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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가 비로소 모두의 것이 될 때 - 미국 비영리단체 Working Films 활동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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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3. 12. 27.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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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38호 미디어인터내셔널 2024.01.04.]

 

다큐멘터리가 비로소 모두의 것이 될 때

- 미국 비영리단체 Working Films 활동 소개

 

이세린(ACT!편집위원)

 

 

 다큐멘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어떤 과정을 통해 그것이 가능할까? Working Films는 미국의 비영리단체이다.이들은 변화와 참여의 도구로서 다큐멘터리가 가지고 있는 힘을 확신하는 동시에, 다큐멘터리를 통해 사회 정의와 환경 보호를 증진하는 것이 목표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를 위해, Working Films는 제작자와 연출자 중심의 영화 제작과 배급 방식을 넘어서고자 한다. Working Films는 첫째, 사회 변화를 위한 영화가 이슈 당사자들의 참여로 제작되는 것, 둘째, 영화가 다루는 이슈의 현장인 풀뿌리 지역 곳곳에서 그 영화가 감상되고 토론되는 것, 셋째, 이 과정에서 지역의 다양한 단체들이 연합하고, 관객이 사회 운동의 참여자가 되는 것을 지향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2001년부터 민간 재단과 개인의 후원을 기반으로 영화 기획부터 배급까지의 다양한 단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활동이 무엇인지, 그 속에 담겨있는 이들의 관점과 문제의식은 어떤 것인지,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과는 무엇이 같고 다를지 함께 고민해보고 싶었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Working Films가 진행해 왔던 다양한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자료집과 홈페이지 등 공개된 자료들을 갈무리 해 원고로 전하고자 한다. 비록 텍스트로만 전하는 내용이지만, 함께 이들의 활동을 상상하며 읽을 수 있는 글이 되기를 바래본다.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은 이들의 대표적인 프로젝트는 ‘Docs in Action’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프로젝트는 단편 영화를 제작 지원하고 배급하는 프로젝트이다. 지원 주제는 1년에 한 번 시의적인 주제로 정해진다. 지금까지 다뤄져 온 주제는 환경 문제(프래킹 및 해상 굴착 문제), 이민자 권리, 기후 재난의 인종적 불평등, 노동자 권리 등이었다. ‘Docs in Action’의 일환으로 진행된 여러 프로젝트의 사이트를 둘러본다면, Working Films가 어떤 영화를 지원하고 있는지 보다 명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 (좌) 교도소 내 산업단지 폐지 운동에 대한 5개 영화를 지원한 ‘Beyond Walls’ 프로젝트 사이트, (우) 기후 재난의 대비 및 회복과 무관하지 않은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를 조명한 6개 영화를 지원한 ‘Revisioning Recovery’ 프로젝트 사이트.  홈페이지에서 주제 및 단편영화 소개, 진행 중인 상영 정보를 찾아볼 수 있으며, 상영회 주최 또한 신청할 수 있다. 

(출처: Working Films)

 

 ‘Docs in Action’이 일반적인 제작 지원과 다른 지점이 있다면, 지원 주제를 결정하거나 지원작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관련 시민단체와 조직가, 사회변화의 리더들을 포함시킨다는 데에 있다. 예를 들어 최근 ‘Docs in Action’의 지원 주제는 ‘교도소 내의 산업 단지 폐지’였다. 교도소 내의 강제 노동과 이를 통한 기업의 이윤 추구를 비판하는 관점의 주제인데, 이 때의 영화 선정에도 산업단지 폐지 운동의 추진자와 관련 단체가 함께했다. 이런 과정이 의미있는 것은, 지금 어떤 내용과 어떤 관점이 시급한지, 보다 필요성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지를 그 이슈의 당사자들의 판단을 빌어 결정할 수 있고, 선정 이후의 과정에서도 그들과의 꾸준한 관계 속에서 영화가 제작, 배급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프로젝트에서 선정된 단편 영화는 1) 캘리포니아 교도소에서 코로나19로 200명의 수감자가 사망한 사건에서 짚어봐야 할 문제(<What These Walls Won’t Hold>), 2) 치안을 다루는 지배적인 문화와 현실 사이의 괴리(<Defund the Police>), 3) 정치범이었던 흑인 어머니와 자녀가 40년 간 분리되었던 사건으로 짚어보는 흑인 가족 분리 문제(<I’m Free Now You Are Free>), 4) 무장된 공권력이 위기를 진압했을 때 발생하는 지역 사회의 트라우마(<Practical Abolition>), 5) 시골 지역의 교도소 확대와 이를 둘러싼 현실(<Calls from Home>) 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각기 다른 초점의 영화들이 그러한 과정으로 선정되었음을 상상해볼 수 있다.

 

▲ (좌) <What These Walls Won’t Hold> (우) <Defund the Police> 스틸컷 (출처: Working Films)

 

 제작지원을 통해 영화가 만들어지고 나면, 그 이후의 배급 과정은 어떨까? 미국의 CMSI(Center for Media & Social Impact)는 독립, 공공 미디어와 다큐멘터리에 중점을 두고 이들의 사회적 임팩트에 대한 연구와 협력을 진행하는 American University의 부설 연구소인데, Working Films의 ‘Stories Beyond Borders’ 프로젝트를 연구하여 그 진행 과정과 성과, 효과성에 대해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특히 Working Films가 진행하는 지역사회에서의 배급 과정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기에, 보고서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Stories Beyond Borders’는 위에서 소개한 ‘Docs in Action’의 한 프로젝트로, 2019년~2020년 경 ‘이민자 정의’에 관한 다양한 관점을 다루는 5개의 단편 영화를 큐레이팅하고 상영한 프로젝트이다. 영화는 단순히 다양한 지역에서 상영된 것이 아니라, 지역 사회 기반의 다양한 공동체, 단체와의 참여와 파트너십을 통해 상영될 수 있었다. 공동체 상영의 방식으로 43개 도시와 15개의 주에서 상영될 수 있었다. 약 6천여명의 관객이 참여하였으며, 상영 이후에는 관객과 함께하는 영화의 주요 주제에 대한 토론(45분~1시간)이 함께 진행되었다.

 

 보고서가 이 프로젝트에 질문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데, “다큐멘터리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구체적 물음이라고 할 수 있다. 1) 지역 사회의 관점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활용하는 것은 단체나 공동체 간에 상호 협력하는 역량을 키우는 데 어떤 효과가 있는가? 2) NGO의 관점에서, 지역과 국가 차원에서 풀뿌리 참여를 조직하는 데에 다큐멘터리 상영과 같은 스토리텔링 중심의 활동은 어떤 효과가 있는가? 3) 제작자의 관점에서, 이와 같이 풀뿌리 참여를 활성화하는 것이 제작자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어떤 도움을 주는가? 4) 관객의 관점에서, 이러한 공동체 상영이 관객의 지식과 태도, 행동에 대한 참여 의지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 Working Films가 공동체 상영 신청자에게 제공하는 가이드. 상영 장소 선정이나 당일 행사 진행과 같은 실무적 체크리스트도 포함되어 있지만, 상영할 커뮤니티에 접근하는 것부터 관련한 파트너와의 협력 방법, 상영 이후의 후속 확산 방법, 토론 진행 가이드가 전반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단순히 영화의 관람 기회를 만드는 것을 넘어서, 이러한 전반적인 과정을 통해 단체들을 네트워킹하고 시민을 조직화하는 것이 Working Films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출처: Working Films)

 

 보고서는 결론적으로, ‘Stories Beyond Borders’의 상영 방식이 여러 변화를 이끌어냈다고 평가한다. 공동체 상영에 참여한 풀뿌리 단체와 NGO의 경우 과거에 참여의 도구로서 단편 영화를 활용해본 적이 없었는데, 향후의 활동에는 다큐멘터리 스토리텔링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영화 상영이라는 스토리텔링을 활용하는 것은 이슈와 사회운동을 ‘인간화’하고, 이를 ‘대면’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기에, 관련 이슈에 사람들을 모으거나 후속 활동에 참여시키는데 다른 방법보다 더 효과적이었다고 평했다. 영화 제작자의 경우, 영화가 더 많은 관객에게 다가가고, 자신이 영화를 통해 목표했던 사회적 영향력과 사회 변화에 도움이 되었다고 응답했으며, 관객의 반응을 직접 대면하고 더 많은 NGO와 협력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응답했다. 또 단편 큐레이션 형태로 상영되기 때문에, 다른 작업자와 소통하는 기회가 마련되었고, 관객 개인이 관심 있는 특정 의제에 관한 영화만을 선택하여 보는 것이 아닌 만큼 청중을 확보할 기회가 될 뿐 아니라 관객이 영화가 다루는 주제에 대한 종합적인 시야를 가질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장점을 가진다고 평가했다. 프로젝트에 대한 앞으로의 개선점으로 짚은 내용은 다음과 같은데, 영화 상영 자체보다 참석자의 조직과 후속 행동의 촉구가 프로젝트의 핵심이 되어야 하며, 디지털 미디어나 플랫폼을 통한 청중과의 지속적으로 소통 방법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커뮤니티 관객의 참여를 위해 기회와 시간을 더 많이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위에 소개한 ‘Docs in Action’과 ‘Stories Beyond Borders’를 통해 Working Films의 활동 방향성과 문제의식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가 이슈의 당사자를 소외시키는 방식으로 제작·유통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다큐멘터리가 젠더와 인종 등 다양한 관점에서 더욱 포용적인 방향으로 제작되고 관련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 다큐멘터리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더 많은 이들, 특히 사회변화를 꿈꾸는 이들이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고에서 Working Films의 모든 프로젝트를 소개하지는 못하지만, 이러한 관점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다른 프로젝트들을 일부 언급하려 한다. 


 ‘Putting Films to Work’는 이미 큐레이션된 영화를 활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영화 선정부터 이벤트를 비롯해 어떻게 NGO가 보다 자기 주도적으로 다큐멘터리를 활동에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조지아 지역을 중심으로 교육을 진행한 프로젝트이다. ‘Impact Kickstart’는 가능성 있는 장편 다큐멘터리의 현물과 임팩트 전략 지원을 흑인, 원주민, 유색인종에 해당하는 감독에 우선적으로 지원하는 프로젝트이다. ‘Works in Progress Lab’은 다큐멘터리 작업자들이 자신의 작업에 대한 피드백을 나누고 워크숍을 통해 관객 참여 전략을 탐구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흑인 스토리텔링에 중점을 두고 관련 영화제와 연계하여 진행된다. ‘Storyshift’는 다큐멘터리 씬 내에서 영화 제작자들의 ‘추출적(extractive)’이고 착취적인 방식의 제작 방식에 대한 문제의식을 확산하는 프로젝트로, 관련한 영상을 제작하거나 '다큐멘터리의 책임성 선언문'을 작성하는 등의 활동이 이루어졌고, 감독 뿐 아니라 영화제나 배급 채널, 자금 제공자 등에도 문제의식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고자 한다.

▲ (좌) ‘Putting Films to Work’ 교육 진행 모습, (우) ‘Works in Progress Lab’ 2023년 연사 소개 이미지

(출처: Working Films)

 

 20여년간 지속되어 온 Working Films의 활동을 살펴보며 한국에서도 많은 것을 참고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현장 다큐멘터리의 제작이나 다양한 지역에서의 공동체 배급은 한국에서도 사례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공동체 상영에서의 파트너십, 단편 큐레이션이라는 전략, 사후 토론과 참여 등의 과정을 참고할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그들이 다양한 사회 운동에서 다큐멘터리의 보다 능동적인 역할을 꾸준히 고민한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고민해볼 것들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으로는 여러가지로 복잡한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다.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기반으로 이러한 활동을 할 수 있으려면 한국의 독립 다큐멘터리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생태계 자체가 조금 더 풍성해져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 Working Films 활동의 재원은 다양한 민간 재단과 개인 후원자를 통해 조달되고 있는데 보다 자율적인 활동들을 진행할 수 있게 하는 이 재원의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 Working Films 문제 의식을 반영하기에 한국 사회는 인종과 젠더 문제에 대한 공감대와 풀뿌리 기반이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오는 아쉬움 등. 하지만 너무 많은 고민을 하기보다는 이번 글을 계기로 다양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기다려본다. 또 Working Films의 활동가 분들과 한국에서 다큐멘터리에 노력하는 이들이 직접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오기를 바란다. □

 

※ 참고자료
원고는 아래 자료들을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더 많은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아래 자료를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Working Films 웹페이지
https://www.workingfilms.org/ 

IDA 기사 - From Outreach to Impact: Two Decades of Working Films
https://www.documentary.org/online-feature/outreach-impact-two-decades-working-films 

IDA 기사 - That's Motivation! Working Films Reaches Out
https://www.documentary.org/feature/thats-motivation-working-films-reaches-out

CMSI 보고서 - Working Films: Evolution through Reflection
https://cmsimpact.org/documentary-independent-and-public-media/working-films-evolution-through-reflection/
- Stories Beyond Borders 보고서
- Storytelling and Social Justice in Action 보고서

 


 

글쓴이. 이세린

- SNS 중독자. 인터넷 인간. 종종 혼자 벅차오른다.

공동체미디어에 참여하다가 2018년부터 미디액트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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