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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창작자가 쓰는 다큐 리뷰 - 기억을 기록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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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3. 5. 25.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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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ACT! 에서는 다큐멘터리 창작자가 쓰는 다큐 리뷰를 연재합니다. 명소희 감독이 지난 3월에 진행된 <반짝다큐페스티발>의 상영작을 소개하는 글을 보내주었습니다. 

 

[2023.05.30 ACT! 135호 리뷰]

 

기억을 기록한다는 것

 

명소희

 

 

지난 3, 동료 감독 4(수목, 조이, 종호, 오쟁)과 함께 <반짝다큐페스티발>을 함께했다. 2020년 이후, 중단되었던 <인디다큐페스티발>의 부활을 염원하며, 우리는 20227월부터 <반짝다큐페스티발>을 함께 준비하였다.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우리는 종종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기억의 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인디다큐페스티발>이라는 영화제에 대한 각자의 애정과 추억은 우리 안에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기억이라는 것의 힘을 믿는다. 우리의 현재는 언제나 의 지나온 시간과 타자의 흔적 위에 세워진다. 우리가 과거의 시간들을 모두 기억해내지 못하더라도, 그 시간은 어딘가에 남아있다. 내가 미처 다 보고, 듣고, 경험하지 못한 시간들도 누군가의 시간 속에 존재한다. 나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우리의 기억 속에서 도망 가버린 시간, 어딘가 은밀하게 숨어든 시간들을 발견하고 기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반짝다큐페스티발>에서 소개되었던 류승진 감독의 <>기억과 관련한 영화다. 영화 <>5.18 당시 을 찾으러 갔다가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어느 여성의 기억에 관한 기록이다. 영화 속에 재현된 광주는 평범하다. 차들이 바쁘게 도로 위를 지나가고, 시장에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일상적인 현재의 시간 속에 5.18 당시 관을 구하러 다녔던 어느 여성의 과거의 시간이 겹쳐진다.

 

▲류승진 감독, 영화 < 관 > 의 한 장면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새삼 우리의 현재를 돌아보았다. 우리는 많은 기억의 무덤 위에서 시간을 이어간다. 언젠가 우리의 현재 역시 누군가의 현재 아래에 놓일 과거가 될 것이다. 우리가 보고, 감각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지금이라는 시간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지나간 시간이며, 우리의 기억이다. ‘기억이라는 것에 카메라를 비추는 것은, 미처 이야기 되지 않은 시간들을 수집하는 일이다. 다큐멘터리의 숙명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반짝다큐페스티발>에서 소개된 영화 중, 기억과 관련한 영화 한 편을 더 소개하고 싶다. 황혜진, 나선혜 감독의 <, 아래, >이라는 작품이다. 두 감독은 이사한 집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각자의 일상을 공유한다. 그들의 대화 너머로는 백사마을현재가 보여 진다. 그러다 이내, “얼마 전에 백사마을 갔었어?”라는 질문과 함께 두 감독의 공유된 기억이 이야기로 펼쳐진다. 두 감독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문득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처음 춘천 소양로라는 곳으로 이사를 갔을 때의 기억이었다. 좁은 골목과 다닥다닥 붙어있는 기와집들. 쿰쿰한 연탄 냄새와 물비린내. 어릴 땐, 늘 떠나고 싶었던 그 동네는 이제 꿈에서만 만날 수 있다. 내가 살았던 집, 친구들과 뛰어다녔던 골목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나의, 내 친구들의, 내 이웃의 과거 기억 위로 높고 세련된 아파트가 들어온다고 한다. 이제는 출입조차 허가되지 않은 그 땅 아래, 여전히 나의 꿈은 존재할까.

 

▲황혜진 ,나선혜 감독 < 꿈 ,아래 , 꿈 >의 한 장면

 

사적이고, 일상적이었던 두 감독의 대화가 나에게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인상적인 순간으로 남았다. 사적인 것, 일상적인 것을 공유한다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이에게 한 조각 내어주는 일이다. 그렇게 우리는 만난 적 없지만, 서로의 기억을 공유하며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재의 시간에 대해 사유하게 된다. 우리가 서있는 이 시간 아래로는 얼마나 많은 이들의 기억이 켜켜이 쌓여있는 것일까.

 

그러한 생각들은 결국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연장된다. 나는 여전히 이 막연한 질문 앞에 서있다. 그래도 <반짝다큐페스티발>을 통해 만났던 두 작품이 나의 막막한 마음을 달래주는 것 같다. 이제 나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은 두 편의 영화.

 

여러분의 이야기로 저를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쓴이. 명소희

카메라는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매력적인 글쓰기 도구라 생각한다.

주로 일상 속에서 이미지들을 발견하고, 기록하며 작업을 한다. 현재는 여성들의 삶과 기억을 주제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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