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86호 Me,Dear 2013.11.25]
언제든 어디든
최은정(ACT!편집위원회)
[편집자 주] ‘Me,Dear’은 일상에서 느낀 미디어와 관련된 소소한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미디어에 대한 나의 단상이나 인상을 담는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Me,Dear를 통해 작지만 소중한 이야기들을 소박하게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
작년 여름, 편집위원들의 제안으로 ‘Me,Dear’라는 코너를 만들었다. ACT!에도 일상에서 느낀 소소한 미디어 관련 이야기들을 가볍게 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취지였다. 당시 나는 기꺼이 동의에 한 표를 던졌지만, 내가 이 글을 쓰리란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돌고 돌아서 마지막 순번을 받아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나는 크게 후회하고 있다. 무미건조한 글조차 어려운 나에게 개인적 소회를 담은 글을 쓴다는 것은, 더구나 그 글을 ACT!라는 중견 웹진에 쓴다는 것은, 난제 중의 난제이기 때문이다. 마감을 한참 넘겨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지고 나서야 문단을 넘길 수 있게 된 나는, 단언컨대 역대 최고로 시시한 이야기를 할 작정이니 기대 따위 지금부터 훌훌 날려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2.
몇 년 전부터 내 주변 선배와 후배의 숫자가 비슷해지기 시작했다. 다소 일찍 이 분야에 얼쩡거렸던 나에겐 선배가 절대적으로 많았다. 그런데 조금씩 선후배 비율이 비슷해지더니 어떤 자리에서는 내가 가장 선배인 낯선 상황이 생기기까지 했다. 낯설다. 그렇다. 나는 참 후배들이 낯설다. 더구나 그 후배들이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 수 있나요?”라고 물을 때는 낯설다 못해 불편하기까지 하다. 당연하다. 나는 답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미래는 언제나 불안하고 현재는 앞가림하기도 벅차다. 겨우 할 수 있는 말은 잔소리뿐인데, 그마저도 요즘 자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꼰대 같다고나 할까.
3.
내가 즐겨하는 잔소리는 크게 3가지 정도다. 첫째 운동 등 몸 관리를 할 것. 돈도 없는데 아프면 서럽고, 하고 싶은 일을 못할 수도 있고, 더 큰 돈이 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둘째 한 달에 5만원이라도 저축을 할 것. 급할 때 요긴하게 쓸 수 있고 돈 관리 습관을 들일 수 있다. 셋째 규칙적으로 생활할 것. 활동의 특성상 게을러지기 쉽기 때문이다. 최근 생활경제 수업을 들으면서 추가된 건 신용카드 끊기와 가계부 쓰기 정도. 하지만 얼마 전, 10년 이상 어린 친구와 대화를 나눈 후, 다시는 이 같은 시시한 잔소리를 하지 말자고 결심했다. 풍요로운 시대, 왜 가난해야 하는지를 반문하며, 잉여로운 삶의 가치와 기초생활비 보장에 대해 얘기하던 그 친구는 선배들에게 비비며 자린고비로 20대를 버틴 나보다 훨씬 행복해보였다. 무엇보다 요즘 나는 뭔가를 바꾸자는 의견보다 어쩔 수 없다는 수긍이 더 익숙하고 편해진 기분이 들었다. 선배들은 비웃으려나? “벌써? 어린 것이!”
4.
다행히 최근에는 활동의 의미만큼이나 활동의 조건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다. 노동, 복지, 자립, 재생산 등 조금씩 넓어지고 깊어지고 성과도 생겨나고 있는 듯하다. 한편으로는 재기발랄한 후원행사나 소셜펀딩, 협동조합 등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있다. 새내기 활동가든 선배 활동가든 먹고 사는 문제는 언제나 당면과제. 현실적 답은 없지만 비현실적 정답은 있는 법. 공적 지원 확대, 쌍방향 홍보, 자발적 후원 문화 정착, 유통 확대... 그러나 정답을 논하기에 ‘Me,Dear’ 는 맞지 않는 그릇일 터, 일단 여기까지, 패스!
5.
할 일은 많고 사람은 귀한 곳. 그래서 혜성 같이 나타난 신예가 귀하디귀할 수밖에 없는 곳. 그런데 그 친구들에게 확답을 줄 수 없다는 것, 감언이설로 꿰는 재주도 없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다만 최근 소박하게 결심한 게 있다면, 구질구질한 잔소리는 이제 그만 집어치우고 앞으로는 얌전히 많이 들어야겠다는 것. 물론 어렵겠지만 일단은 목표는 입 다물고 많이 듣는 것. 그리고 바라는 게 있다면, 너무 오랜만이라 어색한 인사 외에 할 게 없더라도 언제든 어디서든 계속 만나게 되는 것. 그럭저럭 잘 살아내는 사람이 하나 둘 늘어나면 조금씩 넓어지고 풍성해질 것 같다는 착각, 때문일까? 우연이라도 계속 만날 수 있길 기대하게 된다. 그게 언제든 어디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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