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ACT! 96호 특집] 편집위원에세이(수미) - 글쓰기의 부끄러움에 대하여

전체 기사보기/이슈와 현장

by acteditor 2015. 12. 24. 17:53

본문

[ACT! 96호 이슈 2015.12.26]


글쓰기의 부끄러움에 대하여

이수미(<ACT!> 편집위원)


[편집자주]

<ACT!> 편집위원회에서는 연말특집을 맞아서 편집위원들의 고민을 담은 에세이를 싣기로 했습니다. 마감일이 다가오자 다들 땅을 치고 후회를 했지만 결국 이렇게 발행은 되었습니다. 각자 자유 형식으로 쓰기로 해서 다루는 주제나 형식이 모두 다릅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것이 현재 <ACT!> 편집위원회의 고민과 상태를 가장 적절하게 담아내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쪼록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새벽부터 비가 눈으로 바뀌더니 주차장에 내려갔을 땐 이미 차 위에 눈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어제 밤늦게 귀가하며 지하 주차장에 자리를 얻지 못한 탓에 밤새 밖에 세워두었던 차는 실내까지 꽁꽁 얼어있었다. 시동을 켜고 잠시 그냥 앉아 있자 옆에 앉은 딸아이가 지각하겠다며 재촉을 했다. 딸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오전 강의 시간에 맞춰 출근해야 하기에 마음이 바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눈은 점점 더 많이 내리고 길은 얼어있고 아무래도 고속도로가 밀릴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바빠도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 한 곡을 다 들은 후에야 천천히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엄마의 느긋한 행보를 지켜보던 딸아이가 결국 투덜거렸다. 


  아이를 내려주고 고속도로 위에 앉아 줄줄이 밀리는 차들의 꽁무니를 바라보고 있자니 아침에 딸에게 해줬던 말이 생각이 난다. 

  “운동하기 전 몸을 풀기 위해 준비운동을 해야 하는 것처럼 자동차도 달리기 전  에 엔진을 덥힐 수 있게 잠시 기다려줘야 해. 지금처럼 추운 날엔 더더욱.” 

  하지만 차에 조금 무리가 가더라도 좀 더 서둘러 출발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출근길 정체를 조금쯤 면할 수도 있었을 텐데...


  슬며시 일어나는 후회의 꼬리를 물고 마음 한 편을 불편하게 하던 글 하나가 불쑥 떠오른다. 그것은 [ACT!] 연말 호에 실릴 편집위원 에세이다. [ACT!]에서는 일 년을 마감하며 편집위원들의 에세이를 모아서 싣기로 했다. 나는 며칠 전 마감 기한에 맞춰 그 글을 서둘러 제출했던 터였다. 연말 들어 계획하지 않은 일들이 줄줄이 생긴 데다 각종 보고서와 원고의 마감이 여럿 겹치며 얼마 전부터 업무도 마음도 이미 마비 상태다. 약속을 잘 깨지 못하는 고지식함과 과도한 책임감은 가끔 내 발목을 잡을 때가 있다. 지금이 딱 그런 때다. 


  그런데 마감이 임박해 숙제하듯 써서 던져놓은 그 편집위원 에세이가 지금 떠오른 것이다. 그러자 까맣게 잊고 있던 옛일이 생각난다. 우박이 섞인 눈은 차창을 하염없이 두드리고 바쁘게 움직이는 윈도우 브러쉬 사이에선 끼익거리는 신음이 들리고 차들은 양옆에서 빵빵거리며 끼어들기를 하는 이 순간에...



  선생님께선 내 글을 맨 아래에 놓으셨다. 그리고 그 글에는 선생님의 코멘트가 없었다. 위편에 있는 것부터 하나하나 다른 사람들의 글을 들춰보다 가장 아래 놓인 내 글에 이르렀을 때, 나는 서둘러 눈길을 거두고 종이뭉치를 덮어버렸다. 도대체 무엇이 잘 못된 걸까? 왜 내 글에만 코멘트를 주지 않으셨을까? 그러나 감히 묻지 못했다. 그때도 그렇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선생님의 형형한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던 지라 선생님께 다가가 이유를 묻는다는 건 언감생심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개강을 한 지 얼마 안 된 그때에는 더욱이.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평택에 살고 있기에 서울까지 주로 기차를 타고 다닌다. 서울로 오가는 기차 안에서는 많은 일이 이루어진다. 하루 일정을 계획하기도 하고, 그날 일과의 자료들을 검토하기도 하고, 마구 졸기도 하고, 하루를 돌아보며 반성할 때도 있다. 그리고 때론, 놀라운 깨달음의 순간이 일어나기도 한다. 

  수강생들이 제출한 글들을 한데 묶어놓은 파일은 제법 두꺼웠다. 나는 기차에 앉자마자 글 뭉치를 꺼내 들고 첫 글부터 한 편 한 편 세세하게 읽어나갔다. 내 글 위에 놓인 마지막 글과 그에 대한 선생님의 글까지 읽고 나서 내쳐 내가 쓴 글도 읽어보았다. 마지막 문장까지 모조리 읽고 난 순간 나는 정말 쥐구멍을 찾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는 말을 처음 한 사람의 부끄러움이 나와 같았을까.


  선생님께서 내주신 첫 글쓰기 과제는 ‘자신의 인생관을 써서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대학방송국에서부터 방송 글을 쓰기 시작해 졸업 후 방송을 직업으로 하며 글을 쓰는 것이 일상이었던 터라, 글쓰기는 내게 생소한 영역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이 난감한 과제를 붙잡고 보름 가까이 끙끙거리다 제출 기한이 다 되어서야 아는 지식과 철학을 모조리 동원하여 한 편의 장문을 완성해서 제출했다. 그 글이 이렇게 처참하게 돌아온 것이다. 나는 그날 기차에 앉아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울었고, 내 글을 읽으며 또 울었다.   


  결혼 후 일을 그만두고 남편 이외에 아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 낯선 지방도시에서 아이 둘을 키우며 사는 동안 나는 스스로가 소진되고 있음을 절실히 느꼈다. 그래서 큰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하자마자 이화여대 평생교육원에 개설되어 있던 논술지도자 과정에 등록했다. 한 학기 동안 ‘어린이 논술교육’ 과정을 수료하고, 그다음 이어진 과정이 ‘논술철학’이었다. 그 수업은 철학자 소흥렬 교수님께서 강의하셨는데 울면서 그만두거나, 아니면 울면서 끝까지 가기로 유명한 수업이었다. 


  논술철학은 기본 논술교육 과정을 이수한 사람들만 들을 수 있는 수업이었기에 수강생 대부분은 독서, 논술 교육을 하거나 그런 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간혹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싶어 찾아온 대학원생이나 대학 강사가 끼어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주부들이었다. 그들이 쓴 인생관은 자신에 대한 수줍은 고백이자 삶에 대한 진솔한 성찰이었다. 어린 시절 편애 받은 이야기, 결혼하고 시댁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갈등, 연애 시절과는 달라진 남편에 대한 불만, 불성실한 가장 곁에서 평생 고생한 어머니의 이야기... 그 글 한 편, 한 편마다 흘림 글씨로 달아준 선생님의 코멘트 역시 문장이나 구조에 대한 지적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근본적 물음이었고 응원이기도 했다. 그 글들 앞에서 얼마 안 되는 지식을 총동원하여 현란하게 써 내려간 내 글의 가벼움이라니... 내 글 속에는 내가 없었다. 그때 처음 글쓰기의 부끄러움을 알았다. 그리고 그 날은, 내 평생 잊히지 않는 날 중 하나가 되었다. 


  다행히 만회의 기회가 곧 주어졌다. 다음 과제는 윤리관이었다. 인생관이 막막했듯, 윤리관 또한 어려운 주제였다. 몇 날을 고민해도 무엇을 써야 할지 오리무중이었지만 적어도 하나는 알고 있었다. 어떻게 쓰면 안 된다는 것. 며칠을 끙끙거리며 내 속을 들여다봤다. 나의 현재와 과거를 샅샅이 헤집고 나서야 글감을 찾을 수 있었고, 며칠 밤낮을 매달린 후에야 겨우 글을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글로 나는 다행히 되살아날 수 있었다. 선생님께서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와 주위를 한 번 둘러보시고는 창문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 창밖을 바라보며 하시던 말씀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오늘, 이 글들 중 한 글은 아주 놀랍다. 이게 이 사람의 진짜 실력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다.” 돌려받은 글의 겉장을 떨리는 손으로 들치고 선생님의 코멘트부터 찾았다. 거기에는 그 독특한 필체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아름답다!’


  논술철학 과정을 마치고, 논술수련 과정까지 일 년을 선생님 곁에서 철학적 글쓰기를 했다. 수필, 동화, 기행문, 평론, 시, 소설...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고, 다듬고, 서로 논평하고, 깨지기도 하며 행복했다. 밤새워 쓴 글을 가지고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 결국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라는 선생님의 한마디에 낙담하여 돌아오는 날들의 반복이었지만, 나를 들여다보고 인생을 들여다보고 세상을 들여다보는 그 치열한 글쓰기 과정을 통해 나는 성인이 된 후에야 비로소 자아를 확립할 수 있었다. 


  몇 해가 지난 후 선생님을 졸라 철학 수업을 또 한 번 개설하고 동문을 불러 모았다. 그즈음 대학 강단에서 퇴임하게 된 선생님께선 교육원에서의 마지막 강의라 하시며 청을 들어주셨다. 나는 늘 새벽 기차를 타고 올라가 수업보다 훨씬 일찍 교육원에 도착했다. 서둘러 강의실로 올라가면 선생님께서는 먼저 오셔서 로비에 앉아 그 날의 강의 원고를 검토하고 계셨다. 선생님과 마주앉아 아침 커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었던 그 아침, 선생님께서 손으로 쓴 원고를 가장 먼저 읽을 수 있었던 그 시간들은 내가 선생님과 보낸 마지막 시간들이었다. 그때 읽었던 글이 [불심초](2008)의 초고였다.   

  선생님의 강의 원고는 대부분 책으로 출판되었다. 선생님 곁에서 [부드러운 논리 아름다운 생각](2004), [누가 철학을 할 것인가?](2004)의 원고를 읽을 수 있었고, 이후 [철학적 운문](2006), [철학적 산문](2006), [자연주의](2006)가 태어나는 것을 지켜보았고, [생존론](2011)의 발간 소식을 들었다. 그 책들은 지금 내 서가에 책상과 마주보이는 자리에 나란히 꽂혀 있다.   


  철학 수업을 들으며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더 뚜렷이 하게 됐다. 지방에 살며 살림과 일을 동시에 하면서 대학원을 다닌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학부를 졸업한지 한참이 지나 이제 전공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거의 없었다.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지 조차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더 늦으면 결국 포기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대학원 진학을 어렵게 결심하고 그 뜻을 가장 먼저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그러자 노 교수께서는 환하게 웃으며 “잘했다. 잘했다”하며 자신의 일처럼 좋아하셨다. 언젠가 쓴 소설 원고를 선생님께 택배로 보내드리고 몇 날을 초조하게 기다리다 전화 한통을 받았을 때, 그 밝게 울리던 음성이었다. 선생님의 칭찬과 격려로 나는 지금의 내가 되어 있다. 아니 그 전에, 그 호된 질책으로 나는 내가 되어 있다. 


  “내가 지금 나무를 키우는 것처럼 당신들 하나, 하나가 나아가 나무가 되어 그 가지 아래 사람들을 키워내라”던 선생님의 말씀을 깊이 새기며 지금까지 독서, 논술 교육을 해왔다. 선생님처럼 큰 나무가 되지는 못하지만 선생님을 흉내 내며 진심을 다해 학생들을 대하고, 그들의 글을 읽고, 정성껏 조언을 하고, 마음을 열고 대화하려 애썼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선생님의 글쓰기 교육 방식을 흉내 내고 있지만, 때론, 그날의 우리처럼 나의 학생들이 글을 통해 서로를 알고, 서로의 글을 읽으며 펑펑 우는 모습을 지켜볼 때가 있다. 글을 통해 서로 관계 맺는 것을 볼 때의 감격이라니...             

  


  우박이 다시 눈으로 바뀌었다. 가는 눈발이 점점 약해지자 차들의 뒷모습도 생기를 찾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오늘 밤을 새우더라도 편집위원 에세이는 다시 써야겠다. 마감을 어겨 글을 내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학생들 앞에서 부끄러운 글은 쓰지 말아야겠다. 글쓰기의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잊지 말아야겠다. 아, 이 순간, 정말 선생님이 보고 싶다! □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