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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6호 특집 ] 편집위원 에세이(은정) - 오늘도 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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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5. 12. 24.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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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6호 특집 2015.12.31]

 

오늘도 내일도

 

최은정(ACT! 편집위원)



[편집자주]

<ACT!> 편집위원회에서는 연말특집을 맞아서 편집위원들의 고민을 담은 에세이를 싣기로 했습니다. 마감일이 다가오자 다들 땅을 치고 후회를 했지만 결국 이렇게 발행은 되었습니다. 각자 자유 형식으로 쓰기로 해서 다루는 주제나 형식이 모두 다릅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것이 현재 <ACT!> 편집위원회의 고민과 상태를 가장 적절하게 담아내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쪼록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분이 안 좋으면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밥을 먹어도 맛있지 않고,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다. 일은 당연히 안 된다. 그러다 우연히 마음과 딱 맞는 노래를 듣거나,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를 보거나, 손에 잡힌 만화책을 몇 장 넘기면, 스르르 맘이 풀리고 기분이 좋아진다. 안 좋은 기분 따윈 쉽게 잊는다.

 가까운 지인은 먹고 사는데 지장 없는 게 문화나 예술이라 종종 말한다. 특히 영화는 더 그렇다 말한다. 그러나 힘든 밭일엔 노동요가 필요하고, 마늘은 드라마 악역을 욕하며 까야 잘 까지는 법이다. 심지어 징징거리던 18개월 어린이도 올챙이와 개구리를 들으면 춤을 춘다. 먹고 사는데 지장이 큰 게 문화고 예술이다. 그리고 그건 생각해보면 별 게 아니다.

미디어운동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삶과 생각과 가까운 이야기를 더 잘 들리게 하는 것. 더 쉽게 볼 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위로가 되고 힘이 되게 하는 것. 단순하게 보면 그렇지 않은가. 라고 ‘ACT!’를 쉬면서 생각했다.

 

 휴가는 좋았다. 골치 아픈 숫자 계산을 안 해도 됐고, 단어 하나에 머리를 쥐어짜지 않아도 됐고, 불필요한 인간관계에 좌지우지 않아도 됐다. 만사 편했다. 그런데 가끔. 뭔가 비어 있다고 느꼈는데, 소소한 취미 하나 없이, 좋아하는 일이 밥벌이가 되고, 밥벌이가 좋아하는 일인 사람에게 가장 큰 게 비어있었구나. 라고 휴가의 끝자락에 깨달았다.

 

 가을부터 다시 일을 시작한 나는, 아슬아슬 하루하루를 넘기고 있다. 공백의 한계를 순간순간 느끼며, 별의별게 다 되는 구글과 카카오톡에 놀라며, 숨 가쁘게 시간을 쪼개고 있다. 짧은 글 하나에 며칠 밤을 새던 시대는 갔다. 아마도 이 글은 세 번째 퇴고가 마지막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즐기고 있다. 지겨운 숫자 맞추기도, 머리 쥐어짜기도, 아직 반갑다. 그리고 단순한 일상 속에서 얻은 휴가의 성과. 설명하기 어려운 확신과 더 걸어갈 에너지가 나에게 남았다. 그것은 아마도 생각보다는 단순하다는 것. 생각보다는 쉬울 수도 있다는 것. 무엇보다 길게 봐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1년 후 100호를 맞이하는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 저널 ‘ACT!’는 이름부터 어마어마한 무게감을 준다. 그 무게감은 ‘ACT!’를 만드는 사람들에겐 부담감으로 작용한다. 진보적인가. 미디어운동인가. 연구 저널인가. 우리의 활동은 그 무게에 부합하고 있는가. 편집회의에서는 이를 끊임없이 되묻는다. 물론 답은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건. 우리는 끊임없이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 저널이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 우리의 지향이고 기준점이다. 비록 멀리서 나부끼는 깃발 같은 것일지라도,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에선 보이는, 충분히 기준 정도는 잡을 수 있는, 깃발이다.

 

 미디어운동 10여 년. 여전히 가까운 사람에게 한 마디로 우리의 일을 설명하긴 어렵지만, 보편적 권리로서의 미디어, 미디어교육과 센터, 정책의 밑거름은 만들어졌다. 여전히 가야할 길은 멀지만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걸어갈 것임은 분명하다. 오래 걸어야 할 것이고, 더 치열한 고민이 요구될 것이고, 더 어려운 싸움과 복잡한 이해관계에 직면할 것이다. 하지만 10여 년의 경험이 지혜를 줄 것이고, 같이 걷는 사람들이 힘이 될 것임도 분명하다.

 

 다행히 나는, 자의든 타의든 길게 보는 습관이 생겼고, 생각보다 단순하고 쉽다는 근거 없는 확신과 에너지가 아직은 남아있으므로, 큰 이변이 없다면, 한 동안은 이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 저널 ‘ACT!’과 함께. 아마도, 오늘도 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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