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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1호 Me,Dear] 길고 쓸모없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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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4. 11. 14.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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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1호 Me, Dear 2014. 12. 01]




길고 쓸모없는 글



보경(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10월 한달, 백수인 듯 백수 아닌 백수 같은 시간이 지나갔다.

  그 시간 동안, 시간 내 다 하지 못한 남은 일들을 수습했고 시일 내 끝내지 못한 회의들을 했으며, 차마 안갈 수 없었던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삼척’을 위해 일주일간 삼척에 다녀왔는데 그 곳에서 된통 감기에 걸려 일주일간은 앓아누웠다. 이게 뭔가, 나의 일은 정녕 끝난 것일까 하는 좌절을 할 무렵, 15일치 교통비로 6800원이 후불 교통카드에서 결제되었다. 지난 5년간 나의 한 달 평균 교통비는 기차와 시외버스를 제외하고 80,000원 정도. 15일 교통비로 가장 많이 냈던 건 50,300원, 오! 6800원은 처음 내 보는 금액이었다. 여기저기 많이 다니던 때에는 매달 KTX매거진을 챙겨볼 수 있었는데, 이제 그렇게 많이 다니지 않아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백수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그 후 열흘간 제주도에서 열심히 자전거를 타며 손을 새카맣게 태우고 서울에 와서 청주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에서 하는 ‘체인지온@공룡’에 불려가 맛있는 것들을 얻어먹으며 백수의 삶을 만끽하고 있었는데... 그랬는데!!! 이 원고가 남아있다.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전미네) 관련 소회가 주제로 적혀 있는. 왜 이 글을 넙죽 받았던 것일까. 쓸 수 있는 소회가 없는데. 

  뭐 어쩔 수 없다. 이미 마감은 훌쩍 넘겨버렸고(어째서인지 5년간 글 마감은 한 번도 지켜본적이 없을 것 같다) 아직 뭔가 일이 남았다는 것이 좀 좌절스럽기도 하고, ACT! 발행을 나 때문에 더 늦출 수도 없어 일단 그냥 뭐라도 써 보내기로 했다. 그래서 의식의 흐름대로 쓸거니 이 글을 읽는 건 의미가 없을 거다. 아무도 안 봤으면 좋겠다.



어쩌다 보니 여기


  2009년 8월부터 2014년 9월 말까지 전미네 사무국에서 일했으니 딱 만 5년 2개월이다. 전임 활동가가 농담처럼 5년은 일 해야지, 라고 얘기한 게 지켜지고 말았다. 정말 그럴 줄 몰랐는데 말이다. 그 5년 동안 뭘 했는지 되돌아보고자 했으나, 사실 잘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예전에 찍어둔 사진들을 열어봤는데, 있는 사진이라고는 거의 행사 사진 혹은 회의했음을 증명하는 사진... 참, 각박하기도 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여러 사람이 사진에 찍혀 있었다. 그 중 누군가는 아직 관련 활동을 하고 있기도 하고 누군가는 가게를 내거나 다른 영역의 일을 하고 있기도 하고, ‘저 사람은 저 때도 활동을 하고 있었나’ 라는 생각이 드는 분이 있는가 하면 ‘이 사람은 참 많이 변했구나’ 싶은 사람도 있고, 아직도 ‘저 분이 누구였지’라고 생각하게 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몇 년간 참 많은 사람을 만났구나 싶었다. 그 많은 순간들이 모두 생생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좋았다는 기억이 난다. ‘사람’이 인생의 가장 큰 재산이라던데, 그럼 난 ‘빅데이터’를 모은 것일까... 어쨌든 그간 전미네 사무국을 지지하고 걱정하며 지적해주신 분들 덕에 전미네 사무국이라는 허술한 조직도, 별 생각 없던 나도 이렇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을 지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 감사히 생각하고 있다.(진심) 물론 그렇게, 나의 20대는 철철철 지나가고 서른이 되었다.





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늘 누군가가 왜, 어째서 전미네 사무국에서 일하고 있느냐고 물어보면 ‘그러게요’라고 말고는 딱히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다만 그 때 아주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는 건 생각난다. 사실 전미네가 뭐 하는 곳인지 잘 몰랐고 스스로에게 미디어 활동가 전망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졸업을 앞둔 때이다 보니 뭘 잘한다거나 뭘 하고싶다거나 하는게 명확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무식하면 용감한 거였을까... 

  그러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어느 국회의원 선거일에 점점 더 새빨갛게 물들어가는 지도를 보며 팟캐스트와 SNS를 넘는 채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 주변에서 팟캐스트와 트위터에서의 이야기들은 매우 큰 이슈였는데, 그냥 우물 안 이야기였던 것이 씁쓸했다. 난 그 뉴미디어들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더라도, 나의 선거 결과에 대한 판단을 흐리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래서 누구나 듣고 볼 수 있는 채널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게 누구든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채널을 돌리다 만날 수 있는 방송, 아주 구체적으로 TV 채널을 돌리다 흔히 만날 수 있는 4번에서 20번 사이에 볼 수 있는 그런 방송국, 그걸 시민들이 독립적으로 운영해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언젠가 되었으면 좋겠다.(완전 진심) 



부적응자


  하지만 내가 방송국에 대한 로망을 키워가던 그 시간들이 지나며 나는 어느새 ‘시대’에 뒤떨어져 버렸다. 카메라는 테잎을 사용 하던 모델에서 파일 저장 모델로 바뀌었고, 사무국에 들어오면서 샀던 노트북은 이제 조금만 팬을 돌리면 ‘싫어!!!!!’하고 파업하며 꺼져 버린다. 나는 어느새 신진 활동가가 아닌 중견 활동가 비스무리하게 오래 되어 버렸고, 책임져야 하는 내용도, 역할도, 나이도, 말도 많아졌다. 하드디스크를 차지하고 있는 문서의 용량만큼, 혹은 하드디스크 자체의 용량이 200mb에서 2tb로 늘어난 만큼 말이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는 나에게 선을 보라고 선언하시고 말았다......

  근데 나는 선이 들어올 만큼 들어버린 나이에도, 바뀌어 가는 영상 기술에도, 나와 다른 사람들의 변해 가는 모습, 성격 및 기타 등등등등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냉동인간... 나는 무엇을 변화 시켜야 하고, 무엇은 변하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그러다 보니 지금은 변명만 일삼는 인간이 되었다. 대체 이 미디어 운동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사람들이 다 비정규직이거나 야근하느라 시간이 없는데? 사람들은 저녁도 없는데 미디어 따위에 관심이 있나? 다른 활동가들의 목표는 뭘까? 뭐가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있는 걸까? 나는 그냥 다 때려 치고 돈이나 열심히 벌어서 후원이나 많이 하는 게 이 모든 활동들에 훨씬 더 도움 되는 일이지 않을까? 그냥 다 헛소리일 수 있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인 것은 사실이다. 



나이, 경력, 스펙


  ...근데 문제는 내가 그 사이에 나이를 5살이나 꿀꺽꿀꺽 먹어 서른이 되었고 남들 다 쌓는 스펙 하나 쌓아 놓지 않은 무경력자가 되었다는 슬픈 사실이다. 전미네 활동을 시작했던 초반에 한 회의에서 선배는 그런 얘기를 했다. ‘이 활동이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하는 거면 안 되지 않냐?’ 나는 그 다른 일은 할 수 있는 게 없는 인간이 된 것일까? 이래서 활동을 하던 다른 선배들이 그만두고 자영업을 하는 건가? 이 활동의 미래, 우리의 노후, 앞으로의 발전(?)은 어디에 있는걸까? 그래서 뭘 해야 하는가? 내가, 당신이,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은 진짜인가? 혹은 우리는 ‘생존’에 치여 아무것도 ‘상상’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 혹은 당신이 그리고 있는 앞날에 대한 그림은 무엇인가? 이 질문들에 나는, 대답하기 어려워졌다. 그런 면에서 다소 보수적인 나는 이 안에서 뭘 더 하는 것이 어렵다. 그렇다고 배운게 이 것이니 이 활동을 지속하는 것이 맞을까? 모르겠다. 모르겠으니 잠시 영혼 없이 할 수 있는 일로 도피해야겠다. 물론 자격 조건 제한(서른, 노 스펙, 노 경력)으로 안 될 가능성도 있다. 안되면 또, 그 때 다시 생각해 봐야지.



마왕, 안녕 


  뜬금없지만 이 글은 어쨌든 뜬금없는 글이니까... 

  예전에 신해철이 진행하던 고스트스테이션을 열심히 들을 때가 있었다. 그 때 신해철이 ‘좀놀아본 오빠의 미심쩍은 상담소’를 진행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얘기는 “니 꼴리는 대로 해.”였던 것 같다. 10월 말, 그랬던 마왕도 죽고, 나는 또 헤매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브금으로 신해철의 노래를 함께 듣자. 생각나는 것은 많지만 오늘은 이 곡을.


N.EX.T - Fri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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