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말, 서울 경기권에 내린 첫눈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첫눈의 설레임도 잠시, 폭설의 당혹감과 함께 기후위기가 코앞에 와있음을 확실히 느낀, 경고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영화산업 현장도 지구온난화의 가속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영화 제작 과정의 많은 부분에서 탄소 배출 및 환경 파괴를 일으킬 수 있는 요소가 존재하고 있고 그에 대한 대응과 실천이 아직은 미비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2010년대 후반부터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미디어, 영화 현장의 연구와 포럼이 만들어지고 있고, 실제 적용을 위한 방안들도 모색되고 있다. 해외에서는 1990년대부터 이런 움직임들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 글에서는 제작 과정에서 살펴볼 수 있는 가이드라인의 소개와 해외사례, 적용하고 실천해 갈 수 있는 정책 제도에 대해 짚어보려 한다.
기후위기 제작 가이드라인은 친환경적인 영화 제작 과정을 실천하기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이자 지침서이다. 유럽연합의 <녹색영화 인터레그 유럽 (Green Screen Interreg Europe)>(2017-2021), 영국 <런던 내에서 지속가능한 촬영을 위한 지침>, 이탈리아의 <Green Film>, 스페인의 <지속가능한 영화 제작을 위한 10가지 실천 가이드>, 핀란드의 <지속가능한 핀란드 시청각 제작 산업을 위한 가이드북>, 뉴질랜드 <Greening the Screen>, 네덜란드 <Greenfilmmaking>,그 외 벨기에, 프랑스, 독일 등 해외의 많은 나라에서 이미 시행되어지고 있다.(*주1) 이 가이드에는 다양한 친환경 제작 사례 및 각 단계별 제작 과정에서 환경적으로 신경 써야 할 체크 리스트를 제공하고 있다. 탄소배출량을 계산할 수 있는 탄소계산기를 제공하고 있는 가이드도 있는데, 영국의 Albert가 대표적이다.
Albert(*주2)는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는 탄소계산기를 제공하여 제작 단계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측정하고, 인증 프로세스를 거쳐 별 1-3개의 인증서를 발급해준다. 크레딧에 로고로 쓸 수 있으며 영국 영화연구소(British Film Institute, BFI)의 지원을 받는 모든 작품은 ‘albert’의 탄소계산 작성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
미국 PGA(Producers’ Guild of America)와 할리우드의 스튜디오들이 함께 제작한 ‘녹색제작 가이드(Green Production Guide)’는 ‘생산 환경 조치 점검표(PEACH)’를 통해 제작 단계에서의 체크 리스트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것을 바탕으로 EMA Green Seal(*주3)을 신청할 수 있도록 연결하고 있다. 또한 탄소배출계산기(pear)를 적용하고 있으며, 웹사이트 (*주4)에서는 약 2천 개 이상의 친환경 제품, 서비스 업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실제 적용되어 제작된 사례를 보자 (*주5)
영화 <50가지 그림자-해제> : 폐기물 재활용, 일회용 병 감축, 의상 및 소품 학교와 비영리 단체에 기부 등. 2016년 EMA Green Seal Award 수상. 환경 스태프가 계획을 수립하고 진행한 특징이 있다.
영화 <캣츠> : 스탭 참여 그린 챌린지 프로그램 진행, 에너지 효율이 높은 LED 조명 사용, 케이터링 음식 기부 등. 2019년 EMA Green Seal Award 수상
영화 <다운튼 애비> : 제작 관련 문서를 전자문서로 진행, 재활용과 퇴비화를 위한 프로그램 수립 및 진행, 재활용이 가능한 음향 배터리 사용 등. 2019년 EMA Green Seal Award 수상
그 외에도 다양한 시도들이 있다. 넷플릭스는 해마다 ESG 보고서를 마련하여 친환경 제작환경을 고려하는 미디어 기업 환경을 조성하고 있고, 오스트리아는 2023년부터 그린보너스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친환경적으로 제작한 콘텐츠에 5% 상당의 녹색보너스를 지급하는 인센티브를 적용하고 제작 지원 및 해외마켓 참가 지원, 금융 지원 등의 지원사업 추진 시 사업체 선정을 위한 평가 항목에 반영하고 있다. 제작비 마련이 어렵고, 늘 바쁘게 돌아가는 제작 현장에서 친환경적으로 진행하는 것은 단순히 생각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지속가능한 제작환경 마련을 위해 현실적으로 꼭 필요한 것은 친환경 제작을 위해 신경쓰는 전담 스탭(*주6)일 수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환경 전담 스탭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운영하기 위한 방안을 명시하고 있다.
영화를 만들기 위한 전 과정을 간단히 되짚어보면(다큐를 만드는, 나의 경험으로 생각했을 때), 회의에서 무심히 사용하는 종이 문서들, 에너지 전력, 촬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동, 사용하고 남은 무선마이크 배터리들의 재고, 무심코 사용하는 일회용품들, 조명 등등 많은 부분에서 기후 변화에 일조를 하고 있었다. 좀 더 넓은 제작 현장을 보자면 케이터링 사용, 세트장 건립에 사용되는 폐자재, 특수효과 촬영, 소음 등 환경 생태계에 영향을 끼치는 무수한 부분들이 발생한다. 2018년 11월, 영화 <봉오동 전투>가 촬영 과정에서 생태경관보전지역인 동강 인근 지역에서 생태경관을 훼손하였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영화진흥위원회는 환경 문제를 규제할 수 있는 법·제도나 가이드라인, 연구 등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한국환경회의와 함께 이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고, ‘지속가능한 영화제작을 위한 환경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또한 영화와 방송, 미디어를 아우르는 현장 제작 가이드라인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주7)
2023년 11월, 미디액트에서는 [임팩트 시네마 포럼_‘기후 위기 시대, 영화 계속 해도 될까? 기후 위기와 영화(1) 실천 과제를 중심으로’] 포럼이 열리기도 했다. 더불어 2024년 봄부터 미디액트에서 진행된 독립미디어세미나에서는 얼마 전 ‘기후 위기 영화 산업을 위한 정책 제언’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친환경 제작에 대한 고민과 적용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제작 단계에서부터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실천해야 할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제작비 마련 자체가 불확실하고, 영화를 만들기가 불안정한 한국의 현실에서,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한 환경적 방안과 실제 적용은 너무 어려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조그마한 노력들도 제법 많다. 아래에 첨부하는, 제작 단계 가이드라인과 정책 제언을 보고, 시작할 수 있는 것부터 적용해보는 것. 기후 위기 시대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첫 걸음이 될 수 있겠다.□
● 사전제작
● 제작
● 제작 이후
● 영화/콘텐츠 제작과정에서의 탄소배출 저감을 위한 정책 및 제도 마련
● 기후위기 콘텐츠 제작을 위한 기금 마련
● 기후위기 콘텐츠 제작자 양성
● 기후위기 콘텐츠 큐레이션
*주
1) 영화진흥위원회 연구 (2020_11) 지속가능한 영화제작을 위한 환경 가이드라인 p52-59
KOCCAFOCUS(통권161호) 기후위기 시대, 국내 콘텐츠산업의 친환경 제작 확산을 위한 정책 지원 방안 p7-8
3) The Environmental Media Association (EMA), 비영리 기구로 엔터테인먼트 산업 관계자, 기업가, 환경 관련 전문가 등이 함께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녹색 전략 캠페인과 사회적 메시지, 교육 프로그램 제공, 어워즈와 같은 행사 등을 진행하고 있다. ‘EMA Green Seal’ 제도를 통해 지속가능한 영화제작 인증을 시작
4) https://www.greenproductionguide.com
5) 영화진흥위원회 연구 (2020_11) 지속가능한 영화제작을 위한 환경 가이드라인 p28-29
6) 미국, 환경책임자(Eco Supervisor) / 영국, 그린라이더(Green Rider) / 스페인, 그린러너(Green Runner) / 핀란드, 에코코디네이터(Eco Coordinator) / 캐나다, 환경관리인(Environmental Steward) / 이탈리아, 그린필름매니저(Green Film Manager)
KOCCAFOCUS(통권161호) 기후위기 시대, 국내 콘텐츠산업의 친환경 제작 확산을 위한 정책 지원 방안 p18
7) 콘텐츠산업의 ESG 경영 확산을 위한 친환경 콘텐츠 제작 가이드라인 개발 연구 보고서
친환경 콘텐츠 제작 활성화 방안 및 실천 가이드북 마련 연구 보고서
방송영상 콘텐츠 제작 분야 탄소배출계산기 개발 연구 보고서
글쓴이. 김수목
기후위기가 코앞에 와있음을 절실히 느끼고, 영화 현장에서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하고 있다. 소소한 것부터 실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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