가 아니라 자기 평가가 포함되면 좋겠고 그것을 바탕으로 궁극적으로 신뢰가 회복되길 바란다.”
공청회 자리를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독립영화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에 대한 직영 계획은 꽤 실망스러웠다. 두 사업에 대한 일반적 기술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사업 들은 눈길을 끌기도 했지만 장기적 전망과 구체적 실행 방법이 결여된 마당에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고 해도 과연 무슨 소용이 있을까. 무성한 소문 속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린 탓일까?
참여한 토론자 다수가 독립영화전용관 개관 이틀 전에 공청회가 열린 것에 유감을 표했다. 그리고 원승환 전 인디스페이스(독립영화전용관) 소장은 영진위는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에 대해 “별 계획이 없다.”고 못 박았다.
“2007년부터 만들어진 기본 포맷을 반복해서 하겠다는 것 외에 특별한 내용이 담겨지지 않아 충실한 사업 준비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 독립영화전용관이 처음 만들어진 당시에는 전용관은 없고 배급사는 하나였기 때문에 전용관과 배급사를 늘리는 게 과제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현 상영배급 환경에 대한 평가와 입장을 바탕으로 한 내용이 있어야 과연 그것이 바람직한가, 아닌가에 대한 논의가 가능한데 기본 포맷만 놓고 과연 토론이 이뤄질 수 있을까 의문이다. 또한 전용관은 공공성, 다양성, 대중성 등에 대한 첨예한 고민이 필요한데 카페와 홈페이지를 만들고 메일링을 뿌리겠다는 수준의 계획은 하룻밤만 베끼면 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영진위 정책연구센터에서 다양성영화 연구 사업이 진행된 바 있는데 그 내용조차도 담겨져 있지 않다. 너무 쉽게 생각했다. 내부에 어떤 연구 사업이 있었는지 기본적인 조사조차 하지 않은 것 같다. 걱정된다.”
영진위는 사업 계획의 부실함에 대한 수많은 지적에 일괄적으로 답변했다. 각 사업의 운영위원회를 통해 구체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운영위원회의 위상과 권한에 대한 아무런 원칙도 입장도 없이 말이다.
어쩌면 영진위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사업계획을 가지고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독립영화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는 민간의 제안과 영진위의 공적 기금이 만난 사업이었고 처음부터 위탁 운영 구조로 진행된 사업이기 때문에 관련 활동을 오랜 기간 해오며 고민한 공청회 토론자들이나 참여자들에 비해 전문성은 결여될 수밖에 없다. 사업의 상당 부분을 아직 꾸려지지도 않은 운영위원회로 떠넘기려는 이유는 사업은 해야 하나 전문성이 결여된 영진위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토론자들과 참여자들은 이러한 영진위의 선택을 이해하거나 격려하지 않았던 것일까. 실험영화를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질문에 ‘얼마나 잘 대답하나, 두고 보자'라고 팔짱을 끼거나, 날선 비판을 하며 영진위의 모든 계획에 의구심을 품었던 건 왜일까? 그것은 바로 영진위가 영진위를 신뢰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지난 한 해 독립영화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를 파행으로 몰아간 장본인은 다름 아닌 바로 영진위다. 그러나 영진위는 이에 대한 아무런 평가와 반성 없이 “문제없음”으로 일관했고 두 사업의 직영 역시 아무런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그런데 오랜 기다림 끝에 열린 공청회 자리에서조차 일련의 과정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세 없이 영진위 위주 시각에서 본 간소한 행정적 언급이 전부였다. 만약 2010년 공모 심사에 대한 상식적인 평가와 직영 결정에 대한 명백한 근거를 밝혔다면 공청회는 진정 발전 방향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첫 걸음이 되지 않았을까?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미래지향적으로 가자”는 김도선 영진위 사무국장의 말에 대해 경순 <레드마리아> 감독은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수많은 독립영화인들이 고민하고 정책을 만들어 생겨난 게 전용관과 센터다. 많은 경험과 역사 속에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지금 그걸 통으로 먹고 입 씻고 있는 것이다. 그 잘잘못을 가리지 않고, 멋지게 뽀대나게 미래지향적으로 가자는 건 말이 안 된다.”
직영 자체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이주훈 미디액트 사무국장은 “직영은 정치적 선택이며 정책적 후퇴”라고 지적했다.
“위탁에서 직영으로 넘어간 것 자체가 정책적 후퇴이다. 영진위가 여야 모두에게 압박 받는 상황에서 내린 정치적 선택에 불과하다. 위탁 구조는 완충지대를 만든다. 영진위는 정책 결정을 한 위탁 단체에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직영은 다르다. 영진위가 직영하는 독립영화전용관에서 4대강에 반대하는 영화를 틀 수 있을까? 영진위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직영 구조에서는 분명 어려울 것이다.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공정한 경쟁이란 최소한의 윤리가 확보된 상태에서 중간점유지대를 만들고 그 여백들을 가져갈 수 있는 조건들을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렵게 일궈낸 소중한 토대를 무너뜨릴 것이다. 장기적으로 선순환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위한 일보가 바로 지난 사업 운영에 대한 공개와 평가다. 그 일보가 안 되는 것이 안타깝다. 진정성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많은 독립영화인들은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경순 [레드마리아] 감독은 심의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고,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이상욱 [당신과 나의 전쟁] 피디는 공동체 상영 경험을 토대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작년 3월 <당신과 나의 전쟁> 배급위원회를 꾸려 150회 정도의 공동체 상영을 진행했다. 그 중 영상미디어센터에서는 단 2곳에서만 상영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반정부 영화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러한 경험이 국가가 운영하는 공공기관으로서의 극장을 신뢰할 수 없게 만들었다. 정부를 비판하는 영화는 틀지 않을 것인가?”
이건상 영진위 국내진흥부 부장은 독립영화
전용관은 공식적으로 관련 법규에 따라 신고한 정식 극장이며 그 부분도 관련 법규에 따라 운영하겠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역시 덧붙였다. 구체적 논의들은 운영위원회에서 하겠다고.
공청회 이틀 후인 3월 10일 영진위 직영 독립영화전용관인 ‘인디플러스'가 개관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브로드웨이극장 3관을 임대했으며 114석 규모다. 영진위는 “정식으로 개봉하기 어려운 독립영화, 다큐멘터리, 실험영화 등에 상영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기본적인 운영 원칙으로 직접 운영한다”고 밝혔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 위치한 영진위 직영 영상미디어센터는 5월 개관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김의석 영진위 위원장 직무대행은 공청회 자리에서 전용관과 센터가 “독립영화인들의 장터 같은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영진위가 독립영화계의 고민을 못 따라가는 것이 가슴이 아프다. 하루아침에 모두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신뢰를 쌓아가겠다. 독립영화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의 주인은 독립영화인이다. 많은 독립영화인들이 모여서 사랑방이 되고 카페가 되고 논의와 배움이 교류하는 장터 같은 공간이 되길 바란다. 그런 공간을 만들기 위해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다.”
김의석 위원장 직무대행의 말처럼 전용관과 센터는 독립영화인들이 주인이다. 그러나 지난해 영진위는 수많은 주인을 외면했고 그 결과 두 공간은 결국 빈집이 되어버렸다. 두 공간이 사랑방이나 카페, 장터가 되기 위해서는 지난 시기에 대한 진정성 있는 평가와 반성을 시작으로 고개를 돌리고 귀를 열어야 할 것이다.
덧붙여 독립영화인들은 영진위 직영 전용관과 센터뿐만 아니라 독립영화 정책 전반에 대한 적극적 감시와 개입, 견인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동시에 독립 / 공공 영역에 대한 새로운 프레임과 정책 대안들을 모색하고 준비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한 다양한 방식의 토론과 교류가 필요하다. 왜 독립영화인들이 하냐고? 독립영화인들이 바로 주인이고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편집자 주] 지난 3월 29일, 그간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아왔던 김의석 감독이 신임 영진위 위원장으로 선임됐다. 그는 다음 날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열린 취임 기자회견에서 정병국 문화체육장관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3년의 임기를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김의석 위원장은 “영화인들의 소통과 화합을 이끌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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