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74호 이슈와 현장 2011.5.30] 독립영화의 사회적 제작 실험, [뉴타운컬쳐파티] 오병일(진보네트워크센터)
일이 만들어지려면, 뜻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모양이다. 우연히도 비슷한 시점에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는 경우가 있다. 나와 이상욱 PD도 그렇게 만나 독립영화 [뉴타운컬쳐파티]의 사회적 제작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1999년부터 진보넷과 정보공유연대 IPLeft에서 특허나 저작권과 같은 지적재산권 이슈에 대응하는 활동을 해왔다. 갈수록 강화되어가는 지적재산권 제도를 비판하는 법, 정책에 중심을 둔 활동이었다. 정보공유연대는 2004년에 '정보공유라이선스'라는 공개 라이선스를 발표한 바 있다. 정보공유라이선스는 창작자가 자신이 창작한 저작물을 어떤 조건에서 이용할 수 있는지를 정하는 일종의 약관이다. 현재의 저작권 제도 하에서는 창작자가 자신의 저작물이 자유롭게 복제, 배포되기를 원하더라도, 이용자 입장에서는 저작권 침해를 우려하여 이용을 주저하게 되기 때문에, 정보공유라이선스와 같은 공개 라이선스를 통해 저작물을 자유롭게 복제, 배포할 수 있음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비슷한 취지의 '크리에이티브커먼스 라이선스(Creative Commons License, CCL)'가 있다.
그러나 작년부터 심각하게 고민했던 점은 창작자의 개별적인 공개 라이선스 채택을 넘어, 대안적인 문화 생산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것이었다. 개인 창작자가 공개 라이선스를 통해 자신의 저작물을 공개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감사할 일이지만, 여유(?)있는 개인의 기부 행위에 그칠 우려가 있다. 사회적으로 좀 더 의미가 있으려면, 공개 라이선스가 저작물의 공개에 기반한 대안적인 생산 시스템과 결부가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자유/오픈소스 소프트웨어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를 위협할 정도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고, 미국에서는 음원에 CCL을 채택하여 유통시키는 매그나튠과 같은 사업체가 등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고민을 하고 있던 2010년 말 경에, 이상욱 PD가 한국독립영화협회와 진보넷에 [뉴타운컬쳐파티]의 사회적 제작 프로젝트를 함께 할 것을 제안했다.
독립영화 [뉴타운컬쳐파티]는 철거 위기에 놓인 식당 두리반과 가난하지만 음악을 하고 싶은, 그래서 스스로 자립기반을 만들어가는 인디 밴드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영화의 촬영은 지난 2010년 초부터 시작되었고, 올해 8월 경에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상영된 후, 10월 경에 공식 개봉할 예정이다.
여느 독립영화와 마찬가지로 [뉴타운컬쳐파티] 역시 돈이 궁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십시일반 소액 기부를 받아 영화를 제작하고자 했다. 그런데 이렇게 후원을 받아 만들어진 영화의 저작권이나 수익을 제작자가 소유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식 공개 후 일정 기간 뒤에 영화를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정했다. 사회적으로 제작하고, 그렇게 제작된 영화를 사회에 환원하자. 이른바 사회적 제작. 이상욱 PD에 따르면, 이것이 사회적 제작 프로젝트의 문제의식이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이상욱 PD가 한국독립영화협회와 진보넷에 [뉴타운컬쳐파티]의 사회적 제작 프로젝트를 제안했고, 2010년 말부터 정기적인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뉴타운컬쳐파티] 제작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고, 제작위원회 회원에 대한 규정, 회원이 납부하는 기금의 사용 방식, 영화의 사회 환원 방법 등 사회적 제작의 의미를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제작위원회'라는 명칭이 사람들에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최근 '독립영화 희망씨앗'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로 했다.)
회원들은 기금을 낼 때, △ 완전기부, △ 100% 환급, △ 독립영화지원금 출연 중에서 선택을 할 수 있다. 이는 [뉴타운컬쳐파티] 한 편의 영화가 아니라, 독립영화의 선순환을 위한 자립기반을 구축하고자 하는 의도이다. 100% 환급 옵션의 경우에도, 회원의 의사에 따라 또 다른 독립영화에 투자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이다. 기금을 내지 못하더라도, 촬영, 홍보, 오프라인 행사 등 영화 제작에 참여함으로써 회원이 될 수 있다.
영화의 수익금은 공익과 창작자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위해 쓰여진다. 수익금의 20%는 독립영화지원금으로 출연되며, 30%는 인권센터, 철거민, 인디음악 공연사업비로 기부되고, 50%는 참여 스텝과 음악을 위한 러닝 개런티로 지급이 된다.
제작된 영화의 사회 환원은 공개 라이선스를 채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뉴타운컬쳐파티]의 정식 공개 후 1년 뒤에 정보공유라이선스와 CCL을 동시에 채택하기로 했는데, 이를 통해 누구나 자유롭게 복제, 배포할 수 있게 된다. (영화를 개작하거나 또 다른 창작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줄 것인지는 다큐멘터리라는 특성상 출연자의 초상권 등의 문제가 걸리기 때문에, 좀 더 논의하기로 했다.)
올 초부터 알음알음 제작위원회 회원을 모집하기 시작했으며, 3월 말에 홈페이지(http://ntcp.kr)를 오픈하고 공개 모집에 들어갔다. 지난 4월 16일에는 두리반에서 100여분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제작발표회 및 파티를 진행하였다. 5월 17일 현재, 총 257명의 개인회원과 11개 단체가 회원으로 참여하였으며, 9,559,000원의 제작 기금을 모집하였다. 목표하고 있는 기금 총액은 총 4500만원! 현재의 회원 수 대비 기금액 추이가 이어진다면, 약 1000명의 회원을 모집하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앞서 사회적 제작의 의미에 대해 얘기했지만, 이는 고정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이후 더 많은 토론과 [뉴타운컬쳐파티] 실험에 대한 평가, 그리고 또 다른 실험을 통해 더욱 발전되어야 할 개념이다. 당장 독립영화출연금을 향후에 어떻게 관리하고,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해서도 아직 정해진 바는 없다. 제작위원회는 정기적으로 회원과의 간담회를 통해 이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킬 계획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디 음악인들도 최근 '자립음악생산자조합'을 발족시켰다. 문화가 상품으로서만 소비되는 시대, 그리고 소수의 문화 기업이 문화 상품의 유통을 독점하는 시대에 문화적 다양성, 예술을 매개로 한 창작자와 수용자의 소통을 꿈꾸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저작권법 등 법과 제도, 공공적 지원 등 우리가 해결해야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무엇보다 스스로 자립을 추구하는 창작자들과 수용자들이 함께할 때 변화는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내는 기금은 영화 관람료 7000원보다 많은 돈일지 모르지만, 더욱 풍요로운 문화 기반을 위한 가치있는 기여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 □
* [뉴타운컬쳐파티]의 홈페이지는 http://ntcp.kr 입니다. 홈페이지에서 '독립영화 희망씨앗'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오병일
1998년부터 진보네트워크센터에서 상근활동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동시에 1999년부터 정보공유연대 IPLeft라는 모임을 시작하여 현재는 대표를 맡고 있다. 2002년에 정보공유연대 활동가들과 <디지털은 자유다>(이후)를 함께 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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