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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88호 Me,Dear] 밀양, 밀양, 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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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4. 4. 3.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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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88Me, Dear 2014.03.31]

 

밀양, 밀양, 밀양(*주1)

 

(미디어 활동가)


 [편집자 주] ‘Me,Dear’은 일상에서 느낀 미디어와 관련된 소소한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미디어에 대한 나의 단상이나 인상을 담는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Me,Dear를 통해 작지만 소중한 이야기들을 소박하게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현재 송전탑이 3기 들어선 밀양 여수동 풍경. 사진에서는 그 중 두 개가 보인다. 앞으로 이 마을에는 2기의 송전탑이 더 들어설 예정이다.


 

  밀양에 몇 개월째 다니고 있으니, ACT! ‘Me,Dear’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밀양에 관해서라면 작년 여름쯤에 ACT!에 천진난만한 글을 한 편 올린 적 있다. 다시 읽어볼 생각이 없어서 글 내용이 전부 다 기억은 안 나지만, 현장에 카메라가 있는 것 자체가 얼마나 훌륭한 일인지 스스로 놀라는 글로 기억된다. (*편집자 주 : ACT! 84- 밀양, Media Act, 카메라 http://actmediact.tistory.com/94 )

 

  지난 10월에 다시 공사가 재개되면서 밀양에 다닌 지 6개월째다. 물론 계속 머물거나 하지 못하고 왔다 갔다 했는데 그래도 꽤 다녔지 싶다. 지난 6개월 동안 철탑은 15기가 들어섰고, 공사현장은 반이 넘어버렸다. 그리고 한전은 올해 안에 공사를 끝내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밖에서는 이제 밀양이 잠잠한 줄 알겠지만, 지금까지 싸움은 매일매일 있어왔고, 새로운 현장이 또 뚫릴 때마다 격렬한 싸움이 일어났다. 그동안 한 분이 돌아가시고 또 한 분이 자살기도를 하셨다. 문제는 사이즈라고, 아무리 굳은 투지로 온몸을 던져 싸워도 주민이 열 명 모이면 경찰이 백 명 동원되고 주민이 백 명 모이면 경찰이 천 명 동원되는 상황에서는 지는 싸움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돈으로 사람의 약한 고리를 흔들어대고, 국가 공권력 이런 말들로 사람을 옭아매니, 이중삼중으로 포위하고 있는 꼴이다. 이렇게 장기간 계속되면서 주민이나 연대자나 묵은 피로와 격렬한 싸움으로 몸들은 모두 만신창이가 돼가고, 어떤 사람들은 짙은 패배감을 이기지 못하고 농성장을 떠나기도 한다.

 

  밀양 얘기를 하자면 끝도 없고, 내 이야기를 쓴다는 게 벌써 예정된 지면의 반을 푸념으로 채워버렸네.

  나, 나로 말할 거 같으면, 이전 글에서 할매들의 얘기를 못 알아듣겠다고 툴툴거리던 것은 웬만큼 극복되었다. 아니, 그냥 장족의 발전이라고 하자. 아직도 대화 중간 중간에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이 나오긴 하지만, 이제 일상의 대화를 불편 없이 누리게 되었다. 영화를 찍는다는 젊은 친구가 내가 할매와 대화하는 것을 보고 잘 알아들으시네요.” 하고 감탄조로 말했을 땐, 그 친구 얼굴에서 불과 6개월 전의 나를 보았다.

 

 

▲ 헬리콥터로 컨테이너를 운반하고 있다. 하루 종일 3~5분 간격으로 울리는 헬기 소음은 공사 강행이 낳은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뚫리기

 

  귀가 뚫리니 그들이 사는 일에 관심이 생겼다. 작년 5, 카메라를 들고 밀양을 찾았을 때는 무슨 외국에 온 것 같아서 그들이 포크레인 아래 쇠줄을 감고 앉아 있는 것 이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이 자기들끼리 줄곧 나누는 이야기가 벌이 윙윙대는 소리로만 들렸다는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그때 찍은 영상을 짧은 동영상으로 편집해서 친구를 보여준 적이 있는데, 역시 촬영이 취미인 그 친구가 대뜸 짜증을 내며 왜 거기서만 찍었냐고 하는 거다.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장면을 찍어야 하는데, 그날 하루 종일 한 곳에 못 박혀서 한 장면만 줌을 당겼다 밀었다 하며 찍은 걸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나는 그때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이라 파수대 역할을 하는 그곳에 자리 잡고 있어야 했다고 강변했지만, 그땐 그것도 절박하긴 했지만, 역시 그들에게 다가갈 생각이 없었던 것도 맞다. 감시하는 카메라여야 한다고만 생각했지, 그들을 기록하고 바라보는 카메라여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후 휴전기간이 끝나고 10월에 다시 싸움이 시작됐을 때부터 밀양에 계속 다니면서 내 귀는 점점 트여갔다. 거기에는 그들의 말을 잘 들으라고 한 어느 분의 충고도 있었다.

 


다가가기

 

  뚫리기와 다가가기는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귀는 반복 연습으로 뚫리기도 하는데, 다가가려면 어느 정도 기본기는 있는 상태여야 하기 때문이다. 기본기가 없었던 나는, 그러니까 편안한 어조로 마음을 열고 공통의 화제를 이야기할 줄 몰랐던 나는, 한때는 다가가야 한다는 의무감만 있어서 도리어 딱딱해지고는 했다.

  뭔가 열심히는 하는데 뭔가 편하지는 않은 얄궂은아줌마로 보였을 거다, 그들의 눈에는 내가. 그때 당시의 인터뷰를 보면 내가 긴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엊그제 같이 인터뷰 장면을 본 선생님이 그것을 내 카메라가 차갑다는 말로 표현했는데, 나는 절대 차가운 사람은 못 되고 단지 미숙하여 경직됐을 뿐이다. 인터뷰이가 감정선을 잡고 쭉 이야기하는데 인터뷰어가 딱 각을 잡고 공식적인 말투로 질문을 하니 감정선이 확 깨지 않겠는가. 다시 볼 때마다 민망한 장면이다.

  그런 모난 부분도 매일매일 그들과 부대끼는 와중에 사라지고, 이제는 주민들과 함께 주민처럼 수다를 떠는 경지에 이르렀다... , 아니 좀만 더 있으면 그런 경지에 이를 거라고 생각한다.


 

 ▲ 용회동 101번 송전탑 부지에 세운 농성 움막. 현재 이처럼 주민들이 점거하고 있는 부지는 5군데로, 한전은 이번 달 13~14일까지 철거하라는 공고를 나붙였다.


 

영화, 확장하기

 

  이런 자리에서 처음으로 영화 홍보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히힛). 밀양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로 했다. 어느 분의 종용(?)도 있었고, 찍어놓은 영상도 꽤 됐고, 미디액트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을 수료했으니 영화 한 편 그럴 듯하게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망도 있었고, 뭐 그런 저런 이유들이 있었지만, 밀양 할매들이 왜 그렇게 싸우는지, 그리고 어떻게 싸우는지 알리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밖에서 우리들이 생각하기에 철탑 밑에서는 암에 걸릴 확률이 높고 재산가치도 0이 되기 때문에 싸운다고, 그냥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런 평면적인 생각에 입체성을 부여하고 싶었다. 사람들은 다 조금씩 다른 다양한 이유를 지니고, 그 이유도 매일매일 조금씩 각도가 바뀌고 빛깔이 바뀌고, 다채롭다. 하지만 이것들은 크게 보면 건강권과 재산권, 인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같은 이유가 된다.

 

 

▲ 여수동 입구의 농성 움막 모습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들을 때 그 감동이 어떠한지는 들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밀양 싸움에서 유명해진 분의 이미 유명해진 이야기라서 하는 거지만, 젊었을 적 시어른을 공경하고 살았던 이 할머니는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얼마 전 평소에 아꼈던 며느리를 불러놓고 네가 고향을 지켜 달라.’고 하셨던 말씀을 평생 가슴에 새기고 살았다. 그래서 나중에 남편이 부산 가서 돈을 벌어오겠다고 했을 때도 극구 말려서 결국 남편을 떠나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이 할머니가 목숨을 걸고 데모를 하시는 것도 다 시아버님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서고, 그래서 시아버님 생전에 찍어둔 작은 증명사진 같은 것을 자식에게 크게 확대해달라고 해서는 액자에 넣어 머리맡에 두고는, 아침에 데모 나올 때마다 사진 속의 아버님께 오늘도 고향을 지키고 오겠다고 절을 하고 나오신다고 한다. 이 할머니는 굽은 허리, 작은 몸, 낮은 목소리, 온화한 얼굴, 겸손한 자세로, 이미 오래전에 밀양 싸움의 상징 같은 분이다. 한국사진기자협회(KPPA)가 선정한 이달의 보도사진상을 수상한 작품의 주인공이기도 하다.(http://home.kppa.or.kr/news/view/?idx=1182)

  이 분은 오래전부터 산속 고립된 움막을 집처럼 여기며 여기서 먹고 자고 내내 생활하신다. 고향도 없고(그저 서울) 모시는 어른도 없는 (같이 사는 엄마를 모신다고 생각한 적이 없으니) 나 같은 사람이 시어른의 유지를 받들어 고향을 지키려 그 노구에 이토록 험한 싸움을 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순간, 밀양 싸움 전체를 이해하게 된다. 전자파가 과연 얼마나 해롭고 탈핵이 과연 가능하고 지중화가 어떤 건지 상충되는 말들이 서로 싸우고, 그래서 그런 말들은 믿었다가도 안 믿고 안 믿었다가도 믿고 하지만, 할매를 구덩이 파고 산 속에서 살게 하는 그 분명한 이유들 앞에서는 다른 할 말이 없다. (잠깐 딴 얘기를 하면, 이제 주변으로 공사는 서서히 압박해 들어오고, 이 움막으로 한전과 경찰이 쳐들어올 날이 멀지 않았다는 징조가 여기저기 보이는데, 그 긴장감이 어떠하며, 마침내 그날이 왔을 때 어떻게 살아가실까?)

 

 

▲ 여수동 마을 뒷산에 박힌 철탑 124번

 

 

  이런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모으면 밀양 전체가 보이리라. 조상의 유지를 받든다는 숭고한 이유건 아니면 집구석이 답답해서 데모 나온다는 아주 개인적인 이유건, 모든 이유들에는 할매들이 살아온 삶이 있고, 그 삶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이들이 왜 싸우는지를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밀양을 알리는 목적으로 영화를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경찰은 한전의 개라고, 한전이 하고 있는 건 불법이고 국가는 마치 조폭 형님처럼 그들의 뒤를 봐주고 있다고, 귀에 대고 직접적으로 소리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말들은 더 이상 들리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밀양 운동의 언어가 아니라 다른 언어로, 도시의 언어, 감성의 언어, 일상의 언어, 능력은 안 되지만 예술의 언어로 내가 어렵게 다가갔던 그들의 삶을 확장해내는 것이 가장 잘 알리는 방법이며, 그게 내 영화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흡. 거창한 말을 해버렸군. 우야든동, 끈기 있게 지켜봐주시길. (홍보 끝^^) 

 


(*주1) 제목 ‘밀양, 밀양, 밀양’ : 내 전 졸고, ‘밀양, Media Act, 카메라의 제목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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