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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와 공동체미디어 - 호주 공동체미디어의 활동 사례와 역할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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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3. 5. 25.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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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35호 미디어 인터내셔널 2023.05.30]

 

기후 위기와 공동체미디어 - 호주 공동체미디어의 활동 사례와 역할 살펴보기

 

작성 : 이세린 (미디액트, 전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스탭)

감수 : 한진이 (ACT! 편집위원회)

※ 2023.6.29. 감수내용 추가 반영 

 

 ACT!에서 기후 위기와 관련한 글을 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지는 오래 되었다. 언론이 떠들썩해지는 전염병과 산불, 지진이 발생할 때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안건이 편집위원회 회의에 올라오곤 했다. 이제는 기후위기를 다루기 위해 특별한 시기를 생각할 필요가 없어진 것 같다. 돌이켜보면 매 회의를 열 때마다 어떤 재난이 발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다루고 싶었던 내용은 공동체미디어가 기후 위기 대응에 있어 해야 하는 역할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이었다. 그동안 만난 마을미디어 활동가들은 늘 이와 비슷한 갈증을 가지고 있었고, 무엇이라도 여기에 기여하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기후정의행진이 열릴 때 각 마을에서부터 취재에 나서기도 했고, 기후위기의 심각성이나 관련 담론을 각자의 채널에서 소개하기도 했다. 다회용기 사용처럼, 마을 주민으로서 일상에서 어떤 환경 보호를 할 수 있는지를 소개하는 영상의 수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하지만 마을/공동체미디어도 기후 위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 외의 무언가를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지금과 같은 활동을 계속하는 것으로 충분할까? 기후 위기 시대에 공동체미디어의 역할은 이런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왜 공동체미디어가 기후 위기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 시민이 참여하고 소유하는 공동체미디어가 기후 위기 대응에 어떤 역할을 한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의문을 가지던 중 호주공동체미디어방송연합(CBAA)이 발행한 보고서를 알게 되었고, 그 실마리를 찾아보려 했다.

 

 방송을 넘어 - 재난에 대한 공동체미디어의 대응

 호주는 여름철 고온 건조한 날씨로 인한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국가다. 지난 2019년 9월부터 해를 넘겨 2020년 2월까지 지속된 호주 산불은 통상 발생하던 산불의 규모를 넘어서는 재난으로, 호주는 물론 전 세계에 오존층 파괴와 라니냐 발생 등의 지속적 피해를 안겼으며, 그 원인으로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고온과 가뭄이 지목되고 있다. CBAA는 이 산불의 발생 이후 호주의 각 공동체미디어들이 재난 대응의 역할을 더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온라인 교육 과정을 개발하고 보고서를 발간했다. 

 

 2022년 10월 발간된 보고서 「방송을 넘어 - 재난에 대한 공동체미디어의 대응(Beyond Broadcasting - Community media response to emergencies)」은 호주 산불을 비롯해 코로나19, 홍수와 같이 기후 위기로 인해 발생한 재난에 대해 호주 공동체미디어가 지난 4년 간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정리했다. 호주에는 2022년 기준 500곳이 넘는 공동체라디오 서비스가 존재하며, 라디오 청취자의 25%가 공동체라디오를 청취하고, 그 수가 500만명이 넘는다. 원주민과 장애인, LGBTQ, 지역 기반 예술가 등 주류 언론에 의해 소외될 수 있는 집단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주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호주의 공동체라디오는 재난 상황에서 아래와 같은 역할을 했다.

 

▶ 산불

- 화재 지역이었지만 공영 방송에서 정보를 다루지 않았던 지역에 대한 긴급한 정보 제공 (Braidwood FM)

- 산불 복구 모금 콘서트 홍보 지원: 기부자 7천여명 참여, 34만 호주 달러 모금 (Highland FM)

- 화재에 대한 긴급 경보와 복구 작업에 대한 정보 제공, 지역 주민을 위한 트라우마 심리학자와의 방송 (3MGB)

- 인쇄물에 접근하기 어려운 장애인을 위해 안전과 보조금에 대한 정보 제공, 시력자와 시각장애인을 라디오에 초대하여 산불 경험을 이야기 (Vision Australia Radio)

 

▲ highland FM이 지원한 FireAid 2020 포스터  (출처 : CBAA)

 

▶ 코로나19

- 25개 이상의 언어로 이주민 대상의 코로나19에 대한 정보 및 비상 뉴스 제공 (NEMBC 다문화 뉴스 서비스) 

- 주 정부와 협력해 52개 언어로 코로나19에 대한 커뮤니티 서비스 안내 방송 (Radio 4EB)

- 커뮤니티 리더, 건강 전문가와 협력하여 비주류 언어로 백신에 대한 오해를 설명하고 접종을 장려 (Channel 44)

- 깨끗한 물 공급, 지역 슈퍼마켓 인수를 통한 식품 공급, 지역 학교 수업을 방송으로 내보내고 고립된 노인 등에 식품 등 물품 전달 (Wilcannia River Radio) 

- ‘원주민을 위한 코로나19 공동체의 날’을 개최해 호주 원주민 대상으로 백신 접종 시 사용할 수 있는 식품 바우처 제공 및 관련 자금 확보 (Umeewarra Radio)

- 원주민 언어로 코로나19에 대한 정보 제공 및 잘못된 정보 정정, 지역 교회 예배 생중계 및 장례식 기록 촬영 (Ngaarda Media)

 

▲ NEMBC 다문화 뉴스 서비스 (출처 : CBAA)

 

▶ 홍수

- 사람들이 필요한 서비스와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도움 - 긴급 의료, 법률 구조, 보험금 청구 보조, 뜨거운 물로 씻을 수 있는 곳 제공 등. 문자 통해 도로 폐쇄, 산사태 등 위기 상황에 대한 현지화된 최신 정보 제공. (Bay FM)

- 홍수 구호 센터를 설립하여 의료팀과 24시간 주방 및 임시 주택 운영, 홍수 피해자와 지지자를 연결하는 자원활동가 등록 운영, 고립된 공동체 대상의 구호물품 마련, 130만 호주 달러 모금 (Koori Mail)
- 청소년 단체 및 교회 연합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홍수 피해자 가정을 방문하여 구호 서비스 이용을 돕는 캠페인을 진행하여 수백명의 참여로 17,500가구를 방문 (99.9 Live FM)

▲ 99.9 Live FM (출처 : CBAA)

 

 다양한 지역과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공동체라디오 방송국의 활동 사례이지만, 보고서는 공동체미디어가 ‘공동체의 복원력을 구축하기 위한 자산’으로서의 공통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재난 시 공동체미디어는 정보 제공 차원에서 특정 지역과 공동체가 소외되지 않도록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위기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공동체가 스스로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매개가 되고 있다. 그 활동의 규모는 소외되는 지역과 계층을 위한 24시간 재난 방송에서부터 방송과는 다소 동떨어져보이는 공연을 통한 기금 모금과 구호 센터 설립까지 이어진다. 어떠한 활동이든 방송에 일상적으로 바로 그 공동체가 참여하고 방송을 통해 소식을 듣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CBAA의 교육 사이트인 CBAA learning은 이러한 대응에 관한 몫을 개별 방송국의 노력만으로 두지 않고 재난에 관한 온라인 교육 과정과 관련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재난 방송을 위해 방송국의 입장에서 무엇을 감안해야 하는지를 비롯해, 방송 제작 전 알아야 할 사전 지식을 제공하고 있다.

 

▶ ‘재난 방송’ 교육 과정

- 재난 시 공동체의 상황과 정보 흐름, 재난 관리 생태계에서 공동체 방송의 위치

- 재난 시 공동체 라디오가 할 수 있는 역할과 공식/비공식 재난 방송사의 차이점

- 비상 상황 속 정확한 정보 탐색과 방송할 정보의 품질을 결정하는 ‘정보 흐름’ 이해하기

- 재난 방송을 구성하고 제 때 전달하며, 좋은 방송 메시지를 만들기 

- 재난 방송에서의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인식하고 대처 전략 세우기

 

▶ ‘공동체 방송의 회복력과 트라우마’ 교육 과정

- 회복력과 트라우마란? : 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 트라우마를 이해하는 방송

- 스트레스와 트라우마 : 스트레스와 트라우마의 관계와 공동체방송의 역할

- 자기 규제(Self Regulation)와 회복력(Resilience)

- 트라우마 이후 인터뷰하기 :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 방송국 리더십 : 트라우마를 이해하는 관리자, 자원활동가 돕기, 관리자의 회복

 

▲ CBAA Learning (https://learning.cbaa.org.au/)

 

기후 붕괴 상황에서 더욱 중요해질 공동체의 회복력

 

 기후 위기에 대한 최근의 서 『심층 적응』(젬 벤델·루퍼트 리드, 2021) 에서는 이미 지구와 우리 인류가 기후 위기와 이에 따른 경제적·사회적 붕괴를 피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충격적인 사실이기에 대중은 이를 부정하거나, 인정하지만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방식으로 반응할 수 있지만, 몰락은 불가피하며 인류에게는 이를 준비하는 ‘심층 적응’이 필요하다. 전사회적인 회복력의 증대와 지속될 수 없는 소유에 대한 포기, 사회적 재화의 복원, 상호의존성에 기반한 타협을 바탕에 둔 실천과 사회의 재편이 필요하다. 식량과 전력, 화폐 등의 지역 공동체 단위 자립을 추구하는 ‘재지역화’ 운동도 이러한 심층 적응 전략의 한 방향성으로 제시된다.

 

 더 이상 기후 변화와 재난을 피할 수 없다면, 그러한 재난의 결과가 약자에게 불평등하게 전가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혼란을 대비해야 할까. 다소 공포스러운 책의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재난과 이에 따른 사회의 위기가 점차 가중될 것임은 분명할 것이다.

 

 CBAA는 다양한 공동체의 사회 참여를 위한 필수적인 기반으로서 공동체 미디어를 설명하고 있다. 재난을 피할 수는 없지만, 재난 상황에서의 격차를 어떻게 할 것인지, 재난 이후 어떻게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지는 우리가 대비할 수 있는 영역이다. 우리에게 그러한 대비책으로서 공동체 미디어가 상상되고 있는지 묻고 싶다. 현재의 공동체 미디어가 그러한 역할을 해내고 있는지, 해낼 수 있는지 묻고 싶다. 그 역할을 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정책과 생태계를 만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나의 실천을 공동체미디어 활동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 

 

■ 참고 자료

3년 전 호주의 대형 산불... 라니냐 일으켜 지구촌 고통 (ESG경제)

- "호주 산불, 기후변화가 원인이었다" (동아사이언스)

- CBAA 「Beyond Broadcasting - Community media response to emergencies」 (2022)

- CBAA  ANNUAL REPORT 2020-21


글쓴이. 이세린

- 독립 생활을 만끽 중인 SNS 중독자. 사회운동과 계속 연결되어 있고 싶다. 2018년부터 미디액트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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