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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명 기계”로서의 카메라, 증언과 자백 그 사이에서 - 다큐멘터리 <포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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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3. 12. 2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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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38호 리뷰 2024.01.04.]

 

증명 기계로서의 카메라, 증언과 자백 사이에서

- 다큐멘터리 <포수> 리뷰

 

A (영화웹진 해파리 운영진)

 

 

다큐멘터리스트가 카메라를 들고 특정 소재, 사건, 인물을 대상으로 영화를 촬영하고자 했을 때에는 그것으로부터 이끌어내고자 하는 이야기가, 듣고 싶었던 목소리가, 다가가고자 하는 진실과 사건이 있을 것이다. , 제주도에 혼자 사는 할아버지 양서옥이 그의 손자이자 <포수> 감독인 양지훈에게 자주 찾아와 줘서 고맙다고 말할 , “할아버지 생각해서 오는 아니라니까요. 내가 이거 찍어서 하려고 하는 거라서.”라는 양지훈의 대답에서 영화가 다가가고자 하는 진실과 사건을 염두에 둔다. 여기에는 서옥의 말에 역사가 만한, 그러나 역사의 바깥에 놓인 증언이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다. 그것이 제주4.3사건에 대한 영화적 진술/구술이 될지, 혹은 감독/작가로서의 다큐멘터리/이미지 작업이 될지, 그것도 아니라면 감독 개인의 가족사적인 의미에서의 무엇인지는 확언할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으레 영화가 마주하고 싶어 하는 진실, 사실, 대상, 세계는 카메라를 앞에서 쉬이 입을 열지 않는다. 카메라를 자가 원하는 말들만 해주거나, 듣고 싶어하는 말만 해주지 않는다거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말을 하는 방식으로 어긋나 버린다. 그렇게 대개의 영화는 어긋날 수밖에 없음으로부터 자신의 영화적 형식을 정립해 나간다. 자신의 기획과 의도에 맞아떨어지도록 대상과 피사체를 깎고 깎아 그대로 대상화하려 봉합해 버리거나, 충돌을 전면으로 밀고 나가면서 새로운 영화적 형식을 타개하는 영화들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포수> 전자도, 후자도 아니라는 것이다. <포수> 믿음을 불신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영화를 만든다. 영화가, 카메라가, 이미지가, 다큐멘터리가 표방하는 진실에 대한 믿음을 향한 불신이 자신의 할아버지를 향한 순진한 믿음과 충돌한다. 거기에서 비윤리를 지향하는 윤리가 솟아난다. 이미지의 재현 윤리와 다큐멘터리카메라의 윤리를 맹신하면서 생산되어 우리 앞에 놓인 특권적 이미지와 말을 의심하면서, <포수> 영화의 표층으로 불신을 끌어 올린다.

 

▲ <포수> 스틸컷

 

 

영화 초반, <포수> 카메라는 증언을 기록하는 증명 기계이다.

서옥이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 우리 지훈이가 / 할아버지 말을 정확히 들었다가 / 이걸 증명할 있어야 .”

지훈이 카메라를 가리키며 대답한다. “여기 증명 기계…”

 

서옥의 아버지이자, 지훈의 증조할아버지는 제주4.3사건의 희생자이다. 7 동안 제주도에서 벌어진 민간인 대학살이라는 시간을 통과해 생존한 서옥과 그의 가족 역시 피해자이다. 가족이라고 , 섬이라는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당시 제주도에 사는 많은 이들이 가까운 사촌 관계였다는 점에서 제주도 사람 대부분은 제주4.3 연관되어 있다고도 있을 것이다. 2022 제주4.3사건 진상규명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개정되면서, 피해자와 유족은 가계도 바탕으로 피해 사실을 신고하고 심의를 거쳐 보상금을 지급받을 있게 되었다. 서옥과 지훈이 보상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 서옥은 지훈에게 자신의 말을 들었다가 정부에 증명할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지훈은 한편에 놓인 카메라를 가리키며 여기 증명 기계…” 있다고 말한다.

 

이때의 카메라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포착하는 다큐멘터리 카메라다. <포수> 카메라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가공하지 않고 기록함으로써 증명 기계 기능하지만, 동시에 여러 요소의 집합으로서 <포수>라는 다큐멘터리는 이것이 현실을 기록하는 매체가 아님을 반복적으로 드러낸다. 인터뷰어로서 인터뷰이의 말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규칙을 깨고, 서옥이 제주4.3사건에 대해 말하는 순간마다 지훈은 말의 중요성을 즉각적으로 알아차리고는 순간이 영화를 위해 의도적으로 마련되었음을 관객에게 상기시킨다. 그리고 지훈 자신이 누구보다도 강박적으로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하고자 한다. 서옥의 말을 가로막고, “잠시만,”이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산만하게 카메라 구도를 다시 배치한다. 촬영될 있도록, 담아낼 있도록. 그러나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그렇게 ()촬영된 영상이 아니라, 영화를 찍기 위해서는 여러 요소 - 카메라, 조명, 음향 - 들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어야 함을 깨닫게 만드는 부산스러운 행위들이다. 이렇게 바로 세워져 있던 카메라의 구도를 다시 배치하고, 기울어진 앵글을 편집하지 않고, 서옥의 목소리가 녹음될 있도록 서옥의 주머니에 마이크를 제대로 고정하는 지훈의 이같은 행위는 서옥의 말을 적합한 언어로, 채택될 만한 가치가 있는 증언으로 만드는 것을 실패하도록 한다.

 

제주4.3사건에 대한 서옥의 증언을 의도적으로 분산시키는 것은 카메라를 지훈뿐만이 아니다. 서옥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 대신, 서옥의 말이 끝날 때를 맞춰 추임새처럼 반응하는 단락적인 음악의 사용은 단순한 사운드 효과를 넘어 하나의 주장을 가진 것처럼 작동한다. 또한 <포수> 서옥의 안에서, 마당에서, 쇠막에서의 증언을 중심으로 한다. 장소는 비선형적으로 교차한다. 사이로 관광객들이 오가는 산책로나 놀이기구가 있는 산방산랜드를 배경으로 홀로 앉아 있는 서옥의 쇼트가 배치된다. 서옥의 집에 지훈이 머무는 동안 그들은 관광객들이 갈법한 제주도의 명소에 동행하지만, 영화는 이동 과정을 보여주는 대신 어떠한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할 제주도의 곳곳을 인서트로 삽입한다. 도로 외곽을 지나가는 트럭들, 평범한 호숫가, 덩그러니 놓인 비닐하우스, 그늘진 숲과 같은 인서트는 낭만적 여행지로 여겨지는 현재 제주도가 가진 장소성을 삭제한다. 그럼에도 서옥의 뒤편에 있는 산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관광객은 제주도 원주민으로 살아가는 서옥의 일상에 끊임없이 침입한다. 해석될 없는,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하는 인서트는 서옥과의 대화에서 산만하게 구는 지훈이 제주도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메타적인 시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제주도민도, 육지인도 아닌 채로, 지훈은 제주4.3사건의 당사자는 아니지만 가계도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입장에서 자신의 입장을 혼란스러워하는 같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사건의 바깥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애쓰면서도, 서옥의 곳곳에 걸려있는 파편적인 가족사진과 할아버지와 자기 부모와의 통화로부터 자신이 그런 입장에서 자유로울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렇게 지훈이 제주4.3사건으로부터 피할 없이 연루되는 순간이 드러난다.

 

 

▲ <포수> 스틸컷

 

영화 중반, <포수> 증언을 기록하던 증명 기계 점차 자백을 기록하는 증명 기계 된다.

서옥이 지훈에게 토벌대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동굴로 피난을 가야 했던, 가족과 죽음으로 헤어져야만 했던, 제주4.3사건의 피해자인 줄로만 알았던 서옥이 토벌대 활동에 가담했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다. 서옥의 증언에 산만하게 반응하던 지훈이 질문하기 시작하다. 구체적으로, 말을 덧대며, 서옥의 말에 살을 붙인다.

 

할아버지 토벌대였어요?”

토벌대가… / 그거 아니에요? / 사람들 죽이는 ? / 할아버지도 토벌대였어요?”

그러면 토벌대가 이렇게 징집이 거예요? 아니면…”

토벌대가 되지 않으면 죽이니까

살려면 토벌대가 되어야 했던 거네요

그럼 할아버지는 아무도 죽이지 않으셨던 거고?”

할아버지가 토벌대를 하셨을 당시에는 / 민간인들은 산에 없었다?”

할아버지도 가해자예요?”

 

지훈의 연루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서옥은 지훈의 바람대로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서옥이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고 말하는 지훈의 바람이 아닐 수도 있다. 서옥이 만약 누군가를 죽였다면 영화는 달라졌을까. 서옥은 가해자이기도 하고,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는 피난민이였으며, 토벌대였고, 경우회였다. 그때는 많은 사람들이 그랬다. 민간인은 빨갱이로 몰려 폭도가 되었고, 살기 위해서 한라산에 숨어들었다가, 산에서 내려온 후에는 산의 지형을 안다는 이유로 토벌대가 되었다. 토벌대 중에는 배우자와 자식이 죽고 혼자만 살아남은 사람도 있었다. 역사에 따르면, 토벌대는 한라산에 숨어든 피난민을 사냥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영화의 제목 <포수> 의미가 떠오른다. 총을 들고 쏘는 사람. 영화 초반부터 등장했던 ()고기의 인서트가 눈에 띄기 시작한다. 비닐로 포장된 붉은 돼지고기, 시장의 유리 냉장고에 보관된 돼지 부속, 먹다 남은 고기에 꼬인 하루살이, 까맣게 익은 고깃덩어리, 클로즈업된 육고기는 사냥당한 동물을, 피난민들이 사냥해서 먹은 동물을, 사냥당한 피난민의 이미지를연상시킨다. 그리고 총을 서옥을,

 

그러나 <포수>에는 고기를 먹는 서옥의 모습이 하나의 쇼트로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귤을 까먹거나, 떡을 먹고, 생선을 먹고, 술을 마신다. 그는 포식자의 모습과는 멀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포수 카메라를 지훈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함연선은 양지훈의 개인전《다르게 쏘기》전시 서문에 포수’, ‘The Shooters’ 의미를 서술한다. 그는 “1839년에 발명된 사진과 1862년에 발명된 기관총과 1895년에 발명된 영화 사이를 오가는, (Shoot)이라는 단어는 카메라의 폭력성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촬영하는 것뿐만 아니라 촬영된 것을 본다는 행위마저도 어쩔 없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폭력성까지 암시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양지훈의 전시 제목이 의미하는 다르게 총쏘기 카메라를 든다는 행위가 애초부터 폭력적인 행위임을 끊임없이 자각하면서 폭력의 대안적인 방식들을 찾아보겠다는 다짐이며, “폭력을 쓰지 않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폭력임을 받아들이면서도 어떻게 다르게 해볼 있지 않을까 고민해 보겠다는 선언이라고 말한다.

 

, “증명 기계카메라를 양지훈은 이미지의 폭력성을 증언하면서 카메라의 폭력성을 자백하는 사이에 있다.

 

양지훈의 편의 영상 작업 - <포수>(2022), <도라지>(2022), <테이큰>(2023) - 거울에 비치는 카메라를 자신의 모습으로부터 시작한다. 그의 영화에서 카메라를 자는 중요하다. 카메라를 자는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잽싸게 뛰어나가 순간을 스펙터클로 만든다. 훌륭한 포수의 덕목은 총을 쏘는 것뿐만 아니라 적기를 기다리며 자신을 숨기는 은신 기술까지를 아우른다. 그런 의미에서 양지훈은 훌륭한 포수는 아니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들키고, 자신을 드러내면서 도망가라고 신호를 준다. 그는 선한 포수다.

 

글을 쓰는 2023 12 감독 김지운, 배우 권해효, 프로듀서 조은성과 같은 영화인들이 조총련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통일부의 조사를 받았다는 기사가 나왔다. 재일 조선학교를 다루거나, 조총련 관계자들과 협업한 영화인들이 정부로부터 제재당하고, 압력받는다. 또다시 반복되는 블랙리스트다. 양지훈은 <도라지>에서 재일 조선학교를 다녔던 인물을 다룬다. 그와 함께 재일 조선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을 만나고, 재일조선인 가정을 방문하고, 북한에 방문했을 당시의 비디오를 함께 본다. 양지훈이 묻는다. 핍박에도 불구하고 재일 조선학교를 다녔냐고. 다시 돌아가도 재일 조선학교를 다닐 것이냐고. 제주4.3 당시 수많은 피난민들이 오사카를 비롯한 일본으로 밀항했다. 그들은 남한 정부로부터 도망쳤고, 그들 대부분은 그때의 공포로 조총련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 재일 조선학교를 다니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지금의 사태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글쓴이. A (영화웹진 해파리 운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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