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72호 / 2010년 12월 22일
퍼블릭액세스 지원예산 삭감에 대한 대응 관련 짧은 기록과 소회 |
이진행 (익산공공영상미디어센터 미디어연구소장) |
2011년 예산안이 요란하게 국회를 통과한다 했더니, 아뿔싸, 기대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대폭 삭감된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제작지원 예산안이 복원되지 않은 채 그대로 통과되었다는 것이다. 이로써 2011년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제작 지원 예산은 올해에 비해 10억이나 줄어들게 되었다.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제작지원에 투입되는 공적자금은 2004년 이후 매년 대략 25억에서 30억 원 정도였다. 2000년 통합방송법에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의 편성과 지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면서 방송통신위원회(당시 방송위원회)는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을 지원하고 확대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이 때문에 시작된 것이 방송발전기금을 통한 방송채택료 지급이다. 초기에는 개별 프로그램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가 직접 기금을 집행하는 방식이었으나, 현재는 공모를 통해 방송사 차원에서 정규 편성 된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을 지원하는 형태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실상 방송발전기금으로 집행되는 제작지원금은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의 양적 확대에 있어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중 대부분은 방송발전기금을 지원받고 있으며, 기금 지원이 없는 경우 방송을 중단하는 사례도 많다. 따라서 방송채택료를 일정한 계획과 의지를 가진 방송사의 정규편성 프로그램에 지원함으로써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의 안정화와 방송사의 태도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겠다. 또한, 경제적 한계 때문에 제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청자들의 참여 기회를 보장하고 더 많은 시청자들의 참여 동기를 유발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시청자참여프로그램 활성화 정책과 관련해서 자주 지적되었던 지점은 이러한 방송채택료를 통해 개별 제작자들에게 제작을 위한 약간의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 외에 별다른 지원정책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부산과 광주에 세워진 시청자미디어센터의 여러 활동이나 시청자권익증진사업을 통한 조사?연구 지원, 그리고 정책연구와 토론 등의 사업이 시청자참여프로그램과 다양한 방식으로 연계되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양적 확대를 넘어 퍼블릭액세스의 본래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이고 다각적인 지원 정책이 필요함이 계속 주장되어왔던 터였다. 작년과 올해만 해도 방송통신위원회와 그 산하기관인 전파진흥원 차원에서 이루어진 각종 토론회와 연구 사업을 통해 현재의 지원 사업은 유지하되 별도의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반복해서 제출되기도 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몇 년 동안 지원되던 예산이 40%나 삭감되게 된 것인지 정말 모를 일이다. 이에 대한 어떠한 사전 조사나 의견 수렴 과정도 없이 말이다.
지난 9월 말, 예산 삭감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 미디어운동 진영은 바쁘게 움직였다. 우선, 이 소식을 들은 주변 활동가와 기자들이 입장을 묻기 시작했다. (한겨레와 같은) 일부 언론에서 이 문제를 크게 다루어 우리의 입장을 전달하고 정책 담당자인 방통위의 설명을 전해주기도 했다.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이하 전미네)와 퍼블릭액세스네트워크 명의로 방송통신위원회에 질의서를 발송하기도 했다. 질의서는 예산 감축에 대한 사실관계와 구체적인 내용 파악, 이번 결정에 대한 의견수렴 여부, 그리고 향후 전망을 묻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9월 30일에 발송된 이 질의서에 대한 답변은 10월 12일 돌아왔는데, 예산은 예년보다 10억이 줄어든 15억으로 책정될 예정이고 방송사가 자발적으로 제작비의 일부를 제작자에게 지급하고 향후 시청자미디어센터를 통한 인프라 제공의 형태로 중장기적 지원방향을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http://www.media-net.kr/blog/?p=186) 뭐, 예상과 다르지 않은 결과.
10월 7일에는 익산공공영상미디어센터 재미에서 [2010 퍼블릭액세스 워크숍 RE-ACCESS]가 열렸다. 방송발전기금 시청자권익증진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는 퍼블릭액세스 관련 연구사업 일환으로 이루어진 워크숍인데, 근 몇 년 만에 열린 퍼블릭액세스와 관련된 전국적 워크숍이다 보니 활동가들의 관심은 의외로 뜨거웠다. 부산, 대구, 진주, 목포, 광주, 전북, 인천, 서울 등에서 온 많은 활동가들이 퍼블릭액세스와 관련한 몇 가지 주제들에 대한 토론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당연히도 이번에 줄어들게 된 예산 이야기가 나왔다. 두 번째 주제였던 퍼블릭액세스 제도 및 정책에 대한 토론에서 우려와 성토를 풀어낸 활동가들은, 쉬는 시간을 이용해 이 사태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아냈다. 여기서 제안된 것이 바로 예산 삭감과 관련된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제작 프로젝트였다. 각 지역에서 예산 삭감 문제에 대한 액세스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영하여 지역에서 이 문제를 이슈화하고 국회도 압박해보자는 대구 활동가의 제안이었다. 과거에도 하나의 이슈를 가지고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액세스 프로그램을 제작해보자는 이야기는 종종 있었지만, 좀처럼 이루어지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해당 이슈에 대한 각 지역의 긴장감이나 체감온도가 다른 경우도 있었고, 제작 여건이 되지 않는 상황들도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이번 경우엔 좀 달랐다. 제작지원금이 삭감된다는 것은 그만큼 퍼블릭액세스 활동 자체의 기반이 취약해질 수밖에 없는 국면이기 때문에 조금 더 많은 지역들이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
10월 21일, 전미네와 퍼블릭액세스네트워크는 성명서를 발표한다(http://www.media-net.kr/blog/?p=188). “방통위는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지원 예산 삭감을 당장 철회하라!”는 제목의 이 성명서는 현재 방통위가 지원금 삭감의 대안이라고 이야기하는 간접 지원 방식에는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고 방통위가 시청자들의 미디어 참여와 접근을 보장하는 일에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수립한 것에 항의했다. 그리고 내년도 예산 삭감 계획을 철회하고 지원 규모를 확대할 것과 의견수렴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
성명서 발표로 인해 당장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너무도 아무 일이 없었다. 국회에서 2011년 예산을 결정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몇 가지 없었다. 미디액트, 전미네 사무국 등 서울 활동가들은 예산안에 대한 의견을 정리해 국회에 전달하는 작업을 했다. 해당 예산 담당 상임위원회인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 들어가고 있는 민주당 의원실들에 의견을 전달하고, 예결산과 관련된 민주당 당직자들과도 접촉했다. 이미 공은 국회로 넘어간 지 오래였지만, 예산 복원의 가능성은 아주 높아 보였다. 국회의원실, 방통위, 활동가들 대부분이 여당의 큰 반대만 없다면 예산 삭감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편, 11월 초, 전미네 차원에서 퍼블릭액세스 워크숍에서 제안되었던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지원금 삭감에 반대하는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제작 프로젝트'가 전미네 메일링과 블로그를 통해 다시 정식으로 제안되었다. ( http://media-net.kr/forum/topic39.html ) 제안서에는 “이러한 공동행동을 통해 지역 내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제작자에게 시청자 참여프로그램의 의미를 다시 한 번 환기시키고, 함께 논의하는 지역 내 네트워크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나아가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시청자에게 또한 퍼블릭액세스의 중요성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더불어 이번 일 뿐만 아니라 다른 일에서도 큰 이슈에 대한 기존 방식의 대응이 아닌 각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재미있는 거리들을 찾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울러 방송통신위원회 및 정부와 국회에서도 시청자참여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를 축소시키는 방향이 아닌 다양한 방식의 직접, 간접 지원을 늘리는 정책을 확대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이 프로젝트의 의미가 명시되어 있다.
사안 자체의 무게도 무겁거니와, 퍼블릭액세스 활동가들의 자기 고민까지 더해져 이 프로젝트에 대한 반응은 제법 뜨겁다. 먼저 제안을 했던 대구 지역에서는 지원금 삭감에 대한 우려와 더불어 그간의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을 평가하는 내용의 액세스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12월 초에 방영하였다. 전문적인 제작 역량을 가진 활동가와 시민사회의 지지와 역량 투여를 기반으로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공중파 프로그램을 가진 조건에서 이루어낸 한발 앞선 실천이다. 서울, 부산, 전주 등 다른 지역에서도 당장은 제작이 어렵더라도 근시일 내에 제작에 들어가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제작 일정이 늦어지면서 국회를 압박하고자 하는 목표는 달성하기 어렵겠지만, 각 지역에서 이번 일을 계기로 퍼블릭액세스 활동에 대한 의미를 서로 확인하고 제대로 된 시스템과 지원 정책의 필요성을 되새기는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익산에서도 늦더라도 제작을 해보려는 계획을 가진 것도 이 때문이다.
국회 예결이 심의 직전인 11월 26일, 전미네와 퍼블릭액세스네트워크는 논평을 통해 다시 한 번 예산 삭감에 반대하는 의견을 전달하였다.
한편, 이 때 쯤 방송발전기금 시청자권익증진사업의 일환으로 익산, 전주, 전미네 활동가들이 진행했던 ‘시청자참여프로그램 활성화방안 연구' 작업이 마무리되어 전파진흥원과 방통위 관계자들에게 발표를 하는 기회가 있었다. 연구의 결과로 제출된 정책방안은 현재의 직접 지원 방식을 유지 확대하는 한편 더욱 다양한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는 각 지역의 퍼블릭액세스 활동가,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방송사, 미디어센터 등 지원기관들과의 인터뷰와 전국 워크숍 등을 통해 도출된 내용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보고서 참고
http://www.ismedia.or.kr/laboratory/information_pds.php?pageNo=1&bbs_view_div=view&bbs_code=bbs054&idx=2282 ) (비록 내용에 대해 심도 깊게 토론하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이 자리에 참석한 정책담당자들이나 교수들도 이 내용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방통위 담당자는 (비공식적이긴 했지만) 예산이 부활될 것 같다며, 네트워크 차원에서 요구하고 있는 다른 내용은 무엇인지를 묻기도 했다.
이쯤 되면, 할 수 있는 일들은 다 한 셈이고, 우리는 더 좋은 상황은 아니더라도 이전과 같은 조건 속에서 퍼블릭액세스 활동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연구, 토론, 정책 제안 등은 이전에도 계속해 왔던 것이고, 현재의 조건을 활용하면서 더 좋은 조건을 만들어내는 일은 어차피 끊임없이 해야 할 일이니까.
하지만, 12월 8일, 난장판 속에 날치기 통과된 2011년 예산안에는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지원 예산이 삭감된 그대로 들어있었다. 허무하다. 더 무엇을 해야 했을까? 운이 없었던 탓일까? 어차피 안 되는 것이었을까?
앞으로 퍼블릭액세스 활동과 관련된 조건이 어떻게 바뀔지 단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짐작컨대, 지난 수년간과는 크게 다른 환경이 조성될 것 같다. 방통위에서는 예산 매칭 방식 등을 통해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을 편성하는 방송사에서 이전보다 더 많은 예산을 부담하게 하여 액세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시청자들에 대한 지원은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단다. 하지만, 지역민들의 직접 발언의 기회를 넓히고 지역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외부 예산 확보와 자체제작 프로그램 비율 높이기에만 골몰하던 수많은 방송사들이 과연 이 방식을 받아들일까? 너무 비관적 예측인지는 몰라도, 현재 방송발전기금 지원을 통해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있는 전국 각 지역 62개 방송사 중 몇 개나 내년에도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을 유지할 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다.
물론, 부산 KBS, 부산 MBC, 전주 MBC 등 온전히 자체 예산으로만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을 유지하고 있는 방송사들도 있으며, 방송사들이 공적 기금만 바랄 것이 아니라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을 위해 일정한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도 맞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현재의 방송사들의 인식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고 이런 인식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별다른 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로, 예산부터 줄이고 본 방통위의 일방적인 선택에 피해를 보는 것은 시청자들이 될 것이다.
지난 몇 년 간의 공적자금 지원을 통해 겨우 지역방송에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이 편성되고, 이제 막 지역방송을 통한 퍼블릭액세스 활동에 대한 실험을 시작한 지역들에겐 특히 이번 사태가 큰 난관이 될 것 같다. 이 난관을 어떻게 현명하게 돌파할 수 있을지, 방송발전기금 지원 없이도 액세스 프로그램 편성을 유지하고 활동의 조건을 확보하는 방안은 무엇일지, 또다시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왜 항상 고민을 아무리 숙성시켜도 해결되는 건 별로 없고, 매번 새로운 난관에 봉착하게 되는 것일까? 잠시, 악! 소리를 지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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