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74호 / 2011년 5월 30일
장애인인권의 다시 봄(見),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
박정혁(장애문화공간) |
2003년 4월 19일, 서울장애인권영화제를 처음 개최했다. 그 당시 한창 장애인들의 이동의 권리를 요구하는 집회가 거리에서 크게 벌어지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왜 장애인들이 거리에서 버스를 가로막고 지하철 선로에 위험하게 내려가 전동차의 운행을 막으며 비장애인들의 교통을 방해하고 불편을 끼치게 하는지 잘 모르고 그렇게 하는 장애인들을 향해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이는 방송3사라 불리는 공중파 방송들과 기존 언론들이 장애인들이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는 보도를 하지 않고 단순히 교통방해에만 초점을 맞춰 보도하는 형태가 원인이었고 장애인과 장애의 문제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문제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알려낼 필요가 있기에 몇몇 장애인활동가들과 장애인운동에 관여하고 있는 영상활동가들과 함께 서울장애인권영화제란 이름으로 영화제를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KBS니 MBC니 SBS니 하는 공중파 방송들, 그들이 찍어 내보이는 영상들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시청한다. 그 속에서 보이는 장애인의 모습들은 ‘동정해줘야 하는 존재’, ‘시혜를 베풀어야 하며’,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살 수 있으려면 열심히 재활해야 한다.’ 이러한 등식들을 계속 사람들에게 전파한다. 장애인을 한마디로 보통의 사람들과 별개의 생물로, 치료가 덜 된 환자로, 보면 놀라는 외계인으로 만들어 놓는다.
또한 장애의 문제를 장애를 가진 개인과 그 가족의 문제로 국한시켜 보게 했다.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의 시작은 장애인과 장애의 문제를 이런 식으로 왜곡시키고 있는 기존 방송사들과 언론들에 대한 도전으로 시작했다. 장애의 문제는 결코 장애를 가진 개인과 그 가족의 문제가 아니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동정과 시혜, 재활과 장애극복 신화 속에는 장애인의 인권이 비집고 들어가기 힘들다.
울장애인인권영화제는 장애인의 인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장애인 당사자 개인의 개별적인 문제가 아닌 보편적인 사회문제적 시각으로 영상의 포커스를 맞춘다. 따라서 장애인 스스로가 자신이 가진 문제들을 자신의 시각으로 영상에 담아내야 하지만 영화제를 처음 시작하는 초창기엔 영상카메라를 다루는 장애인들이 전무했다. 이러한 실정이기에 영화제 개최와 함께 장애인영상미디어교육을 동시에 시작했다.
영화제를 함께 준비하는 비장애인 영상활동가들 또한 장애인인권에 관한 영상을 제작하면서 이러한 점을 매우 조심해야 했다. 영화제 시작과 동시에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영상미디어교육을 시작했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장애유형에 따라 개별적인 교육 커리큘럼이 개발되어야 하지만 열악한 조건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년이 지난 지금 장애인영상미디어교육이 전국각지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해마다 4월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를 개최해오고 있다. 현재까지 9회가 진행되었는데 영화제가 이어져 오면서 적지않은 문제들이 항상 상존해왔다. 재정적인 문제가 늘 존재해왔지만 그보다는 영화제의 기반을 이루는 장애인 당사자들이 제작한 영상들이 여전히 많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전국각지에서 해마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영상미디어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아직도 장애유형에 맞는 교육커리큘럼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또한 대다수의 영상미디어교육들이 단기성 프로그램에 머물며 기초과정만을 답습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교육과정들을 안정적으로 지속하려면 중장기 전망을 갖고 지속적인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데 현재는 이런 체계적 지원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한다. 그리고 고가의 영상장비도 문제다. 장애인들이 영상교육 마치면 배운 기술들을 계속 활용해야 하는데 장비를 마련하지 못해 배운 기술조차 써 먹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실정이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들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는 8회째부터 영화제 사전제작지원을 목표로 대상을 모집해 영상미디어교육을 수료한 장애인들이 지속적으로 영상활동을 할 수 있도록 기존 영상활동가들을 1:1 멘토로 붙여주고 장비가 필요하면 장비를 대여해주며 장애인영상제작활동을 독려하고 있으며 이번 영화제에 이런 방식으로 제작한 영화 2편의 작품이 상영되어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내 나이 서른입니다](사전제작: 김수미)는 50이 넘도록 사람다운 삶을 영유하지 못한 장애여성이 장애인야학에 다니며 장애인자립생활에 눈을 뜨면서 비로소 사람다운 삶을 꿈꾸기 시작하며 자립생활을 시도한다는 내용이고 [시설을 탈출해서 자립생활을 하고 있는데...](사전제작: 한정열)’는 시설에 살던 장애인이 탈시설 해 자립생활하면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담았다.
이런 사전제작 영화들을 포함한 9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가 지난 4월 7일부터 9일까지 사흘간 혜화동 대학로CGV 지하1층 무비꼴라쥬관에서 열렸다. 개막작 [태영, 센터 가는 길](김태영 연출)’을 시작으로 27편의 장애인인권영화들이 3일 동안 관객들에게 차례차례 선보였다. 개막작 ‘태영, 센터 가는 길’은 뇌성마비 장애인 태영이 전동휠체어를 타고 자신이 활동하는 자립생활센터로 가는 과정을 그린 로드무비다.
또 폐막작으로 선보인 [910712 희정](유원상 연출)은 고교생 희정이 동사무소에 찾아가 주민등록증을 발급받는 과정 속에서 손에 장애가 있는 희정이 내보이고 싶지 않은 손을 내보이면서 겪는 사람들의 냉담한 시선과 그로 인해 상처받는 희정의 모습을 잔잔하게 그렸다. 이밖에도 시설을 나와서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하는 중증장애인의 모습을 그린 [지렁이 꿈틀](장애in소리)’ 등의 영화들이 자신의 고유한 장애인권의 감수성을 가지고 관객들의 평가를 받았다.
사흘 동안 800여 관객들이 9회 영화제를 찾아주었다. 여전히 자립생활센터 활동가들과 장애인복지 종사자들, 관련 전공자들이 객석을 상당수 차지했지만 간혹 건물 밖에 나붙은 영화제 포스터를 보고 찾아주신 관객들도 있었다. 과연 그들은 어떤 느낌으로 영화를 보았을지 궁금하다.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들은 장애운동과 관련된 이슈를 다룬 영화들도 많았지만 독특한 표현방법으로 장애인의 이동권과 편의시설 문제를 이야기한 [스쿠터의 하루](강문종) 등이 관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특히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 형식을 빌어 장애인이동의 문제와 편의시설 설치의 문제를 알기 쉽게 표현해서 어린이들의 장애인권교육의 자료로서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 보다 많은 비장애인관객들이 와서 봐 주셨으면 좋겠다. 1회부터 9회까지 영화제가 개최되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영화제를 찾아와서 장애인인권영화들을 봐 주셨다. 하지만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관객들은 역시나 장애계 사람들과 장애관련 종사자들이다. 물론 이런 분들도 그동안 몰랐던 장애관련 이슈들과 장애문제에 대한 사회적 접근의 필요성을 크게 인식하고 돌아가지만 기존 방송들을 통해 익숙해져버린 비장애인들이 가지고 있는 왜곡된 장애관을 영화제를 통해 계속적으로 바꿔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영화제를 통해 보여졌던 장애인인권영화들이 영화제가 끝난 뒤에도 계속적으로 세상에 노출시켜야 하는 문제가 숙제로 남아 있다.
내년이면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가 10회째를 맞는다. 진보적장애인운동과 함께 성장해 온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다. 그들과 함께 운동의 역사를 영화로 기록하고 지역사회 속의 장애인의 삶을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으로 지역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관점으로 영화제를 통해 세상에 외쳐왔다. 운동과 더불어 세상은 점점 미미하게나마 바뀌어가고 있다. 하지만 갈 길은 아직 멀다.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를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잘못 비추어진 왜곡된 장애인관을 바로 펴고 장애인도 세상을 살아가는 사회구성원이란 사실을, 장애로 인해 차별 받거나 인권이 무시되지 않는, 똑같은 사람의 권리를 갖고 살아가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장애가 없는 사람들이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사회로 바꾸는데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가 한 가닥 일조했으면 한다.
[필자소개] 박정혁
현재 장애인문화공간에서 3년째 활동하고 있고 중증의 뇌성마비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터넷 장애인언론 에이블뉴스에서 1년간 오피니언 활동을 한바 있으며, 지금은 장애인신문 비마이너에서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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