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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73호 이슈와 현장] 영화산업의 터를 단단히 다져야 할 때- 최고은 사건 이후 변화하는 문화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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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73호 / 2011년 3월 31일

 
 
 
영화산업의 터를 단단히 다져야 할 때
- 최고은 사건 이후 변화하는 문화정책

 
 
조현경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대외협력팀장)

 

 

 

영화산업은 발전을 거듭해 왔지만 제작방식은 여전히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천만 영화 관객 돌파와 연매출 1조원이라는 헤드라인이 보여주듯 영화산업의 규모가 커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배급 및 상영에 한정된, 대자본이 투여된 극장 멀티플렉스 시스템으로의 변화가 가져온 수적 증가에 기댄 바가 클 뿐, 산업 자체가 자생적 파이를 키웠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제작방식 역시 질적인 개선이 이뤄졌다고 보기 힘들다.

 

 

 

계약의 대부분은 대충 오고가는 말로 이뤄진 구두 계약이나 을의 의무만 명시된 반쪽짜리 계약서를 통해 이뤄진다. 계약서 두께가 웬만한 책 한권 정도인 할리우드와 굳이 비교하지 않더라도, 몇 페이지로 요약되는 한국의 계약서는 국내 영화 제작 환경이 얼마나 후진적인지 가늠할 수 있게 한다. 더욱이 이 계약 조건조차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계약 불이행에 대한 법적 처벌은 미비할 뿐이며 당사자들도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임금이 체불되어도 제작사는 ‘언젠가 주겠다' 하고, 스태프는 ‘언젠가 받겠지'한다. 둘 사이에 ‘언젠가'라는 기약 없는 시기에 대한 이상한 암묵의 약속이 생기는 것이다. 소위 통계약이라 불리는 도급 계약도 문제다. 현재의 계약금/중도금/잔금식의 지급방식은 임금 체불을 용이하게 만든다. 한번 임금체불을 해본 제작사는 자신에게 해가 미치지 않는 걸 알기 때문에 다른 작품에서도 쉽게 임금체불을 한다. 체불은 체불을 낳는다. 이런 상황에서 연장계약과 초과근무수당은 말조차 꺼낼 수 없는 상황이다.

 

 

영화산업이 2006년 호황기를 거쳐 급속히 불황기로 빠져들면서 스태프 임금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현재의 임금은 10년 전으로 퇴보한 수준이다. 영화 제작 편수가 늘고 점차 회복세에 접어드는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더불어 임금 상황도 나아질 것을 기대하기 힘들다. 스태프 임금은 물가 상승에 대해서는 고정금리, 제작 여건에 대해서는 최저금리가 보장되지 않는 변동금리로 비유할 수 있다. 말인즉, 물가상승에 따라 임금이 따라 상승하지 못하면서 제작여건(제작비 규모, 회사의 사정)에 따라서는 덩달아 출렁댄다. 이러니 임금은 저임금일 수밖에 없고, 상황에 따라 최저생계비를 하회할 수밖에 없다.

 

 

실례로 작년 100억 이상이 투자된 한 영화의 경우, 촬영이 예상 회차보다 약 2배 이상 늘어나 제작비 조달이 힘들어지자 제작사는 스태프 임금을 깎았다. 회차 막바지에 막내 스태프들은 한 달에 50만원만 받고 일해야 했다. 제작비 규모가 큰 제작사도 이러한데 저예산 영화는 두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임금 결정권을 회사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임금 결정시 회사와 스태프는 합의를 거치긴 하나 이는 표면적 합의일 뿐이다. 개개의 스태프는 합의 아래 흐르는 은근한 협박을 거부할 수 없다.

 

 

임금체불, 계약 방식의 불공정성, 도급 관행, 연장계약 부재와 초과 근무수당 미지급, 임금지급에 대한 도덕적 해이 등 이 모든 것이 열악한 제작 환경 아래 놓여 있는 스태프의 삶을 고난하게 만들었고, 지금도 만들고 있다. 그리고 2011년 2월, 한 영화인의 죽음이 영화계를 벌컥 뒤집어 놓았다.

 

 

함께 영화밥을 먹었던 동료의 죽음은 그 자체로 충격적이나 최고은 작가의 죽음은 여타의 것과 그 성격을 달리한다.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는 그 곳이 언제든 자신의 발목을 잡아 죽음으로 이끌 수 있는 늪이 될 수 있음을 명시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생업을 삼은 독거 여성이 먹을 것을 빌어야 했고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죽음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그녀가 속한 산업과 사회가 한 개인을 어떤 식으로 방치했는가를 보여준 것이다. 그녀의 죽음은 사회 안전망의 허술함과 산업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단적으로 드러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사건은 사회 전반에 파장을 일으켰다. “예술가는 배가 고픈 게 당연해”, “너네는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식으로 생계/노동의 가치와 예술을 분리시켰던 생각을 뒤바꾸었다. 자신이 노동자가 아니라 예술가라고 외치던 시인은 이제는 자신을 예술을 하는 노동자라고 불러달라는 세상이 되었다. 예술가는 노동자이며 그들의 생계/노동 역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한 작가의 죽음으로 예술가는 (이제서야) 노동자가 되는 권리를 획득하게 되었다.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와 맞물러 작가의 죽음은 관련 부처와 국회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2011년 삭제되었던 영화진흥위원회 기획개발과 시나리오마켓의 예산이 복구되었고, [예술인 복지법]이 다시 논의 선상에 오르게 되었다. 이 법안은 2009년 10월 여,야에서 각각 발의되었지만 고용노동부와 기획재정부 등 여러 부처의 반대에 부딪혀 별 다른 진전 없이 근 일 여 년 동안 상임위에서 계류되어 있었다. 최고은 작가의 죽음을 계기로 2011년 2월, 일명 ‘최고은법‘이라 불리는 ‘예술인 복지 지원법'(전병헌 의원 발의)이 다시 발의되었고, 여야의 합의와 부처 의견 조율을 거쳐 ‘예술인 복지법안'으로 3월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 상정되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예술인 근로자 의제
2. 고용보험제도 도입
3, 산업재해 보상보험 제도 도입
4. 창작예술가(작가, 화가 등) 대상 복지 지원 서비스
5. 예술인 복지 재단 설립
6. 예술인 복지 기금 설치

 

 

이 법안의 가장 큰 의의는 예술인을 법적 근로자(노동자)로 인정했다는 데 있다. 이에 따라 일반 근로자(노동자)들에게 적용되는 4대보험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발판이 만들어졌다. 고용, 의료, 산재와 기초 생계 부분에서 보호를 받지 못했던 대부분의 예술인 및 예술 산업 종사자들은 이 법안이 통과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은 높다. 우선 예산을 쥐고 있는 관계 부처가 이 법안을 반대하고 있다. 사업 수행을 위해서는 복지재단이 설립되어 복지기금을 운용해야 하는데 복지법 도입에 드는 추계비용이 2,750억 원 정도다. 기획재정부는 민간기금조성은 인정하지만 정부기금신설은 반대하고 있다. 국가가 지원하게 될 경우에 특정 분야 종사자들과의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 되어 재정에 심각한 부담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또 고용노동부에서는 고용보험에 대한 부분을 문제 삼는다. 예술가들의 근로 형태와 활동방식이 다양해 일률적인 근로자 의제에 의한 고용보험 등의 적용이 어렵다는 것이다. 더불어 예술인을 근로자로 인정하게 되면,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직에 있는 직군까지 근로자로 의제화해야 하기 때문에 고용보험금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영화계 역시 복지법안의 통과를 기다리고 있을 상황은 아니다. 현 기금 조성 방법에 대해 두 부처의 반대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법안이 통과되어도 민간기금으로 복지기금이 신설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기존의 민간 기금(문화예술기금이나 영화발전기금 등)이 전입될 텐데 여기에 영화계의 딜레마가 있다. 배고픈 예술계에서 민간기금을 새로 조성하기는 ‘하늘에 별따기' 만큼 힘든 일이기 때문에 몇 단위의 기금으로 전체 예술인을 보조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영화인에게 지원되어야 기금이 예술 전반으로 배분되어 실제 영화스태프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현저하게 떨어지게 된다.

 

 

 

 

예술인 공공복지를 위해서 이 법안은 필히 통과되어야 한다. 때문에 영화계에서는 이 법안을 지지함과 동시에 별도의 보안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영화노조에서 주장하고 있는 ‘한국형 앵테르미탕'은 여러모로 유효해 보인다. 영화노조는 창립 이후부터 ‘실업부조금'이라는 이름으로, 스태프들에게 실업급여를 대처할 수 있는 인센티브 지급을 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해왔다. 그 제도의 근간은 프랑스의 문화예술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실업제도인 앵테르미탕(intermittent du spectacle)이다. 앵테르미탕은 문화예술 종사자들이 10개월간 507시간을 계약에 의해 일하면 나머지 기간에 실업급여를 탈 수 있는 제도이다.

 

 

한국형 앵테르미탕은 프랑스의 그것을 근간으로 하되 발전적 모델로, 단순 생계비 지급에서 탈피한 복지와 교육(자기 개발 및 산업 적응)을 결합한 산업 연계의 형태를 띠고 있다. 기본적으로 문화산업 종사자들의 생계를 보전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근저에는 그들의 창작 활동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생계유지가 가능해야 한다는 문화적 인식이 있다. 실업기간을 단순히 직업상실기간이 아닌, 더 나은 창작활동을 위한 발전기간으로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여러 방면에서 예술인의 기초 생계 보장을 위한 제도적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반가운 일이다. 사회 전반의 변화와 맞물려 영화계 역시 내부의 문제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우선, 노사정이 참여한 표준계약서가 올해 안으로 완성되어 배포될 예정이다. 이 계약서가 공정한 계약 관계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또한 영화노조에서 운영되었던 영화인 신문고는 운영 주체가 영진위로 바뀌게 됨으로써 공적 역할이 확대되었다. 이로써 신문고에 체불사로 등재될 경우, 해당 체불사에는 영진위 제작 및 투자 지원, 관련 공기관의 지원 사업에서의 불이익을 받는 등 강력한 제재가 가해질 전망이다.

 

 

그러나 제도의 마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화산업 종사자들의 영화계 불합리한 관행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일 것이다. 불공정한 계약에 대해서는 적극 시정할 것을 요구하고, 계약이 지켜지지 않았을 경우에는 항의 및 관련 기관에 신고를 하는 등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자신의 권리를 놓는 순간, 누군가는 그 권리를 가져가기 마련이다.

 

 

예술인 전반의 처우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예술 노동자로의 인식 변화, 불합리한 관행을 바꾸려는 영화산업 종사자들의 자세와 적극적인 대응, 정부의 관련 단체들의 정책 수립과 실행 등 이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질 때 늪은 단단한 땅이 될 것이고 영화산업의 뿌리는 튼튼히 내릴 수 있다. 그 뿌리 위로 나무는 건강하게 자랄 것이고, 그 때야 풍성한 열매의 수확을 거둘 것이다. 열매는 나무를 키우기 위해 땀을 흘린 모든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그들의 당연한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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