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95호 특집 2015.11.15]
공동체라디오 10주년 기념 기획 <내 삶의 라디오>
8년의 과거 + 미래 = 관악FM
강민건 (서울, 관악FM)
<공동체라디오 10주년 기념 기획 - 내 삶의 라디오>는 공동체라디오 운영 10주년을 맞아 각 공동체라디오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삶 속에 녹아 있는 공동체라디오의 역사와 의미를 되짚어보고자 기획되었다. 전국 7개 공동체라디오에서 방송을 제작하고 진행하며 라디오를 이끌어온 7개 방송국 8명의 인물이 쓴 에세이를 소개한다.
22살 청년, 나의 이름은 '강민건'이다. 8년 간의 공동체라디오 여정, 그 처음 시작은 2008년 8월이었다.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의 건물 5층엔 관악FM이 자리 잡고 있었다. 3개의 스튜디오와 열정이 넘쳐흐르던 그곳에 나는 처음 발을 디뎠다. 주 1회 마이크 앞에서 격식을 차리기만 한다면 마음껏 떠들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때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다. 방송반 활동을 하며 라디오에 관심을 가지고 PD를 꿈꾸게 되었다는 것을 어머니께서 아시고 내게 청소년 라디오단 활동을 권해주시며 관악FM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4달간의 교육을 받고 처음 시작한 "수요일밤의 청춘라이프". 장인영, 임명국, 강민건, 이렇게 셋이서 수요일 밤 열한시에 100.3메가헤르츠를 통해 처음 목소리를 전파로 내보냈다. 마을미디어, 미디어운동, 퍼블릭액세스를 목표로 방송을 시작했던 것은 아니다. 그런 단어들의 의미를 잘 모르기도 했지만, 그저 목소리가 방송으로 나가기에 "나도 이제 연예인인가?" 이런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었다.
일주일에 한번, 1년에 52번, 고등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4년 정도 방송을 진행하며 방송은 여러 번 개편되었다. 지역소식을 전하고, 연예인 소식을 다루기도 하고, 코드가 잘 맞는 임명국 DJ와 함께 한 개의 주제를 정해서 청소년의 시각으로 마음껏 떠드는 코너를 기획하기도 했다. 이 글을 쓰며 그때 내가 썼던 대본을 찾아보았다. 이것 저것 아는 척하고 싶어서 한 회에 한번 씩은 소신발언(?)을 했던, 다 큰 어른이고 싶어했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을 마치고 대학교에 입학하며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관악공동체라디오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동안은 라디오방송을 주로 해왔다면, 라디오와 관련된 사업에도 참여를 하게 된 것이다. 가장 기억나는 경험을 두 가지 정도만 꼽으라면, 첫째는 2013년 마을박람회에 참가했던 경험이다. 단순 방송참여에서 한 발 나아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동체라디오 방송에 대해 알리며, 마을박람회 전체를 중계 방송했던 일이었다. 시작부터 프로젝트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강민건, 서창우, 조용진, 대학생 세 명과 안병천 대표님이 힘을 합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에 두시간 씩만 자며 6평의 컨테이너를 방송이 가능한 스튜디오로 리모델링했다. 그때 나를 포함한 대학생 3명은 건축과 토목, 디자인과 설계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였다. 어떤 작품이 나올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마을박람회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sketchup 프로그램으로 3D 도면을 그리고, 관악산 앞 주차장에 마련된 공간에서 나무를 썰고, 에어타카로 가구를 만들었다. 함께 고생한 멤버들과 함께 맥주 한잔을 하며 그때를 생각하면, 다들 다시는 그때처럼 못할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일의 강도를 몰랐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설명과 함께 말이다.
2015년 8월 아프리카 가나에서 있었던 세계공동체라디오컨퍼런스(AMARC)를 두 번째 기억나는 경험으로 꼽고 싶다. 살아 생전 아프리카 가나에 가볼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 그렇기에 이 부분에서 가장 많은 만족감을 느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의 공동체라디오 상황이 열악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느낀 것도 사실이다. 참가자들에게 "South Korea, community radio transmitter power is only 1 watt(한국 공동체라디오의 출력은 1와트밖에 되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딱 두가지였다. "정말 1와트냐?"라며 되묻는 것과, "그것 참 안됐다"라는 유감의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가나의 공동체라디오만 해도 100와트의 출력으로 전파를 쏘고 있었다. 특이한 케이스는 인도네시아의 경우였는데, 인도네시아에서 온 'Imam prakoso'는 국내에 800개 이상의 공동체라디오가 존재하고 있다고 했다. "시설과 품질을 갖추는 것보다는 숫자를 늘려 보다 많은 곳에 보급하는 것에 대해 정부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라는 설명을 덧붙였는데, 오히려 10년 동안 한 개가 줄어버린 한국 공동체라디오의 상황을 돌아보며 차라리 숫자라도 많았으면 하는 부러움이 들었다.
▲ 2013 마을박람회 마을방송 컨테이너 외부와 내부 모습
22살의 청년인 내가 8년간의 공동체라디오방송국 활동에서 얻은 것을 감정으로 표현하자면, '든든함'과 '두려움' 정도가 될 것 같다. 내가 공동체라디오 방송국에서 활동하고, 일하는 시간동안 남들은 저마다의 스펙을 쌓고, 대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요구되는 맞춤형 인재로 변해간다. 두려운 감정이 느껴지는 건, 내가 그들과 경쟁했을 때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공동체라디오에서의 경험과 배움이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며, 8년이라는 시간동안 지속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적어도 그들과 경쟁했을 때 손해는 보지 않을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들보다 더 진보한 종합적 기획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와 미래를 같이 할 수 있는 든든한 멘토 한 명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8년 동안 활동하며 무엇을 얻었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남 앞에서 말하고 주장하는 것을 쑥스러워하던 내가, 지금은 청소년 라디오체험 교육과 직업체험 교육을 담당하고 있고, 군더더기 많은 글을 쓰던 내가, 이제는 기획안과 이 원고를 쓰고 있다. 관악FM, 공동체라디오와 함께하면서 발전하고 바뀌어가는 나를 찾았기에, 예전,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관악FM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활동에 대해 확신이 생겼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 같다.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공동체라디오를 접하고, 미디어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내가 되려고 한다. □
* 관악FM http://www.radiogf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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