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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6호 특집] 편집위원에세이(주현) - 기록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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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5. 12. 24.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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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6호 이슈 2015.12.26]


기록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

김주현(<ACT!> 편집위원)


[편집자주]

<ACT!> 편집위원회에서는 연말특집을 맞아서 편집위원들의 고민을 담은 에세이를 싣기로 했습니다. 마감일이 다가오자 다들 땅을 치고 후회를 했지만 결국 이렇게 발행은 되었습니다. 각자 자유 형식으로 쓰기로 해서 다루는 주제나 형식이 모두 다릅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것이 현재 <ACT!> 편집위원회의 고민과 상태를 가장 적절하게 담아내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쪼록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나쁜나라>를 봤다. 영화의 소재가 소재인 만큼 극장 안에서 울거라고 생각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들어갔는데, 의외로 눈물이 나지 않았다. 충분히 슬픈 장면이 많았고, 종종 훌쩍이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영화는 생각보다 굉장히 차분했다.


 영화의 전반적인 정조는 슬픔보다는 분노였다. 분노 중에서도 울분 터뜨리는 뜨거운 분노보다는 차분하게 조목조목 따지는 차가운 분노에 더 가까웠다. 영화는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들이 대책위를 꾸려서 특별법을 만들고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려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무표정한 얼굴로 무시하거나 혹은 짐짓 안쓰러워하는 표정으로 상황을 모면하려는 정치인들이 있다. 영화는 현재의 비통함을 과장하려하지 않고, 묵묵하게 상황을 지켜본다.

 

 그럼에도 가슴이 메어지는 장면도 많고, 어떻게 저럴 수 있지 라며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장면도 많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하나 있다. 국회 앞에서 농성중인 유가족 바로 앞에서 국회 내부 행사를 맞아 음악회를 진행하는 장면이다. 그냥 행사 정도가 아니라 말 그대로 풍악을 올리는 행사였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국회 앞에서 뻔히 자신들이 농성을 하고 있고, 세월호 참사 문제가 해결 된 게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지금 이런 행사를 할 수 있냐고 항의한다. 그럼에도 행사는 중단되지 않고 결국 국회의장이 세월호 유가족을 향해 지금 이렇게 국회에서 농성을 하는 것도 감사한 줄 알라며 호통을 친다. 참다 못 한 유가족이 국회의장의 마이크를 빼앗아 가는 소동이 벌어진다. 카메라는 해프닝 이후 보조관들에 둘러싸여서 국회로 들어가는 국회의장의 뒷모습을 쫒는다. 국회의장은 보좌관에게 자신의 마이크를 빼았은 사람이 유가족인지 아닌지 알아보라며 조용하게 지시를 내린다. 그 작은 목소리와 순간은 스크린에 고스란히 담겨서 권력의 민낯을 드러낸다. 아마 급박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상황을 추적하는 카메라의 끈질긴 태도가 아니었다면 담기지 힘들었을 장면이다.

 

 이외에도 영화는 과연 이걸 어떻게 참고 찍었을까 싶은 장면이 많았다. 특별법을 둘러싼 논의를 하는 국회 장면에서 서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카메라는 방청객에 있는 사람의 표정을 담는다. 금방이라고 입을 열면 욕지기가 튀어나올 것 같은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 눈물을 글썽이고 있지만 그래도 눈빛은 앞에 있는 사람들을 주시하고 있다. 절대 잊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마치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의 표정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영화를 보다보면 문득 이 지리하고 고통스러운 전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의 심정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웬만큼 강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카메라를 그저 들고 있기도 힘들었을 장면들에서도 항상 카메라는 항상 올 곧게 서있다.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저널 편집위원들의 에세이를 싣는 자리에서 <나쁜 나라> 얘기를 하는 것은 영화를 보면서 미디어 운동의 힘을 다시 한 번 느꼈기 때문이다. <나쁜 나라>는 세월호 참사 이후에 잊혀지기 쉬운 후속 조치들과 진실 규명, 안전한 사회를 위한 우리의 노력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한다. 이것은 <나쁜 나라>를 만든 김진열 감독과 제작진, 그리고 세월호 참사 이후를 기록하고 있는 미디어활동가들이 없었다면 나오지 못했을 성과이기 때문이다.




▲ 세월호 미디어팀 활동모습 (출처 : https://www.facebook.com/mediagongryong )



 내가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저널 <ACT!> 편집위원회에 함께 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이렇게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고민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은 카메라에 등장하지 않는다. 극영화 감독은 영화의 연출력 등등으로 주목받는 경우가 많지만, 사회적인 소재를 다룬 다큐멘터리의 경우 그 주제가 주목 받지, 감독이 주목받는 경우는 드물다.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도 영화의 연출의도보다는 그 사건이 어떻게 되었는지 묻는 질문이 많다. 그리고 많은 다큐멘터리스트 혹은 영상활동가들은 기꺼이 그 역할을 받아들인다. 아이러니 하게도 미디어를 다루고 있는 본인이 스스로 미디어에 등장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ACT!> 편집위원으로 결합하고 2년의 흘렀다. 나는 그동안 주로 미디어 운동을 오래한 활동가들의 고민을 나누는 ‘기획대담’이나 다큐제작집단을 돌아가면서 인터뷰하는 ‘릴레이 인터뷰’ 코너를 맡았었다. 운이 좋게도 활동가들을 직접 만날 기회가 많았던 것이다. 비록 미디어 운동 현장에 있지는 않았지만 미디어 운동에 애정을 가지고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궁금했던 점들이나 고민을 나눌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 하면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고민을 들을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 제작 외에도 배급에 대한 고민이나(‘서울영상집단’). 미디어운동으로서의 다큐멘터리 작품과 극장에 대한 고민(‘연분홍치마’)은 다시금 다큐멘터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다큐멘터리가 극장 개봉 위주의 장편 다큐멘터리로만 편중되는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얘기했을 때, 사람에게 접근해서 이해하고 이야기를 끌어내려면 그 만큼의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는 대답이 돌아왔을 때(‘푸른영상’)는 뭔가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기획대담을 진행하면서 대안배급(다큐유랑-모극장), 정보통신 운동(진보넷), 서울독립영화제, 시네마테크, 독립영화비평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미디어 운동에 대한 시야를 다양하게 넓힐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2013년에 시작된 기획을 이어받아서 얼마나 갈까, 마음에 찾아갈 곳이 있을 때 까지는 해보자고 했는데 점점 더 가보고 얘기를 듣고 싶은 곳이 많아지고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지금도 묵묵하게 일하는 활동가들. 내년에도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그런 자리에 언제든 우리를 초대해주면 감사하겠다는 말을 전하며 글을 마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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