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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6호 특집] 편집위원에세이(민석) - <사물의 숨겨진 원리 The Secret Principle of Things> 감독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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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5. 12. 24.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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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6호 이슈 2015.12.26]


<사물의 숨겨진 원리The Secret Principle of Things> 감독노트


조민석(<ACT!> 편집위원)


[편집자주]

<ACT!> 편집위원회에서는 연말특집을 맞아서 편집위원들의 고민을 담은 에세이를 싣기로 했습니다. 마감일이 다가오자 다들 땅을 치고 후회를 했지만 결국 이렇게 발행은 되었습니다. 각자 자유 형식으로 쓰기로 해서 다루는 주제나 형식이 모두 다릅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것이 현재 <ACT!> 편집위원회의 고민과 상태를 가장 적절하게 담아내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쪼록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물의 숨겨진 원리The Secret Principle of Things>는 2013년 3월 22일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처음 상영되었다. 이후 2013년 한 해 동안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그리고 서울국제실험영화제 정기상영회 프로그래머 초이스: 서울의 유령(들) 등에서 상영되었다.

   영화가 어떻게 읽히는지는 영화제 프로그램 노트와 관객과의 대화에서 확인한 게 전부지만, 각각의 호불호를 제쳐두면 누가 어느 측면에서 얼마만큼의 심도로 보든 그것들은 모두 타당한 범위 안에 있었다. 특히 관객들의 이해가 흥미로웠는데 앞으로 주제와 형식을 지속하고 가다듬는데 있어 적절한 균형감을 주는 듯했다.

   첫 촬영은 2010년에, 본격적인 작업은 2012년 3월에 시작했다. 작품 설계는 오로지 연출부 안에서만 이루어졌고, 설계 내용이 적힌 감독노트는 2014년 1월에야 연출부 밖 제작진에게 공유됐다. 아래는 <사물의 숨겨진 원리The Secret Principle of Things> 감독노트의 일부를 옮긴 것이다. 




시놉시스

 

우리가 영화에서 보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는 그 자체로 완전한 현실도 완전한 비현실도 아니다. 서울시의 MICE산업 홍보영상과 용산참사 유가족 전재숙 여사 그리고 서울 밖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낯설게 보는 동안 관객들과 한번쯤 이 질문을 되짚어 보고 싶다.

 


연출의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품위를 얻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기도 하고, 신과 같은 입지를 가지려는 야망을 품고 원리나 실현에 몰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향해야 하는 ‘무엇’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위해 물질적인 안락함을 얻고 싶어 할까요? 우리는 무엇을 위해 첨단의 문명을 꿈꾸는 걸까요? 아니, 우리는 이미 우리가 이러한 추구를 바라지 않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혹시 그 이유가 우리가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동안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이 하찮게 여겨지는 걸 경험하며 절망을 느꼈기 때문은 아닐까요? 영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로부터 길어 올려 집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영화를 통해 보아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구성


장소: 세계상 - 행위자 - 시간


또한 영화사의 정리로서: 클래식 - 모던시네마(plan-séquence) - 원原영화cinema

 


영화


영화는 개연적인 것과 우연적인 것이 만나 스파크를 내는 순간, 프레임 안과 밖으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들리는 것과 들리지 않는 사이에서 미묘하게 보여 지는 무언가, 움직임, 색과 형태, 소리의 운율이 합을 이루는 지점.

 



카메라는 그 앞에서 극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를 기록한다.(※디지털 이미지-이제 카메라는 실제만을 담지 않는다.)


보여 지는 것은 실제이지만 보게 되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실제는 아니라는 점.


카메라는 사라지고 시선만 남는다.



근대 - 가공, 진보, 도시


자연에 대한 더 나은 해석은 오직 사례에 의해, 적절하고 타당한 실험에 의해 얻을 수 있다. 감각은 실험을 판단할 수 있을 뿐이고, 오직 실험만이 자연과 사물 그 자체에 대해 판단할 수 있다. 1:50


일부 신학자들은, 자연을 너무 깊이 탐구하는 것은 하느님이 허락하신 인간의 본분을 벗어나는 행위라고 생각해, 도대체 금령禁令이 있을 수 없는 자연탐구의 길을 처음부터 차단하고 마는 것이다. […] 그러나 그 문제를 제대로 살펴보는 사람은, 자연철학이야말로 성서를 따르고 미신을 물리치는 확실한 명약名藥이요, 훌륭한 양분임을 알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철학은, 말하자면 종교의 가장 충실한 시녀로서 몸을 바친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성서는 하느님의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요, 자연철학은 하느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1:89


자연의 비밀도 제 스스로 진행되도록 방임放任했을 때보다는 인간이 기술로 조작을 가했을 때 그 정체가 훨씬 더 잘 드러난다. 그러므로 좀 더 나은 자연지(자연철학의 진정한 기초와 근거인)가 만들어지기만 하면 자연철학의 진일보를 기대할 수 있으니, 바로 이것이 우리가 희망을 말하는 또 하나의 근거이다. 1:98

―프랜시스 베이컨, 『신기관』


인류의 미래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세 가지 요점으로 축약된다. 여러 국가 사이의 불평등의 파괴, 한 국민 내에서의 평등의 진보, 인간의 현실적 완성이 그것이다. 



지적 도덕적 물리적 능력의 현실적 완성 ― 이는 이러한 능력의 강도를 높여 주고 그 사용을 제어하는 도구의 완성에 따른 것일 수도 있다 ―을 통해서든 인류는 분명 개선될 것인가?



이 광대한 나라들 어떤 곳에서는 우리에게서 수단을 받아들여 문명화되기만을, 유럽 인들 중에서 형제를 발견해 그들의 친구와 제자가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수많은 인민에게 그 열기가 전달될 것이다.

―마르퀴 드 콩도르세,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


맨체스터는 영국 공업의 출발지이자 중심지이다. 맨체스터 상업은 교역변동의 지표가 된다. 현대적 방식의 매뉴팩처는 맨체스터에서 완성된다.



각자는 자신의 특수성을 가지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노동자들은 맨체스터에서와 사는 방식이 거의 비슷하다. 따라서 나는 특히 이들 소도시의 특별한 측면만을 그려 보았고 맨체스터에서 노동인구의 상태에 관한 일반적 고찰은 이러한 주변 도시들에서도 완전히 적용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건축물을 다 모아놓은 것이 보통 맨체스터라고 불리며 40만 명을 넘는 주민들을 포괄하고 있다. 이 도시는 독특하게 지어져 있어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일과 즐거운 산보에만 한정하여 움직인다면 그는 노동자나 노동자가 사는 지역을 접촉하지도 않은 채 매일 왔다갔다 하며 여러 해를 살 수도 있다. 이는 주로 공공연한 의식적인 결정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암묵적인 합의에 의해서 노동자 거주 지역은 중간 계급을 위해 남겨둔 도시의 다른 부분과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맨체스터는 그 심장부에 반 마일 정도의 길이와 폭을 가지는 상당히 넓은 상업 지역을 가지고 있으며 그 대부분은 사무실과 상점으로 가득 차 있다. 거의 전 지역이 밤에는 사람이 거주하지 않고 버려져 외롭고 인적이 없는 거리로 변한다. 단지 야경꾼과 경찰만이 어두침침한 전등불을 들고 골목길을 돌아다닌다. 이 지역은 교통이 매우 집중되어 있으며 화려한 상점들이 줄지어 있는 간선도로에 의해 갈라진다.



누구나 간선도로의 외형만을 보고도 그 주변 지역을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도 거리에서 노동자 거주 지역의 실태를 포착할 수는 없다. 나는 이러한 위선적인 도면이 모든 대도시에 일반적으로 공통되는 것임을 알고 있다. 나는 소매상들이 자기 사업의 성질상 큰 길가를 차지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나는 이러한 큰 길가에는 어디에서나 보다 좋은 건물들이 세워지고 땅값은 멀리 떨어진 지역보다 큰 길가에 가까울수록 더욱 올라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노동자계급이 간선도로로부터 그렇게 체계적으로 배제되고 부르주아지의 신경과 눈에 거슬리는 모든 것들을 그렇게 유연하게 감추는 것이 맨체스터처럼 잘 이루어진 곳은 본 경험이 없다.

―프리드리히 엥겔스,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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