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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창작자가 쓰는 다큐 리뷰(장윤미) - <보라>의 끝과 <파산의 기술>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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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3. 7. 14.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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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ACT! 에서는 다큐멘터리 창작자가 쓰는 다큐 리뷰를 연재합니다.

 

[ACT! 136호 리뷰 2023.08.03.]

 

<보라>의 끝과 <파산의 기술>의 시작

 

장윤미

 

 

영화 <보라>가 끝날 무렵에 이런 장면들이 이어진다.

 

사진기를 든 한 무리의 사람들이 프레임 밖으로 나가자 묵직한 피아노 음악이 재생되기 시작하고, 야구를 연습하는 아이, 수영 강사가 수강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야구 연습을 끝낸 아이들이 공들을 카트에 담아 화면 밖으로 가지고 나간다. 그리고 공원 저 멀리에서부터 걸어오는 사람들, 공원의 길은 건물의 긴 복도로 이어지고, 화장실에서 양치를 막 끝낸 인터넷 데이터 센터의 노동자가 복도를 걸어와 카메라를 향해 어색하게 웃으며 지나가면 이제 컴퓨터 수리 업체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이 나온다. 날아간 데이터를 복구하러 온 한 남자의 인터뷰, 다음은 하드디스크를 복구하는 작은 가게에서 커피를 타고 있는 사장이 보이고, 이어지는 그의 인터뷰, 계속되는 장면들. 그리고 영화는 밤의 허공에 반짝이는 볼링장 네온사인 간판으로 끝난다. 이 몽타주들의 연쇄를 보는 동안 알 듯 말 듯하면서도 뭉클해지는 마음. 마음이 움직이고, 왜 볼링장 간판이 마지막 장면이어야 했을까. 아리송하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 싶은 이 영화에 대한 신뢰. 한 사업장에서 현장보건관리가 시행되는 장면으로 시작되어 꽤 먼 곳까지 온 것 같은데 뒤돌아보면 시작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 <보라> 스틸컷

 

거칠게 요약하면 <보라>는 산업재해에 관한 논픽션이다. 어쩌면 많은 다큐 창작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을 법한 이 소재를 이강현 감독은 익숙하지 않은, 그렇다고 완전히 낯설지도 않은 방식으로 그가 직접 보고 들은 것과 긴 시간 소화했을 성찰을 풀어나간다. 외환위기 이후 개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파산 문제를 다룬 그의 첫 번째 영화 <파산의 기술> 역시 그렇다. 실재하는 현장이 있기에 엄격했을 그만의 고집과 하고 싶은 만큼 밀고 나가보는 자유로움이 동시에 느껴진다. 다큐 창작자로서의 나는 대충 이런 고민의 과정을 지나왔다. 방송 다큐 포맷이 아닌 방식으로 만들고 싶다, 영화 만드는 일로 사회운동을 하고 싶다, 판단하지는 않되 내가 느끼는 걸 더 자유롭게 표현해보고 싶다. 이 여정에서 만난 이강현의 영화들은 내게 큰 기쁨이었다. 관습적이지 않은, 설명보다 정서로 사로잡는, 끝내 다 이해했다고 하지 못하게끔 이끌고 가는, 무엇을 보여주고 있어도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게 하는, 낮은 곳과 변두리를 향하는, 중요해 보이는 장면들 사이에 무심한 듯 잉여의 이미지가 끼어 있고, 기어코 그걸 보는 이의 마음에 새기는, 그리고, 그리고 또. 그래, 이건 내가 사랑하는 영화들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겠다.

 

막상 그의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이유들에 대해 나열하고 나니 다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단어를 선택하고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그의 영화를 잘 말할 수 있을까. 지우고 싶다. 그럼에도 계속 생각해보고, 다시 들여다보고, 어떻게든 표현해보기. 다큐멘터리를 만들 듯. 이 고통 가득하고도 아름다운 세상에 대해 생각하듯. 그래서 그의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어떤 액티비즘 다큐멘터리보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다시 일고 계속 싸워나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진다. 계속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고 싶어진다.

 

<파산의 기술>은 지하철 CCTV 장면으로 시작한다.

 

드나드는 지하철, 갈 길 가는 사람들과 떠나지 못하고 플랫폼을 서성이는 사람, 검은 화면에 ‘2005’이라는 자막이 뜨고 서울 곳곳의 풍경, 라디오 소리.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희망이 보입니다라고 적힌 제약 회사의 구인 공고, 먹다 만 빨대 꽂힌 우유, 그 앞에 다림질하는 노동자. ‘프랭클린 플래너지하철 광고판이 나오고 “80년대 학생운동의 주축세력이 되었던 그룹이 사회에 어느 정도 주도적인 위치에까지 올라와있기 때문에라고 들리는 라디오 소리, 그 소리 위로 식사하는 노동자들이 등장하고 계속되는 라디오 인터뷰.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움직임들이 나타난.” 짧은 잡음 뒤 창밖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뜬금없이 웃다가 뜬금없이 허전하고”, 사연을 읽어주는 아나운서의 목소리, “땀 흘리고 일하고 계시는 부모님께 감사인사 드리고 싶다는 사연, 뒤이어 성공을 위한 자기계발을 강조하는 학원 강사가 보이고, 어딘가를 계속 응시하는 누군가의 얼굴, 계속되는 장면들.

 

▲ <파산의 기술> 스틸컷

 

뉴스와 사연 사이, 노동하는 얼굴과 광고 전단 사이. 아무 일도 없는 듯, 혹은 그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공고하게 돌아가는 사회에서 무엇인가가 우리를 사로잡아(*주1) 줄 신호를 그는 찾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다시 보는 그의 다큐멘터리 앞에서, 나는 자꾸 연출자의 존재를 가늠해보고 있다. 이 장면의 화각을 잡을 때는 어떤 직관과 망설임이 있었을까, 이것과 저것을 붙일 때는, 이 정도의 길이에서 잘라낼 때는. 그가 머물던 이미지, 소리, 얼굴들, 세상의 고통, 웃음과 절망과 희망 같은 것들을 영화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그가 했던 고민들을.

 

다른 나라에서 이강현 감독의 부고를 들었다. 지도에서는 오지라고 불릴 만한 곳에 좌표가 찍힌 추운 지역이었고, 나는 막 낮잠을 자고 일어난 뒤였다. 그의 투병 소식도 알지 못했기에 느닷없는 이 소식에 눈물만 뚝뚝 흘렀다. 왜 그렇게 슬펐을까. 말 한 번 나눠본 적 없는 사이였지만 일방적으로 그의 작업에 연대감을 느꼈던 것 같다. 비슷한 마음과 지향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는 든든함. 좋은 자극을 받는 선배이자 동료. 이제 다시는 그가 만든 작품을 볼 수 없다. 그게 가장 슬프다. 그리고 나는 지금껏 그래왔듯 지하철에서 문득 CCTV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길을 걷다 대한민국 전도가 붙은 가게의 유리창을 스칠 때마다 이강현의 영화가 생각날 것이다. 그가 제작 중이던 <지도를 만드는 사람>은 두고두고 상상할 수밖에 없겠지.

 

<보라>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하드디스크를 복구하는 남자가 전등 하나만 켜둔 어두운 가게에서 나지막이 말하는 시간이다. “우리가 얼마 전에 나노 인공위성을 쏜 것도, 이 우주라는 공간은 도면으로 만들기 힘들잖아요.” 인공위성과 우주에 대한 까마득한 이야기에서 시작해 세계지도와 미적분, 그리고 하드디스크의 구조와 복구의 원리에 대한 설명으로까지 이어진다. 두 사람이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을 공간의 아늑한 분위기마저 전해지는 장면.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기록의 덧없음과 별개로 나에게 이 시퀀스는 소중한 메모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준다. 그걸 지키고자 애쓰는 사람들의 각별한 마음과 함께. 그가 남긴 소중한 작품들을, 살아가는 동안 찬찬히 되새기고 싶다.□

 

▲ <보라> 스틸컷

 

 

*주

1) <보라> 연출 의도 중


글쓴이. 장윤미

그동안 8편의 장단편 논픽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계속 작업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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