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96호 이슈 2015.12.26]
고민, 고민, 고민... 고민 속에서 길을 모색하기
성상민(<ACT!> 편집위원)
[편집자주]
<ACT!> 편집위원회에서는 연말특집을 맞아서 편집위원들의 고민을 담은 에세이를 싣기로 했습니다. 마감일이 다가오자 다들 땅을 치고 후회를 했지만 결국 이렇게 발행은 되었습니다. 각자 자유 형식으로 쓰기로 해서 다루는 주제나 형식이 모두 다릅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것이 현재 <ACT!> 편집위원회의 고민과 상태를 가장 적절하게 담아내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쪼록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글을 쓰는 건 언제나 쉽지 않다. 글감을 만들고, 다시 글감을 일정한 형식에 맞춰 표현을 해야 하는 과정들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리하면 무척이나 간단할 것 같지만 과제나 논문을 준비했던 사람들, 그리고 매호 들어갈 글들을 써야하는 ACT! 편집위원회 사람들은 모두 알겠지만 절대 수월하다고 말할 수 없는 일들이다. 하루가 다르게 우리의 뇌는 늙어가고 술과 담배 등등의 온갖 화학물질로 점차 굳어진다. 옛날에는 그래도 조금만 키보드를 끼적이면 어떻게든 글을 쓸 수 있었는데, 요즘엔 몇 시간을 멍하니 모니터로 하얀 바탕만을 보는 일이 늘었다. 하얀 건 워드프로세서 화면이요, 검은 건 내가 친 글들인데 좀처럼 검은색을 찾아볼 수 없는, 그 짜증나는 하얀색 말이다.
그런 점에서 ACT! 활동은 무척이나 쉽지 않은 고민들의 연속이었다. 회의 때는 왠지 모를 자신감에 휩싸여 온갖 아이디어와 소재를 쏟아내지만, 정작 그것들이 내 몫이 되어 마감을 해야 하는 순간 그 자신감은 곧 무게감이 되었다. 글은 써야 하는데 뭔가 쓰기에는 좀처럼 손이 가지 않고 부담이 가는데, 그렇게 계속 미뤄둘수록 마감의 공포는 더욱 압박이 되어 나한테 다가온다. 그리고 마감이 한 일 주일 정도 앞으로 다가왔을 때 그제야 허겁지겁 컴퓨터를 켜고 글을 후다닥 쓰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어떻게든 마감을 해서 원고를 올리면 뒤이어 다가오는 것은 짧은 안도감, 그리고 긴 아쉬움이다. 조금만 더 준비를 일찍 했으면 더 좋은 글을 쓰는 건데,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글을 보충하는 건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나. 내가 어쩌자고 이렇게 쉽지 않은 주제를 맡았나. 그런 자괴감도 잠시 다시 다른 글을 마감하는 데 정신이 팔리고, 기획회의에서는 또 나 혼자 신나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말한다. 그렇게 고민이 반복되고 또 다시 반복된다. 어떤 의미에선 내가 고생을 사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진짜 쉽지 않았던 기획은 지금까지 총 3회를 쓴 ‘독립과 자본 사이’ 기획이었다. 처음 회의 시간에 이 기획을 말할 때는 사실 깊게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미 다른 곳에 간단하게 이 문제에 대해서 다룬 적이 있었고, 평소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사안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기획이 이렇게 커질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렇게 적당히 자료 정리하고 인터뷰 모으면 되겠지. 하지만 그런 준비는 시작의 반도 되지 못했다. 그나마 인터뷰는 쉬웠지만, 자료를 정리하는 게 진짜 그렇게도 어려울 줄이야! 밤을 새면서 계속 데이터베이스가 맞는지를 확인하고 엑셀을 돌리면서 1분마다 한 번 씩은 입에서 나도 모르게 욕설이 나왔던 것 같다. 그러게 네가 뭐라고 이런 기획을 하겠다고 나서서는 이게 뭐하자는 거야. 그러게, 나도 그때는 무슨 생각인지 몰랐어. 현재의 나야.
[사진 1] 과거의 나야… 너 그 땐 왜 그렇게 자신감이 넘쳤던 거니 ㅠㅠ (사진출처=Pixabay)
하지만 역설적으로 결국 그 무모함으로 발생하는 고민들이 내 갈 길을 모색하게 만든다. 분명 이전부터 미디액트라는 존재를 알고 있었고, 가끔씩 ACT!를 봐오긴 했었지만 직접 ACT! 사람들을 만나고 같이 활동을 하게 되면서 비로소 미디어 운동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결국 직접 몸으로 부딪치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이 세상엔 많다. 부정적으로 보자면 그냥 뭣도 모르고 달려드는 거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그 과정 속에서 그 이전까지는 몰랐던 것들을 살펴가는 과정인 것이다.
‘독립과 자본사이’ 기획을 준비한 것 역시 그렇다. 애초 그 기획을 준비한 것은 독립영화에만 관심이 많지 다른 미디어 분야에는 문외한에 가까운 상황이었고, 게다가 글을 준비하면서 나의 수준이 이것밖엔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하게 만든 순간들이 넘쳐났고 글을 다 쓴 이후에도 참 많은 부분들이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잘 읽어주었다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들이 너무나도 반가웠다. <파티51>의 정용택 감독, <안녕, 투이>의 김재한 감독, <밀양 아리랑>의 박배일 감독,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의 최유진 사무국장, 그리고 ACT! 95호에 글 쓰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언급해준 홍명교 활동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말들이 나에게 회의 때마다 그런 자신감을 심어준게 아니었을까.
여전히 글 쓰는 게 쉽지 않고 짜증나고 가끔씩은 내 자신에 스트레스를 한 사발 안기기도 하는 고민의 연속이지만, 결국 그 고민들이 나를 만들고 게속 ACT!에 발을 붙일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물론 여전히 짜증과 스트레스와 마감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후다닥 글을 마치는 습관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아도, 결국 그 또한 앞으로의 길을 모색하는 과정의 편린이라 생각하고 싶다. 자, 이상으로 쉽지만 쉽지 않은 마감을 또 하나 마치게 되었다. 신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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